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베드로전서 1장 1절부터 2절을 보겠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 베드로는 본도, 갈라디아, 갑바도기아, 아시아와 비두니아에 흩어진 나그네 곧 하나님 아버지의 미리 아심을 따라 성령이 거룩하게 하심으로 순종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피 뿌림을 얻기 위하여 택하심을 받은 자들에게 편지하노니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더욱 많을지어다.”
베드로는 인사말에서 편지를 쓰는 대상이 하나님 아버지의 미리 아심을 따라 택하심을 받은 사람들이라고 강조합니다. 그러니까 베드로는 베드로전서 첫머리에서부터 매우 깊고도 중대한 신학의 세계로 뛰어듭니다. 오늘 저녁 우리가 함께 살펴볼 주제는 바로 택하심, 하나님의 선택 교리입니다.
1952년에 세상을 떠난 뛰어난 성경 교사이자 학자였던 A. W. 핑크(A. W. Pink)는 설교를 이렇게 시작했습니다. “오늘 저녁 저는 성경에서 가장 미움을 받는 교리인 하나님의 주권적인 택하심에 대해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핑크의 말이 옳았습니다. 이 선택 교리는 사람들에게 미움을 받는 교리입니다. 핑크는 훗날 이렇게 썼는데, 저는 이 말이 매우 통찰력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의 주권적인 택하심은 신자라고 자처하는 사람들 가운데 대다수가 가장 싫어하고 가장 심하게 비난하는 진리이다. 구원이 사람의 뜻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에서 비롯되었다는 사실을 분명히 선포하라. 또한 그것이 사실이 아니었다면 아무도 구원받을 수도, 구원받지도 못했을 것이라고 선포하라. 왜냐하면 타락의 결과로 사람은 선을 행할 모든 의지와 소원을 잃어버렸고, 택함받은 사람들조차도 선을 기꺼이 원하도록 하나님께서 만들어 주셔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한 가르침이 선포될 때 거센 분노의 외침이 터져 나올 것이다.”
그리고 이어서 이렇게 말합니다. “공로를 내세우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뜻이 절대적인 주권을 가지며 인간의 의지는 무력하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려 하지 않는다. 따라서 하나님의 주권적인 기쁘신 뜻에 따른 택하심을 가장 격렬하게 비난하는 사람들이야말로, 타락한 인간의 자유의지를 가장 열렬하게 찬양하는 사람들이다.”
핑크가 하려는 말은 이겁니다. 성경이 가르치는 하나님의 주권적인 선택 교리를 받아들이기 매우 어려워하는 사람들이 있다. 사람들은 자신의 구원이 전적으로 하나님께 달렸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으려 한다. 타락한 인간은 자신이 구원을 받는 데 기여하는 바가 있다고 생각한다. 자신이 믿었다고, 올바른 선택을 자신이 했다고 어떻게든 자신의 공로를 인정받고 싶어한다.
더 나아가서, 선택 교리는 거부감을 주기도 합니다. 우리의 기준으로 볼 때, 하나님이 수많은 사람들 가운데 어떤 사람들은 자신의 뜻대로 구원하시기로 택하시고, 다른 사람들은 그렇게 하지 않으신다는 것은 불공평하게 느껴지기 때문이죠. 그러나 여러분도 아시지 않습니까? 사람이 어떻게든 자신도 구원에 한몫했다고 주장하고 싶은 이유는, 타락한 본성으로 인해서 자신의 교만을 드러내고 싶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것이 진실하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단지 인간의 타락한 본성을 드러내는 표현일 뿐입니다. 그렇다면 불공평하다는 문제는 어떻습니까? 하나님이 불공평하신 분입니까? 결코 그렇지 않죠. 하나님을 인간적인 기준으로 판단하면 안 됩니다. 더욱이 인간이 세운 기준으로 공평을 논하면 안 됩니다. 왜냐하면 그 공평의 기준조차도 결국 타락한 본성이 반영된 것이기 때문입니다. 타락하고 죄된 존재인 우리가, 무한하시며 영원토록 거룩하신 하나님보다 무엇이 옳은지에 대해서 더 높은 기준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다니 얼마나 큰 교만입니까? 바로 여기에 진짜 문제가 있습니다.
시편 97편 2절입니다. “공의와 정의가 그의 보좌의 기초로다.” 공의와 정의는 하나님의 보좌를 떠받치는 기초입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모든 일은 공의와 정의라는 토대 위에서 이루어집니다. 인간의 공의와 정의는 아닐지라도, 분명 하나님의 공의와 정의입니다.
우리가 잘 아는 이사야 55장 8절부터 9절에서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이는 내 생각이 너희의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의 길과 다름이니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이는 하늘이 땅보다 높음 같이 내 길은 너희의 길보다 높으며 내 생각은 너희의 생각보다 높으니라.” 타락한 존재인 우리는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 정의로운지, 옳은지, 공평한지를 판단할 위치에 있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 공평하지 않다고 말하는 순간, 이미 자신의 한계를 넘은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공의란 무엇입니까? 정의를 하나 내려 드리겠습니다. 하나님의 공의는 하나님의 본질적인 속성입니다. 다시 말해, 하나님은 자신의 존재 안에서, 자신으로 말미암아, 자신을 위하여, 자신에게서, 그리고 오직 자신에 의하여 무한하시고 완전하게 의로우신 분이십니다.
오래 전에 제임스 어셔(James Ussher)는 이렇게 썼습니다. “하나님의 공의의 근원은 오직 하나님의 자유로운 뜻이며, 그 외에는 아무것도 아니다. 하나님께서 뜻하시는 것은 무엇이든 공의롭다. 그것이 공의롭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뜻하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뜻하시기 때문에 그것이 공의로운 것이다.” 이 말이 무슨 말인지 아시겠습니까? 어떤 것이 공의로운 이유는 하나님께서 그것을 뜻하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기준으로 공의롭기 때문에 공의롭게 뜻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이 스스로 공의의 기준을 정하십니다. 하나님의 공의는 인간의 공의와는 차원과 본질이 전혀 다릅니다.
그런데 사실 공의는 이 문제의 핵심이 아닙니다. 구원을 말할 때 공의만을 계속 이야기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모두를 공의로만 대하셨다면, 우리는 모두 지옥에 갔을 겁니다. 창조주는 피조물에게 아무런 빚도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택함받은 자들에게 은혜로 기꺼이 베풀어 주시는 것이지, 주셔야 할 의무는 없으십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하시는 모든 일이 공의로운데, 또 아무 자격도 없는 어떤 사람들을 택하셔서 구원하셨는데, 어떻게 불의하다고 말할 수가 있습니까?
구원은 결코 공의의 문제가 아닙니다. 늘 은혜의 문제입니다. 순전한 은혜의 문제입니다. 그러므로 이 문제를 "공평한가 아닌가?"라는 관점에서 이해하려고 하면 안 됩니다. 하나님께서 하셨다는 사실 자체가 공의를 의미합니다. 하나님이 공의의 기준을 정하십니다. 여러분이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이해하지 못한다고 해서 하나님이 여러분의 기준에 미치지 못하신다는 뜻이 아닙니다. 오히려 여러분의 기준이 하나님의 기준에 미치지 못한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이십니다.
이제 선택 교리를 살펴보려고 하는데, 사실 이 주제를 다루는 성경 말씀 중에서 지금 우리가 보고 있는 이 말씀보다 더 뛰어나고 더 간결하게 정리된 말씀은 없습니다. 베드로는 편지를 시작하자마자 곧바로 신학의 깊은 세계로 들어갑니다. 첫 절도 채 마치기 전에 "택하심을 받은 자들"이라는 말을 꺼내고, 이어서 택하심의 본질을 매우 짧지만 심오하게 설명합니다.
베드로는 이 첫 두 절에서 독자들이 하나님께 택하심을 받은 사람들이라는 사실을 분명히 밝히려고 합니다. 두 가지 관점에서 소개합니다. 첫째는 이 땅에서의 위치이고, 둘째는 하늘에서의 위치입니다.
이 땅에서는 "본도, 갈라디아, 갑바도기아, 아시아와 비두니아에 흩어진 나그네들"로 나옵니다. 그러나 하늘의 관점에서 보면, "하나님 아버지의 미리 아심을 따라 성령이 거룩하게 하심으로 순종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피 뿌림을 얻기 위하여 택하심을 받은 자들"입니다. 이처럼 베드로는 이 땅에서의 신분과 하늘에서의 신분을 함께 제시합니다.
이제 이 땅에서의 신분을 잠시 보겠습니다. 베드로는 본도, 갈라디아, 갑바도기아, 아시아와 비두니아에 흩어진 나그네에게 편지한다고 했습니다. 이 점을 잠시 살펴볼 필요가 있는데 그래야 수신자들의 형편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먼저 "흩어진"이라는 단어에 주목해 보십시오. 신약성경을 공부하는 분들에게는 매우 익숙한 단어일 겁니다. 헬라어로 ‘디아스포라(diaspora)’입니다.
여러분도 "디아스포라"라는 말을 들어보셨을 겁니다. "흩어짐", "분산됨", 이런 뜻이죠. 복음서에서는 온 세상에 흩어진 유대인들을 가리키는 신학적인 용어로 사용합니다. 요한복음 7장 35절에서 바로 그런 의미로 사용되었고, 야고보서 1장 1절에서도 세상 곳곳에 흩어져 있는 유대인들을 가리키는 말로 사용됐습니다.
그러나 저는 베드로가 여기서는 야고보처럼 이 단어를 신학적인 용어로 사용하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1장 17절을 보십시오. 베드로는 흩어진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외모로 보시지 않고 각 사람의 행위대로 심판하시는 이를 너희가 아버지라 부른즉 너희가 나그네로 있을 때를 두려움으로 지내라.” 여기서 암시하는 것은 이 땅에서 살아가는 기간, 이 땅에서 머무는 삶입니다. 베드로가 단지 낯선 문화 속에서 살아가는 이방인들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이 세상에서 나그네로 살아가는 사람들을 말하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2장 11절에서도 베드로는 이렇게 말합니다. “사랑하는 자들아 거류민과 나그네 같은 너희를 권하노니 영혼을 거슬러 싸우는 육체의 정욕을 제어하라.” 여기서도 "나그네"와 "거류민"은 자신의 본성과는 맞지 않는 환경 속에서 살아가며, 그 환경이 자기 영혼을 대적하여 싸우는 사람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이죠. 그러므로 베드로의 관심은 타국에 흩어져 사는 유대인들을 말하는 데 있지 않고, 영적으로 이 세상에서 나그네 된 신자에게 있습니다. 훨씬 더 넓은 범위의 독자를 포함하는 것입니다. 그 안에는 물론 유대인 그리스도인들도 있겠지만 이방인 그리스도인들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아마도 이 편지가 보내진 이방 지역에서 유대인들은 소수였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므로 베드로는 이방 나라에 흩어져 있는 유대인만을 향해 말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인들은 이 세상에서 나그네로 살아간다. 너희는 참된 나그네이자 외국인이자 순례자이다. 이곳에 속한 사람들이 아니다"라면서 모든 그리스도인을 대상으로 말하고 있습니다. 교회는 참된 본향을 떠나 온 세상에 흩어져 살아가는 나그네들의 공동체입니다.
사실 빌립보서 3장 3절에서 바울은 이렇게 말합니다. “하나님의 성령으로 봉사하며 그리스도 예수로 자랑하고 육체를 신뢰하지 아니하는 우리가 곧 할례파라.” 다시 말해서, 이방인 그리스도인을 포함하여 교회 전체, 그러니까 유대인 교회와 이방인 교회 모든 성도가 영적인 의미에서 참된 할례를 받은 백성이라는 겁니다. 그리고 저는 여기서 베드로도 같은 의미로 말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바로 영적인 의미에서 디아스포라, 세상에 흩어져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베드로는 이 세상에서 나그네와 외국인으로 살아가는 신자들에게 편지를 쓰고 있습니다. 모든 교회 성도에게 편지를 쓴 것입니다. 이것이 핵심입니다. 본도, 갈라디아, 갑바도기아, 아시아, 비두니아에 있는 교회에 편지를 보내고 있습니다.
참고로 이 지역들은 지금의 터키입니다. 당시에는 모두 로마 제국에 속해 있었고, 베드로는 로마 제국에 흩어져 있는 그리스도인들에게 편지를 썼습니다. 매우 넓은 지역에 있는 독자들을 대상으로 한 것입니다.
이 지역에는 교회가 여러 개 있었을 겁니다. 예를 들어서 아시아에는 적어도 일곱, 여덟 개 이상의 교회가 있었습니다. 그중에서 일곱 교회는 주 예수님께 직접 편지를 받았죠. 요한계시록 2장과 3장에 나오죠. 또 요한계시록에는 언급되지 않았지만 골로새 교회도 아시아에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본도, 갑바도기아, 비두니아에도 교회가 여러 개 있었을 겁니다. 모두 거듭나지 않은 세상이라는 낯선 땅에 흩어져 나그네로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이었습니다.
그러니까 베드로는 수많은 사람들을 대상으로 편지를 쓰고 있는데, 왜 이렇게 넓은 범위의 독자들을 대상으로 삼았을까요? 로마 대화재의 책임이 그리스도인들에게 돌려진 이후, 로마 제국 전역에서 박해가 시작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박해가 미치는 곳마다 그리스도인들은 고난의 대가를 치러야 했습니다. 그래서 베드로는 그 모든 성도들을 품으려고 합니다. 편지로 이 고난을 어떻게 이겨내야 하는지 가르쳐 줍니다.
성도에게 있어 이 땅과의 관계보다 더 중요한 것은 하늘과의 관계입니다. 그리고 베드로가 무엇보다도 알려주고 싶은 것은, 성도들이 하나님의 택하심을 받았다는 사실입니다. 베드로는 이 엄청난 위로의 진리를 굳게 붙들기를 원했습니다. 박해 가운데서 수많은 의문이 생기고, 심히 흔들릴 수 있는 상황에서, 하나님의 택하심을 받았다는 사실을 분명히 알기를 원했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말합니다. "흩어진 나그네… 택하심을 받은 자들에게 편지하노니."
이제 "나그네"이면서 "택하심을 받은 자들"이라는 표현을 살펴보겠습니다. 앞에서도 말씀드렸듯이 "나그네"는 "외국인", 그러니까 자기 나라가 아닌 곳에 살아가는 사람을 의미합니다. 또 이 단어는 "임시로 거주하는 사람"이나 "이방인"이라는 뜻으로도 사용될 수 있습니다. 어느 쪽이든 이 세상에 잠시 머물러 사는 사람들이고, 이 세상에서는 외국인과 같은 존재입니다. 이들에게는 사람의 손으로 지은 이 땅의 도성이 아니라 하늘에 영원한 도성이 있습니다. 히브리서 기자가 말하는 "위에 있는 시온"으로 부르심을 받을 때까지 이 땅에 잠시 머물러 있는 나그네들이었습니다.
이 나그네들, 곧 교회와 구속받은 자들, 신자들은 하나님이 택하신 자들입니다. 여기서 "택하심을 받은"으로 번역된 헬라어는 ‘에클렉토스(eklektos)’입니다. "불러내다"라는 단어에서 파생된 것으로, "불러냄을 받은 자들"이라는 뜻을 담고 있습니다. 동사에서 파생된 형용사로 사용됐죠. "가려 뽑다", "선택하다"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사실 이렇게 번역해도 좋습니다. "특별히 선택된 나그네들", "특별히 구별하여 뽑은 나그네들." 결국 그리스도인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택하심을 받은 자들이 곧 구원받은 자들입니다.
그런데 이 표현은 옛 이스라엘을 가리키는 말로도 사용되었습니다. 신명기 7장 6절입니다. “너는 여호와 네 하나님의 성민이라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지상 만민 중에서 너를 자기 기업의 백성으로 택하셨나니.”
이 말씀을 잘 이해하셔야 합니다. 하나님은 하늘 보좌에 가만히 앉아서 “어느 나라든지 나를 믿고 나를 선택해 주기를 바란다”라고 하시면서 기다리고 계시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땅의 모든 민족 가운데 내가 너를 택하였다. 이스라엘은 나의 택함을 받은 백성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신명기 7장 6절의 의미입니다. 이어서 신명기 14장 2절도 이렇게 말합니다. “너는 네 하나님 여호와의 성민이라 여호와께서 지상 만민 중에서 너를 택하여 자기 기업의 백성으로 삼으셨느니라.” 하나님은 같은 사실을 다시 한번 반복하여 택하심을 말씀하십니다. 또 시편 105편 43절은 이스라엘을 “그의 백성, 그의 택한 자”로 부릅니다. 시편 135편 4절은 “여호와께서 자기를 위하여 야곱 곧 이스라엘을 자기의 특별한 소유로 택하셨음이로다”라고 합니다. 이처럼 이스라엘은 하나님이 택하신 백성입니다.
이렇게 묻는 분도 계실 겁니다. “택하심이 교회에도 해당됩니까?” 물론입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계획을 바꾸지 않으셨고, 자신의 방법도 바꾸지 않으셨습니다. 구약성경은 “하나님을 찾는 자가 없다”라고 하고,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다”라고 합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뜻에 따라 자기 백성 이스라엘을 택하셨습니다. 그리고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역시 하나님께 택함을 받은 자들입니다.
성경으로 확인해 보겠습니다. 마태복음 24장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택하심을 받은 자들이라는 사실을 분명히 보여주는 말씀입니다. 22절입니다. “그 날들을 감하지 아니하면 모든 육체가 구원을 얻지 못할 것이나 그러나 택하신 자들을 위하여 그 날들을 감하시리라.” 여기 이 "택하신 자들"이 누구입니까? 믿는 자들입니다. 이어지는 24절도 말합니다. “거짓 그리스도들과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나 큰 표적과 기사를 보여 할 수만 있으면 택하신 자들도 미혹하리라.” 택하신 자들, 믿는 자들이죠, 그리스도인을 가리킵니다.
이처럼 "택하심을 받은 자들, 택하신 자들"이라는 표현은 신자들과 그리스도인들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31절입니다. “그가 큰 나팔소리와 함께 천사들을 보내리니 그들이 그의 택하신 자들을 하늘 이 끝에서 저 끝까지 사방에서 모으리라.”
누가복음 18장 7절도 말합니다. “하물며 하나님께서 그 밤낮 부르짖는 택하신 자들의 원한을 풀어 주지 아니하시겠느냐 그들에게 오래 참으시겠느냐.” 또 바울의 위대한 서신인 로마서 8장 33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누가 능히 하나님께서 택하신 자들을 고발하리요 의롭다 하신 이는 하나님이시니.” 그렇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택하신 자들입니다.
골로새서 3장 12절입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하나님이 택하사 거룩하고 사랑 받는 자처럼 긍휼과 자비와 겸손과 온유와 오래 참음을 옷 입고.” 여러분은 하나님께 택하심을 받아 거룩하고 사랑받는 자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어떤 공로나 자격이 있어서가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자유로운 뜻에 따라 우리를 사랑하기로 정하셨습니다. 하나님이 택하신 자들의 모습입니다.
디모데후서 2장 10절에서 바울은 이렇게 말합니다. “그러므로 내가 택함 받은 자들을 위하여 모든 것을 참음은 그들도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원을 영원한 영광과 함께 받게 하려 함이라.” 바울은 택함 받은 자들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해 모든 것을 참는다고 말합니다. 또 디도서를 보십시오. 바울은 첫머리에서 분명하게 말합니다. “하나님의 종이요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인 나 바울이 사도 된 것은 하나님이 택하신 자들의 믿음과 경건함에 속한 진리의 지식과.” 요한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짧은 서신은 교회를 “택하심을 받은 부녀”라고 부릅니다. 요한이서 1장 1절입니다. 그리고 13절에서는 “택하심을 받은 네 자매의 자녀들이 네게 문안하느니라”라고 말합니다. 두 교회 모두 하나님께 택하심을 받은 교회입니다.
그러므로 베드로가 한 “택하심을 받은 자들에게 편지하노니”라는 말의 의미는 바로 믿는 자들입니다. 꼭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택하심을 받은 자”라는 표현은 “그리스도인”, “구원받은 자”, “거듭난 자”와 같은 의미입니다. 이 표현이 우리에게 일깨워 주는 풍성한 진리는 이겁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택하심을 받은 자들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택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를 택하셨습니다.
그리고 저는 베드로가 여기서 말하는 내용이 참 놀랍다고 생각합니다. 베드로는 박해받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너희는 세상이 택한 자들은 아닐지 모르지만, 하나님이 택하신 자들이다.” 이 사실을 붙드시겠습니까? 정말 큰 위로입니다. 참으로 풍성한 진리입니다. 잘 들으십시오. 이 말씀은 박해받는 신자들을 위해 주어졌습니다.
이제 이 내용을 조금 더 자세히 살펴보면서 택하심을 이루는 요소들을 간단히 정리해 보겠습니다. 오늘 어디까지 살펴볼 수 있을지 한번 봅시다.
첫째는 택하심의 본질입니다. 이제부터 한 구절씩 살펴보겠습니다. 참 풍성합니다. 택하심의 본질. 1절은 “택하심을 받은 자들”이라고 합니다. “택하심을 받은 자들”입니다. 2장 9절도 보십시오. 베드로는 이렇게 말합니다.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니.” 여러분은 하나님이 택하신 족속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 놀라운 진리를 붙드시겠습니까? 여러분이 그리스도인인 이유는 하나님이 여러분을 그리스도인이 되도록 택하셨기 때문입니다. 성경이 그렇게 말합니다. 구원받은 자들은 곧 하나님께 택하심을 받은 자들입니다. 앞에서도 말씀드렸듯이 이 단어는 "선택하다", "가려 뽑다", "무리 가운데서 불러내다"라는 뜻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이란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으로 삼기 위해 택하신 자들입니다. 택하심의 본질, 택하심의 본질은 하나님께서 자기에게 속할 백성을 택하셨다는 점입니다. 바로 우리가 그 백성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온 세상 가운데서 택하여 자신의 백성으로 삼으십니다.
사도행전 15장 14절을 보십시오. 아마 맞을 것입니다. 아, 맞네요. “하나님이 처음으로 이방인 중에서 자기 이름을 위할 백성을 취하시려고 그들을 돌보신 것을 시므온이 말하였으니.” 예루살렘 공의회에서 한 말입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자기 백성으로 삼으시기 위해 택하여 불러내십니다.
그런데 혹시 거부하는 마음이 생기지는 않습니까? “잠깐만요. 우리가 하나님께 택하심을 받은 것이라는 말입니까?”라고 하면서 말이에요. 이 진리에 저항하는 마음이 들지 않으시나요? 우리의 타락한 본성이 그렇게 반응합니다. 우리의 구원에 적어도 어느 정도는 우리 자신의 역할이 있었다고 생각을 하죠. 교만한 생각입니다. 또 “참 불공평한 것 아닌가요?”라는 생각을 하기도 합니다. 그것도 결국은 “하나님, 제가 하늘에 가면 하나님의 생각을 바로잡아 드리겠습니다”, 이렇게 말하는 것 같은 교만입니다. 우리는 진정한 공평이 뭔지 모릅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여러분, 결국 믿음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믿음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성경이 어떻게 가르칩니까? 성경이 우리가 하나님께 택하심을 받았다고 가르칩니까, 아니면 그렇지 않다고 가르칩니까? 잠시 성경 공부를 하겠습니다. 성경을 펴시고 마태복음 20장을 보십시오. 준비하십시오. 이제 여러 말씀을 빠르게 살펴보겠습니다. 반드시 이해하셔야 합니다. 여기 비유가 나옵니다.
“천국은 마치 품꾼을 얻어 포도원에 들여보내려고 이른 아침에 나간 집 주인과 같으니 그가 하루 한 데나리온씩 품꾼들과 약속하여 포도원에 들여보내고 또 제삼시에 나가 보니 장터에 놀고 서 있는 사람들이 또 있는지라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도 포도원에 들어가라 내가 너희에게 상당하게 주리라 하니 그들이 가고.” 주인이 품꾼을 뽑았습니다. 일할 사람을 택했습니다. 이 비유 전체를 끝까지 살펴보면, 주인은 자신이 원하는 사람들을 가려 뽑았고 영원한 상으로 영원한 생명을 주었습니다. 이 비유의 핵심이 그겁니다. 아주 간결합니다. 주인이 택했습니다. 자기 일을 하도록 불렀습니다. 섬기도록 내보냈습니다. 그리고 공정하고 신실하고 후하게 보상했습니다. 택하심을 잘 보여줍니다.
요한복음 15장을 보십시오. 요한복음 15장, 기억하십니까?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요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나니 이는 너희로 가서 열매를 맺게 하고 또 너희 열매가 항상 있게 하여 내 이름으로 아버지께 무엇을 구하든지 다 받게 하려 함이라.” 너희가 나를 택한 게 아니라 내가 너희를 택했다고 하십니다.
여러분은 이렇게 말할지도 모릅니다. “잠깐만요. 저도 예수님을 택했어요.” 그러나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아니다, 네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라 내가 너를 택하였다.” 성경이 그렇게 말합니다. 요한복음 17장 9절을 보십시오. 우리 주님께서 아버지께 기도하시면서 그리스도인들에 대해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그리스도의 대제사장적 기도입니다. “내가 그들을 위하여 비옵나니 내가 비옵는 것은 세상을 위함이 아니요 내게 주신 자들을 위함이니이다...” 뭐라고 하셨습니까? “내게 주신 자들”입니다. 아버지께서 우리를 택하셔서 사랑의 선물로 그리스도께 주셨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본래 아버지의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도행전 13장을 보십시오. 매우 흥미롭습니다. 사도행전 13장 48절, 여기에서 바울은 안식일에 수많은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있습니다. 46절부터 보겠습니다. “바울과 바나바가 담대히 말하여 이르되 하나님의 말씀을 마땅히 먼저 너희에게 전할 것이로되 너희가 그것을 버리고 영생을 얻기에 합당하지 않은 자로 자처하기로 우리가 이방인에게로 향하노라 주께서 이같이 우리에게 명하시되 내가 너를 이방의 빛으로 삼아 너로 땅 끝까지 구원하게 하리라 하셨느니라 하니.” 유대인들에게서 이방인들에게로 향합니다. 계속 읽습니다. “이방인들이 듣고 기뻐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찬송하며 영생을 주시기로 작정된 자는 다 믿더라.” 누가 믿었습니까? 하나님께 택하심을 받은 사람들이 믿었습니다. 영생을 주시기로 작정된 사람들이 믿었습니다.
이제 로마서 9장 14절을 보겠습니다. 누구나 제기할 법한 반론이 나옵니다. 하나님은 택하심에 대해 말씀하시면서 “내가 야곱은 사랑하고 에서는 미워하였다”라고 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친히 선택하셨습니다. 그러자 14절은 이렇게 묻습니다.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을 하리요 하나님께 불의가 있느냐…” 바울이 즉시 대답합니다. “그럴 수 없느니라.” 헬라어로는 “메 게노이토(mē genoito)”입니다. 절대로 그럴 수 없습니다. 불의가 아닙니다. 이어서 하나님이 모세에게 하신 말씀을 인용합니다. “내가 긍휼히 여길 자를 긍휼히 여기고 불쌍히 여길 자를 불쌍히 여기리라 하셨으니.” 다시 말해, “나는 내가 뜻하는 바를 그대로 행할 것이다”라는 말씀입니다.
16절을 보십시오. “그런즉 원하는 자로 말미암음도 아니요 달음박질하는 자로 말미암음도 아니요 오직 긍휼히 여기시는 하나님으로 말미암음이니라.” 구원은 사람의 의지에 달려있지 않습니다. 사람의 노력에 달린 것도 아닙니다. 오직 긍휼을 베푸시는 하나님께 달려 있습니다. 하나님의 주권적인 긍휼입니다. 그런데 19절에서 이렇게 반문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어찌하여 허물하시느냐 누가 그 뜻을 대적하느냐.” 이에 대한 바울의 대답입니다. “이 사람아 네가 누구이기에 감히 하나님께 반문하느냐…” 다시 말해, 입을 다물라는 겁니다. 우리의 이해를 넘어서는 문제입니다.
“지음을 받은 물건이 지은 자에게 어찌 나를 이같이 만들었느냐 말하겠느냐 토기장이가 진흙 한 덩이로 하나는 귀히 쓸 그릇을, 하나는 천히 쓸 그릇을 만들 권한이 없느냐 만일 하나님이 그의 진노를 보이시고 그의 능력을 알게 하고자 하사 멸하기로 준비된 진노의 그릇을 오래 참으심으로 관용하시고...”
잘 들으십시오. 하나님은 경건하지 않은 자들에게 자신의 진노와 심판을 나타내실 권리가 있으십니다. 동시에 택하신 자들에게는 자신의 은혜와 사랑과 긍휼을 나타내실 권리도 똑같이 있으십니다. 성경은 매우 분명하게 말합니다. 하나님과 논쟁하려고 하지 마십시오. 자신의 교만과 유한한 지성의 무지를 드러낼 뿐입니다. 여러분이 이 진리를 다 이해할 수 없다면, 믿으십시오. 성경이 그렇게 말하기 때문에 믿으십시오. 성경은 분명하게 말합니다. “원하는 자로 말미암음도 아니요 달음박질하는 자로 말미암음도 아니요 오직 긍휼히 여기시는 하나님으로 말미암음이니라.” 하나님께서는 자신이 긍휼을 베풀기로 뜻하신 자에게 긍휼을 베푸십니다.
로마서 11장 5절을 보십시오. 엘리야 시대에 바알에게 무릎 꿇지 않았던 칠천 명을 언급한 뒤에 바울은 이렇게 말합니다. “그런즉 이와 같이 지금도 은혜로 택하심을 따라 남은 자가 있느니라.” 잘 들으십시오. “은혜로 택하심을 따라”입니다. 하나님의 택하심입니다.
고린도전서 1장 9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너희를 불러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우리 주와 더불어 교제하게 하시는 하나님은 미쁘시도다.” 여러분의 구원은 하나님께서 직접 이루신 역사입니다. 하나님이 여러분을 그의 아들과의 교제로 부르셨습니다. 에베소서 1장 3절을 보십시오. “찬송하리로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을 우리에게 주시되.” 그리고 4절입니다. 잘 들으십시오.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언제 우리를 택하셨습니까? 우리가 태어나기 전입니다. 아니, 그 누구도 태어나기 전입니다. 세상이 존재하기도 전에 이미 우리는 하나님께 택하심을 받았습니다.
여러분은 이 사실을 받아들일 수 있으세요? 영원 전부터 우리는 하나님께 택하심을 받은 자들입니다. 이 진리를 붙드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언제부터 계셨습니까?” 영원 전부터 계셨습니다. 영원 전부터 계셨습니다. 여러분, 아시겠습니까? 여러분은 영원 전부터 하나님께 택하심을 받았습니다. 영원 전 하나님이 존재하신 그때부터, 하나님의 마음속에 택하심을 받은 백성이 있었습니다. 참으로 놀랍지 않습니까? 우리는 하나님이 택하신 자들입니다.
5절부터 6절입니다.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이는 그가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우리에게 거저 주시는 바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송하게 하려는 것이라.” 우리의 뜻에 따른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택하셨습니다. 우리는 영원 전에 하나님께 택함을 받았습니다. 하나님이 존재하신 때부터 저 존 맥아더는 하나님의 계획 가운데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마음속에 제가 있었습니다. 하나님께 속했다면 여러분도 마찬가지입니다. 여러분 역시 하나님의 마음속에 있었습니다. 이루 말할 수 없이 가슴 벅찬 진리입니다.
데살로니가전서 1장 4절을 보십시오.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회를 생각할 때 크게 기뻤습니다. 그래서 2절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가 너희 모두로 말미암아 항상 하나님께 감사하며 기도할 때에 너희를 기억함은.” 빌립보 교회와 마찬가지로 데살로니가 교회도 바울이 사랑하는 교회였습니다. 바울이 오래 함께 있지는 못했지만, 세 번의 안식일, 그러니까 약 3주밖에 머물지 못했지만, 그러나 깊이 사랑했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말합니다. “너희의 믿음의 역사와 사랑의 수고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소망의 인내를 우리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끊임없이 기억함이니 하나님의 사랑하심을 받은 형제들아 너희를 택하심을 아노라.” 하나님이 너희를 택하셨다. 너희의 삶을 보면 분명히 드러난다. 하나님이 너희를 택하셨다.
데살로니가후서 2장 13절입니다. 잘 들으십시오. “주께서 사랑하시는 형제들아 우리가 항상 너희에 관하여 마땅히 하나님께 감사할 것은...” 바울은 “우리는 너희에게 감사한다”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 감사한다고 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하나님이 처음부터 너희를 택하사 성령의 거룩하게 하심과 진리를 믿음으로 구원을 받게 하심이니.” 하나님이 무엇을 하셨다고 합니까? “처음부터 너희를 택하사…” “처음부터”라고 합니다. “처음이 언제입니까?” 저도 모릅니다. 그 ‘처음’이 정확히 언제인지는 모릅니다. 그러나 성경은 분명하게 말합니다. “처음부터 너희를 택하사 구원을 받게 하심이니.” 어떻게 이보다 더 분명하게 말할 수가 있습니까? 이 말씀을 읽고도 어떻게 그 의미를 모를 수가 있습니까?
디모데후서 1장 9절도 보십시오. 압도적인 말씀입니다. 8절 끝에서 하나님을 말한 뒤 이어서 이렇게 말합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사 거룩하신 소명으로 부르심은 우리의 행위대로 하심이 아니요 오직 자기의 뜻과 영원 전부터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주신 은혜대로 하심이라.” 이제 ‘처음부터’가 무슨 의미인지 조금 더 보겠습니다. “영원 전부터”입니다. 하나님은 영원 전부터 우리를 택하심을 받은 자들로 아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존재하신 그 영원전부터 우리를 구원하시기로 작정하셨습니다. 이 모든 것은 하나님의 계획과 하나님의 목적과 하나님의 은혜에 따른 것이지, 우리에게서 나온 게 아닙니다. 참으로 놀라운 진리입니다. 정말 놀랍습니다.
디모데후서 2장 10절도 보십시오. 바울은 이렇게 말합니다. “그러므로 내가 택함 받은 자들을 위하여 모든 것을 참음은 그들도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원을 영원한 영광과 함께 받게 하려 함이라.” 바울은 말합니다. “내 사역은 하나님께 택함을 받은 자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이다. 하나님이 택하신 자들에게 이르는 것이다.”
요한계시록 13장을 보십시오. 요한계시록 13장 8절입니다. 잘 들으십시오. 여기에는 장차 환난 때에 나타날 짐승, 적그리스도에 대한 말씀이 나옵니다. “죽임을 당한 어린 양의 생명책에 창세 이후로 이름이 기록되지 못하고 이 땅에 사는 자들은 다 그 짐승에게 경배하리라.” 온 세상이 그 짐승을 경배하게 될 겁니다. 모든 사람이 경배할 겁니다. 그러나 예외가 있습니다. 창세 이후로 죽임을 당한 어린 양의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된 사람들은 경배하지 않을 겁니다.
여러분의 이름은 언제 생명책에 기록되었습니까? 창세 이후입니다. 정확히 언제입니까? 저는 모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존재하신 영원 전부터 하나님은 저를 마음에 두셨습니다. 하나님이 존재하신 그 순간부터 하나님은 그리스도인인 우리를 마음에 두셨습니다. 우리를 사랑하시기로 미리 정하시고, 우리를 그의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시기로 작정하셨습니다. 세상이 시작되기 전에 우리의 이름을 생명책에 기록하셨습니다.
요한계시록 17장 8절도 보십시오. 여기서도 짐승이 사람들의 경배와 숭배를 받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합니다. “땅에 사는 자들로서 창세 이후로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들은 그 짐승을 보고 놀랍게 여기리라.” 다시 한번 성경은 간접적인 표현으로 같은 진리를 가르칩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창세 이후로, 곧 세상의 시작부터 하나님이 생명책에 그 이름을 기록해 두신 사람들입니다.
누군가 여러분에게 “당신의 종교는 무엇입니까?”라고 묻는다면, 이렇게 대답할 수 있습니다. “저는 하나님께 택하심을 받았습니다.” 그러면 또 이렇게 묻겠지요. “누구에게 택함을 받았다고요?” 하나님이십니다. “언제 택함을 받았습니까?” 영원 전입니다. 하나님께서 영원 전부터 저를 택하시고 사랑하셨습니다. “아니 당신을 왜 택하셨습니까?” 분명한 것은 저에게는 아무 원인이 없습니다. 저는 그저 이 세상에 태어났을 뿐인데, 이미 하나님께 택함을 받았습니다. “그러면 선행을 해서 그 자격을 얻나요?”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결정하셨을 때에 아직 저는 존재하지도 않았습니다.
요한계시록 17장 14절을 보십시오. “그들이 어린 양과 더불어 싸우려니와...” 여기서 “그들”은 적그리스도의 무리를 가리킵니다. “어린 양은 만주의 주시요 만왕의 왕이시므로 그들을 이기실 터이요 또 그와 함께 있는 자들 곧 부르심을 받고 택하심을 받은 진실한 자들도 이기리로다.” 우리는 하나님께 택함을 받은 자들입니다.
마지막으로 한 구절만 더 보겠습니다. 요한계시록 20장입니다. 참으로 놀라운 말씀입니다. 마지막 심판, 크고 흰 보좌 심판에 관한 말씀입니다. “누구든지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는 불못에 던져지더라.” 사람들의 이름은 언제 생명책에 기록되었습니까? 세상의 기초가 놓이기 전입니다. 하나님께 택하심을 받은 자들입니다. 지금까지 살펴본 것은 성경이 택하심에 대해 말하는 내용의 일부에 불과합니다.
우리는 이 진리에 쉽게 저항합니다. 우리 안에는 이것을 받아들이기 어려워하는 뭔가가 있습니다. 누가복음 4장입니다. 여러분에게 위로가 될 겁니다. 여러분만 그런 게 아닙니다. 누가복음 4장입니다. 매우 흥미로운 장면이 나옵니다. 예수님은 나사렛 회당에서 있었던 이 놀라운 사건에서 선지자 이사야의 두루마리를 펴셨습니다. 회당에서 일어나 두루마리를 펴시고 읽으셨습니다. 18절입니다. 예수님은 이사야 61장의 예언을 읽으시면서 그 예언이 바로 자신을 통해 이루어지고 있다고 선포하셨습니다.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눈 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롭게 하고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 하였더라 책을 덮어 그 맡은 자에게 주시고 앉으시니 회당에 있는 자들이 다 주목하여 보더라 이에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시되 이 글이 오늘 너희 귀에 응하였느니라 하시니 그들이 다 그를 증언하고 그 입으로 나오는 바 은혜로운 말을 놀랍게 여겨 이르되 이 사람이 요셉의 아들이 아니냐.”
여기까지는 분위기가 좋았습니다. 모든 것이 순조롭게 흘러가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런데 이어지는 말씀을 보십시오. 25절입니다. “내가 참으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엘리야 시대에 하늘이 삼 년 육 개월간 닫히어 온 땅에 큰 흉년이 들었을 때에 이스라엘에 많은 과부가 있었으되 엘리야가 그 중 한 사람에게도 보내심을 받지 않고 오직 시돈 땅에 있는 사렙다의 한 과부에게 뿐이었으며 또 선지자 엘리사 때에 이스라엘에 많은 나병환자가 있었으되 그 중의 한 사람도 깨끗함을 얻지 못하고 오직 수리아 사람 나아만뿐이었느니라.”
예수님이 무엇을 말씀하고 계신지 아세요? 하나님의 주권적인 은혜를 말씀하고 계십니다. 이스라엘에도 과부와 나병 환자가 많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스라엘 중에서 택하지 않으시고 사르밧의 과부를, 나아만이라는 나병 환자를 택하셨습니다. 더구나 유대인도 아니라 수리아 사람입니다. 성경은 이렇게 말합니다. “회당에 있는 자들이 이것을 듣고 다 크게 화가 나서 일어나 동네 밖으로 쫓아내어 그 동네가 건설된 산 낭떠러지까지 끌고 가서 밀쳐 떨어뜨리고자 하되.”
한 가지 말씀드립니다. 이스라엘의 종교 지도자들은 선택 교리를 싫어했습니다. 특히 그 교리가 자신들이 하나님께 택하심을 받지 못한 자들로 드러날 때 더욱 그랬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진리는 논쟁거리가 아닙니다. 이 말씀은 진리입니다. 진리는 논쟁거리가 아닙니다. 그들은 이 말씀을 듣고 싶어하지 않았습니다. 오늘날에도 많은 사람들이 이 말씀을 듣고 싶어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진리입니다. 요한계시록 19장 6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주 우리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가 통치하시도다.” 하늘에 계신 하나님께서는 모든 피조물을 다스리시며 주관하시는 분이십니다.
성경은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께서 하늘의 군대를 다스리시고, 아무도 그의 손을 막을 수 없고 아무도 하나님께 “도대체 뭘 하십니까?”라고 말할 수 없다고 가르칩니다. 하나님은 자신이 세우신 계획을 따라 모든 것을 이루시는 전능하신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모든 목적을 이루시고 자신의 모든 약속을 반드시 성취하십니다. 하나님은 하늘의 토기장이이십니다. 타락한 인류라는 한 덩이의 진흙을 자신의 뜻대로 빚으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의 영원한 운명을 결정하시는 분이십니다. 또 각 사람의 삶에서 일어나는 모든 세부적인 일까지 주관하시는 분이십니다. 결국 한마디로 말하자면 하나님은 하나님 그분 자신이십니다.
다시 한번 아서 핑크(Arthur Pink)의 말을 들어 보십시오. “택하심의 교리를 믿는 유일한 이유는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이다. 그 어떤 사람이나 그 어떤 집단도 이 교리를 만들어 낸 적이 없다. 영원한 형벌의 교리와 마찬가지로, 선택의 교리는 육신에 속한 사람의 생각과 충돌하며 거듭나지 않은 마음의 감정에 거슬린다. 또한 삼위일체의 교리와 우리 구주의 기적적인 탄생의 교리와 마찬가지로, 택하심이라는 진리는 단순하고 의심 없는 믿음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택하심의 본질입니다. 하나님께서 주권적으로 구원하기로 택하십니다. 받아들이기 어려우세요?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저 역시 이 문제 앞에서 씨름합니다. 그러나 저는 성경이 그렇게 가르치기 때문에 온 마음을 다해 믿습니다. 한편으로는 이 진리 안에 참으로 가슴 벅찬 감격이 있지 않습니까? 이 사실을 생각하면 참으로 놀랍고 감격스럽습니다. 동시에 이 진리만큼 우리를 철저히 낮추는 것도 없습니다. 참으로 우리를 겸손하게 만듭니다. 우리의 모든 교만을 완전히 무너뜨립니다. 우리가 도대체 무엇을 자랑할 수 있겠습니까?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러면 누군가는 이렇게 묻죠. “그렇다면 하나님께 택하심을 받지 못한 사람들은 어떻게 됩니까?” 성경은 그들이 믿지 않았기 때문에 지옥에 간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그들의 불신앙에 대해서 책임지지 않으십니다. “도대체 이해가 안 됩니다”라고 말하실지도 모르겠어요. 맞습니다. 저도 다 이해하지 못하겠습니다. 그러나 저는 저를 구원하신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이 성경에 무엇이라고 말씀하셨는지를 압니다. 하나님은 “너희가 나를 믿지 않았기 때문에 정죄를 받는다”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면 또 묻죠. “이 두 가지를 어떻게 조화시킬 수 있습니까?” 저는 다 설명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완전한 공의 가운데 조화를 이루십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선택 교리를 주신 이유는 두 가지를 가르쳐 주시기 위해서입니다. 첫째,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주권적으로 다스리신다. 둘째, 우리처럼 결코 그 은혜를 받을 자격이 없었던 사람들에게 하나님께서 얼마나 크신 은혜를 베푸셨는지를 깨닫게 하셔서, 영원토록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이름을 찬양하게 하신다. 선택 교리는 우리를 혼란스럽게 하려고 주신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교만을 철저히 무너뜨리고, 하나님을 찬양하게 하기 위해 주어졌습니다. 다음 주일에 이 주제를 조금 더 자세히 살펴보겠습니다. 오늘은 다섯 가지 가운데 첫 번째만 살펴봤습니다. 존 지머(John Zimmer)는 제가 하나도 다 끝내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말이에요. 끝냈습니다. 함께 기도하겠습니다.
주님, 이 주제에 대해서는 아직도 할 말이 너무 많습니다. 우리는 이제 겨우 그 표면만 살펴봤습니다. 그러나 주님, 비록 이 말씀이 담고 있는 모든 의미를 우리의 머리로 완전히 이해하지는 못한다 해도, 주님의 말씀이 무엇을 가르쳐 주시는지 조금씩 깨닫기 시작했습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살아가게 하옵소서. 언제나 한결같으시며, 완전하게 공의로우시고, 완전하게 의로우시고, 조금의 모순도 없으신 주님을 믿게 하옵소서.
우리가 구원을 받은 것은 하나님께서 하나님이신 영원 전부터 우리를 마음에 두시고 택하셨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그 구원에 아무것도 보탠 것이 없습니다. 믿음조차도 주께서 우리 안에 일으켜 주셨고, 회개마저도 주께서 우리에게 허락하셨습니다. 또 성령님이 우리 안에 순종을 이루어 주셨습니다. 그리고 주님, 우리는 또한 주님을 알지 못한 채 영원으로 나아가는 사람들은 자기 자신의 불신앙에 대해 스스로 책임을 진다는 것도 성경을 통해 알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구원받지 못한 사람들에게 믿으라고 간절히 권면하고, 우리를 택하여 주신 주님을 찬양하고, 그 모든 문제의 해결은 주님의 손에 맡겨 드립니다.
하나님, 우리를 택하여 주셔서 감사합니다. 어찌하여 우리를 택하셨나이까? 그 은혜에 참으로 감사드립니다. 이 감사가 주님을 사랑하며 감사함으로 헌신하는 삶으로 나타나게 하옵소서. 그리고 우리를 택하여 주신 그 은혜를 영원토록, 끝없이, 아무 방해도 없이 주님의 임재 앞에서 찬양할 그날을 간절히 기다립니다.
아직 믿지 않는 사람들을 위해 기도합니다. 하나님, 그들이 주님을 등지지 않게 하옵소서. 예수님은 “내게 오는 자는 내가 결코 내쫓지 아니하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또 구원받은 우리는 선택 교리를 통해 큰 위로를 얻게 하시고, 아직 구원받지 못한 사람들은 이 교리 때문에 걸려 넘어지지 않게 하옵소서. 오히려 예수님의 초청의 말씀을 듣게 하옵소서.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우리는 이제 막 이 교리를 공부하기 시작했습니다. 우리의 유한한 지성이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해 이 진리를 이해하기를 원합니다. 우리와 함께하여 주옵소서. 우리를 도우셔서 주님의 주권적인 은혜를 온전히 찬양하게 하옵소서.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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