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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함께 누가복음 20장을 연구하며 살펴보고 있습니다. 오늘 아침에는 이 풍성한 누가복음 20장의 결론 부분을 보겠습니다.

아마 어떤 장을 살펴보고 있는지보다 더 중요한 것은 시간일 겁니다. 지금은 주님 생애의 마지막 주간 수요일의 늦은 오후입니다. 금요일에는 십자가에 못 박히실 것이고 일요일 아침에는 부활하실 것입니다. 자, 지금은 수요일입니다.

예수님이 수많은 백성들의 “호산나” 하는 환호를 받으시며 예루살렘에 입성하신 날은 월요일이었을 가능성이 가장 높습니다. 지금은 수요일입니다. 예수님은 하루 종일 성전 안팎에서 많은 백성들을 가르치셨고 종교 지도자들과 충돌하셨습니다. 이 수요일에 종교 지도자들은 공개적으로 예수님의 신뢰성을 떨어뜨리기 위해서 자신들이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했습니다. 바리새인, 헤롯당원, 사두개인이 번갈아가면서 그렇게 했습니다.

하지만 이들 모두는 처참하게 실패했습니다. 모두가 굴욕을 당했습니다. 우리 주님의 지혜롭고 명료하며 능력 있는 답변에 모두가 완패했습니다. 40절입니다. “그들은 아무 것도 감히 더 물을 수 없음이더라.” 이번에는 예수님이 질문을 하실 차례입니다. 41절부터입니다.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사람들이 어찌하여 그리스도를 다윗의 자손이라 하느냐 시편에 다윗이 친히 말하였으되 주께서 내 주께 이르시되 내가 네 원수를 네 발등상으로 삼을 때까지 내 우편에 앉았으라 하셨도다 하였느니라 그런즉 다윗이 그리스도를 주라 칭하였으니 어찌 그의 자손이 되겠느냐 하시니라.”

오늘 본문에 제목을 붙인다면 “다윗의 자손이자 다윗의 주"라고 할 수 있을 겁니다. 제목 자체가 경이롭습니다. 중동에서는 그 어떤 경우에도 아버지가 아들을 “주님"이라고 부르지 않습니다. 주님이라는 호칭은 주인에게 영광을 돌리고 존경을 표할 때 사용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다윗의 자손이자 다윗의 주님이십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본성, 즉 신성과 인성은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이후로부터 지금까지 계속되는 논란의 대상입니다. 인류 역사 내내 이 논란은 계속될 겁니다. 한마디로 이렇게 요약할 수 있습니다. 과연 예수님은 하나님이셨는가? 하나님이신가? 아니면 단지 인간일 뿐이었는가?

세상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내린 결론은, 예수님은 살았다가 죽은 인간이었다는 겁니다. 고귀하고 통찰력 있고 지혜롭고 헌신적이고 종교적이고 자비롭고 희생적이고 선의를 베푸신 분이라는 둥 적절하다 싶은 형용사를 모조리 다 갖다 붙이지만 어쨌든 인간이었다는 겁니다. 물론 이 견해는 사탄의 의도에 부합합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이 인간에 불과하다면 하나님도 아니시고 구세주도 아니시고 성경도 거짓되고 기독교도 거짓 종교가 되고 말기 때문입니다. 반면에 예수님이 하나님이시라면 예수님은 최고의 주권자이시고 성경도 참되고 기독교도 참됩니다. 이것은 매우 중요한 문제입니다.

한번은 우편으로 광고물을 받았는데 이런 내용이 적혀 있었습니다. “일요일 저녁 7시에 그리스도아델피안 교도들이 여는 '예수는 하나님이 아니다' 성경공부에 초대합니다.” 그리스도아델피안 교도들이 ‘예수는 하나님이 아니다’란 주제의 성경공부를 한다니요? 헬라어의 ‘그리스도아델피안’은 ‘그리스도를 사랑하는 자들’이라는 뜻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이심을 부인하는 자들은 이런 이상하고 기괴한 그리스도아델피안 교도들만이 아닙니다. 유대교, 이슬람교, 힌두교, 불교, 몰몬교, 여호와의 증인, 크리스찬 사이언스교, 사이언톨로지 교도들도 다 마찬가지입니다. 이 밖에도 더 많습니다. 기독교를 거부하고 기독교가 참된 종교라는 것을 부정하려면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을 거부해야 합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이시면 안 됩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이시라면 기독교는 참된 종교가 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거짓 종교들은 언제나 그리스도의 본성, (그 중에서도 신성)을 표적으로 삼습니다. 자칭 그리스도인이라고 하는 배교자들의 주장에는 오류가 많습니다. 이것 외에도 오직 은혜와 믿음으로 얻는 구원에 대해서 잘못된 주장을 하죠. 하지만 기독교는 예수님이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을 믿는 종교입니다. 예수님의 본성을 하나님에 미치지 못하는 그 이하의 것으로 규정하는 순간, 기독교는 기독교가 아닌 다른 종교가 됩니다.

앞서 말씀드린 배교자들이란, 자칭 그리스도인이라고 하면서도 예수님이 하나님이심을 부인하는 자들입니다. '자유주의 그리스도인'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겁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하나님이신 것을 부인한다면 그것은 기독교가 아닙니다. 유대인들은 지금도, 예수님 당시에도 예수님을 하나님으로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을 성육신하신 하나님으로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이 삼위일체의 제2위격이신 성자 하나님이심을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사실 유대인들은 메시아가 하나님일 거라고 믿지 않았습니다. 메시아는 선택받은 한 훌륭한 인간일 뿐이지 그 이상의 존재는 아닐 거라고 믿었습니다. 뛰어난 인간, 강력한 인간, 영향력 있는 인간, 도달 가능한 최고의 경지에 이른 인간, 세상의 그 누구보다도 더 위대한 일을 성취할 수 있도록 인류의 모범이 될만한 모든 것을 하나님께 부여받은 인간일 거라고 생각했지만, 인간 이상의 존재일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유대인에게 메시아는 인간이어야 했습니다. 이 세상에 오셔서 이스라엘의 통치자가 되시고, 하나님의 왕국을 다시 세우시고, 이스라엘의 모든 대적들을 굴복시키시고, 예루살렘에서 온 나라와 민족을 다스리시며, 아브라함으로부터 다윗에게 이르기까지 하나님이 하신 모든 약속을 성취하는 인간이셔야만 했습니다. 유대인들은 메시아를 하나님, 하나님의 아들, 또는 죄인들의 구세주로는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오직 인간으로만 생각했습니다.

백성들이 예수님을 한 인간일 뿐이라고 믿을 수밖에 없었던 것은, 지도자들이 그렇게 가르쳤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자신이 하나님이라고 말씀하시자 그들은 즉시 예수님을 신성모독자로 몰았습니다. 유대인들의 종교 체계 안에서 가장 극악무도하게 여기는 죄를 지었다고 생각한 거죠. 스스로를 하나님이라고 하는 주장은 미친 짓이나 다름이 없었습니다.

게다가 예수님은 종교 지도자들을 모든 면에서 맹렬하게 공격하셨습니다. 신학, 권력, 영향력, 지위, 거짓된 의, 심지어는 성전 운영 방식에 대해서도 말이죠. 이러한 공격은 예수님이 공생애를 시작하시는 순간부터 사역 내내 계속되었으며, 심지어 마지막 주간이 끝날 무렵에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예수님은 성전을 깨끗하게 하시고, 지도자들의 부패와 위선을 폭로하심으로써 예수님을 제거하려는 그들의 격렬한 욕구를 더욱 불타오르게 하셨습니다.

유대인들은 메시아를 인간일 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닐 거라고 믿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이 자신을 하나님이라고 주장하신 것, 그 권세를 나타내신 것, 성전을 깨끗하게 하신 것, 유대인들의 신학과 자기 의와 종교를 정죄하신 것은 죽여 마땅한 죄였습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온갖 수단을 동원해서 예수님께 맞섰지만 실패로 끝났습니다. 결국 40절에 나오는 것처럼 마침내 유대인들이 침묵하고 맙니다.

이제 예수님 차례입니다. 예수님이 이스라엘의 종교 지도자들, 영향력 있는 자들을 끌어들이신 마지막 논쟁입니다. 말하자면 예수님과의 마지막 대화입니다. 어떤 내용이었을까요? 마지막 대화니까 아마 가장 중요한 점을 다루시지 않았을까요? 네, 실제로 예수님은 가장 중요한 질문을 하셨습니다. 이렇게 질문하십니다. 41절입니다.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사람들이 어찌하여 그리스도를 다윗의 자손이라 하느냐.” 참으로 통찰력 있는 질문입니다. 이 질문은 핵심을 찌르는 예리하고 도발적이면서도 통찰력 있는 질문입니다. 왜 너희는 메시아를 다윗의 자손이라고 하느냐?

예수님의 이 질문에 대한 설명이 마태복음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마가복음에도 있습니다. 공관복음에서 흔히 볼 수 있듯이 마태와 마가는 이 질문을 더 자세히 설명합니다. 도움이 될 만한 몇 가지가 마태복음과 마가복음에 있습니다. 첫번째는 예수님이 이 질문을 왜 하시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지도자들이 예수님을 완전히 거부하고 있다는 것을 예수님도 이미 잘 아시지 않겠습니까? 그런데도 자신이 누구인지를 다시 밝히시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과연 이 질문의 의도는 무엇일까요?

지도자들은 이미 적개심과 증오와 악의에 가득 차서 확고하고 단호한 상태입니다. 예수님이 죽기를 원하고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간절히 원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왜 예수님은 자신이 누구인가라는 문제를 다시 끄집어 내신 걸까요? 그 대답이 마가복음 12장 34절에 나옵니다. 예수님이 이 무리들 중에도 하나님 나라에서 멀지 않은 이들이 있다는 것을 알고 계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나라에서 멀지 않은 사람들이 그 자리에 있었습니다. 예를 들면 아리마대 출신 요셉입니다. 이 요셉은 주님을 위해 무덤을 내놓은 사람입니다. 나중에 자세히 살펴보겠습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의 이 질문은 복음을 전하시려는 마지막 노력입니다. 지도자들이 드러낸 모든 증오심, 결국에는 이에 휘둘리고 만 백성들의 우유부단하고 피상적인 관심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은 여전히 자비로운 복음 전도자로서의 역할을 수행하고 계십니다. 지옥을 향해 가고 있는 죄인들에게 예수님 자신이 진정 누구인지를 알게 하고, 지도자들이 노골적인 거부를 끝내고 백성들이 우유부단함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마지막 대화로 끌어들이고 계신 겁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은 지도자들을 강하게 꾸짖으셨습니다. 그들의 부패와 거짓을 공개적으로 책망하셔서 수치스럽게 하셨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하나님이시기에, 한 번 더 죄인들에게 진리를 전하시면서 이들을 향한 관심을 드러내십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신 예수님은 죄인들의 죽음을 기뻐하시지 않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죄인들이 구원받을 때 기뻐하시고 멸망할 때 슬퍼하십니다.

19장 41절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이틀 전 월요일에 예수님이 개선장군처럼 예루살렘에 들어가셨을 때, 예수님은 예루살렘을 보며 우셨습니다. 예수님은 눈물을 흘리는 구세주이십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은 여기서 자신이 누구인지를 알 수 있도록 죄인들을 한번 더 부르시고 계신 겁니다. 여러분, 이렇게 한번 더 부르는 것이야말로 구원에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입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이심을 믿지 않는 사람은 아무도 천국에 갈 수 없습니다. 그 누구도 가지 못합니다.

성경은 명백하고 틀림없고 확실하게 증거합니다. 요한복음 5장 37절입니다. “또한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친히 나를 위하여 증언하셨느니라 너희는 아무 때에도 그 음성을 듣지 못하였고 그 형상을 보지 못하였으며 그 말씀이 너희 속에 거하지 아니하니 이는 그가 보내신 이를 믿지 아니함이라.” 여러분이 만약 그리스도에 관한 진리를 믿지 않는다면 하나님과 아무 관계가 없습니다.

사도 바울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만일 누구든지 주 예수 그리스도를 사랑하지 아니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 요한일서 2장 22절에는 이렇게 쓰여 있습니다. “거짓말하는 자가 누구냐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부인하는 자가 아니냐 아버지와 아들을 부인하는 그가 적그리스도니 아들을 부인하는 자에게는 또한 아버지가 없으되 아들을 시인하는 자에게는 아버지도 있느니라.” 여러분이 하나님의 아들에 관한 진리를 고백하지 않는 한 하나님 아버지와 아무 관계가 없습니다.

그러니까 주 예수님이 다시 한번 하나님으로서의 신성을 확증하시고 선언하시는데, 심지어 예수님을 경멸하는 자들 앞에서 그렇게 하신 겁니다. 잠시 15장으로 가 보겠습니다. 탕자 이야기로 알려진 정말 다채롭고 풍성한 이야기, 두 아들과 놀라운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는 15장으로 거슬러 올라갑시다. 아시겠지만 탕자가 돌아왔습니다. 아버지가 탕자를 끌어안고 화해하고 입맞추고 손가락에 반지를 끼워주고 좋은 옷을 입히고 발에 신을 신기고 잔치를 열었습니다. 잔치 도중에 형이 나타났습니다. 25절입니다. “맏아들은 밭에 있다가 돌아와 집에 가까이 왔을 때에 풍악과 춤추는 소리를 듣고 한 종을 불러 이 무슨 일인가 물은대 대답하되 당신의 동생이 돌아왔으매 당신의 아버지가 건강한 그를 다시 맞아들이게 됨으로 인하여 살진 송아지를 잡았나이다 하니 그가 노하여 들어가고자 하지 아니하거늘 아버지가 나와서 권한대.”

이 형은 누구를 대표합니까? 바리새인들, 서기관들, 율법선생들, 종교 지도자들입니다. 탕자는 쫓겨난 자들, 세리들, 창녀들, 비천한 자들, 죄인들을 대표합니다. 이들이 하나님께로 나오고 있습니다. 그리스도께 나와 사랑받으며 용서받고 주님의 품에 안기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모습에 자기 의로 가득한 율법주의자 바리새인들은 탕자의 형처럼 분노했습니다. 아버지의 반응은 어땠습니까?

아버지는 형을 달래기 시작했습니다. 29절부터 보겠습니다. “아버지께 대답하여 이르되 내가 여러 해 아버지를 섬겨 명을 어김이 없거늘 내게는 염소 새끼라도 주어 나와 내 벗으로 즐기게 하신 일이 없더니 아버지의 살림을 창녀들과 함께 삼켜 버린 이 아들이 돌아오매 이를 위하여 살진 송아지를 잡으셨나이다 아버지가 이르되 얘 너는 항상 나와 함께 있으니 내 것이 다 네 것이로되 이 네 동생은 죽었다가 살아났으며 내가 잃었다가 얻었기로 우리가 즐거워하고 기뻐하는 것이 마땅하다 하니라.”

다시 누가복음 20장으로 돌아와 보면, 예수님은 탕자의 형이 대표하는 바리새인들, 서기관들, 종교 지도자들과 대면하고 계십니다. 이들은 계속해서 예수님이 죄인들과 탕자들을 받아주신다고 불평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예수님은 다시 한 번 이들을 초대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정말 누구이신지를 생각해 볼 수 있도록, 그리하여 회개하는 위선자에게 기꺼이 베풀어 주실 복을 그들도 받을 수 있도록 말입니다.

그러니까 주님은 이들에게 꼭 필요한 질문을 하고 계신 겁니다. 잠시 마태복음 22장 41절을 보겠습니다. 대화가 어떻게 시작되었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마태복음, 마가복음, 누가복음에 동일한 사건이 서로 상호보완적으로 기록되어 있다고 말씀드린 것 기억하시죠? 마태복음 22장 41절입니다. 예수님이 먼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바리새인들이 모였을 때에 예수께서 그들에게 물으시되 너희는 그리스도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하느냐 누구의 자손이냐 대답하되 다윗의 자손이니이다.” 문자 그대로 '다윗의 자손’입니다. 예수님은 바로 이 말을 듣고자 하셨습니다. 말하자면 이런 겁니다. “그리스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 메시아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느냐? 메시아의 본성에 대해, 본질에 대해 이야기해 보자. 메시아는 누구의 자손이냐? 메시아가 지닌 본성이 무엇이냐?” 이렇게 물으시자 유대인들은 즉시 관습적으로 이렇게 대답합니다. “다윗의 자손이니이다.”

이제 누가복음으로 돌아오겠습니다.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사람들이 어찌하여 그리스도를 다윗의 자손이라 하느냐.” 어떻게 그런 결론을 내릴 수가 있느냐? 예수님은 이들의 관습적인 대답에 의문을 제기하십니다. 이 대답이 유대인들의 일반적인 답변이기 때문입니다. 유대인들은 메시아가 인간일 거라고 믿었습니다. 인간 중에서도 가장 선하고 가장 고귀하고 가장 재능 있고 가장 축복받은 인간으로서 다윗의 자손일 거라고 믿었습니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기독교는 예수 그리스도의 본성을 어떻게 생각하느냐에서 출발합니다. 만일 예수님이 인간에 불과하다면 성경은 거짓말을 하는 것이고 예수님은 하나님이 아닌 것입니다. 그렇다면 기독교 따위는 잊어버려도 됩니다. 유대인들은 메시아가 인간일 거라고 확신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이 대목에서 가장 직접적이고 적절하면서도 핵심적인 질문을 하신 겁니다. 참으로 통찰력 있는 질문이 아닐 수 없습니다. 달리 말하자면 ‘분별하게 하는 질문’이라고도 할 수 있겠습니다. 영적으로 어떤 상태인지를 정확하게 분별하게 해 주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들의 대답은 충분하지 못했습니다. 마태복음 22장에 나오는 대로 그들의 대답은 “다윗의 자손”이었습니다. 맞나요? 그렇습니다. 사무엘하 7장 12절부터 14절은 분명하게 메시아가 다윗의 자손일 거라고 예언합니다. 시편 89편에도 다섯 번 혹은 여섯 번 이상 그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메시아는 다윗의 허리에서 나올 것입니다. 아모스 9장 11절, 미가 5장 2절에도 그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메시아는 다윗의 혈통에서 나올 것입니다.

예수님 당시에 유대인들은 일반적으로 그렇게 믿었습니다. 구약성경에 메시아가 다윗의 자손일 거라고 분명히 명시되어 있기 때문에 모두가 그렇게 믿고 있었습니다. 예를 들면 마태복음 9장 27절입니다. “예수께서 거기에서 떠나가실새 두 맹인이 따라오며 소리 질러 이르되 다윗의 자손이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더니.” 이처럼 당시 모든 백성들은 메시아가 다윗의 자손일 것을 알고 있었고, 실제로 예수님은 다윗의 자손이셨습니다. 예수님은 다윗의 혈통이셨고, 백성들 역시 메시아가 다윗의 자손이라는 것뿐만 아니라 예수님이 다윗의 자손이란 것도 알고 있었습니다.

이것은 마태복음 12장 23절을 봐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귀신 들려 눈 멀고 말 못하는 사람을 고치신 후입니다. “무리가 다 놀라 이르되 이는 다윗의 자손이 아니냐 하니.” 이는 유대인들이 메시아가 다윗의 자손일 것이라고 생각했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보여줍니다.

마태복음 15장 22절입니다. “가나안 여자 하나가 그 지경에서 나와서 소리 질러 이르되 주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내 딸이 흉악하게 귀신 들렸나이다 하되.” 마태복음 20장 30절입니다. 여리고에서 떠나실 때에 큰 무리가 예수님을 따르고 있는 중이었습니다. “맹인 두 사람이 길 가에 앉았다가 예수께서 지나가신다 함을 듣고 소리 질러 이르되 주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다윗의 자손이여 하니.” 예수님이 예루살렘으로 들어가실 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 마태복음 21장 9절입니다. 이렇게 모두가 예수님이 다윗의 자손임을 알고 있었습니다. 누가복음 18장 38절부터 39절에도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거늘” 이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이 다윗의 혈통이라는 것은 사실입니다. 마태복음 1장의 족보가 이를 증거합니다. 누가복음 3장의 족보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의 아버지 요셉은 다윗의 혈통입니다. 어머니 마리아도 다윗의 혈통입니다. 예수님은 성령으로 잉태되셨기 때문에 요셉이 실제로 예수님의 육신적 아버지가 아니라고 해도, 어머니 마리아가 다윗의 혈통이었고 법적으로는 아버지 요셉의 혈통을 따르게 되어 있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은 다윗의 자손이 맞습니다.

만일 예수님이 다윗의 자손이 아니었다면 즉시 면전에서 조롱을 당하셨을 겁니다. 왜냐하면 서기관과 바리새인은 물론이고 사두개인 역시 족보를 중시하고 따졌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 족보들은 전부 주후 70년에 소실되고 말았습니다. 유대 민족에게 있어서는 큰 손실이었죠. 유대인들은 문자 그대로 족보로 파악되었습니다. 가족들은 문자 그대로 유대 민족 전체의 족보를 따라 파악이 되었고, 그 족보는 누구나 쉽게 접할 수 있었습니다. 만약 예수님이 실제로 다윗의 자손이 아니었다면, 유대인들은 성전에 있는 족보를 들이대면서 예수님을 깎아내렸을 겁니다.

서기관들은 미래에 세워질 위대하고 영광스러운 왕국을 위해서 지파와 가문, 유산에 대한 것들을 정확히 보존하면서 족보를 아주 정성껏 보관했고 쉽게 확인할 수 있게 했습니다. 저는 지도자들이 예수님이 실제 다윗의 자손인지를 분명히 확인했을 것이기에 그것이 사실임을 알고 있었을 거라고 확신합니다. 유대인들의 대답은 정답입니다. 그러나 충분하지는 않습니다. 틀린 것은 아니지만 완전하지는 않습니다.

사실 백성들이 예수님께 “다윗의 자손이여”라고 했을 때에 지도자들은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습니다. 백성들이 예수님께 “다윗의 자손이여”라고 하는 것이 예수님의 가족관계를 알았기 때문이 아니라, 예수님을 메시아가 될 다윗의 자손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라는 것을 유대인들이 알고 있었기 때문이죠. 바로 이것 때문에 지도자들이 분개한 것입니다. 다윗의 허리에서 나온 자손들은 수만명이나 됩니다. 예수님이 그 자손들 중의 하나인 것은 괜찮았지만, 메시아를 상징하는 바로 그 다윗의 자손인 것은 괜찮지가 않았습니다. 예수님이 다윗 왕조 출신이시며 다윗의 자손이라는 것은 전부 사실입니다.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먼저 예수님의 질문이 분별하게 하는 질문이라는 점을 보았고, 다음으로 지도자들의 대답이 충분하지 않았다는 점을 살펴보았습니다. 이제 ‘예수님의 신성’을 살펴보겠습니다. 참으로 경이로우면서도 많은 것을 알려주는 말씀입니다. 42절입니다. “시편에 다윗이 친히 말하였으되 주께서 내 주께 이르시되 내가 네 원수를 네 발등상으로 삼을 때까지 내 우편에 앉았으라 하셨도다 하였느니라 그런즉 다윗이 그리스도를 주라 칭하였으니 어찌 그의 자손이 되겠느냐 하시니라.” 정말 놀랍습니다.

이제 여기서 예수님이 무엇을 논증하고 계시는지를 말씀드리겠습니다. 예수님은 이렇게 묻고 계십니다. “왜 너희는 메시아를 다윗의 자손이라고만 하느냐? 다윗도 시편 110편 1절에서 이렇게 말하지 않았느냐?” 예수님은 시편 110편 1절 말씀을 인용하고 계십니다. “여호와께서 내 주에게 말씀하시기를 내가 네 원수들로 네 발판이 되게 하기까지 너는 내 오른쪽에 앉아 있으라 하셨도다.”

이제 우리 주님이 제시하시는 논증의 근거를 말씀드리겠습니다. 모든 사람이 시편 110편이 메시아에 관한 것이라고 알고 있었습니다. 시편 110편에 대한 유대인들의 보편적인 해석은, 이 시편이 오실 메시아를 말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오실 메시아는 하나님의 우편, 곧 권세와 권위의 자리에 앉으셔서 모든 이스라엘의 대적들을 자신의 발등상으로 삼으실 분입니다. 원수를 정복하는 영웅입니다. 시편 2편 말씀을 성취하실 분입니다. 유대인들은 시편 110편을 이렇게 해석했습니다. 보편적인 해석이었습니다. 메시아에 대한 내용입니다. 메시아가 오시면 하나님의 오른편에서 권능의 규를 휘두르실 것입니다. 하나님의 권세와 능력을 휘두르실 것입니다. 하나님의 모든 원수들, 다시 말해 이스라엘의 대적들을 굴복시켜서 자신의 발 아래 두실 것입니다.

참고로 말씀드리면 통치자의 발 아래 놓이는 것은 그 누구도 원하는 일이 아니었습니다. 왜냐하면 처형을 상징하기 때문입니다. 여호수아 10장을 보겠습니다. 다섯 왕들이 여호수아에게 끌려옵니다. 24절입니다. “그 왕들을 여호수아에게로 끌어내매 여호수아가 이스라엘 모든 사람을 부르고 자기와 함께 갔던 지휘관들에게 이르되 가까이 와서 이 왕들의 목을 발로 밟으라 하매.” 26절입니다. “그 후에 여호수아가 그 왕들을 쳐죽여 다섯 나무에 매달고 저녁까지 나무에 달린 채로 두었다가.”

원수를 발등상으로 삼는 것, 원수의 목을 발로 밟는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모두가 알고 있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메시아가 하실 일입니다. 유대인들은 메시아가 오시면 하나님의 원수들을 멸망시키실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구약성경에 그렇게 예언되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이것이 메시아가 하실 일이고 메시아가 다윗의 자손이라고 한다면, 어떻게 다윗이 메시아를 “주”라고 부를 수 있단 말입니까?

왜냐하면 시편 110편 1절이 “여호와께서 내 주에게 말씀하시기를”이라고 시작되기 때문입니다. 이 구절은 여호와께서 메시아에게 말씀하시는 것이고, 다윗이 그 메시아를 “내 주”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어떻게 메시아가 다윗의 자손이면서 다윗의 주가 될 수 있을까요? 오직 한 가지 방법 뿐입니다. 메시아가 인간이면서 영원하신 하나님이어야만 가능합니다. 잠시 피조물이 되신 영원한 하나님이어야만 합니다.

이것은 유대인들에게 충격 그 자체였습니다. 너무나 충격적인 논증이어서 유대인들이 수세기 동안 말바꾸기를 했던 겁니다. 신약성경이 완성되고 사용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 유대인들은 시편 110편에 대한 관점을 바꾸고 이상한 방식을 써 가면서 이 ‘내 주’가 아브라함을 가리키는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그러자 다른 이들이 멜기세덱을 가리키는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그러자 또 다른 사람들이 유다의 마카비를 가리키는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이 마카비는 주전 143년부터 주전 135년까지 이스라엘을 통치했습니다. 마카비를 가리킨다고 하는 이들은 히브리어 글자를 가져다가 끼워 맞춰서 유다 마카비라는 이름으로 변형을 시키고는 그런 주장을 만들어 냈습니다. 이들이야말로 성경을 자의적으로 해석하는 바이블 코드의 원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말씀하고 있는 그가 메시아이고 그 메시아가 다윗의 자손이라면, 다윗이 그 메시아를 “내 주”라고 부르고 있는 것이 맞기 때문에, 유대인들은 시편 110편이 메시아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고 주장하기 위해서라면 무슨 일이든 다 했습니다.

메시아는 인간이면서 하나님이십니다. 메시아는 영원하신 하나님의 아들일 뿐만 아니라 인간이시며 다윗의 자손이십니다. 메시아는 다윗의 자손이자 다윗의 주입니다. 만약 그 메시아가 단지 몇 세기 뒤에 나타날 조상에 불과했다면, 다윗이 왜 그 메시아를 “내 주”라는 현재 시제로 불렀을까요? 성경을 해석하는 데 있어 인칭대명사가 얼마나 중요한지 아시겠습니까? 단어와 구절, 심지어 전치사와 대명사까지 정확하게 이해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모릅니다.

자유주의자들 중에는 이렇게 말하는 사람이 있을 겁니다. “다윗이 그렇게 말한 건 실수다. 제정신이 아니었을 뿐이다. 잘못 말한 것이다.” 누가복음만 본다면 다윗이 그렇게 말을 했지만 그렇게 말하지 말았어야 했다는 결론이 나올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마태복음 22장 43절에는 “다윗이 성령에 감동되어”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마가복음 12장 36절에도 “이르시되 그러면 다윗이 성령에 감동되어 어찌 그리스도를 주라 칭하여”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인간의 영으로 말한 것이 아닙니다. 다윗이 성령에 감동되어 한 말입니다. 성령 안에서 한 말입니다. 모든 근거가 이 말씀에 들어있습니다.

다윗의 말은 틀린 말이 아니라 옳은 말이었습니다. 절대적으로 옳고 절대적으로 정확한 말이었습니다. 사도행전 4장 25절에도 이와 비슷한 말씀이 있습니다. “또 주의 종 우리 조상 다윗의 입을 통하여 성령으로 말씀하시기를.” 같은 말입니다. 하나님의 영이 다윗을 감동하여 그렇게 말하게 하셨습니다. 다윗은 아직 오지도 않은 메시아를 가리켜 “내 주”라고 했습니다. 도마도 부활하신 예수님을 보았을 때 "나의 주님이시요 나의 하나님이시니이다”라고 말하지 않았습니까?

예수님의 이 말씀이 유대인들을 공황상태에 빠트릴 뻔했던 것은, 당시 유대인들이 전부 메시아를 가리킨다고 인정하고 있었던 그 시편 말씀을 가지고 풀어 설명하셨기 때문입니다. 중세 시대부터 지금까지 하나님의 말씀을 진지하게 연구하는 유대인들은 이 시편이 메시아를 가리킨다는 사실을 다시 인정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유대인들이 무슨 짓을 하든 다윗의 시대에도 미래에도 메시아가 다윗의 자손이라는 사실을 부정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아마 조금이라도 생각해 본다면 이 논증이야말로 주 예수 그리스도를 지지하는 강력한 논증이라는 것을 알 수 있을 겁니다.

언젠가 하나님의 뜻과 섭리와 완전한 계획 안에서, 메시아는 원수들을 발등상으로 삼으시고 통치하시기 위해 영광스러운 종말의 때에 다시 오셔서 심판하시고 왕국을 세우실 것입니다. 그러나 그때까지 매일 주님의 발이 원수들의 목을 밟고 있습니다. 죄인들과 거부자들에 대한 그리스도의 심판은 최후의 심판 때까지 기다리지 않습니다. 심판은 매일 계속되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원수들은 언제나 예수님의 발등상일 뿐입니다.

44절을 보겠습니다. 결론입니다. “그런즉 다윗이 그리스도를 주라 칭하였으니 어찌 그의 자손이 되겠느냐 하시니라.” 유대인들은 절대로 풀지 못할 딜레마입니다. 완전히 꼼짝 못하게 되었습니다. 사실 예수님의 이 말씀으로 유대인들이 꼼짝 못하게 되었다는 내용이 마태복음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누가는 이 일이 있기 전에, 마태는 이 일이 있은 후에 꼼짝 못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마태복음 22장 46절입니다. “한 마디도 능히 대답하는 자가 없고 그 날부터 감히 그에게 묻는 자도 없더라.”

사두개인들과의 논쟁 후에 누가는 모든 논쟁이 다 끝났다고 합니다. 하지만 바리새인들이 작당을 하고 다시 돌아왔습니다. 또 다른 문제를 들고 나왔고 예수님은 그 문제로 바리새인들과 다시 논쟁하셨습니다. 그 논쟁에서 바리새인들은 또다시 패배했습니다. 그러자 이번에는 예수님이 질문을 하신 겁니다. 예수님의 질문에 바리새인들은 확실하게 완패했습니다. 누가는 이들이 아무 것도 감히 더 물을 수 없었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또 다른 질문을 하신 겁니다. 이 질문에 그들은 아무 대답도 할 수 없었습니다. 또 다시 침묵하고 말았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거부하면 갈 곳이 없습니다. 거들먹대면서 선심을 쓰듯이 예수는 좋은 사람이고 성경은 훌륭한 책이라는 따위의 허튼소리는 하지 마십시오. 성경은 예수님이 하나님이시라고 말합니다. 다윗의 자손이시요 다윗의 주이십니다. 하나님이자 인간이십니다. 이것을 믿으면 성경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믿지 않으면 성경을 부인하는 것입니다. 믿지 않으면 성경은 속임수가 되고 예수님은 사기꾼이 됩니다. 성경은 거짓으로 가득한 책이 됩니다. 그렇다면 기독교를 버리고 교회를 떠나서 가능한 한 멀리 떨어져 있으십시오. 그러나 성경이 사실이라면, 실제로도 그렇습니다만, 예수님이 하나님이자 인간이시라면, 예수님이 말씀하신 것은 참되고, 예수님이 행하신 일이 유일한 구원의 길이며, 예수님을 믿는 것만이 천국에 가는 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에 대해 여러 가지로 말할 수 있을 겁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속성을 나타내 보이셨습니다. 전능하셨습니다. 바람과 물결을 잠잠하게 하셨고, 귀신을 쫓아내셨고, 오병이어로 오천 명을 먹이셨고, 죽은 자를 살리셨고, 죄를 용서하셨습니다. 또한 무소부재하셨습니다. 원하시면 언제나 어디에나 계실 수 있었습니다. 전지하셨습니다. 사람의 생각을 포함한 모든 것을 다 알고 계셨죠. 또한 불변하셨습니다. 변함이 없고 거룩하셨고, 참되셨고, 지혜로우셨으며, 주권적이셨고, 풍성한 사랑을 베푸셨으며, 영원하시며, 영화로우십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이 하나님이신 것과 동일한 방식으로 예수님은 하나님이십니다.

만약 하나님이 인간이 되셨다면, 한번 그렇게 가정해 보겠습니다. 만약 하나님이 인간이 되셨다면, 우리는 그분이 어떤 분이기를 바랄까요? 아마도 제 생각에는, 첫째로 죄가 없으시기를 기대할 겁니다. 왜냐하면 성경에 나오는 참되신 하나님은 거룩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만약 하나님이 인간이 되셨다면 죄가 없으실 겁니다. 예수님은 죄가 없으셨나요? 그렇습니다. 심지어 원수들조차도 그 어떤 흠도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예수님은 거룩하고 흠이 없는 분으로 죄인들과 완전히 구별되셨습니다.

만약 하나님이 인간이 되셨다면 우리는 죄가 없으시기를 기대할 뿐만 아니라, 둘째로 완전히 의로우시길 기대할 겁니다. 지금까지 살았던 모든 인간들 중에서 가장 정결한 인간이실 거라고 말이죠.

만약 하나님이 인간이 되셨다면 우리는 세상 그 누구보다 위대한 말씀을 하실 거라고 기대할 겁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가장 탁월한 지성을 갖고 계시고, 가장 지혜로우시며, 모든 진리를 통제하시고, 그 진리를 표현하는 가장 큰 능력을 가지고 계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시대와 장소를 불문하고 세상 그 누구의 말과도 같지 않았을 겁니다. 그리고 성경에 실제로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 사람이 말하는 것처럼 말한 사람은 이 때까지 없었나이다 하니.“ 또 예수님도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행하는 그 일로 말미암아 나를 믿으라,” “내 말로 말미암아 나를 믿으라.”

또한 만약 하나님이 인간이 되셨다면 초자연적 능력을 보여주실 것이라고 기대할 겁니다. 초자연적인 능력이 그분의 본성을 참되게 드러내는 일이기 때문이죠. 예수님은 자연을 다스리셨고, 사람들을 고치셨고, 물 위를 걸으셨고, 죽은 자들을 살리셨고, 귀신들의 왕국을 지배하셨고, 자신을 죽이려는 자들을 아시고 멀리하셨습니다. 문자 그대로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기적을 행하셨습니다. 그래서 사도 요한이 예수님이 행하신 일이 너무 많아서 다 기록할 수 없다는 말로 요한복음을 끝맺은 겁니다.

만약 하나님이 인간이 되셨다면 인류에게 심오한 영향력을 행사하실 것이라고 기대할 것입니다. 예수님은 인류 역사상 그 누구도 하지 못한 일을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세상을 바꾸셨습니다.

만약 하나님이 인간이 되셨다면 하나님의 사랑, 하나님의 은혜, 하나님의 자비, 하나님의 긍휼을 나타내실 것이라고 기대할 겁니다. 예수님은 실제로 그렇게 하셨습니다. 또 하나님의 정의, 하나님의 심판, 하나님의 진노를 나타내실 것이라고 기대할 겁니다. 예수님은 실제로 그렇게 하셨습니다.

만약 구약성경을 읽고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이해하게 된다면, 신약성경을 읽은 후에는 그리스도가 인간으로서 완벽한 하나님의 모습이었다는 것을 알게 될 겁니다. 히브리서 1장에 잘 나와 있죠.

그러나 유대인들은 믿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이 무슨 일을 하시든지 믿으려 하지 않았습니다. 누가복음 22장 66절입니다. 잘 들어보십시오. “날이 새매 백성의 장로들 곧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이 모여서 예수를 그 공회로 끌어들여 이르되 네가 그리스도이거든 우리에게 말하라.” 장난하는 겁니까? 이들의 마음이 얼마나 딱딱하게 굳어 있는지 보이십니까? “대답하시되 내가 말할지라도 너희가 믿지 아니할 것이요.” 결론이 무엇인가요? “내가 물어도 너희가 대답하지 아니할 것이니라.”

유대인들이 예수님이 행하신 기적을 결코 부인하지 않았다는 것을 아십니까? 아무도 부인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의 지혜도 부인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의 성경 해석과 설명에도 반박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이 하신 대답을 깎아내리지도 않았습니다. 단지 그들은 믿으려고 하지를 않았습니다. 이것이 역사 내내 지금까지 사람들이 저지르는 안타까운 잘못입니다.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여러분은 모든 것을 보면서도 보지 못하는, 마음이 돌처럼 딱딱하고 차가운 지도자들 편에 있습니까? 결코 부인하지는 않으면서도 믿지는 않으려고 하십니까? 혹은 하루는 “호산나”라고 외치다가 며칠 후에는 “십자가에 못 박으소서”라고 외치는, 우유부단하고 쉽게 휘둘리는 무리의 편에 있습니까? 예수 그리스도가 누구의 자손이냐는 질문에 대한 여러분의 대답은 무엇입니까? 만약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라면, 예수님은 진정한 메시아이시며, 주님이시며, 유일한 구세주이시며, 죄인이 오직 믿음으로 지옥을 벗어나 천국으로 들어갈 수 있는 유일한 길이십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늘 그러하듯 말씀 속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경이로운 아름다움과 위대함을 다시 보게 됩니다. 주님께서 주님의 신성과 영광을 나타내시고자 놀랍게 성경을 사용하심을 봅니다. 마음이 굳은 자들과 우유부단한 자들을 향한 주님의 자비로우심을 봅니다. 주님, 지금도 완강히 주님을 거부하거나 우유부단한 입장에 서 있는 이들이, 주님이 진정 누구의 자손이신지를 다시 생각해 보게 하옵소서. 주님은 다윗의 자손이시고, 영원하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유일한 구세주이시고, 죄를 대속하는 희생제물로 이 세상에 오셨고, 다스리시는 왕으로 다시 오실 것입니다.

하나님, 이 자리에 있는 그 누구도 주님을 거부하지 않게 하옵소서. 여기 있는 모두가 구세주를 받아들이고 믿고 회개하여 영생의 선물을 받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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