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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로마서 8장을 살펴보고 있습니다. 로마서 8장을 통해서 성령 안에서의 삶, 성령님 안에서 사는 것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죠. 오늘 처음 오신 분들을 위해 말씀드리자면 이번이 열 번째 시간입니다. 여러분은 어떠실지 모르겠지만 저는 참 시간이 빠르게 가는 것 같습니다. 또 설교를 준비하면서 좋은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로마서 8장을 다루는 이 시리즈의 목적은 성령님의 진정한 사역이 무엇인지 알 수 있도록 돕는 것입니다. 복음주의 기독교가 성령님의 사역을 오해하게 만들고 왜곡하고 있는 이 시기에 말이죠.

이런 오해와 왜곡은 일종의 기독교 제3세력인 오순절/은사주의 운동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기독교를 크게 세 가지 세력으로 나누자면 로마 가톨릭교, 개신교, 오순절교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중에서 로마 가톨릭의 오류는 비교적 잘 알려져 있죠. 개신교가 존재하는 이유는 말 그대로 가톨릭의 오류에 저항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아직 오순절 운동의 성경 왜곡에 대해서는 크게 저항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반면에 저는 여러 해 동안 계속 저항해 왔습니다. 오래 전에 <은사주의란 무엇인가>를 집필했고, 그 뒤를 이어 <무질서한 은사주의>도 썼죠. 아마도 많은 분들이 읽어 보셨을 겁니다. <무질서한 은사주의>는 지금도 쉽게 구할 수 있는데, 은사주의와 그 거짓 교리에 속고 있는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길 바랍니다.

그러니까 이번 시리즈를 통해 시도하고 있는 것은 성경의 빛으로 성령님을 비추어 오순절 운동으로 인한 오해의 그늘에서 벗어나게 하는 것입니다. 성령님에 대한 진리를 알면 하나님을 올바르게 예배할 수 있게 됩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이 누구신지와 삼위일체 하나님이 하신 일로 예배받으셔야 합니다. 우리는 성부와 성자와 성령 하나님을 참되게 예배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영과 진리로 예배해야 합니다. 따라서 반드시 성령님을 올바르게 이해해야 합니다.

오순절/은사주의 운동의 가장 큰 역설은 성령 운동이라고 주장하면서도 성령님이 누구시며 무엇을 하시는지에 대해 가장 크게 왜곡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마치 성령에 대해 계속 이야기하기만 하면 정말로 자기들이 성령의 능력을 소유하고 있다고 사람들이 확신할 거라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우리는 그 운동을 정의하는 교리적 일탈 때문에 의문을 제기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일탈의 대부분은 성령님과 관련이 있지만 꼭 거기에만 국한되지는 않습니다. 은사주의 운동에는 성경의 교리나 하나님의 계시의 교리에 대한 일탈도 있습니다. 결코 작은 문제가 아니죠. 은사주의자들은 하나님이 여전히 계시하고 계시며, 여전히 말씀하시고, 환상과 지혜의 말씀, 지식의 말씀, 계시를 사람들에게 지금도 주고 계시다고 확신합니다. 성경의 유일성에 의문을 제기하는 겁니다. 요한계시록 끝에 나오는 경고를 떠오르게 하죠. “누구든지 이것들 외에 더하면 하나님이 이 두루마리에 기록된 재앙들을 그에게 더하실 것이요.” 하나님의 계시를 흐리는 심각한 오류가 은사주의 운동에 만연해 있습니다.

그리고 해석의 문제가 있습니다. 오순절/은사주의 운동에서는 성경을 어떻게 해석할까요? 대체로 피상적으로 해석할 뿐만 아니라 영적으로만 치우쳐서 해석합니다. 또 직관과 경험으로 해석합니다. ‘자의적 해석(eisegesis)’, 즉 본문에 자신이 원하는 바를 넣어서 해석합니다. 권위의 문제에도 심각한 오류가 있습니다. 교회에서 무엇이 권위를 갖습니까? 누군가의 경험이 권위를 갖습니까? 누군가의 감정이 권위를 갖습니까? 진리가 실존적 경험이나 체험에 의해 결정됩니까? 진리가 경험에 의해 검증됩니까? 자신만의 세계를 창조할 수 있는 힘이 개인에게 있을까요? 그 운동에서 말하는 긍정적 고백처럼 우리에게 자신만의 세계가 생겨나도록 말할 수 있는 권위가 정말 있습니까? 우리가 자신만의 현실을 창조할 수 있습니까? 우리가 하나님에 대해서도 권위를 가져서, 우리가 말한 것들 때문에 하나님이 특정한 일을 하시도록 강요할 수 있고, 우리의 믿음으로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 행하시도록 강요할 수 있단 말입니까? 권위의 문제는 은사주의 운동에서 크게 왜곡되고 있는 정말로 심각한 문제입니다.

사도직에 관한 문제도 있습니다. 오순절 운동에 따르면 지금도 사도와 선지자가 있답니다. 사도에게 여전히 사도로서의 표적이 나타난답니다. 소위 기적을 행하고 사람들의 마음을 읽고 하나님으로부터 계시를 들을 수 있다고 하는 새로운 '사도들'이 있답니다. 이런 주장은 참된 사도들, 즉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본 제자들에게만 주어졌던 사도의 직분과 사역을 정면으로 부정하는 것입니다.

우려되는 다른 문제도 있습니다. 외형주의, 즉 내적 성화보다는 외적 현상에 더 집중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 중에서도 성령님에 대한 것만큼 광범위하게 왜곡되는 영역은 없는 것 같습니다. 많은 일들이 성령님의 능력이나 성령님의 역사로 여겨지지만, 사실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기독교 매체를 통해 오순절/은사주의 운동이 지배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는 배경 속에서, 우리가 성령님의 진정한 사역을 이해하는 것은 정말 중요합니다. 이와 별개로, 주님을 예배하기를 원하는 신자로서 우리는 우리가 예배하는 분이 누구이며 왜 예배해야 하는지 알아야 합니다. 성령님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대부분은 하나님, 하나님의 본성, 하나님의 영광에 대해 알고 있고, 하나님의 속성이 무엇인지도 알고 있습니다. 또한 우리 모두는 그리스도, 그리스도의 위격과 사역, 그리스도가 하신 일에 대해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성령님의 위격과 사역에 대해서는 혼란스러워 하는 것 같습니다. 제가 일주일 전에 말씀드렸듯이, 천국 여행을 다녀온 4살 아이가 쓴 책에서 성령님을 투명하고 파란 안개 같은 존재라고 하는데, 그 책이 9개월 만에 500만 부나 팔렸습니다. 성령님의 사역에 대해 이렇게 많은 혼란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성경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성경으로 돌아가면 성령님이 누구신지 명확히 알 수 있고, 성령님의 사역이 분명하게 설명되어 있다는 것도 알게 됩니다.

이러한 이유로 로마서 8장을 살펴보고 있는 겁니다. 로마서 8장을 펴시기 바랍니다. 로마서 8장이 성령님의 사역을 다루는 유일한 장은 아닙니다. 성경 전체에 걸쳐 나타납니다. 하지만 이 장은 중요한 초점이 되는 곳입니다. 왜냐하면 너무나 많은 내용이 담겨 있기 때문입니다. 믿는 자, 신자의 삶에서 성령님이 행하시는 사역에 대해 꼭 알아야 할 모든 것이 이 위대한 한 장에 모여 있습니다. 저는 이 장을 성령님의 장이라고 부르고 싶습니다. 성령님 자신에 대한 장이라고 말입니다.

1901년에 오순절/은사주의 운동은 성령 세례에 대한 잘못된 해석으로 시작되었습니다. 은사주의자들은 성령 세례라고 부르는 것을 만들어냈는데, 사실 그리스도의 참된 사역과는 아무 관련이 없습니다. 신약성경이 말하는 성령 세례는 구원을 받는 순간에 모든 믿는 자에게 주어지는 것으로서 그리스도의 지체가 되게 합니다. 하지만 은사주의자들은 성령 세례가 신자에게 일어나는 또 다른 사건이라고 주장합니다. 구원 이후에 일어나는 반복 가능한 사건이라고 합니다. 성령 세례를 받으려고 노력하다가 마침내 받게 되면 알아차릴 수 있는데, 그 이유는 여러분이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하게 되고 더 많은 능력을 갖게 되며 더 높은 수준의 영적 능력으로 올라가기 때문이랍니다.

만일 여러분이 이 소위 성령 세례를 충분히 받으면 ‘기독교 완전주의’ 상태에 들어갈 수 있다고 합니다. 이 상태에서는 고의로 죄를 짓지 않게 된다고 합니다. 의도치 않게 실수를 할 수는 있지만, 의도적으로 죄를 짓지는 않는다는 겁니다. 이는 성령 세례에 대한 완전한 왜곡입니다. 성령 세례는 그리스도께서 여러분의 구원의 순간에 성령님의 능력으로 여러분을 그리스도의 몸, 즉 교회의 지체로 만드시는 사역입니다.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의 순간에 단 한 번 일어나며, 결코 반복되지 않고, 구하려고 해서도 안 됩니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은사주의 운동은 이런 잘못된 견해로 시작되어 다른 오류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물론 우리는 이 운동에서 벗어나기를 원합니다. 하지만 제가 이렇게 말씀드리는 이유는 이것이 얼마나 거대한 운동인지 여러분이 이해하기를 바라기 때문입니다. 말씀드렸듯이, 이 운동이 시작된 지 100년이 지난 지금, 최근에 제가 본 통계에 따르면 약 5억 명의 사람들이 이 운동에 동참하고 있습니다. 이 잘못된 운동의 성장세를 보여주죠.

우리는 로마서 8장을 살펴보면서 성령님의 진정한 사역을 알아가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이 모든 자료를 잘 활용하셨으면 좋겠습니다. 시리즈를 다운로드 받으려면 GTY.org 웹사이트를 방문하시면 됩니다. CD로 주문하고 싶으시면 Grace To You에서 구입하실 수 있습니다.

자, 이제 로마서 8장 26절에서 30절을 보겠습니다. 지난주에 이미 26절, 27절, 28절을 살펴본 바 있지만 마음에 새기실 수 있도록 다시 읽겠습니다.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는 마땅히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마음을 살피시는 이가 성령의 생각을 아시나니 이는 성령이 하나님의 뜻대로 성도를 위하여 간구하심이니라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을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으니 이는 그로 많은 형제 중에서 맏아들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또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이 구절은 개혁 신학의 모든 것을 요약하고 기초를 형성한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 구절에서 칼빈주의가 태어났다고 할 수 있습니다. 구원, 미리 아심, 예정, 부르심, 의롭다 하심, 영화롭게 하심에 관한 성경적 요소가 모두 여기에서 언급됩니다. 전혀 모호하지 않습니다. 간접적이지도 않고 이해하기 어렵지도 않습니다. 매우 명확한 성경 말씀입니다.

로마서 8장을 통해서 우리는 성령님의 사역을 살펴보고 있습니다. 성령님은 우리의 미래 영광을 보장하십니다. 그렇죠? 또 이미 이 장을 통해서 성령님이 하시는 다른 일들을 보았습니다. 성령님은 우리를 죽음과 심판에서 자유롭게 하시고, 율법을 지키고 성취하며 의로운 방식으로 행할 수 있게 하십니다. 우리의 본성을 변화시키시고, 우리를 하나님의 가족이 되도록 자녀로 입양하십니다. 그리고 17절부터는 영화롭게 하시는 사역을 설명합니다. 17절에서 30절까지는 성령님이 우리가 영원한 영광을 얻을 때까지 어떻게 확실하게 지켜주시는지를 설명합니다. 이것은 모든 복 중에서 가장 큰 복입니다.

에베소서 1장은 이렇게 말합니다.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을 우리에게 주시되.” 이 모든 신령한 복 중에서 신자의 안전이 가장 위에 있습니다. 취소될 수 없고 실패할 수 없는 구원으로 복을 받는 것은 모든 복 중에서 가장 큰 복입니다. 그리고 이는 에베소서 1장 12절이 말하듯이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소망을 두고 있다는 것, 그리스도 안에서 바라던 것입니다. 우리의 소망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성령님은 약속의 성령입니다. 에베소서 1장 13절에 나오죠. 이는 우리 기업의 보증이 되사 그 얻으신 것을 속량하시고 그의 영광을 찬송하게 하려 하심입니다. 성령님은 우리의 미래 영광에 대한 계약금, 보증, 약혼 반지입니다. 성령님이 주시는 선물은 우리를 보호하시는 것입니다. 베드로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너희는 말세에 나타내기로 예비하신 구원을 얻기 위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영광으로 보호하심을 받았느니라.” 우리를 지키는 하나님의 능력은 비인격적인 것이 아닙니다. 우리를 지키시는 하나님의 능력은 바로 성령님입니다. 이것이 우리의 구원에서 가장 큰 복입니다.

여기서 잠시 유명한 오순절 운동 지도자의 말을 인용해 보겠습니다. “사탄이 고안한 가장 큰 속임수는 '한 번 구원받으면 영원히 구원받는다'는 잘못된 교리이다.” 상당히 심각한 비난입니다. 사탄이 고안한 가장 큰 속임수가 구원이 영원하다는 것이라니요? 이것이 사탄의 속임수입니까? 이게 바로 소위 오순절주의 신학의 기초입니다. 신자의 안전에 대한 교리가 사탄의 속임수라고 말하는 것은 정말 심각한 문제입니다. 기독교 신자들이 구원을 잃을 수 있다고 주장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저는 우리가 지금 살펴보고 있는 본문을 통해서 우리의 구원이 영원하다는 것에 대한 절대적이고 침해할 수 없으며 논쟁의 여지가 없는 증거를 보여드릴 것입니다.

저는 그렇게 구원을 잃을 수 있다고 생각하면서 두려움과 의심을 가라앉히기 위해 외적인 현상을 찾고 있는 사람들을 생각하면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그런 상황에 놓인 사람들은 불필요한 두려움 속에 살아갑니다. 그래서 이렇게 질문합니다. 어떻게 해야 구원을 유지할 수 있을까? 어떻게 버텨야 할까? 이런 질문을 하는 것 자체가 인간의 의지에 대한 과도한 기대를 전제하고 있습니다. 만약 여러분이 스스로 구원받은 상태에서 버텨야 한다면 버틸 수 없을 겁니다. 여러분이 스스로 구원을 유지해야 한다면 그럴 수 없을 겁니다. 이 사랑스러운 분들은 영원한 구원을 잃을까 하는 불필요한 두려움 속에서 살아갑니다. 이는 그리스도인 신자들을 은혜로 영광에 이르게 하시는 성령님의 사역을 모욕하는 것입니다. 은사주의자들은 불편함, 두려움, 의심, 공포 속에서 살아갑니다. 그래서 외적인 현상을 찾아서 약한 믿음을 강화하고 두려움을 없애려고 하는 겁니다.

26절과 27절은 이미 살펴보았으니 28절부터 시작하겠습니다. 28절입니다.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여기서 말하는 선은 제가 지난번에 말씀드린 것처럼 우리의 영원한 선, 즉 우리의 영원한 영광입니다. 하나님이 모든 것을 합력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그러니까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 영원한 영광이 이뤄지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이 구절은 매우 매우 중요합니다. 하나님은 모든 것이 합력하도록, 시너지 효과를 내도록 만드시는데, 여기서 '시너지'라는 동사가 나왔다고 말씀드렸죠, 우리의 영원한 선을 위해서입니다. 이는 그 어떤 것도 부정적인 결과를 초래할 수 없음을 의미합니다. 모든 것, 좋은 것, 나쁜 것, 그리고 무관심한 것까지도 하나님은 우리의 영원한 선을 위해 합력하게 하십니다.

그런데 왜 그렇게 하실까요? 왜 하나님은 그렇게 하실까요? 이게 핵심입니다. 오늘 아침에 여러분이 이 점만큼은 꼭 이해하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이 점을 여러번 강조할 겁니다. 합력하여 선을 이루는 것이 하나님의 목적이기 때문입니다. 28절 하반절입니다. 하나님은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하십니다. 우리의 영원한 선을 위해, 하나님을 사랑하는 우리를 위해서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들을 위한 것이 아닙니다. 참된 신자에게만 해당하는 것이죠.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룹니다. 이것은 모두 하나님의 목적에 따라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구원은 하나님이 정하신 것입니다. 이 부분에서 시작할까요? 구원은 하나님이 정하신 것이며, 하나님의 의도에 따라 계획된 것입니다. 우리가 안전한 것은 그것이 하나님이 구원을 설계하신 방식이기 때문입니다. 결국 어떤 것이든 처음에 하나님이 세우신 계획과 정확히 일치할 것입니다. 하나님이 구원을 계획하시기 위해 의도하신 것은 무엇이든 그대로 이루어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여기에는 변수가 없습니다. 끝이 열려 있지 않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요한복음 6장에서 이렇게 말씀하신 겁니다. “아버지께서 내게 주시는 자는 다 내게로 올 것이요 내게 오는 자는 내가 결코 내쫓지 아니하리라.”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은 내게 주신 자 중에 내가 하나도 잃어버리지 아니하고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는 이것이니라.” 하나도 잃어버리지 아니한다고 하십니다. 하나님이 이루고자 하시는 모든 것은 반드시 이루어질 것입니다. 그러니까 구원의 끝은 그 시작부터 이미 결정되어 있습니다. 여러분이 잘 알고 계셔야 할 매우 중요한 성경말씀을 통해서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구약성경 이사야 46장입니다. 제가 하나님의 말씀을 공부하고 이러한 진리를 이해하려고 노력하던 초창기에 발견한 말씀입니다. 구원의 본질과 하나님의 목적에 관한 가장 강력하고 설득력 있는 말씀으로 다가왔습니다. 그야말로 제 삶을 변화시킨 말씀입니다.

이사야 46장 9절입니다. 하나님은 여기서 바벨론의 우상들과 자신을 비교하고 계십니다. “너희는 옛적 일을 기억하라 나는 하나님이라 나 외에 다른 이가 없느니라 나는 하나님이라 나 같은 이가 없느니라.” 바로 유일신론입니다. 오직 한 분 하나님만 계십니다. 그리고 다음 구절에서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을 인식시켜 주시는 말씀이 나옵니다. “내가 시초부터 종말을 알리며.” 다시 말해서 이 말씀은 하나님이 시작부터 끝이 어떻게 될지를 정확히 아심을 의미합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전지하심입니다. 이 전지하심은 마지막 끝까지 전부를 아시는 것입니다.

일이 일어났든 일어나지 않았든 상관없습니다. 역사적으로 기록될 수 있든 없든 상관없습니다. 누군가가 알고 있든 모르든 경험했든 안 했든 상관없이 하나님은 모두 알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일어나지 않은 일도 일어난 일만큼이나 잘 아십니다. 하나님은 미래를 과거만큼 잘 아십니다. 미래를 과거만큼 완벽하게 아십니다. 하나님이 모르시는 것은 없습니다. 아직 일어나지 않았다고 해서 일어날 것을 모르신다는 뜻은 아닙니다. 한 걸음 더 나아가서 말하겠습니다. 하나님은 앞으로 일어날 일을 아실 뿐만 아니라, 무엇이 일어날지 결정하십니다. 하나님은 시작부터 끝을 정하십니다. 따라서 하나님이 구원에 있어 하나님이 정하신 끝이 무엇이든 그대로 이루어질 것입니다.

46장을 계속 보겠습니다. 10절입니다. “내가 시초부터 종말을 알리며 아직 이루지 아니한 일을 옛적부터 보이고 이르기를,” 이제부터가 핵심입니다, “나의 뜻이 설 것이니 내가 나의 모든 기뻐하는 것을 이루리라 하였노라.” 하나님이 계획하신 바를 반드시 이루시겠다는 선언입니다. 11절 하반절입니다. “내가 말하였은즉 반드시 이룰 것이요 계획하였은즉 반드시 시행하리라.” 이것을 구원에 적용해 보십시오. 하나님이 계획하신 것은 무엇이든 이루어질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무엇을 계획하셨을까요? 무엇을 계획하셨을까요? 구원의 목적은 무엇입니까? 글쎄요, 이 질문에 답하기 전에, 하나님의 목적, 하나님의 목적이라는 개념을 먼저 짚고 넘어가겠습니다. 정확히 알아야만 하기 때문입니다.

오늘 아침에는 구원에 있어 하나님의 목적에 대해 이야기할 것입니다. 그리고 다음 주일에는 하나님께서 그 목적을 이루시는 과정에 대해 이야기할 것입니다. 그러니까 오늘은 목적에 대해, 다음주에는 과정에 대해 다루겠습니다.

잠시 에베소서 1장으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오늘 본문과 연관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에베소서 1장입니다. 제가 잠시 전에 읽어드린 놀라운 구절을 떠올려 보십시오. 구원의 전체 이야기가 담겨 있습니다. 양자됨, 은혜, 구속, 그리스도의 피, 죄 사함, 이 모든 것들이 구원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이 모든 것을 움직이는 것이 하나님의 계획이라는 점이죠.

4절입니다.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하나님은 우리를 왜 택하셨나요? 목적이 무엇이었습니까?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이것은 이 생에서는 일어나지 않을 일입니다. 그렇죠? 일어나지 않을 일입니다. 물론 우리가 이 은혜의 시기를 살아가는 동안 그리스도의 의가 우리에게 전가됩니다. 하지만 예정의 최종 목표는 그리스도 앞에 거룩한 백성이 서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습니다. 이 모든 것은 하나님의 뜻에서 시작됩니다. 그런데 6절을 보십시오. 왜 그렇게 하십니까?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송하게 하려는 것이라.” 그러니까 구원의 목표는 우리를 은혜로 구원하시고 은혜로 지키시며 영광으로 인도하셔서 영원히 우리를 향한 은혜를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심지어 천사들도 이 영광을 경험하는 대상이 될 겁니다. 바울은 천사들이 복음의 영광을 바라보고 있다고 말합니다. 왜냐하면 은혜를 경험해 본 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만약 은혜로 구원받는 죄인들이 없다면, 하나님 본성에서 은혜라는 측면은 결코 드러나지 않을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영광을 찬송하게 하시기 위해, 은혜의 영광을 찬송하게 하시기 위해 죄인들을 구속하여 영원한 임재 안으로 인도하시고 은혜를 영원히 보여주십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기쁘신 뜻입니다. 우리에게 이 은혜가 자비가 되는 것은 거저 주시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는 자비이지만 그 목적은 하나님의 은혜의 영광을 찬송하게 하기 위한 것입니다.

7절은 여기서 더 나아갑니다.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피로 말미암아 속량 곧 죄 사함을 받았습니다. 왜 이렇게 하시는 걸까요? 11절입니다. “모든 일을 그의 뜻의 결정대로 일하시는 이의 계획을 따라 우리가 예정을 입어 그 안에서 기업이 되었으니.” 하나님은 목적이 있으셨습니다. 우리를 그 목적을 위해 예정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모든 일을 그 목적에 따라, 그의 뜻의 결정대로 일하십니다. 12절입니다. “이는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전부터 바라던 그의 영광의 찬송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 다시 말해, 그 목적의 끝은 하나님이 예정하신 모든 사람들이 구원받고 영화롭게 되어 영원히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송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목적이자 의도이며 계획입니다. 하나님이 지금 하고 계신 일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우리에게 보증을 주셨습니다. 13절 끝부분을 보면,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약속의 성령으로 인치심을 받았습니다. “이는 우리 기업의 보증이 되사 그 얻으신 것을 속량하시고,” 다시 한 번 우리가 하나님이 얻으신 것, 즉 하나님의 소유라고 말합니다, “그의 영광을 찬송하게 하려 하심이라.”

만일 여러분이 하나님의 신성한 능력, 하나님의 목적, 그리고 하나님의 전지하심이라는 더 큰 맥락에서 ‘신자의 안전’이라는 개념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여러분은 이 거대한 우주적 현실을 이해하지 못할 것입니다.

히브리서 6장에는 하나님의 목적으로 인해 우리가 갖게 된 안전에 대한 또 다른 매우 설득력 있는 증언이 있습니다. 히브리서 6장 17절을 보겠습니다. 참고로, 6장 앞부분에서는 진리에서 떨어져 나간 사람들, 즉 모든 계시를 받았는데도 불구하고 떨어져 나간 참된 신자가 아닌 사람들은 버림을 당하고 저주를 받을 것이며 불태워질 것이라고 합니다. 8절에 나와 있죠. 그러다가 9절부터는 신자를 향한 말씀이 나옵니다.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이같이 말하나 너희에게는 이보다 더 좋은 것 곧 구원에 속한 것이 있음을 확신하노라.” 17절로 넘어가겠습니다. “하나님은 약속을 기업으로 받는 자들에게 그 뜻이 변하지 아니함을 충분히 나타내시려고 그 일을 맹세로 보증하셨나니.”

놀라운 일입니다. 하나님은 약속의 상속자들, 약속을 기업으로 받는 자들에게 영원한 영광을 위한 하나님의 약속을 나타내기를 원하셨습니다. 우리는 완전한 기업을 기다리는 상속자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자신의 목적, 자신의 뜻이 변하지 않음을 보여주기를 원하셨습니다. 결코 변하지 않을 것입니다. 하나님이 뜻하신 것은 무엇이든 이루어질 것입니다. “그 일을 맹세로 보증하셨나니 이는 하나님이 거짓말을 하실 수 없는 이 두 가지 변하지 않는 사실로 말미암아 피난처를 찾은 우리로 하여금 앞에 있는 소망을 굳게 잡게 하려 하심이라.” 이 두 가지는 무엇입니까? 약속과 맹세입니다. 하나님은 약속하셨고 그 약속에 충실하시겠다고 맹세하셨습니다. 이 두 가지 변하지 않는 사실로 하나님은 뜻이 변하지 아니함을 선언하십니다. 그 결과, 거짓말하실 수 없는 하나님은 우리가 큰 안위를 받아 우리 앞에 놓인 소망을 굳게 잡을 수 있게 하셨습니다. 19절에서 말하듯이 이 소망은 영혼의 닻입니다.

구원을 잃을 수 있다고 위협하는 가르침 아래에서 어떻게 살아갈 수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우리에게는 말 그대로 끝까지 붙들어주는 닻이 있습니다. 히브리서 6장 19절부터 20절이 말하듯이, 우리가 이 소망을 가지고 있는 것은 영혼의 닻 같아서 튼튼하고 견고하여 휘장 안에 들어갑니다. 예수님께서 그리로 앞서 가셨습니다. 우리에게는 변하지 않는 약속을 하신 변하지 않는 하나님이 계십니다. 또한 하나님은 약속 위에 맹세를 더하셨습니다. 그래서 이 두 가지 변하지 않는 현실로 인해, 거짓말하실 수 없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영원한 영광의 약속을 맹세하셨고, 따라서 우리에게 안전한 소망을 주셨습니다. 우리는 하나님 우편에 계신 하나님의 아들의 중보와, 26절과 27절에서 말하는 것처럼 우리 안에 계신 성령님의 지속적인 중보로 안전하게 지켜집니다. 성령님은 계속해서 하나님의 뜻대로 기도하십니다. 따라서 우리는 첫째로 하나님의 약속으로, 둘째로 그리스도의 대제사장 사역으로, 셋째로 복되신 성령님의 개인적인 중보로 안전하게 지켜집니다.

우리의 구원은 영원합니다. 하나님이 설계하신 방식이 그렇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계획하신 방식이기 때문에 그렇게 될 겁니다. 따라서 모든 것이 우리의 선을 위해 합력합니다. 하나님의 목적과 일치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구원에 있어 하나님의 목적은 무엇일까요? 무엇일까요? 물론 “우리를 천국에 들어가게 하는 것”이라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실제 목적에 비해서는 조금 부족합니다. 제 말은 천국에 가는 과정이 더 중요하다는 겁니다. 많은 사람들이 구원을 그저 천국에 가려는 노력으로만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천국에 가면 작은 하프를 받고는 작은 구름에 앉아서 완벽한 환경에서 영원히 연주하게 될 거라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실제 천국과는 거리가 멀죠. 천국 여행을 다녀왔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쓴 책에서 볼 수 있는 어리석은 내용의 일부에 불과합니다.

저는 또 다른 책을 하나 쓰려고 하는데요, 바로 <천국을 말하다>입니다. 왜냐하면 천국에 다녀왔다는 사람들의 모든 이상한 이야기들을 비교해보면 그 어느 것도 서로 일치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어디를 갔든지 그곳은 천국이 아닙니다. 만약 천국이었다면 모두 일치했을 겁니다. 천국은 천국 그 자체이며, 이 모든 사람들이 말하는 서로 다른 의견과는 다릅니다. 진실은 하나님의 말씀 안에 있습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이 천국에 가게 된 목표는 무엇일까요? 무엇이 목적이 될까요?

여러분이 이 목적을 알게 되시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로마서 8장으로 돌아가서 잠시 하나님의 목적을 살펴보겠습니다. 하나님의 목적은 성취될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계속 강조해온 요점입니다. 하나님의 목적은 창세 전, 세상의 기초가 놓이기 전에 이미 세워졌습니다. 하나님은 그 목적을 미리 정하셨고 그렇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이 계획하신 대로 될 겁니다. 끝은 시작과 같을 겁니다. 그런데 이 목표는 무엇일까요? 이 목적은 무엇일까요? 왜 하나님은 우리를 영원한 영광으로 인도하시기 위해 모든 것을 역사하시는 걸까요? 왜 이것이 하나님의 목적일까요? 왜 우리는 그 목적을 위해 부르심을 받았을까요? 왜 우리를 미리 아시고 예정하셨을까요? 29절 중간에 답이 있습니다. 이것은 부차적인 목표, 부차적인 목적으로서 우리가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되는 것입니다. 잘 들으셨죠? 우리가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되는 것입니다.

4살 아이가 쓴 책에서 그 아이는 이렇게 말합니다. “천국은 그야말로 아이들이 도처에 뛰어다니는 곳이다.” 정말 그럴까요? 천국이 그야말로 아이들이 도처에 뛰어다니는 곳일까요?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천국에 있는 사람들은 누구의 형상을 본받게 될까요? 그리스도입니다. 완전히 영화롭게 된 남성과 여성, 인간입니다. 이것이 구원의 부차적인 목표입니다. 우리가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목적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와 같아진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얼굴 생김새가 예수님과 같아진다는 뜻이 아닙니다. 영화로운 인간성이 성육신하신 신성과 최대한 같아진다는 뜻입니다. 빌립보서 3장 20절부터 21절은 우리의 낮은 몸이 예수님의 영광의 형체와 같이 변한다고 합니다. 그렇죠? 요한일서 3장 1절부터 2절에서는 우리가 예수님과 같아질 것이라고 말합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의 참모습 그대로 볼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바로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입니다. 빌립보서 3장이죠.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달려가노라.” 그러니까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이 무엇입니까? 그리스도를 닮는 것입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성령님은 우리를 변화시키고 계십니다, 그렇죠? 한 단계의 영광에서 다음 단계로 말입니다. 우리는 이를 계속 경험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성경에서 그리스도의 영광을 바라볼 때 성령님은 우리를 그리스도의 형상으로 빚어가고 계십니다. 그리스도가 우리에게 더욱 영광스럽게 되고, 우리가 그리스도에 대해 더 많이 알게 될수록, 성령님은 문자 그대로 우리를 그분의 형상으로 만들어 가십니다. 하지만 완벽하지는 않습니다. 8장 앞부분에서 언급된 것처럼 우리가 부활하고 우리 몸의 속량이 이루어질 때까지는 완벽해지지 않을 겁니다. 그러나 우리가 천국에 간다는 것은 곧 그리스도를 본받게 된다는 것과 같습니다. 본받게 된다는 동사는 같은 형상으로 만든다는 뜻입니다. 말 그대로 그리스도의 형상과 같은 형상으로 만드는 것입니다. 여기서 ‘형상’은 헬라어로 ‘에이콘(eikōn)’인데, 영어 단어 '아이콘'의 어원입니다. 이 단어는 신약성경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형상이라는 의미로 네 번 사용되었습니다. 고린도후서 3장 18절에 나오는데, 우리가 한 단계의 영광에서 다음 단계로 그리스도의 형상을 본받게 된다는 의미입니다. 4장에서도 다시 사용되며, 그리스도의 형상을 뜻합니다. 골로새서 1장과 3장에서 이 형상은 우연히 또는 부수적으로 생긴 형상이 아니라 파생된 형상입니다. 다시 말해서 우연히 예수님을 닮게 되었다는 식의 우연한 유사성이 아닙니다. 의도적으로 파생된 형상입니다. 문자 그대로 우리는 의도적으로 같은 형상으로 만들어집니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이는 우리 모두가 그리스도와 정확히 같은 신체적 특징을 갖게 된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본질적으로 그리스도와 같게 된다는 의미입니다. 완전하고 성숙하며 의롭고 거룩하며 순수한 인간성을 갖게 된다는 뜻입니다.

이미 앞서 다룬 내용입니다. 그리스도가 우리의 모델, 본보기가 된다는 것 말입니다. 예수님은 완벽한 인간이십니다. 우리에게 완벽한 순결함, 완벽한 거룩함, 완벽한 의로움이 어떤 모습인지 보여주셨습니다. 예수님이 기준입니다. 하나님의 형상이었지만 동시에 인간의 형상을 취하셨습니다. 죄를 위한 희생 제물이 됨으로써 하나님의 계획을 이루시기 위해 세상에 오셨습니다. 또한 하나님의 계획을 보여주시기 위해 오셨습니다. 그러니까 천국에 대해 생각할 때, 그리스도에 대해 생각하고 그리스도에 대해 참이라고 생각하는 모든 것이 여러분에게 참이 될 것이라는 사실을 생각해 보십시오. 굉장히 먼 이야기처럼 들리지 않나요? 하지만 본질적으로 예수님은 우리에게 완벽한 인간성이 어떤 모습인지, 절대적으로 거룩하고 의로운 인간성이 무엇인지 보여주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목적은 우리를 그 형상을 본받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부수적인 것들에 관한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닮는 것에 관한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닮는 것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를 바라볼 때, 성령님이 조금씩 우리를 그분의 형상으로 빚어가십니다. 조금씩 말입니다. 바울은 빌립보서 3장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 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달려가노라.” 그렇지만 언젠가 우리는 그리스도와 같아질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부차적인 목적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부차적인 목적입니다. 그렇다면 일차적 목적, 가장 주된 목적은 무엇일까요? 계속 읽어봅시다. 29절로 돌아가겠습니다. 부차적인 목적은 여러분이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는 것입니다. 가장 주된 목적은 그의 아들이 많은 형제 중에서 맏아들이 되게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말하는 분도 계실 겁니다. “음, 많은 형제 중에서 맏아들이 되는 건 그렇게 중요해 보이지 않는데요. 좀 평범해 보이는데요.” 이런 의문이 생기는 것은 ‘맏아들’이라는 단어를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 단어를 이렇게 번역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왜냐하면 헬라어 ‘프로토토코스(prōtotokos)’는 한 가정에서 처음으로 태어난 아이라는 의미보다 훨씬 더 많은 것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우리 문화에서는 그렇지 않지만, 고대인들은 맏아들에게 아주 특별한 가치를 부여했습니다.

우리는 모든 것이 평등해야 한다는 민주주의 사회에서 자랐기 때문에 자녀들에게 모든 유산을 똑같이 나눠주죠. 그러나 고대에는 재산을 가장 성숙한 자녀에게 물려줬습니다. 그 자녀는 보통 맏아들이었죠. 가족의 재산을 관리할 수 있는 힘과 능력을 가진 자녀였습니다. 모든 자산과 부채를 받아 이를 잘 관리하고, 가족의 재산을 계속 유지하며, 고대 문화의 일부였던 모든 대가족을 돌보았습니다. 그래서 맏아들에게 물려주었던 겁니다. 가장 경험이 많고 가장 성숙하며 나이가 많은 사람이 가장 뛰어난 사람으로 여겨졌습니다. 이것이 맏아들이라는 단어에 담긴 기본적인 의미이지만 실은 이보다 더 큰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맏아들'이라는 단어를, 저는 여러분이 ‘가장 뛰어난 자’로 생각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가장 뛰어난 자 말입니다. 그래서 여러분이 이 구절을 ‘그가 많은 형제 중에서 가장 뛰어난 자가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라고 읽으셨으면 좋겠습니다. 히브리서 2장을 보면 주님께서 우리 믿는 자들을 형제라고 부르시기를 부끄러워하지 아니하신다고 합니다. 정말이지 놀라운 일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가족으로 입양되었습니다. 우리는 그 가족의 아들들입니다. 어떤 의미에서 우리는 그리스도의 형제입니다. 우리는 신성한 본성에 참여하는 자들입니다. 영화로운 인간성이 성육신하신 신성과 얼마나 비슷해질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우리는 그렇게 될 것이고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그 본질이 어떠한지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거룩함, 절대적으로 완벽한 거룩함, 순결함, 의로움이 될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것이 우리의 것이 될 것이며, 하나님은 이것을 우리에게 주시는 것, 즉 그분 자신의 의를 우리에게 주시는 것을 주저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이미 칭의를 통해 그 의를 우리에게 전가하셨고, 영화되는 순간 현실이 될 것입니다. 어떤 의미에서 하나님은 의로움을 우리에게 주시는 것, 궁극적으로는 하나님의 영광을 우리와 나누는 것을 주저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그의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셔서 우리가 실제로 아들의 영광을 반영하게 하실 것입니다. 하지만 결국, 우리가 형제일지라도 그리스도는 '프로토토코스'가 될 것입니다. 그리스도가 가장 뛰어난 자가 될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것이 구원의 목표입니다. 세상에서 하나님의 사역 목표는 그의 아들, 그의 사랑의 아들, 사랑하시는 아들을 위해 탁월함을 창조하는 것입니다. 영원한 천국에서 그리스도를 사랑하고 경배하는 이들에 의해 그리스도가 영원히 높임을 받을 것입니다. 이렇게 말하는 분도 계실 겁니다. “천사들도 그렇게 할 수 있을 텐데요.” 하지만 은혜의 관점에서는 그렇지 않습니다. 자비의 관점에서도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인간을 창조하시고, 죄인들을 속량하시고 천국으로 데려가시지 않고서는 하나님의 은혜의 영광에 대한 찬송을 영원히 보여줄 수 없기 때문입니다.

결국, 제가 수년간 말해왔듯이, 구원의 전체 목적은 아버지께서 아들을 너무나 완벽하게, 무한히, 영광스럽게, 장엄하게, 너무나 완벽하게 사랑하셔서 그 사랑을 보여주셔야만 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아버지께서는 어떻게 아들에 대한 사랑을 보여주실 수 있었을까요? 아들에게 광대한 영화로운 성도들의 무리를 주셔서 영원히 그를 찬양하고 존경하게 하실 것이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이 일을 하신 이유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의 형상을 본받게 되는 것은 두 번째 목적입니다. 첫 번째 목적은 우리가 형상을 본받았기 때문에 영원히 그리스도를 영화롭게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탁월함이 전부입니다. 그래서 빌립보서 2장에서 하나님이 그리스도에게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셨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실 것입니다.

골로새서 1장 15절입니다. “그는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형상이시요 모든 피조물보다 먼저 나신 이시니.” 예수님이 창조된 첫 번째 인물이라는 말이 아닙니다. 예수님이 창조되기 전에 창조된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물론 영원하신 아들은 결코 창조된 적이 없지만, 인간 예수님은 마리아의 태중에서 창조되었습니다. 연대순으로 보자면 모든 피조물보다 먼저 나신 건 아니지만, 모든 피조물 중에서 ‘프로토토코스’, 즉 가장 뛰어난 자이십니다. 가장 탁월한 자이십니다. 더 자세히 설명하자면 예수님은 모든 피조물의 ‘프로토토코스’입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만물이 창조되었기 때문입니다. 하늘과 땅에 있는 것들, 보이는 것들과 보이지 않는 것들, 왕권들이나 주권자들이나 통치자들이나 권세들이나 만물이 다 그로 말미암고 그를 위하여 창조되었습니다. 그는 만물보다 먼저 계시고 만물이 그 안에 함께 섰습니다. 그는 교회의 머리이십니다. 그는 근본이시요 죽은 자들 가운데서 먼저 나신 이십니다. 즉, 죽음에서 부활한 모든 이들 중에서 그가 가장 뛰어나고 탁월한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만물의 으뜸이 되십니다.

그리고 이어서 이렇게 말합니다. “이는 아버지께서 기뻐하신 것이라.” 하나님이 원하신 것은 무엇이었습니까? 그의 아들을 영화롭게 하는 것이 하나님의 기쁨이었습니다. 죄인들을 구속하여 그의 아들을 영화롭게 하고, 그의 아들을 섬기며, 심지어 그의 아들의 영광을 반영할 영원한 무리를 만드는 것이 하나님의 기쁨이었습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목적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목적은 사람들을 천국으로 가는 길의 중간까지 데려갔다가 떨어뜨려서 지옥에 보내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목적은 사람들을 잠시 동안만 구원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목적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그들이 믿기를 바라며 계속 믿음을 지키기를 바라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목적은 은혜로 천국에 온 속량받은 성도들의 무리를 만들어 자신의 죽음으로 그것을 가능하게 한 분, 즉 하나님의 아들을 영원히 찬양하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은 구원을 통해서 우리에게 기쁨과 평화, 천국을 주십니다. 하지만 이것은 단지 우리만을 위한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부차적인 목적입니다. 하나님의 신성한 목적의 정점은 우리 모두가 영원히 그곳에서 하나님의 아들을 영화롭게 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는 구속의 역사에서 중심입니다. 영원히 영광받고 존경받으실 분입니다. 따라서 구원의 목적은 그리스도입니다. 이는 아버지의 아들에 대한 사랑입니다. 저는 종종 이렇게 표현합니다. 아버지는 구속 사역에서 그의 아들을 위한 신부를 찾으려 하셨다고요. 그래서 천국이 신부의 도시, 새 예루살렘이라고 불리는 것입니다. 신부로 단장한 것처럼 말이죠. 그래서 교회가 그리스도의 신부라고 불리고 그리스도는 신랑이라 불리는 것입니다. 구속의 역사 전체는 아버지께서 그의 아들을 위해 순종적이고 사랑스러운 신부를 찾으시는 것입니다. 그 신부는 영원히 그를 찬양하고 존경할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목적이며 하나님이 하고 계신 일입니다.

이사야 46장으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계획하였은즉 반드시 시행하리라.” 요한복음 6장에서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아버지께서 내게 주시는 자는 다 내게로 올 것이요 내게 오는 자는 내가 결코 내쫓지 아니하리라…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리라.” 결과적으로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을 정하신 이유가 29절에 나옵니다.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예정하셨으니 이는 그 아들로 많은 형제 중에서 맏아들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그 과정은 이렇습니다. 미리 정하신 이들을 부르시고 의롭다 하시고 영화롭게 하십니다. 하나도 잃어버리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이 예정하신 자들을 부르셨고, 부르신 자들을 의롭다 하셨으며, 의롭다 하신 자들을 영화롭게 하셨습니다.

31절을 보겠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무슨 말입니까? 이것이 계획이라면, 누군가가 이것을 망칠 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따라서 여러분의 안전을 기뻐하십시오. 하나님의 보좌 앞에서 여러분을 위해 중보하시는 그리스도의 사역을 기뻐하십시오. 여러분의 마음속에서 계속되는 성령님의 중보 사역을 기뻐하십시오. 반드시 이루어질 하나님의 관대하고 은혜로우며 놀라운 목적을 기뻐하십시오. 자, “미리 아심”, “예정”, “부르심”과 같은 단어들을 보면서 “이 모든 것이 어떻게 작용하는 걸까?”라고 궁금해하시는 분들이 계실 겁니다. 여기에 대해서는 다음 주일에 다루겠습니다. 아시겠죠? 다음 주일에 다루겠습니다.

이제 곧 기도를 하겠습니다. 지난주와 같은 방식으로 계속 진행할 겁니다. 제가 기도한 후에 나가지 마시고 조용히 앉아 계십시오. 지난주에 말씀드린 것처럼 묵상하는 시간을 갖겠습니다. 여러분이 들으신 것에 대해 생각하는 시간입니다. 교제하는 시간 때문에 서두르는 습관이 생긴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잠시 동안 조용히 앉아서 잰(Jan)이 연주하는 오르간 소리를 들으면서 오늘 들으신 말씀을 생각해 보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소리가 커지면 그때 교제하시면 됩니다. 기도로 마치기 전에 한 가지를 더 말씀드리자면, 오늘 저녁 예배에는 성만찬이 있습니다. 얼마나 멋진 시간이 될지 기대됩니다. 십자가를 기념하고 주님의 만찬 앞에 나아가는 시간이 될 겁니다. 그러니 오늘 밤 6시에도 여러분 모두 함께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제 오른쪽에 있는 기도실은 영적 필요가 있는 분들을 위해 열려 있습니다. 한번 들러 보시기 바랍니다. 여러분과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하는 분들이 환영해 주실 겁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오늘 아침 이 모든 내용을 다루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저는 너무나 부족하고 연약해서 이와 같은 진리들의 위대함과 심오함을 표현할 수조차 없습니다. 설교자로서 이토록 무한하고 위대한 진리의 실체를 제대로 파악하기에 너무나 부족합니다. 주님, 우리는 오직 기도할 뿐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비천한 말과 미약한 노력이 주께 받은 바 기름 부음이 되어 우리 안에 거하시는 탁월한 교사이신 성령님으로 말미암아 더 풍성해지게 하옵소서. 성령님, 친히 우리를 이 영원한 구원의 실체의 영광 속으로 더 깊이 인도하여 주옵소서. 영원하고 참된 구원을 기뻐하며 확신에 찬 소망으로 살아가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우리의 소망은 영혼의 닻 같아서 튼튼하고 견고합니다. 우리가 받은 구원이 실제 현실이기 때문입니다. 주님, 그런데 이 자리에는 참된 구원에 대한 확신이 없이 몸부림치며 갈등을 겪고 있는 이들도 있을 겁니다. 어쩌면 자신에게 구원이 없다는 것을 알면서 아무런 소망 없이 이 세상에서 하나님 없는 절망 속에 심판을 향해 가고 있는 이들도 있을 겁니다. 주님, 이들이 그리스도와 그리스도 안에 있는 영생의 약속으로 돌이키게 하옵소서. 정말로 자신이 구원을 받았는지 아닌지 의심을 품고 궁금해하며 의문을 던지는 자들도 있습니다. 이들이 진정으로 구원받도록 주님께로 인도하여 주시고 참 소망을 주옵소서. 성령님께서 이들의 영혼과 함께 증언하여 주셔서 자신들이 정말로 하나님의 자녀임을 알게 하옵소서. 오늘 우리에게 알려주신 모든 것들로 인해 감사합니다. 지성에서 마음으로 옮겨져 예배와 순종으로 나타나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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