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무엇보다도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셨다는 사실에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만일 하나님의 구원이 사실이 아니라면 다른 어떤 것도 의미가 없을 겁니다. 그리고 우리는 모두 함께 우리의 구원이 전적인 하나님의 역사라는 사실을 고백합니다. 하나님은 모든 찬양을 받으시기에 합당하십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우리에게 구원을 베풀어 주셨기 때문입니다. 구원은 선물입니다. 우리에게 거저 주셨습니다. 구원은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님의 역사이고, 모든 영광은 하나님께 속합니다. 얼마나 놀라운 일인지 모릅니다.
이 사실을 생각할 때 제 마음에 가장 먼저 떠오르는 성경 본문은 에베소서 1장입니다. 성경 에베소서 1장을 보겠습니다. 3절부터 14절까지 읽습니다. 사도 바울의 마음에서 흘러나온 이 위대한 찬양은 신학적 논증을 정리해 놓은 차가운 글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향한 감사가 터지고 넘쳐서 흘러나온 고백입니다. 원문을 보면 끊어지는 부분이 없습니다. 번역자들이 이해를 돕기 위해서 쉼표며 마침표를 넣었지만, 원문은 3절부터 14절까지 끊어지지 않습니다. 바울은 성령님의 감동하심으로 하나님의 구원에 대한 찬양을 쉬지 않고 쏟아 놓고 있습니다.
이제 말씀을 읽는 동안에, 우리의 구원이 전적으로 하나님께 속했음을 보여 주는 표현에 귀를 기울여 보시기 바랍니다. 3절입니다. “찬송하리로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을 우리에게 주시되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이는 그가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우리에게 거저 주시는 바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송하게 하려는 것이라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피로 말미암아 속량 곧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이는 그가 모든 지혜와 총명을 우리에게 넘치게 하사 그 뜻의 비밀을 우리에게 알리신 것이요 그의 기뻐하심을 따라 그리스도 안에서 때가 찬 경륜을 위하여 예정하신 것이니 하늘에 있는 것이나 땅에 있는 것이 다 그리스도 안에서 통일되게 하려 하심이라 모든 일을 그의 뜻의 결정대로 일하시는 이의 계획을 따라 우리가 예정을 입어 그 안에서 기업이 되었으니 이는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전부터 바라던 그의 영광의 찬송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 그 안에서 너희도 진리의 말씀 곧 너희의 구원의 복음을 듣고 그 안에서 또한 믿어 약속의 성령으로 인치심을 받았으니 이는 우리 기업의 보증이 되사 그 얻으신 것을 속량하시고 그의 영광을 찬송하게 하려 하심이라.”
이 놀라운 성경 본문을 지배하고 있는 핵심은 하나님이 자신의 뜻과 자신의 목적과 자신의 계획에 따라 구원하셨고, 그 모든 것이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찬송하게 하기 위함이라는 사실입니다. 5절, 9절, 11절에서는 구원이 하나님의 뜻에 근거한다고 합니다. 6절, 7절에서는 하나님의 은혜에 근거한다고 합니다. 다시 7절에서는 그리스도의 피에 근거한다고 합니다. 4절에서는 하나님의 사랑에 근거한다고 합니다. 9절에서는 하나님의 기쁘신 뜻에 근거한다고 합니다. 11절에서는 하나님의 목적에 근거한다고 합니다. 그리고 12절과 14절에서는 모든 것이 하나님의 영광을 찬송하게 하기 위한 것이라고 합니다.
구원은 사람의 의지의 결과가 아닙니다. 사람의 공로의 결과도 아닙니다. 사람이 드리는 어떤 종교적 희생의 결과도 아닙니다. 사람이 사랑한 결과도 아닙니다. 사람의 선한 의도의 결과도 아닙니다. 사람이 목적한 결과도 아닙니다. 사람을 찬양하거나, 사람의 영광을 위한 것도 아닙니다. 구원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목적과 하나님의 뜻과 하나님의 계획에서 비롯되었고, 그 구원의 모든 영광은 오직 하나님께만 돌아가도록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신 이유는 하나님 자신이 영광을 받으시기 위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구원에 관한 모든 공로는 하나님께 속합니다. 구원의 모든 측면은 하나님의 역사입니다. 그러나 여기서 한 가지 주목해야 할 사실이 있습니다. 구원이라는 하나님의 역사가 그리스도를 통해 이루어진다는 사실입니다. 4절은 “그리스도 안에서”라고 합니다. 5절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라고 합니다. 6절은 “그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그리스도 안에서라고 합니다. 7절도 “그 안에서,” 그리스도를 가리키죠. 9절은 “그리스도 안에서 예정하신”이라고 했습니다. 10절과 11절도 “그 안에서,” 그리스도를 가리킵니다. 12절은 “그리스도 안에서”라고 했습니다. 13절에서는 두 번이나 “그 안에서”라고 하며, 모두 그리스도를 말하죠.
우리의 구원은 전적으로, 오직, 온전히 하나님의 역사입니다. 그런데 그 구원은 그리스도를 통해 이루어집니다. 또 성령님도 구원에 역사하십니다. 13절은 우리가 “약속의 성령으로 인치심을 받았다”라고 합니다. 성령께서 우리의 기업의 보증이 되셔서 장차 하나님의 소유를 완전히 속량하실 것을 보증하십니다. 아버지 하나님과 아들 하나님과 성령 하나님께서 구원의 모든 영광을 받으십니다. 그러므로 모든 찬양 역시 삼위 하나님께만 돌려야 합니다.
다시 한 번 말씀드리지만, 구원의 모든 요소는 하나님의 역사입니다. 성령의 감동으로 기록한 바울의 말씀을 통해서 그 사실을 다시 한번 확인해 보겠습니다. 먼저 3절을 보십시오. “찬송하리로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을 우리에게 주시되.” 바울은 모든 영광을 받으셔야 할 분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 아버지라고 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을 주셨기 때문입니다. 아버지 하나님, 성부 하나님께서 행하신 일에 대한 찬양으로써 하나님께 드리는 찬양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무엇을 하셨습니까? 첫째, 우리를 택하셨습니다. 4절을 보십시오.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하나님은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거룩하게 하시기 위해 우리를 택하셨습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흠이 없는 자가 되게 하시려고 우리를 택하셨습니다. 그것도 창세 전에 택하셨습니다.
여기 “택하셨다”는 동사는 자신을 위하여 선택했다는 의미입니다. 재귀적인 의미를 지닌 동사입니다. 다시 말해, 하나님은 자신을 위해서 택하셨습니다. 하나님은 기쁘신 뜻을 따라, 자신을 위해 우리를 택하셨습니다. 그리고 구원받은 우리 모두를 택하셨습니다. 성경은 그 시점을 매우 분명하게 밝힙니다. 주목해 보십시오. “창세 전에” 우리를 택하셨습니다. 세상이 시작되기도 전에, 세상이 창조되기도 전에, 그 누구도 태어나기 전에 하나님은 이미 우리를 택하셨습니다. 성경은 세상이 창조되기 전부터 하나님께서 누구를 구속하실 것인지를 작정하셨다는 이 놀라운 진리를 여러 곳에서 반복해 가르칩니다. 마태복음 25장 34절에서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그 때에 임금이 그 오른편에 있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내 아버지께 복 받을 자들이여 나아와 창세로부터 너희를 위하여 예비된 나라를 상속받으라.”
주님께서는 창세 전부터 자신의 나라를 계획하셨고, 또 그 나라에 들어갈 사람들까지도 창세 전부터 정하셨습니다. 여러분과 제가 구원을 받고 주 예수 그리스도를 알게 된 것은 세상이 시작되기 전에 하나님께서 우리를 택하셨기 때문입니다. 놀랍지 않습니까? 누가복음 12장 32절에서도 주님은 다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적은 무리여 무서워 말라 너희 아버지께서 그 나라를 너희에게 주시기를 기뻐하시느니라.” 선택권은 언제나 하나님께 있습니다. 사람이 하나님을 선택한 게 아니라 하나님께서 사람을 택하십니다. 언제나 하나님이 택하십니다.
요한복음에는 이 사실을 보여 주는 놀라운 말씀이 여러 번 나옵니다.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이끌지 아니하시면 아무도 내게 올 수 없으니.” 아버지께서 사람을 이끄시고, 강권하시고, 끌어당기지 아니하시면 아무도 그리스도께 나아올 수 없습니다. 또 요한복음 15장 16절에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요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나니 이는 너희로 가서 열매를 맺게 하려 함이라.” 우리가 예수님을 택한 게 아니라 예수님이 우리를 택하셨습니다. 엄밀히 말하자면 우리가 그리스도를 택한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먼저 우리를 택하셨습니다. 사도행전 9장을 보면, 사도 바울이 다메섹으로 가는 길에서 주님을 만난 사건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15절에서 주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이 사람은 내 이름을 이방인과 임금들과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전하기 위하여 택한 나의 그릇이라.” 사도 바울의 회심은 갑작스럽고 충격적이고 놀라운 사건이었습니다. 바울은 그리스도인들을 박해하러 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길 위에서 하나님의 초자연적인 역사로 회심하였고, 변화됐습니다. 사도로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세상이 시작되기 전에 이미 그 일을 위해 택하셨기 때문입니다.
사도행전 13장에는 매우 흥미로운 말씀이 나옵니다. 48절입니다. 바울과 바나바가 복음을 전하자 “이방인들이 듣고 기뻐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찬송하며”, 이렇게 기록한 뒤에, 이어서 이렇게 말합니다. “영생을 주시기로 작정된 자는 다 믿더라.” 이 말씀을 주목하십시오. 믿는 사람들은 영생을 주시기로 작정된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은 구원받도록 예정하신 사람들에게만 믿음이라는 선물을 주십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택하셨습니다. 그리고 택하신 사람들에게 믿을 수 있는 능력을 주십니다.
데살로니가후서에도 이와 관련된 놀라운 말씀이 있습니다. 2장 13절입니다. “우리가 항상 너희에 관하여 마땅히 하나님께 감사할 것은...” 왜 항상 하나님께 감사합니까? “하나님이 처음부터 너희를 택하사 성령의 거룩하게 하심과 진리를 믿음으로 구원을 받게 하심이니.” 하나님께 감사하는 이유입니다. 말하자면 이런 겁니다. “우리는 너희를 두고 감사하지 않는다. 너희가 다른 사람보다 더 똑똑해서, 더 영리해서, 더 영적이어서, 더 통찰력이 있어서 구원받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우리는 하나님이 처음부터 너희를 택하셔서 구원에 이르게 하셨기 때문에 하나님께 감사한다.” 물론 우리의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그 믿음조차도 성령님이 역사하셔서 하나님이 택하신 사람 안에 일으키시는 결과입니다.
디모데후서 1장 9절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사 거룩하신 소명으로 부르심은 우리의 행위대로 하심이 아니요 오직 자기의 뜻과 영원 전부터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주신 은혜대로 하심이라.” 얼마나 놀라운 말씀입니까.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셨습니다. 우리의 행위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과 하나님의 은혜 덕분입니다. 그리고 그 은혜는 영원 전부터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에게 주어졌습니다. 참으로 놀라운 사실입니다. 제가 지금 그리스도인인 이유는, 창세 전, 영원 전부터 하나님께서 존 맥아더를 사랑하기로 작정하셨고, 하나님이 정하신 그 순간에 믿을 수 있는 믿음을 주기로 결정하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택하셨습니다. 요한계시록 17장 8절은 우리의 이름이 “창세 전부터” 어린 양의 생명책에 기록되어 있다고 말합니다. 또 베드로는 우리가 “곧 하나님 아버지의 미리 아심을 따라 성령이 거룩하게 하심으로 순종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피 뿌림을 얻기 위하여 택하심을 받은 자들”이라고 합니다.
우리는 구원을 받도록 택하심을 받았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속한 자가 되도록 택하심을 받았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의 구원에 대해 하나님께 감사하십시오. 여러분이 그리스도인인 이유는 하나님이 여러분을 택하셨기 때문입니다. 저는 이 모든 신비를 다 이해하진 못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이 그렇게 가르치고 있습니다. 성경에 있는 모든 교리 중에서 사람을 가장 낮추는 교리입니다. 저는 저에게 아무런 공로도 돌리지 않습니다. 심지어 제 믿음조차도 저의 공로로 돌리지 않습니다. 모든 것은 하나님께로부터 왔습니다. 하나님이 저를 택하셨습니다. 하나님이 택하셔서 거룩하게 하시고, 영원히 자신과 함께 있게 하셨습니다. 왜 하나님이 저를 택하셨는지 저는 모릅니다. 저는 남들보다 더 나은 사람이 아닙니다. 오히려 더 못한 사람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저를 택하셨습니다. 어떤 사람이 이렇게 썼습니다. “나는 주님을 찾았고, 그 후에야 깨달았다. 내 영혼이 주님을 찾도록 먼저 움직이신 분은 주님이셨다는 것을. 내가 참된 구주를 찾아낸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주님께서 나를 찾아내신 것이었다.” 하나님이 우리를 택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모든 영광은 하나님께 돌아갑니다.
둘째, 하나님이 우리를 예정하셨습니다. 5절이 분명하게 그렇게 말합니다.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하나님의 뜻과 하나님의 기쁘신 계획과 하나님의 목적이 우리의 운명을 결정하였습니다. “예정하사”라는 말은 이런 의미입니다. 하나님이 미리 어떤 사람의 운명을 정하셨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이 그렇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택하셨는데, 목적은 뭡니까? 우리의 운명을 정하시는 것이었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이 정하신 우리의 운명은 뭡니까? 하나님의 아들들이 되는 겁니다. 얼마나 놀랍습니까? 하나님은 우리를 택하셔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도록 우리의 운명을 미리 정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택하신 목적은 우리를 자신의 자녀로 삼으시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장 12절입니다.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또 로마서 8장은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아바 아버지”라고 부르짖는다고 합니다. 갈라디아서 3장 26절도 그렇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받는 자녀들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속한 사람들입니다. 갈라디아서 4장 6절입니다. “너희가 아들이므로 하나님이 그 아들의 영을 우리 마음 가운데 보내사 아빠 아버지라 부르게 하셨느니라 그러므로 네가 이후로는 종이 아니요 아들이니 아들이면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유업을 받을 자니라.”
얼마나 놀랍습니까.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그냥 자녀가 아니라,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자녀입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자녀입니다. 그러니 요한이 요한일서 3장 1절에서 이렇게 말한 것이 조금도 이상하지 않습니다. “보라 아버지께서 어떠한 사랑을 우리에게 베푸사 하나님의 자녀라 일컬음을 받게 하셨는가, 우리가 그러하도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택하셨습니다. 그리고 우리를 자녀가 되게 하시기 위해서 우리의 운명을 미리 정하셨습니다. 예정하셨습니다. 그것도 “그 기쁘신 뜻대로”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그렇게 하기를 원하셨습니다. 하나님의 기쁨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이사야 46장 10절에서 “나의 뜻이 설 것이니 내가 나의 모든 기뻐하는 것을 이루리라”라고 말씀하십니다. 참으로 놀라운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영원 전부터 여러분을 택하셨고, 여러분의 운명을 미리 정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운명은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입니다.
이제 그것을 가능하게 하신 세 번째 사실을 보겠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은혜를 베푸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은혜를 베푸셨습니다. 하나님의 계획과 택하심과 예정은 하나님의 은혜를 통해 우리에게 실현되었습니다. 6절입니다. “이는 그가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우리에게 거저 주시는 바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송하게 하려는 것이라.” 여기서 “그가 사랑하시는 자”는 그리스도를 가리킵니다. 그렇다면 은혜란 뭘까요? 받을 자격이 없는 사람에게 베푸시는 호의입니다. 아무 대가 없이 주시는 복입니다. 전혀 공로가 없는 사람에게 베푸시는 선과 친절입니다. 은혜란 우리가 전혀 받을 자격이 없는 것을 우리에게 주시는 겁니다. 우리는 바로 그렇게 구원을 받습니다. 우리는 은혜로 구원을 받습니다. 에베소서 2장은 이렇게 말합니다.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하지 못하게 함이라.” 만일 우리가 조금이라도 자랑할 만한 공로가 있었다면 우리는 그 공로를 자랑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부터 왔습니다. 은혜도 하나님께로부터 왔고, 믿음도 하나님께로부터 왔습니다. 우리의 행위에서 나지 않았습니다. 사도행전 15장 11절의 간결하면서도 위대한 고백을 기억하십니까? “그러나 우리는 그들이 우리와 동일하게 주 예수의 은혜로 구원 받는 줄을 믿노라 하니라.” 얼마나 놀라운 고백입니까. 우리는 주 예수의 은혜로 구원을 받습니다. 또 사도행전 18장 27절은 아가야로 건너간 바울에 대해 이렇게 말합니다. “그가 가매 은혜로 말미암아 믿은 자들에게 많은 유익을 주니.” 사람이 믿는 길은 오직 하나뿐입니다. 하나님이 은혜로 믿을 수 있는 능력을 주셔야 합니다. 우리는 그 믿음을 받을 자격이 없습니다. 그런데도 하나님이 주십니다. 우리에게는 아무 공로가 없습니다. 그런데도 하나님은 주십니다. 우리 힘으로 얻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그저 주실 뿐입입니다.
로마서 3장 24절입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속량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 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값없이, 하나님의 은혜로 의롭다 하심을 받았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은혜를 베푸셨습니다. 사실 6절의 표현을 직역하면 “은혜로 우리에게 은혜를 베푸셨다”는 의미입니다. 이게 핵심입니다. 하나님은 그 사랑하시는 자, 곧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에게 은혜를 베푸셨습니다. 그러므로 은혜는 하나님이 택하시고 예정하신 계획을 이루셔서 우리를 자녀로 삼으신 수단입니다.
넷째로, 하나님이 하신 일을 보십시오. 하나님은 우리를 속량하셨습니다. 7절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피로 말미암아 속량 곧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하나님은 우리를 속량하셨습니다. 속량이 뭘까요? ‘값을 주고 다시 사 온다’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사기 위해 무엇을 하셨습니까? 우리는 죄의 종이었습니다. 죽음의 종이었고, 지옥의 종이었고, 사탄과 귀신들의 종이었습니다. 우리는 타락한 육신의 종이었고, 세상의 종이었습니다. 노예 시장에 팔려 있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그 노예 시장으로 오셔서 우리를 사셨습니다. 우리는 아무 가치도 없었습니다. 비참하고 더럽고 부패하고, 어둠 가운데 소망이 없었습니다. 하나님을 알 수도 없고, 의를 구할 수도 없었습니다. 우리의 모든 욕망은 정욕과 악으로 가득 찼습니다. 우리는 전혀 구원받을 자격이 없었습니다. 그런데도 하나님이 오셔서 우리를 사셨습니다. 왜, 왜 그렇게 하셨습니까? 하나님이 우리를 택하셨기 때문입니다. 예정하셨기 때문입니다. 은혜 베풀기를 원하셨기 때문입니다. “왜 하나님이 그렇게 하고 싶어하셨을까요?” 저도 모르겠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고 싶어하셨습니다. 하나님의 기쁘신 뜻대로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어떻게 속량하셨습니까? 그의 피로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값을 지불하셨습니다. “죄의 삯은 사망”이죠. 속량의 대가는 죽음입니다. 속량의 값은 피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그 값을 치르셨습니다. 결코 쉽게 치를 수 있는 대가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아들께서 사람이 되셔야 했죠. 이 세상에 오셔야 했습니다. 십자가에서 죽으셔야 했습니다. 죄를 위한 희생 제물로 자신의 피를 흘리셔야 했습니다. 그렇게 해서 우리를 다시 사는 값을 지불하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리스도의 피는 귀합니다. 그래서 베드로는 이렇게 말합니다. “너희가 알거니와 너희 조상이 물려준 헛된 행실에서 대속함을 받은 것은 은이나 금 같이 없어질 것으로 된 것이 아니요 오직 흠 없고 점 없는 어린 양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된 것이니라.” 그 피가 귀한 것은 너무나 당연합니다. 그리고 그 피는 찬양받기에 합당합니다. 그래서 요한계시록 5장은 이렇게 말합니다. “그들이 새 노래를 불러 이르되 두루마리를 가지시고 그 인봉을 떼기에 합당하시도다 일찍이 죽임을 당하사 각 족속과 방언과 백성과 나라 가운데에서 사람들을 피로 사서 하나님께 드리시고.” 하늘의 모든 무리가 찬양하는 게 조금도 이상하지 않습니다. 그리스도의 피는 보배로운 피입니다. 그리스도의 피는 찬양받기에 합당한 피입니다. 왜냐하면 그 피가 바로 우리의 속량의 대가이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희생의 죽음으로 자신의 피를 흘리심으로, 우리를 죄의 노예 시장에서 값을 주고 사셨습니다. 그리고 우리를 하나님의 거룩한 임재 앞으로 데려오셨습니다. 이제 우리는 더 이상 죄의 종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종입니다. 그리고 속량의 역사는 하나님이 또 하나의 놀라운 일을 행하실 수 있게 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노예 시장에서 사서 꺼내신 후에, 다섯째로, 우리를 용서하셨습니다. 얼마나 놀라운 복입니까. 7절을 보십시오.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피로 말미암아 속량 곧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하나님은 우리를 용서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노예 시장에서 사서 꺼내신 후에 “내가 너희에게 큰 은혜를 베풀었지만 너희의 과거는 끝까지 기억하겠다. 앞으로도 너희를 계속 책망하겠다”라고 하지 않으셨습니다. 결코 그렇게 하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은 노예 시장에서 사서 꺼내신 우리를 용서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마태복음 26장 28절에서 성찬식을 제정하시면서 잔을 들어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은 죄 사함을 얻게 하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 하나님은 우리를 용서하셨습니다.
이 ‘용서하다’라는 뜻의 헬라어 ‘아피에미(aphiēmi)’는 다시는 돌아오지 않도록 보내 버린다는 의미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죄를 동이 서에서 먼 것 같이 멀리 옮기셨습니다. 우리의 죄를 바다 깊은 곳에 던져버리셨습니다. 그리고 다시는 기억하지 않으십니다. 그러니 미가 선지자가 “주와 같은 사유하시는 하나님이 어디 있으리이까”라고 외친 것이 조금도 이상하지 않습니다. 바울도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라고 합니다. 에베소서 4장 32절과 골로새서 2장 13절도 우리가 용서받았다고 합니다. 요한일서 2장 12절은 “자녀들아 내가 너희에게 쓰는 것은 너희 죄가 그의 이름으로 말미암아 사함을 받았음이요”라고 합니다. 어떻게 용서하셨을까요? 하나님의 은혜로 용서하셨습니다. 하나님의 풍성한 은혜로 용서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은혜를 우리에게 넘치도록 부어 주셨습니다. 우리에게는 죄가 너무 많았기 때문에 엄청난 은혜가 필요했죠. 마태복음 18장의 비유가 말하듯이, 우리는 도저히 갚을 수 없는 빚을 지고 있었습니다. 셀 수도 없고, 이루 말할 수도 없는 빚을 지고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의 구원은 누구에게 빚지고 있습니까? 여러분을 택하신 하나님께 빚지고 있습니다. 여러분을 예정하신 하나님께 빚지고 있습니다. 여러분을 속량하신 하나님께 빚지고 있습니다. 여러분을 용서하신 하나님께 빚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여러분을 자녀 삼기 원하셨던 하나님께 빚지고 있습니다. 성경은 그 외의 다른 이유를 제시하지 않습니다. 우리에겐 자격이 없습니다. 정말로 자격이 없습니다.
하나님은 거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셨습니다.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로 삼아주셨을 뿐만 아니라, 우리를 깨우쳐 주셨습니다. 우리를 깨우쳐 주셨습니다. 8절입니다. “이는 그가 모든 지혜와 총명을 우리에게 넘치게 하사 그 뜻의 비밀을 우리에게 알리신 것이요 그의 기뻐하심을 따라 그리스도 안에서 때가 찬 경륜을 위하여 예정하신 것이니.” 하나님은 더 나아가 “때가 찬 경륜”까지도 우리에게 보여 주셨습니다. 하늘에 있는 것이나 땅에 있는 것이 다 그리스도 안에서 통일될 것이라는 하나님의 계획을 알려 주셨습니다. 얼마나 놀라운 일입니까? 하나님은 자신의 뜻을 영원에 이르기까지 우리에게 알려 주셨습니다. 우리는 때가 찬 경륜이 무엇인지 알고 있습니다. 모든 것이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로 통일될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장차 올 영광을 알고 있습니다. 천년왕국을 알고 있습니다. 영원한 상태를 알고 있습니다. 하늘에 있는 모든 것과 땅에 있는 모든 것이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가 되어 하나님의 영광을 찬양하게 될 것을 알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깨우쳐 주셨습니다. 영원한 것들에 대한 지혜를 주셨습니다. 이 땅에서 살아가는 데 필요한 분별력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성경을 통해 하나님의 계획의 마지막 단계까지 우리에게 보여주셨습니다. 하나님은 그 계획을 우리에게 감추지 않으셨습니다. 우리에게 말씀만 주신 것이 아니라, 우리 안에 진리를 가르치시는 교사이신 성령님을 주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사람에게만 의존해 배우지 않습니다. 하나님께로부터 오신 교사를 모시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성령을 우리에게 주셔서 그리스도의 마음을 알게 하셨고, 하나님의 계획을 알게 하셨습니다. 그러니 우리는 얼마나 복된 사람들입니까. 세상이 보지 못하는 것을 우리는 봅니다. 세상이 이해하지 못하는 것을 우리는 이해합니다. 세상이 알 수 없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고린도전서 2장 12절에서 바울은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가 세상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으로부터 온 영을 받았으니 이는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로 주신 것들을 알게 하려 하심이라.” 놀랍지 않습니까? 하나님은 우리를 깨우쳐 주셨습니다. 우리는 이 세상의 신에게 눈이 가려져 있던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어둠 가운데 있었고, 죄 가운데 있었고, 죽음 가운데 있었습니다. 하나님을 알 수도 없고, 하나님에 관한 그 어떤 것도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우리를 깨우쳐 주셨습니다. 밝히 보게 하셨습니다. 왜 그렇게 하셨습니까? 그의 기뻐하심을 따라 그리스도 안에서 예정하셨기 때문이죠. 다시 말해,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기를 원하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계획이었고, 하나님의 기쁨이고, 하나님의 즐거움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의 모든 계획을 알기를 기뻐하셨습니다.
일곱째로, 하나님은 우리에게 기업을 약속하셨습니다. 11절을 보십시오. “모든 일을 그의 뜻의 결정대로 일하시는 이의 계획을 따라 우리가 예정을 입어 그 안에서 기업이 되었으니 이는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전부터 바라던 그의 영광의 찬송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 바울은 다시 한번 모든 것이 하나님께 속했다고 강조합니다. 뜻도 하나님께 속했습니다. 목적도 하나님께 속했습니다. 기쁘신 계획도 하나님께 속했습니다. 그리고 모든 영광도 하나님께 속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기업을 주셨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우리를 자녀가 되도록 예정하셨고, 자녀들은 아버지의 기업을 상속받게 되어 있기 때문이죠. 하나님은 우리에게 기업을 약속하셨습니다. 로마서 8장은 이 세상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비교할 수 없다고 합니다. 또 요한일서 3장 2절은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지금은 하나님의 자녀라 장래에 어떻게 될지는 아직 나타나지 아니하였으나 그가 나타나시면 우리가 그와 같을 줄을 아는 것은 그의 참모습 그대로 볼 것이기 때문이니”라고 합니다. 그리고 베드로는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아니하는 유업을 잇게 하시나니 곧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 간직하신 것이라”라고 합니다.
바울은 고린도후서 1장 20절에서 “하나님의 약속은 얼마든지 그리스도 안에서 예가 되니”라고 했습니다. 무슨 뜻입니까?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약속하신 것은 모두 반드시 이루어진다는 뜻입니다. 이것도 받습니까? 네. 저것도 받습니까? 네. 그것도 받습니까? 네. 평안을 받습니까? 네. 사랑을 받습니까? 네. 지혜를 받습니까? 네. 영생을 받습니까? 네. 기쁨을 받습니까? 네. 승리를 받습니까? 네. 능력을 받습니까? 네. 힘을 받습니까? 네. 지식을 받습니까? 네. 의를 받습니까? 네. 부요함을 받습니까? 네. 진리를 받습니까? 네. 하늘나라를 받습니까? 네. 영적인 부요를 받습니까? 네. 왕 노릇하게 됩니까? 네. 그리스도와 함께 다스리게 됩니까? 네. 이 모든 약속에 대한 대답은 “예”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하나님이 그렇게 하기를 원하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목적과 하나님의 뜻과 하나님의 은혜가 이 모든 것을 이루었습니다. 그러므로 모든 영광은 하나님께만 돌아갑니다. 그러니 여러분의 기업이 얼마나 안전하겠습니까?
여덟째로,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인을 치셨습니다. 13절을 보십시오. “그 안에서 너희도 진리의 말씀 곧 너희의 구원의 복음을 듣고 그 안에서 또한 믿어 약속의 성령으로 인치심을 받았으니 이는 우리 기업의 보증이 되사 그 얻으신 것을 속량하시고 그의 영광을 찬송하게 하려 하심이라.” 하나님은 우리에게 인을 치셨습니다. 고대 사회에서 인을 친다는 것은 소유권의 표시입니다. 또 안전을 보장하는 표시이고, 진품임을 증명하는 표시이고, 거래가 완전히 끝났음을 나타내는 표시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구원하실 때 인을 치셨습니다. 어떻게 하셨습니까? 자신의 성령을 우리 안에 주셨습니다. 성령님이 신자 안에 거하신다는 것은 그 사람이 하나님께 속했다는 표시입니다. 그 사람이 안전하게 보호받고 있다는 표시입니다. 그 사람이 참된 신자라는 표시입니다. 또 구원을 위한 거래가 완전히 종결되었다는 표시입니다. 성령님은 우리를 안전하게 지키시고, 우리가 참된 하나님의 백성임을 확증하시고, 우리를 온전하게 하시고, 우리를 하나님의 소유로 삼으십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소유입니다. 14절은 내주하시는 성령님이 장차 우리가 그 모든 구원의 충만함을 보증하시는 분이라고 말합니다. 얼마나 놀랍습니까? 로마서 8장이 말하듯이 우리는 몸의 완전한 속량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날이 이를 때까지 우리는 성령의 인치심을 받은 자들입니다.
잘 들으십시오. 지금까지 말씀드린 내용을 하나로 정리해 보겠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이 구원을 감사해야 할 분은 오직 하나님 한 분뿐입니다. 하나님은 세상이 창조되기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셨습니다. 그러므로 구원은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님의 뜻이고 하나님의 목적입니다. 우리에게는 아무런 공로가 없습니다. 그리고 모두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를 예정하셨습니다. 전적으로 하나님의 사랑에서 나왔습니다. 하나님의 기쁘신 뜻을 따랐습니다. 오직 자신의 뜻을 따라서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로 삼으셔서 자신의 영광을 드러내기 위해서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우리에게 은혜를 베푸셨습니다. 다시 말해서, 우리에게는 아무런 공로가 없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이 99퍼센트를 하시고 우리가 1퍼센트 정도 보탠 게 아닙니다. 하나님이 99.99퍼센트를 하시고 우리가 0.01퍼센트를 더한 것도 아닙니다. 전적으로 하나님께서 하셨고, 우리는 아무것도 한 것이 없습니다. 하나님은 거저 주셨습니다. 본문은 분명히 그렇게 말합니다. 거저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모든 찬양과 모든 영광은 하나님께 돌아가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속량하셨습니다. 우리의 죄값을 친히 지불하셨고, 죄와 사망과 속박에서 우리를 자유롭게 하셨습니다. 그것도 하나님의 값없이 베푸시는 풍성한 은혜를 따라 하셨습니다. 따라서 모든 영광은 하나님께 돌아갑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우리를 용서하셨습니다. 값을 모두 치른 후에, 우리가 한 어떤 행위 때문이 아니라 오직 은혜로 우리의 모든 죄를 용서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모든 영광과 모든 찬양은 하나님께만 돌아갑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우리를 깨우쳐 주셨습니다. 자신의 뜻을 우리에게 알려 주셨습니다. 그렇지 않았다면 우리는 결코 알 수도 없었고, 스스로 발견할 수도 없었을 겁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자신을 우리에게 나타내 보여 주신 모든 영광은 하나님께 속합니다. 또 하나님은 우리에게 기업을 주셨습니다. 우리가 결코 벌 수 없는 기업을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모든 찬양은 하나님께 속합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그 기업을 주신 것은 우리를 위해 예정하셨고, 우리를 위해 계획하셨고, 우리를 위해 뜻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우리에게 인을 치셨습니다. 우리의 안전을 보장해 주셨습니다. 만일 그렇지 않았다면 우리는 끝내 실패하고 말았을 겁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우리를 끝까지 지키십니다. 그러므로 모든 찬양은 하나님께 돌아갑니다.
자, 그러면 이렇게 질문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는 말입니까? 하나님이 다 하실 때까지 우리는 가만히 서 있기만 하면 되는 건가요?” 12절과 13절을 보십시오. 거기에는 단 두 가지만 언급되어 있습니다. 그것도 아주 짧게 지나가듯이 말합니다. 12절은 우리가 먼저 그리스도를 바라는 사람들이 되었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13절은 “진리의 말씀 곧 너희의 구원의 복음을 듣고 또한 믿어”라고 말합니다. 그리스도를 바라는 것, 그리고 복음을 믿는 것, 이것이 우리의 몫입니다. 그러면 누군가는 이렇게 말할 겁니다. “잠깐만요. 조금 전에는 모든 것이 하나님께 속했다고 하시지 않았습니까?” 그렇습니다. 이 두 가지는 하나님의 역사에 대한 우리의 반응입니다. 그러나 잘 들으십시오. 그 반응조차도 하나님께서 일으키십니다. 그 반응조차도 하나님께서 일으키십니다.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믿음조차도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바라는 능력을 주십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귀를 열어 진리의 말씀을 듣게 하시고, 구원의 복음을 듣게 하십니다. 믿게 하십니다. 이것 역시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부터 왔습니다. 모두가 성령님의 역사입니다. 성령님이 소망을 일으키지 않으시면 우리는 그리스도를 바랄 수 없습니다. 성령님이 믿음을 일으키지 않으시면 우리는 그리스도를 믿을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구원에서 우리가 칭찬받을 만한 부분이 어디에 있을까요? 전혀 없습니다. 하나도 없습니다. 온 인류는 지옥을 향해 가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지옥에 가도록 정죄받는 이유는 믿지 않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요한복음 3장에서 그들이 믿지 아니하므로 이미 정죄를 받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주권적인 은혜 가운데 사랑하기로 작정하신 자들을 구원하기로 하셨습니다. 그리고 지옥을 향해 떠내려가는 인류 속에서 그들을 건져 올리셨습니다. 얼마나 복됩니까. 철저하게 우리를 낮추는 진리입니다. 인간의 교만을 산산이 부수는 진리입니다. 우리는 모두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을 받았습니다. 하나님께 감사하는 것이 너무도 당연합니다. 왜 하필 우리일까요? 왜 우리일까요? 그러니 3절이 이렇게 시작하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합니다. “찬송하리로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을 우리에게 주시되.” 하나님을 찬송합니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립니다. 오직 하나님만 찬양합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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