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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드로전서 1장 1절부터 2절을 보겠습니다. 오늘 저녁 우리는 하나님의 귀한 진리를 함께 나누면서 놀랍도록 풍성한 은혜를 누리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도 아시다시피 베드로는 베드로전서를 시작하면서 독자들을 “택하심을 받은 자들”이라고 부릅니다. 택하심을 받은 자들이라니, 얼마나 놀랍습니까? 우리는 하나님께 택하심을 받은 자들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택하셔서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을 아는 특권을 누리게 하셨습니다. 신약에서 새롭게 시작하신 일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주권적으로 택하셨습니다. 계속 그렇게 하셨습니다. 느헤미야 9장 7절은 “주는 하나님 여호와시라 옛적에 아브람을 택하시고”라고 합니다. 창세기 21장 12절은 “하나님이 이삭을 택하셨다”라고 합니다. 로마서 9장 8절부터 15절은 “하나님이 야곱을 택하셨다”라고 합니다. 선지자 학개는 학개 2장 23절에서 “하나님이 스룹바벨을 택하셨다”라고 합니다. 이사야 42장 1절과 베드로전서 2장 6절은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택하셨다”라고 합니다.

요한복음도 15장에 나오는 우리 주님의 말씀을 통해 주님께서 제자들, 그러니까 사도들을 택하셨다는 사실을 상기시켜 줍니다. 갈라디아서 1장 15절은 하나님이 바울을 택하셨다고 합니다. 바울은 하나님의 택하심을 받은 자였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각 개인뿐 아니라 성도의 무리인 교회도 주권적으로 택하셨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구원받을 자들을 택하셨습니다. 에베소서 1장을 보십시오. 4절은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라고 합니다. 데살로니가후서 2장 13절은 “하나님이 처음부터 너희를 택하사 성령의 거룩하게 하심과 진리를 믿음으로 구원을 받게 하심이니”라고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택함 받은 자들이라는 이 위대하고 풍성한 진리를 계속 살펴보고 있습니다. 베드로가 이 사실로 편지를 시작하는 것은 박해받고 있는 형제자매들에게, 세상의 택함은 받지 못했을지 몰라도 하나님의 택함을 받은 자들이라는 사실을 일깨워 주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세상 기준으로는 대단한 사람들이 아닐지 몰라도, 하나님의 기준으로는 택함 받은 귀한 사람들입니다. 세상이 무슨 일을 하든 이들을 향한 하나님의 목적은 영원토록 이루어집니다. 베드로가 이 편지를 쓸 당시의 성도들은 배척당하고 박해받고, 믿음 때문에 고난을 겪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베드로는 성도들에게 하나님의 택함 백성이라는 사실을 일깨워 줍니다. 박해받는 성도들에게 얼마나 큰 격려가 되겠습니까?

베드로는 성도들이 택함 받은 자들이라는 사실을 소개하면서 위대한 선택 교리를 이루는 몇 가지 요소를 제시합니다. 먼저 “택하심을 받은”이라는 말에 본질이 담겨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로 하나님께 택하심을 받았습니다. 이어서 베드로는 택함 받은 자의 삶에 대해 말합니다. 우리가 택하심을 받은 자들이기 때문에 1절이 말하는 것처럼 우리는 이 땅에서 “나그네”로 삽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 속한 사람들이 아닙니다. 우리는 하나님 나라의 시민이고 하나님 가족의 구성원입니다. 말하자면 우리는 이곳에서 잠시 유배 생활을 하는 나그네입니다. 택하심을 받은 자는 나그네로 삽니다.

셋째로 2절에는 택하심의 근원이 나옵니다. “곧 하나님 아버지의 미리 아심을 따라.” 하나님은 미리 정하신 관계에 근거해서 우리를 택하셨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미리 아심에 따라 하나님께 택함을 받았습니다. 지난 시간에 말씀드렸듯이 하나님이 미래를 내다보셨다는 뜻이 아닙니다. 관찰해서 정보를 얻으셨다는 뜻도 아닙니다. 관계를 미리 정하셨다는 뜻입니다. 베드로전서 1장 20절에도 바로 이 “미리 아심”이라는 동일한 표현이 사용되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창세 전부터 미리 알린 바 되신 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미래를 내다보시거나 관찰하신 것을 근거로 그리스도를 구주로 택하셨다는 뜻이 아닙니다. 미리 정하신 관계와 계획, 그러니까 의도적으로 뜻을 세우셨다는 의미입니다. 그러므로 택하심의 근원은 ‘미리 아심’이라는 하나님의 미리 정하신 계획 안에 있습니다.

그 다음으로 택하심의 영역을 살펴봤습니다. 우리는 2절에서 “성령이 거룩하게 하심으로”라는 구절을 통해 택하심을 현실로 경험한다는 것을 살펴보았습니다. 다시 말해서 택하신 사람을 구별하시는 성령님의 역사를 통해 택하심이 삶 속에 실현됩니다. “거룩하게 하심”은 “구별한다”는 뜻입니다. 우리는 죄에서 구별되었습니다. 세상에서 구별되었습니다. 사탄의 자녀에서 구별되어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죽음에서 구별되어 생명으로 옮겨졌습니다. 하나님의 성령께서 행하시는 거룩하게 하는 역사, 곧 구별의 역사입니다.

그러므로 성화는 구원받을 때 시작되어서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얼굴과 얼굴을 맞대어 볼 때까지 계속되는 성결의 과정입니다. 에베소서 1장 4절입니다.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우리는 거룩하게 되도록 택함을 받았습니다. 성령님의 구별하시는 역사는 구원의 때에 시작됩니다. 그때 우리는 죄에서 구별되어 하나님께 속하고, 죽음에서 생명으로 옮겨지고, 사탄에게서 구별되어 그리스도께 속합니다. 그리고 그 구별은 계속해서 점진적으로 진행되어, 우리는 점점 더 거룩해지고 점점 더 주 예수님을 닮습니다. 그러므로 택하심의 영역은 거룩함입니다. 성령님은 구별하시는 역사를 통해 거룩하지 않은 자를 거룩하게 만드십니다.

이제 다섯 번째로 살펴볼 요소는 2절에 나오는 택하심의 목적입니다. 지금까지 말씀드린 것은 복습이었습니다. 성령님이 우리를 거룩하게 하시는 역사는 우리로 “예수 그리스도께 순종”하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잘 들으십시오. 아주 기본적인 진리입니다. 우리가 죄에서 구별되어 하나님께 속하게 된 것은 예수 그리스도께 순종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러므로 순종은 거룩함의 결과입니다. 에베소서 2장 10절은 말하자면 우리가 하나님의 걸작품으로 지음받았다고 말합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지으신 작품으로서 선한 일을 하도록 지음받았고, 하나님은 우리가 행할 그 선한 일들을 미리 정해 놓으셨습니다.

다시 말해 구원의 정의는 순종하는 삶입니다. 매우 중요한 진리입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께 순종하도록 성령의 역사로 하나님께 구별되었습니다. 성령님의 구별 사역에 뒤따르는 결과입니다. 그러므로 택하심은 구원을 통해 우리를 순종으로 이끕니다. 물론 우리가 마땅히 순종해야 할 만큼 온전히 순종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순종하도록 구속받았고, 순종하도록 구별되었습니다.

순종은 우리의 새로운 삶의 방식입니다. 로마서 7장이 말하듯이 우리는 하나님의 법에 순종합니다. 로마서 6장이 말하듯이 우리는 하나님을 우리의 주인으로 모시고 순종합니다. 더 이상 죄의 종이 아니라 이제는 하나님의 종이 되었습니다. 우리는 의롭게 행합니다. 덕을 행합니다. 우리는 신실하고, 열매를 맺고, 섬기고, 그리스도를 사랑합니다. 참 구원은 순종을 낳습니다. 완전하지는 않지만 분명히 순종합니다.

디모데전서 6장 3절에서 바울은 이렇게 말합니다. “누구든지 다른 교훈을 하며 바른 말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과 경건에 관한 교훈을 따르지 아니하면.” 여기서 바울이 말하는 것은 그리스도에 관한 참된 교훈, 구원에 관한 참된 교훈은 본질적으로 사람을 경건에 이르게 한다는 뜻입니다. 구원은 순종이라는 아름다운 열매를 실제로 맺습니다. 이것 역시 성령님이 행하시는 역사입니다.

잠시 데살로니가전서 1장을 보겠습니다. 여기서 바울은 동역자인 실라, 또는 실루아노와 디모데와 함께 데살로니가 교회에 편지를 씁니다. 2절입니다. “우리가 너희 모두로 말미암아 항상 하나님께 감사하며 기도할 때에 너희를 기억함은 너희의 믿음의 역사와 사랑의 수고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소망의 인내를 우리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끊임없이 기억함이니.” 그리고 4절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잘 보십시오. “하나님의 사랑하심을 받은 형제들아 너희를 택하심을 아노라.”

“너희를 택하심을 아노라.” 어떻게 압니까? “이는 우리 복음이 너희에게 말로만 이른 것이 아니라 또한 능력과 성령과 큰 확신으로 된 것임이라.” 6절을 보십시오. “또 너희는 많은 환난 가운데서 성령의 기쁨으로 말씀을 받아 우리와 주를 본받은 자가 되었으니.” 7절입니다. “그러므로 너희가 마게도냐와 아가야에 있는 모든 믿는 자의 본이 되었느니라.” 9절입니다. “너희가 어떻게 우상을 버리고 하나님께로 돌아와서 살아 계시고 참되신 하나님을 섬기는지와 또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리신 그의 아들이 하늘로부터 강림하실 것을 너희가 어떻게 기다리는지를 말하니…”

바울은 이렇게 말합니다. “너희를 택하심을 아노라.” 어떻게 압니까? 그렇게 말했기 때문입니까? 손을 들었기 때문입니까? 세례를 받았기 때문입니까? 아닙니다. 성도들이 바울을 본받았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를 본받았기 때문입니다. 환난 가운데서 말씀을 귀담아 들었기 때문입니다. 기쁨을 누렸기 때문입니다. 다른 사람들의 본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8절을 보면 성도들에게서 주의 말씀이 퍼져 나갔습니다. 9절을 보면 우상을 버렸습니다. 10절을 보면 그리스도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은 거듭난 사람의 경험과 거듭난 삶에서 나타나는 특징들입니다. 바로 이런 것들이 참된 택하심을 드러냅니다. 아주 기본적인 진리입니다.

아서 핑크(A. W. Pink)는 이런 질문을 던졌습니다. “내가 택하심을 받았다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는가?” 택하심을 받았는지를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첫째, 하나님의 말씀이 하나님의 능력으로 내 영혼에 임하여 자기만족이 산산이 깨어지고 자기 의를 버리게 된 것으로 알 수 있다. 둘째, 성령께서 내가 얼마나 비참하고 죄책 아래 있으며 잃어버린 상태에 있는지를 깨닫게 하신 것으로 알 수 있다. 셋째, 절망적인 나의 상태를 해결하기에 그리스도께서 얼마나 합당하고 충분하신 분인지 내게 계시되었고, 하나님이 주신 믿음으로 그리스도를 붙들고 그분만을 나의 유일한 소망으로 의지하게 된 것으로 알 수 있다.”

“넷째, 내 안에 있는 새 본성의 특징으로 알 수 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영적인 것들을 갈망하고, 거룩함을 사모하고, 그리스도를 닮아 가기를 추구하는 것이다. 다섯째, 새 본성이 옛 본성에 맞서 싸우기 때문에 죄를 미워하고 그 죄로 인해 자신을 혐오하게 되는 것으로 알 수 있다. 여섯째, 하나님의 말씀이 정죄하는 모든 것을 피하고, 모든 범죄를 진심으로 회개하며 겸손히 자백하는 것으로 알 수 있다.”

“이 점에서 실패하면 우리의 구원의 확신에는 틀림없이, 아주 빠르게 먹구름이 드리워지고 성령께서 그 증거를 거두시게 된다. 일곱째, 그리스도인의 덕을 기르기 위해 온 힘을 다하고, 이를 위해 정당한 모든 수단을 사용하는 것으로 알 수 있다. 이처럼 자신이 택하심을 받았다는 확신은 이러한 증거들이 하나씩 쌓여감에 따라 더욱 분명해진다.”

택함 받은 것을 어떻게 압니까? 택하심을 받았다는 것을 어떻게 압니까? 핑크의 말을 요약하면 이렇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여러분을 가르치고, 여러분의 삶 속에 들어가 역사하고, 죄를 깨닫게 하고, 안일한 마음을 산산이 깨뜨림으로써 알 수 있습니다. 어느 순간 여러분의 영이 깨어나 자신의 죄를 깨닫고 그리스도를 깨달아 앎으로써 알 수 있습니다. 새 본성을 받아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사랑하고, 하나님을 섬기고 하나님께 영광 돌리기를 갈망함으로써 알 수 있습니다. 죄를 미워하고 죄에 맞서 싸우려 합니다. 그 밖에도 이런 여러 가지 모습이 나타납니다.

이 모든 것을 가장 일반적인 말로 표현하면, 순종하는 마음입니다. 여러분은 말씀에 순종했습니다. 성령께서 죄를 깨닫게 하시는 역사에 순종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이루신 일에 순종했습니다. 성경의 요구에 순종합니다. 표지는 순종입니다. 순종은 결과입니다. 순종은 참으로 구속받은 사람에게서 나타나는 반응입니다.

그러므로 베드로는 하나님의 택하시는 역사가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순종을 낳는다고 말합니다. 온전한 순종은 아닙니다. 실패할 때에는 마음이 깨어지고 죄를 지어서 자백하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순종은 참된 신자에게서 나타나는 특징입니다.

그리고 그 진리를 확증하기 위해 베드로는 택하심의 여섯 번째 요소를 언급합니다. 저는 “택하심의 안전”이라고 부르고 싶습니다. 물론 다르게 부를 수도 있습니다. “택하심의 의무”라고 할 수도 있고, “택하심의 언약”이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반드시 아십시오. 매우 깊고, 놀랍고, 실제적인 내용입니다.

베드로는 이렇게 말합니다. “성령이 거룩하게 하심으로 순종하게 하시고,” 이어지는 구절을 보십시오. 여러분의 성경에도, 여러분의 마음에도 밑줄을 그으시기 바랍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피 뿌림을 얻게 하시려고.” 매우 신중하게 살펴봐야 합니다.

베드로는 이 피를 뿌리는 것을 어떻게 순종과 연결된다고 합니까? 무슨 뜻입니까? 누군가는 구원이라고 말할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아닙니다. 그게 아닙니다. 이 구절의 시간 순서를 보면 구원 이후에 이어지는 결과입니다. 2절에서 구원은 어디에서 이루어집니까? 어느 표현입니까? “하나님 아버지의 미리 아심을 따라 택하심을 받는 것”, 이것일까요? 이것은 영원 전의 일이죠. 구원은 어디에서 이루어집니까? “성령이 거룩하게 하심으로”입니다. 성령이 거룩하게 하심으로 구원이 이루어집니다. 그리고 그 결과로 예수 그리스도께 순종하고 피 뿌림을 얻습니다. 그러므로 피 뿌림이란 “성령이 거룩하게 하심”으로 나타난 구원에 뒤따르는 결과입니다.

그렇다면 구원에 뒤따르는 결과인 이 피 뿌림이란 뭘까요? 저는 성경을 자세히 연구해 봤습니다. 그러자 사람들에게 실제로 피가 뿌려진 경우는 매우 드물다는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속죄일에도 사람들에게 피를 뿌리지는 않았습니다. 속죄제나 속건제를 비롯한 제사에서도 사람에게 피를 뿌린 적은 없습니다. 제단에는 피를 뿌렸지만 사람에게는 뿌리지 않았습니다.

사실 레위 율법에서 사람에게 피를 뿌리는 경우는 두 가지뿐입니다. 매우 흥미로운 사실입니다. 하나는 나병 환자의 경우입니다. 레위기 14장 6절 이하를 보면, 나병 환자를 정결하게 하는 상징적인 의식을 행할 때에 새의 피를 뿌렸습니다. 또 하나는 제사장으로 구별하고 거룩하게 세우는 상징적인 의식을 행할 때에 아론과 아들들에게 숫양의 피를 뿌렸습니다. 레위기 8장과 출애굽기 29장에 기록되어 있죠. 사람에게 피를 뿌린 경우는 이 두 경우 뿐입니다. 레위기 14장에서 나병 환자에게 새의 피를 뿌렸고, 아론과 아들들이 제사장 직분을 위해 구별될 때에는 숫양의 피를 뿌렸습니다. 그러나 둘 중의 어느 것도 오늘 본문과는 들어맞지 않습니다. 베드로는 나병 환자에 대해 말하는 것도 아니고, 제사장들에 대해 말하는 것도 아닙니다.

그렇다면 구약에서 사람들에게 피를 뿌리는 어떤 사건이 베드로의 마음에 떠올랐던 것일까요? 단 한 가지뿐입니다. 단 한 번 뿐이었던 사건입니다. 베드로는 이 사건을 염두에 두고 있습니다. 단 한 번, 레위 율법이 주어지기 전에 일어났던 사건이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레위 율법의 범위를 벗어난 사건입니다. 이스라엘을 위한 레위 율법의 일부가 아니었던 거죠. 그런데도 그 단 한 번의 사건, 그 사건은 의미가 너무 중요하기 때문에 히브리서에서 두 번이나 언급되었습니다. 히브리서 9장 19절과 히브리서 12장 24절입니다. 이 두 구절이 바로 그 한 사건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이제 출애굽기 24장으로 가 보겠습니다. 정말 놀라운 장면이 나옵니다. 출애굽기 24장입니다. 제가 3절부터 8절까지 읽겠습니다. 여러분도 함께 따라와 보십시오. “모세가 와서 여호와의 모든 말씀과 그의 모든 율례를 백성에게 전하매 그들이 한 소리로 응답하여 이르되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모든 것을 우리가 준행하리이다 모세가 여호와의 모든 말씀을 기록하고 이른 아침에 일어나 산 아래에 제단을 쌓고 이스라엘 열두 지파대로 열두 기둥을 세우고 이스라엘 자손의 청년들을 보내어 여호와께 소로 번제와 화목제를 드리게 하고.”

“모세가 피를 가지고 반은 여러 양푼에 담고 반은 제단에 뿌리고 언약서를 가져다가 백성에게 낭독하여 듣게 하니 그들이 이르되 여호와의 모든 말씀을 우리가 준행하리이다 모세가 그 피를 가지고 백성에게 뿌리며 이르되 이는 여호와께서 이 모든 말씀에 대하여 너희와 세우신 언약의 피니라.”

“모세가 피를 가지고 반은 여러 양푼에 담고 반은 제단에 뿌리고 언약서를 가져다가 백성에게 낭독하여 듣게 하니 그들이 이르되 여호와의 모든 말씀을 우리가…” 어떻게 하겠다고요? 무엇이라고 했습니까? “준행하리이다”라고 했습니다. 밑줄을 그으십시오. 8절입니다. “모세가 그 피를 가지고…” 어떻게 했습니까? 백성에게 뿌렸습니다. “백성에게 뿌리며 이르되 이는 여호와께서 이 모든 말씀에 대하여 너희와 세우신 언약의 피니라.”

우리가 앞에서 살펴본 두 경우를 제외하면, 사람들에게 피를 뿌린 사건은 바로 이것이 유일합니다. 단 한 번뿐이었던 사건입니다. 그 피를 “언약의 피”라고 부릅니다.

이제 다시 처음부터 차근차근 한번 살펴보겠습니다. 주의 깊게 잘 들으시면 무슨 의미인지 분명히 이해가 되실 겁니다. 핵심을 말씀드리겠습니다. 모세가 하나님의 말씀을 백성에게 선포하자 백성이 무엇이라고 약속했습니까? 준행하겠다, 순종하겠다, 이렇게 약속했습니다. 3절입니다.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모든 것을 우리가 준행하리이다.” 그런 다음에 모세는 그 말씀을 기록했습니다. 제단을 쌓고, 젊은이들을 보내서 여호와께 번제와 화목제를 드리게 했습니다. 그리고 그 희생 제물의 피 절반은 제단에 뿌리고, 나머지 절반은, 6절에 따르면 여러 그릇에 담아 두었습니다.

그 후에 모세는 자신이 기록한 하나님의 말씀, 그러니까 언약서를 가져다가 다시 모든 백성 앞에서 읽어 주었습니다. 그러자 7절에서 백성은 다시 한 번 순종을 약속했습니다. “우리가 모든 것을 행하겠으며 순종하리이다.”

잘 들으십시오. 백성들은 희생 제사를 통해 하나님과 순종의 언약을 맺고 있었습니다. 하나님께 순종하겠다고 약속했습니다. 그리고 모세는 그 그릇에 담아 두었던 나머지 피를 가져다가 백성에게 뿌리며 말합니다. “이는 여호와께서 이 모든 말씀에 따라 너희와 세우신 언약의 피니라.” 바로 8절 말씀이죠.

고대에는 두 사람이 언약을 맺을 때 피로 확증했습니다. 그리고 때로는 그 피를 언약을 맺은 양쪽 당사자에게 뿌리기도 했습니다. 약속을 끝까지 지키겠다는 피의 언약입니다. 고대 문화에서 아주 흔한 관습이었습니다. 이 관습을 따라 계약을 맺었습니다. 언약입니다. “여호와의 모든 말씀을…” 어떻게 하겠다고 약속했습니까? “준행하리이다.” 순종의 언약입니다. 피로 확증된 순종의 언약입니다.

피를 뿌리는 목적은 거룩하게 구별함과 동시에 언약의 당사자들에게 언약 준수 의무를 부여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백성 사이에 계약이 맺어지고 있었던 것이죠. 이제 잘 따라오십시오. 이 부분을 놓치면 안 됩니다. 매우 감격스러운 결론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하나님과 백성 사이에 언약이 체결되었습니다. 백성은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겠다고 약속했습니다. 백성에게 뿌려진 피는 언약의 자기 몫을 감당하겠다는 표시입니다. 제단에 뿌려진 피는 하나님께서 언약의 자기 몫을 신실하게 이루시겠다는 표시입니다. 백성에게 피를 뿌린 것은 순종에 대한 헌신을 상징했고, 제단에 피를 뿌린 것은 하나님의 신실하심에 대한 헌신을 상징했습니다. 저는 이것이 바로 베드로가 염두에 두었던 의미라고 믿습니다. 성경에서 순종과 피 뿌림이 이렇게 연결되어 나타나는 곳은 바로 이 본문뿐입니다. 베드로는 유대인으로서 이 말씀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여기에서 그리스도인과 택하심의 관계를 설명해 주는 놀라운 병행 구조를 발견한 것입니다.

잘 들으십시오. 베드로가 편지를 보낸 이 성도들은 성령의 거룩하게 하심으로 구원을 받았습니다. 그리하여 영원 전의 택하심이 현재의 현실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피로 확증된 하나님과의 언약 안으로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피로 확증된 언약입니다. 순종의 언약이죠.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 안에는 구원이라는 새 언약만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 순종의 언약도 함께 포함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의 희생을 받아들일 때, 단지 우리를 대신한 그리스도의 죽음이 가져다준 유익만 받아들이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순종하겠다는 언약도 함께 맺은 것입니다. 그리고 그 언약은 그리스도의 죽음, 그 피로 거룩하게 확증되었습니다.

제단에 뿌려진 피는 십자가에서 드려진 그리스도의 희생이 하나님을 만족하게 하신 것을 보여 줍니다. 흥미로운 사실은, 예수님이 죽음을 앞두고 자신의 희생을 “언약의 피”라고 말씀하시면서 출애굽기 24장의 표현을 그대로 인용하셨다는 겁니다. 새 언약 안에는 본질적으로 약속이 담겨 있습니다. 주께서 오셔서 우리를 구속하시고, 우리는 그에 응답하여 그분의 말씀을 지키겠다는 약속입니다. 만일 이 약속을 제거한 채 구원만을 말한다면 거짓 언약입니다.

피를 뿌린다는 것은 먼저 피흘림을 전제합니다. 새 언약의 확증 역시 십자가 희생을 전제합니다.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의 뜻에 따라 생명의 피를 내어주셨습니다. 하나님과 백성 사이에 언약을 세우시기 위한 것이죠.

베드로의 요점을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그리스도의 사역은 죄를 위한 완전한 속죄 제물로 죽으심으로 하나님을 만족하게 하셨습니다. 그러나 거기에서 끝나지 않습니다. 그리스도의 사역은 사람들을 피로 확증된 순종의 언약 안으로 들어가게 합니다. 매우 중요하고도 깊은 진리입니다. 그러므로 베드로의 결론은 이것입니다. ‘여러분이 성령에 의해 거룩하게 구별된 것은, 그리스도의 피로 확증된 순종을 위함입니다. 순종은 피 뿌림과 결코 분리될 수 없습니다.’ 이런 뜻입니다.

그리스도께서 피를 흘리셨을 때, 순종의 언약도 그 안에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도행전 5장 32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는 이 일에 증인이요 하나님이 자기에게 순종하는 사람들에게 주신 성령도 그러하니라 하더라.” 순종은 언약에 본질적으로 포함되어 있습니다. 구원과 순종은 새 언약의 양면입니다. 이 둘은 결코 떼어 놓을 수 없는 새 언약의 두 측면입니다.

로마서 6장 17절도 이렇게 말합니다.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너희가 본래 죄의 종이더니 너희에게 전하여 준 바 교훈의 본을 마음으로 순종하여.” 구원을 말하면서 순종을 말하지 않을 수는 없습니다. 새 언약을 말하면서 순종을 말하지 않을 수도 없습니다. 우리에게 상징적으로 피가 뿌려졌습니다. 우리의 몫인 순종을 의미하죠. 또 하나님께도 뿌려졌습니다. 하나님의 몫인 신실함을 의미합니다. 우리는 순종하도록 택하심을 받았습니다. 다시 말해, 순종을 위한 택하심입니다.

그리고 제 마음을 가장 감격하게 하는 한 가지를 더 말씀드리겠습니다. 잘 들으십시오. ‘그렇다면 제단에 뿌려진 피는 왜 필요한 것일까? 하나님의 몫은 무엇일까?’ 우리에게 뿌려진 피는 하나님께 순종하겠다는 우리의 헌신을 상징한다고 했죠. 반면 제단에 뿌려진 피는 우리를 용서하시겠다는 하나님의 헌신을 상징합니다. 이해하시겠어요? 다시 말해서, 하나님의 은혜를 상징합니다. 놀랍지 않습니까?

언약입니다. 언약의 내용은 이렇습니다. 우리는 순종하겠다고 약속하고, 하나님은 우리가 순종하지 못할 때 용서하시겠다고 약속하십니다. 이보다 더 놀라운 언약이 어디 있습니까? 그리스도의 피가 바로 이 언약을 가능하게 했습니다. 순종 언약의 두 측면입니다. 택하심이 안전한 이유입니다. 우리는 이 언약 때문에 안전합니다. 우리는 순종의 언약 안으로 들어왔습니다. 순종하는 삶이 성도의 특징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이 되십시오. 그리고 순종은 걱정하지 않아도 됩니다”, 이렇게 말한다면, 참된 복음이 아닙니다. 누군가를 구원으로 초청하는 것은 언약 안으로 초대하는 것입니다. 성도의 몫은 순종이고, 하나님의 몫은 성도의 실패를 용서하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언약입니다. 이런 언약입니다.

여러분이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께 나아오는 것은, 이렇게 고백한다는 뜻입니다. “하나님, 제 삶을 주님께 드립니다. 저는 주님께 순종하기 원합니다. 제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주님을 위해 살고, 주님을 사랑하고, 주님을 섬기겠습니다.” 그럴 때에 상징적으로 그리스도의 피가 여러분에게 뿌려지고, 여러분의 죄는 씻음을 받습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의 자녀가 됩니다. 그리고 제단에 뿌려진 피는 하나님 편에서 여러분에게 주시는 언약의 보증입니다. 여러분이 그 언약을 온전히 지키지 못할 때에도 하나님께서는 기꺼이, 그리고 은혜로 여러분의 죄를 용서하시겠다는 약속입니다. 놀랍지 않습니까? 정말 놀라운 진리입니다.

택하심이 안전한 이유는 우리가 언약 안에서 피 뿌림을 받았을 뿐 아니라, 하나님 편에서도 제단에 피가 뿌려졌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몫을 온전히 지키지 못할 때가 있지만, 하나님은 자신의 몫을 반드시 지키십니다. 언약을 확증한 바로 그 피가 순종하지 못하는 그리스도인의 죄까지도 덮어 줍니다. 택하심의 안전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계속해서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하십니다. 얼마나 놀라운 진리입니까.

지금 우리는 택하심의 진리를 살펴보고 있습니다. 택하심의 본질, 상태, 근원, 영역, 목적, 안전까지 살펴봤습니다. 마지막으로 택하심의 유익을 보겠습니다. 2절 마지막 말씀을 바탕으로 이 내용을 조금 더 확장해 보겠습니다.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더욱 많을지어다.” 신약의 서신서에서 여러 저자들이 반복해서 사용하는 인사입니다. 구원이라는 선물은 은혜입니다. 그리고 그 결과는 평강입니다. “나는 너희가 이 은혜와 평강을 풍성하게 누리기를 원한다”라는 말입니다. 베드로는 평강을 바랐습니다. 여기 사용된 동사는 헬라어에서 소망이나 바람을 나타냅니다. 헬라어를 공부하는 분들은 잘 아실 겁니다. “나는 여러분에게 은혜가 있기를 바란다. 여러분에게 평강이 가장 충만한 분량으로 있기를 바란다. 하나님께서 주실 수 있는 모든 것, 하나님께서 베푸시는 모든 복을 거듭, 또 거듭 풍성히 누리기를 바란다.”

다시 말해서, “나는 여러분이 택하심을 받은 자로서 누릴 수 있는 모든 복을 누리기를 바란다”라는 뜻입니다. 얼마나 아름답습니까? 이제 마지막으로 말씀드리겠습니다. 택하심을 받은 자에게는 참으로 놀라운 복이 있습니다. 베드로전서 말씀을 통해서 택하심을 받은 자가 소유한 복에 대해서 몇 가지만 간단히 말씀드리겠습니다.

택하심에는 어떤 유익이 있습니까? 우리는 선택 교리를 생각하면 왠지 껄끄럽게 여깁니다. 말하는 것을 꺼립니다. 너무 깊고, 너무 복잡하고, 이해하기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선택 교리를 제대로 이해하면 전혀 다른 반응을 보일 수밖에 없습니다. 여러분은 선택 교리에서 도망칠 것이 아니라 오히려 달려가야 합니다. 두려워할 게 아니라 기뻐해야 합니다. 그 이유를 이제 말씀드리겠습니다.

무엇보다도 택하심은 성경에 나오는 교리 가운데 우리의 교만을 가장 철저하게 꺾는 교리입니다. 그렇습니다. 이 교리는 겸손을 만들어 냅니다. 택하심은 우리를 겸손하게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구원에 우리가 기여한 것은 정말로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하기 때문이죠. 이 진리는 우리의 영적인 교만과 종교적인 자부심을 철저하게 무너뜨립니다. 스펄전은 이것을 “세상에서 사람을 가장 철저히 벗겨 내는 교리”, 이렇게 불렀습니다. 이 교리는 우리의 자랑거리를 완전히 벗겨내 버립니다.

스펄전의 말입니다. “나는 선택 교리보다 사람을 더 겸손하게 만드는 것을 알지 못한다. 나는 이 교리를 이해하려고 애쓰다가 여러 번 실패했다. 그러나 가까이 다가가 ‘하나님께서 태초부터 우리를 구원에 이르도록 택하셨다’는 생각이 내 마음을 사로잡았을 때, 나는 그 엄청난 진리 앞에서 완전히 압도되었다. 그리고 내 영혼은 아찔한 높이에서 땅으로 곤두박질치듯이 내려와 산산이 깨어진 채 엎드려 이렇게 말했다. ‘주님, 저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저는 아무것도 아닌 것보다도 못한 존재입니다. 그런데 왜 하필 저를, 왜 저를 택하셨습니까?’” 선택 교리는 우리의 교만을 철저히 꺾어 버립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베푸시기 때문입니다.

둘째, 선택 교리는 하나님을 높입니다.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돌립니다. 회개도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것이고, 믿음도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것이고, 순종할 수 있는 능력도 하나님께로부터 온다는 사실을 선포합니다. 심지어 우리가 언약 준수에 실패할 때에도 하나님의 몫은 우리의 실패를 덮어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니 “여호와여, 우리에게가 아니라, 우리에게가 아니라, 주의 이름에 영광을 돌리소서”라는 고백은 너무나 당연합니다. 우리의 의지가 실제로 반응해서 행동했다는 사실조차도 하나님의 역사하심의 결과입니다. 구원의 교리 가운데 선택 교리는 하나님을 가장 높이는 교리이며, 동시에 우리의 교만을 가장 철저히 꺾는 교리이기도 합니다.

셋째, 선택 교리는 기쁨을 낳습니다. 기쁨을 가져다주는 교리입니다. 여러분, 잘 들으십시오. 우리의 유일한 소망은 하나님께 택함을 받는 것입니다. 이해하시겠습니까? 그것이 우리의 유일한 소망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택하심은 우리에게 최고의 기쁨을 가져다줍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택하셨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기쁘지 않습니까?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택하지 않으셨다면 저에게는 구원의 소망이 전혀 없었을 것이니까요. 하나님께서 주권적인 자비로 저를 택하지 않으셨다면 저는 아무런 구원의 소망도 없었을 겁니다. 이보다 기쁜 교리가 또 어디 있습니까? 이 진리는 저의 마음을 기쁨으로 가득 채웁니다.

로마서 9장 29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또한 이사야가 미리 말한 바 만일 만군의 주께서 우리에게 씨를 남겨 두지 아니하셨더라면 우리가 소돔과 같이 되고 고모라와 같았으리로다 함과 같으니라.” 하나님께서 우리를 택하지 않으셨더라면, 우리도 다른 경건하지 않은 사람들과 함께 멸망했을 겁니다. 또 시편 65편 4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주께서 택하시고 가까이 오게 하사 주의 뜰에 살게 하신 사람은 복이 있나이다...” 이 말씀을 잘 들으십시오. “주께서 택하신 사람은 복이 있나이다.” 얼마나 놀라운 선언입니까.

사랑하는 여러분, 이 사실은 우리의 마음에 기쁨을 불러일으켜야 합니다. 하나님은 처음부터 여러분을 사랑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언제나 여러분의 하나님이셨고, 앞으로도 영원히 여러분의 하나님이실 겁니다. 그러므로 앞으로도 영원히 여러분을 사랑하실 겁니다.

넷째, 선택 교리는 가장 큰 특권을 베풉니다. 선택 교리는 우리의 교만을 가장 철저히 꺾고, 하나님을 가장 높이고, 가장 큰 기쁨을 주고, 또 가장 큰 특권을 줍니다. 에베소서 1장 3절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을 주셨다고 합니다. 우리는 복에 복을, 그 복에 복을 더하여 받았습니다. 또 베드로전서 2장 9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그러나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 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이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라.” 택하심을 통해 받은 특권을 보십시오. 이루 말할 수 없이 놀라운 특권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선택 교리를 사랑해야 합니다. 선택 교리를 굳게 붙들어야 합니다.

이제 다섯째입니다. 선택 교리는 구원의 요소 가운데 거룩한 삶을 가장 강력하게 촉진합니다. 하나님이 사랑으로 나를 택하셨다는 사실보다 더 강력하게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게 하는 동기가 또 어디 있겠습니까? 감사하기 때문에 거룩한 삶을 살아야 한다는 강한 동기가 생길 수밖에 없습니다. 선택 교리를 바르게 가르치지 않고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면, 사람들은 구원에 자기가 어느 정도 기여했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구원이 어느 정도는 자기 몫이라고 여기기 때문에 구원의 뜻도 구원의 행위도 전적으로 하나님께 속했다는 사실을 잊어버리고, 하나님을 섬기고 사랑하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한다는 동기를 발견하지 못하게 됩니다.

사람들에게 이 진리를 이해시키지 않는 것은 그들을 돕지 않는 겁니다. 왜 바울이 골로새서 3장 12절에서 “그러므로 너희는 하나님이 택하사 거룩하고 사랑 받는 자처럼 긍휼과 자비와 겸손과 온유와 오래 참음을 옷 입고”라고 했겠습니까? 여러분은 하나님의 택하심을 받은 사람들이니, 그에 합당한 삶을 살라고 합니다. 강력한 동기 아닙니까? 우리의 삶을 힘있게 이끄는 진리 아닙니까? 택하심은 반드시 순종을 낳습니다.

스펄전은 이런 말도 했습니다. “성령의 은혜로운 역사 아래에서 택하심에 대한 생각보다 그리스도인을 더 거룩하게 만드는 것은 없다. ‘하나님께서 나를 택하셨는데 내가 죄를 짓겠는가? 그처럼 큰 사랑을 받았는데 죄를 짓겠는가? 그처럼 크신 인자하심과 긍휼을 입고도 곁길로 가겠는가? 결코 그럴 수 없다. 하나님이 나를 택하셨으니 나는 주님을 사랑할 것이다. 주를 위해 살겠다. 나를 주께 드려 영원히 주의 것이 되겠다. 그리고 주를 섬기기 위해 나를 구별하겠다.’” 참으로 강력한 동기입니다.

여섯째, 선택 교리는 구원의 모든 요소 가운데 우리에게 가장 큰 힘을 줍니다. 무슨 뜻입니까? 내가 택하심을 받은 사람이라면, 나는 안전합니다. 피 뿌림을 통해 순종의 언약에 속했고, 그 피가 하나님을 상징하는 제단에 뿌려졌다면, 하나님이 그 언약을 반드시 지키시겠다는 뜻입니다. 나의 몫은 뭡니까? 순종입니다. 하나님의 몫은 나의 불순종을 용서하시는 것입니다. 이 약속으로 인해 나는 안전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서 시작하신 선한 일을 예수 그리스도의 날까지 이루시고 완성하실 것이라는 사실을 아는 것보다 더 큰 힘을 주는 진리는 없습니다. 예수님도 말씀하셨습니다. “아버지께서 내게 주시는 자는 다 내게로 올 것이요 내게 오는 자는 내가 결코 내쫓지 아니하리라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은 내게 주신 자 중에 내가 하나도 잃어버리지 아니하고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는 이것이니라.” 왜 그렇습니까? 택하심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이 택하심을 받은 사람이라면, 그 택하심은 영원을 확증하는 도장입니다. 얼마나 큰 힘입니까? 다시 한번 이 주제에 대해 스펄전의 말을 인용하고 싶습니다. 조금 길지만 매용이 아주 풍성합니다.

“하나님께 택하심을 받았다고 믿는 사람만큼 담대한 사람은 없다. 나를 지으신 하나님께서 나를 택하셨는데 사람을 두려워할 이유가 어디 있는가? 자신이 왕의 혈통을 이어받은 독수리라는 것을 아는 사람이, 보잘것없는 참새 몇 마리의 지저귐을 무엇 때문에 신경쓰겠는가? 하늘의 왕족의 피가 자신의 혈관을 흐르고 있는데, 거지가 손가락질한다고 해서 무엇을 두려워하겠는가? 온 세상이 다 일어나 나를 대적한다 해도 두려워하겠는가? 온 세상이 무기를 들고 달려들지라도 완전히 평안하다. 지극히 높으신 분의 장막 은밀한 곳, 전능하신 하나님의 크신 장막 안에 거하기 때문이다.”

“나는 하나님의 사람이다. 다른 사람들과 구별된 사람이다. 내 이름이 하나님의 생명책에 기록되어 있지 않은가? 그렇다면 세상을 두려워하겠는가? 결코 그렇지 않다. 사자가 짖는 개를 두려워하지 않는 것처럼, 모든 원수를 향해 미소를 짓는다. 원수들이 가까이 다가오면 몸을 일으켜 산산이 부수어 버린다. 거대한 거인처럼 그들 사이를 걸어 다니고, 작은 사람들은 그의 발아래를 지나가면서도 그를 이해하지 못한다. 그의 이마는 쇠 같고 그의 마음은 부싯돌 같다. 사람이 무엇이기에 두려워하겠는가? 결코 그렇지 않다. 온 세상이 하나 되어 야유를 퍼붓는다 해도 미소를 지으며 이렇게 말할 것이다. ‘하나님을 자신의 피난처로 삼는 사람은 가장 안전한 거처를 얻을 것이다.’”

바로 그렇습니다. 무엇이 두렵습니까? 우리는 택하심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이 사실보다 더 담대하게 만들고, 더 강하게 만들고, 더 용기 있게 만들고, 더 안전하게 만드는 것은 없습니다. 이 교리가 얼마나 놀라운지 이제 아시겠습니까? 참으로 놀라운 교리입니다. 우리의 교만을 꺾고 겸손하게 만듭니다. 하나님을 높입니다.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솟아나는 기쁨을 가져다줍니다. 놀라운 특권을 베풀고, 거룩한 삶을 살도록 강권하고, 우리에게 힘을 주고 담대하게 합니다. 이런 교리를 무시할 수 있습니까? 교회가 이 교리를 무시한다면 얼마나 많은 것을 잃겠습니까? 정말로 엄청난 진리를 놓치지 않겠습니까?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하나님이 은혜 가운데 우리에게 주신 것을 반드시 이해해야 합니다. 모르면 안 됩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모든 교리에는 하나님을 찬양할 수밖에 없는 놀라운 특권이 담겨 있습니다. 그러므로 선택 교리를 모른다는 것은 하나님을 찬양하고 영화롭게 할 수 있는 능력이 그만큼 부족하다는 뜻입니다. 함께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우리를 택하여 주시니 얼마나 감사한지요. 우리는 이 사실 앞에서 압도됩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이 모든 것을 완전히 이해하지는 못합니다. 그러나 하나님, 우리는 이 진리로 인해 얼마나 기쁜지 모르겠습니다. 참으로 기쁩니다. 우리는 순종의 언약 안에 있습니다. 우리가 그리스도께 나아왔을 때, 우리 마음의 소원은 그리스도께 순종하는 것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우리의 불순종을 용서하시겠다고 피로 약속하신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는 사실에 너무나 감사합니다. 우리는 옛 이스라엘처럼 “우리가 순종하겠습니다”라고 장엄하게 약속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처럼 우리도 실패합니다. 우리의 모든 실패를 덮어 주시는 제단에 뿌려진 그리스도의 피에 감사합니다. 우리를 택하여 주시니 감사합니다. 주님의 교회를 택하여 주시니 감사합니다. 얼마나 큰 신비인지요. 우리의 이성으로 다 이해하지 못하는 신비가 우리의 마음에 밝은 햇빛으로 다가옵니다. 우리를 위해 행하신 모든 일에 감사드립니다. 아멘.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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