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저녁에는 골로새서 1장을 다시 보겠습니다. 성경에서 가장 핵심적인 장이기 때문입니다. 골로새서 1장은 우주에서 가장 중요한 인격체, 즉 아들로 나타나신 하나님을 알려줍니다. 마치 기독교의 심장과도 같습니다. 우리가 믿는 모든 것의 본질이자 신앙의 근간입니다. 동시에 각종 이단과 여러 사상, 기독교에서 생명의 피를 빼내려 하는 모든 것들에 맞서는 전쟁터이기도 합니다. 바로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에 관한 문제입니다. 이것이 바울이 골로새서 1장 15절부터 19절에서 다루고 있는 주제입니다. 이 구절은 골로새서 자체에서도 매우 중요할 뿐만 아니라 기독교 전체의 논증에서도 더없이 중요한 구절입니다.
어떤 이는 성경을 “예수님에 관한 책”이라고 불렀습니다. 정말 자주 인용되는 표현이기도 하죠. 어떤 면에서는 사실입니다. 성경을 이해하면 성경이 그리스도에 관한 책, 주 예수님에 관한 책이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구약성경에는 예수님의 오심을 준비하라는 내용이 나오고, 복음서에는 예수님의 초림이 나옵니다. 예수님이 오셨습니다. 사도행전은 예수님 안에 있는 구원의 메시지를 선포하고, 서신서에서는 예수님의 위격, 인격을 다룹니다.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라는 말씀처럼, 죽었다가 무덤에서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 자신의 백성들 안에 사시기 위해 어떻게 다시 오시는지를 보여줍니다. 요한계시록에는 예수님의 통치가 나옵니다. 보좌에 앉으신 그리스도, 보좌에 앉으신 어린양이 다스리실 것입니다.
그러니까 성경은 모든 면에서 그리스도의 이야기입니다. 그리스도에 대한 모든 것을 우리에게 알려줍니다. 사도행전 8장 35절을 보면, 빌립이 가사, 지금의 가자(Gaza)로 가는 길에서 에티오피아 내시를 만났을 때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빌립이 입을 열어 이 글에서 시작하여 예수를 가르쳐 복음을 전하니.” 빌립은 구약의 이사야서에서 시작했습니다.
성경 어느 부분에서 시작하더라도 예수님을 가르칠 수 있습니다. 누가복음 24장 27절을 보면,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 엠마오로 가는 길에서 제자들을 만나셨을 때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모세와”, 즉 모세오경과, “모든 선지자의 글로 시작하여”, 즉 예언서에서 시작하여, “모든 성경에 쓴 바 자기에 관한 것을 자세히 설명하시니라.” 여기서 말하는 성경은 하기오그라파(Hagiographa), 즉 성문서를 의미합니다. 유대인들에게 구약은 지금도 세 부분으로 나뉘어 있습니다. 모세의 글인 모세오경, 모든 선지자들의 글인 예언서, 그리고 시와 역사서를 포함하는 하기오그라파, 즉 성문서 이렇게 세 부분이죠. 예수님은 이 모든 글에서 자기에 관한 것을 자세히 설명해 주셨습니다.
그러니까 성경은 그리스도에 관한 책입니다. 하나님의 계시와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신 것을 담고 있는 책이죠. 하나님께서 사람이 되신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성경의 모든 부분에서 이런 측면이 분명하게 드러나고 있습니다. 하지만 성경에서 하나님께서 사람이 되신 것을 말씀하시는 여러 구절 중에서도 골로새서 1장 15절만큼 중요한 구절은 없습니다. 아들이 곧 하나님이심을 아주 명확하게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읽습니다. 13절의 “그의 아들”은 15절에 나오는 “그”를 가리킵니다. “그는 보이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형상이시요 모든 피조물보다 먼저 나신 이시니 만물이 그에게서 창조되되 하늘과 땅에서 보이는 것들과 보이지 않는 것들과 혹은 왕권들이나 주권들이나 통치자들이나 권세들이나 만물이 다 그로 말미암고 그를 위하여 창조되었고 또한 그가 만물보다 먼저 계시고 만물이 그 안에 함께 섰느니라 그는 몸인 교회의 머리시라 그가 근본이시요 죽은 자들 가운데서 먼저 나신 이시니 이는 친히 만물의 으뜸이 되려 하심이요 아버지께서는 모든 충만으로 예수 안에 거하게 하시고.”
정말이지 놀라운 말씀입니다. 기독교 신앙을 이해하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가 진정 누구신지에 대한 혼란을 없애는 데 매우 중요한 구절입니다. 이제 골로새서의 배경을 간단히 설명하겠습니다. 바울은 골로새에 거짓 교리가 퍼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습니다. 에바브라가 바울을 찾아와서 알려주었죠. 에바브라는 골로새 교회의 목회자 중 하나로서 아마도 골로새 교회를 세운 사람이었을 겁니다. 그런 에바브라가 사도 바울을 찾아왔습니다.
사도 바울은 에바브라를 통해서 골로새 교회에 끔찍한 이단이 퍼지고 있다는 소식을 듣게 됩니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을 부인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리스도가 하나님이 아니며 구원을 이루기에 부족하다고 주장했습니다. 구원을 위해서는 그리스도뿐만 아니라 다른 영이나 천사도 같이 섬겨야 하고, 특별한 환상을 보아야 하며, 그리스도 안에서 얻을 수 있는 것을 넘어서는 더 높은 차원의 지식이 필요하다고 가르쳤습니다. 심지어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으로부터 나온 수많은 영적 존재들 중 하나일 뿐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이들에게 예수는 하나님도 아니고 완전한 구주도 아니었습니다. 오직 예수를 넘어서는 지식만이 구원의 길이라고 했습니다.
후에 영지주의로 발전하게 된 이러한 이단은 그리스도의 신성과 완전한 구주로서의 충분성을 정면으로 공격했습니다. 이에 바울은 골로새서 1장부터 3장에서 이 문제를 정면으로 다룹니다. 예를 들면 골로새서 1장 27절입니다. “하나님이 그들로 하여금 이 비밀의 영광이 이방인 가운데 얼마나 풍성한지를 알게 하려 하심이라 이 비밀은 너희 안에 계신 그리스도시니 곧 영광의 소망이니라 우리가 그를 전파하여 각 사람을 권하고 모든 지혜로 각 사람을 가르침은 각 사람을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한 자로 세우려 함이니.” 바울은 여기서 한 사람이 완전해지는 데 그리스도 외에 다른 것이 필요하지 않다고 강조합니다. “그리스도에 지식과 환상과 천사 숭배를 더해야 한다”라고 말하는 이단 사상을 정면으로 반박하고 있는 것입니다. 바울은 분명히 말합니다. 우리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완전해질 수 있습니다.
바울은 2장 2절에서 논증을 계속 전개합니다. “이는 그들로 마음에 위안을 받고 사랑 안에서 연합하여 확실한 이해의 모든 풍성함과 하나님의 비밀인 그리스도를 깨닫게 하려 함이니 그 안에는 지혜와 지식의,” 어떤 보화입니까? 일부 또는 많은 보화가 아닙니다. “모든 보화가 감추어져 있느니라.”
다시 한 번 그리스도의 충분성을 강조합니다. 구원을 위해서 그리스도 외에 다른 지식이 필요하지 않다고 합니다. 9절입니다. 여기서 “그”는 8절의 그리스도를 말합니다. “그 안에는 신성의 모든 충만이 육체로 거하시고.” 일부도 대부분도 아닌 "모든" 충만입니다. 19절에서 "머리"는 그리스도이고, 17절의 "몸"도 그리스도입니다. 이는 구약의 그림자가 그리스도 안에서 성취된다는 의미입니다. 19절에서 말하는 머리는 그리스도입니다. “온 몸이 머리로 말미암아 마디와 힘줄로 공급함을 받고 연합하여 하나님이 자라게 하시므로 자라느니라.”
다시 말해서 모든 것의 머리는 그리스도이십니다. 모든 성장과 공급, 연합, 성장은 전부 그리스도와 연결되어 있습니다. 다른 것은 필요하지 않습니다.
3장 1절입니다.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았으면 위의 것을 찾으라 거기는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느니라 위의 것을 생각하고 땅의 것을 생각하지 말라 이는 너희가 죽었고 너희 생명이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감추어졌음이라 우리 생명이신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그 때에.” 모든 것이 그리스도입니다. 우리의 생명은 그리스도이고 우리의 소망도 그리스도입니다. 모든 지혜와 지식, 성장, 완전함이 그리스도 안에 있습니다. 이것이 바울의 핵심 메시지입니다. 말하자면 골로새서의 첫 세 장에서 바울은 골로새 교인들에게 이렇게 말하는 겁니다. “그리스도 외에 다른 천사들이나 특별한 지식이나 환상은 필요하지 않다. 그렇게 말하는 사람들은 모두 거짓 선지자들이다. 여러분에게 필요한 것은 오직 그리스도뿐이다. 그리스도가 전부이다.”
19절입니다. 아주 아름다운 말씀입니다. “아버지께서는 모든 충만으로 예수 안에 거하게 하시고.” 예수님 안에, 즉 그리스도 안에 얼마나 충만하게 거하시게 했을까요? "모든 충만"입니다. 모든 것이 그리스도 안에 있습니다. 그러니까 사도 바울은 이를 통해 골로새에 들어온 이단을 반박하고 있습니다. 골로새서 서론에서 살펴본 것처럼, 이 이단은 철학적 이원론에 바탕을 두고 있었습니다. 철학적 이원론에서는 물질은 악하고 영은 선하다고 봅니다. 따라서 하나님은 영이시므로 선하시다고 합니다. 하지만 모든 피조물은 물질이므로 악하다고 보는데, 그렇다면 선하신 하나님이 악한 피조물을 만드실 수는 없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이원론자들이 설명하는 방식은 이렇습니다. 하나님에게서 모든 것이 분수처럼 흘러나왔답니다. 유출설이라고도 하죠. 마치 연못에 던진 돌에서 퍼져나가는 물결처럼 영들이 하나님에게서 유출되기 시작했답니다. 이러한 유출이 계속해서 이어졌는데, 처음에 나온 것들은 선했는데 점차 중립적이 되더니, 결국에는 악한 것으로 변했답니다. 수없이 많은 것들이 흘러나온 후에, 마침내 악한 것들이 나오기 시작했고, 그 중 하나는 세상을 창조할 정도로 악했답니다. 이들의 주장에 따르면 예수님도 이런 유출 과정의 하나일 뿐이랍니다. 물론 선한 유출물이긴 했지만 어쨌든 그저 수많은 유출물 중 하나였답니다. 따라서 예수님을 천사와 동등한 존재로 생각했습니다. 이런 이유로 영과 천사를 숭배하게 된 겁니다.
바울은 예수님이 하나님에게서 유출된 존재가 아니라는 점을 골로새 교인들에게 전하고자 했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본질에서 한 단계 낮은 어떤 존재가 아닙니다. 예수님은 인간의 몸을 입으신 하나님 그 자체이십니다. 바울은 서론을 아주 신중하게 구성했습니다. 처음에는 인사를 건넸고, 3절부터는 하나님께 골로새 교인들로 인한 감사를 드렸습니다. 또한 교인들이 하나님의 뜻을 온전히 깨닫고 영적인 지혜와 이해력을 갖추어 합당하게 행하게 해달라고 기도했습니다. 이렇게 인사말을 마친 후에 이제 본격적인 핵심 내용으로 들어갑니다.
12절부터 14절에서는 이들이 받은 구원, 곧 구속과 용서에 대해 하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그리고 나서 우리를 구속하시고, 용서하시고, 흑암의 권세에서 건져내신 분, 즉 하나님의 사랑하는 아들이시며 그 나라의 주인이신 이 분이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형상이라는 핵심 내용을 전합니다. 이것이 바울이 전하고자 하는 핵심입니다.
자, 이제부터는 본문 15절부터 19절을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다섯 가지 관점에서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하나님과의 관계, 우주와의 관계, 보이지 않는 세계와의 관계, 교회와의 관계, 그리고 그 외에 남은 모든 것들과의 관계입니다. 첫째, 예수님과 하나님과의 관계는 15절에 나옵니다. 하나님과의 관계라는 측면에서 예수님을 설명합니다. “그는 보이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형상이시요 모든 피조물보다 먼저 나신 이시니.”
당시 이단들은 예수님을 단순한 유출체, 즉 하나님의 속성에서 흘러나온 파동 정도로 설명하려 했습니다. 이들의 주장에 따르면 예수님은 악을 창조할 수 있는 수많은 하급 존재들 중에 하나에 불과했습니다. 하지만 바울은 이렇게 선언합니다. “그리스도는 하나님이시다.” 16절에서는 “만물이 그에게서 창조되되”라고 합니다. 그리스도는 창조주이십니다. 실제로 이단들은 더 나아가 하나님이 결코 육체를 가질 수 없다고 주장했습니다. 이들의 논리로는 만일 하나님이 육체를 취하신다면 선하신 하나님이 악한 물질 안에 갇히게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선한 유출체는 결코 육체를 가질 수 없다고 했습니다. 선한 것은 악한 물질인 육체를 받아들일 수 없기 때문이랍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실제 육체가 없는 선한 유출체, 일종의 환영이었다고 가르쳤습니다. 제가 앞서 말씀드렸듯이 이들은 예수님이 유출체였기 때문에 걸어도 발자국이 남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그저 영적인 환영, 유령 같은 존재였답니다.
그러니까 바울은 이러한 주장에 맞서서 예수님이 하나님이시며, 육신을 입으신 하나님이시고, 우주의 창조주이심을 분명히 밝히고자 했습니다. 이 진리 하나만으로도 이단들의 모든 주장은 완전히 무너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자세히 살펴보겠습니다. 바울은 15절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그는 보이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형상이시요.” 먼저 알아야 할 것은 하나님은 보이지 않는 분이라는 사실입니다. 디모데전서에도, 구약성경에도 하나님은 보이지 않는 분이시며, 인간의 눈으로는 볼 수 없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은 영이시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도 "영은 살과 뼈가 없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이 보이지 않는 하나님께서 보이는 존재로 오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이 되신 것입니다. 그리스도는 바로 이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볼 수 있게 하신 분이십니다. 그래서 그분이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형상이신 겁니다.
창세기 1장 27절로 돌아가보면 “형상”이라는 단어가 나옵니다.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그런데 바울이 골로새서에서 말하고자 하는 의미와는 다른 개념입니다. 고린도전서 11장 7절을 잠깐 보겠습니다. “남자는 하나님의 형상과 영광이니.” 하나님은 자신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셨고, 고린도전서 11장 7절에서도 “남자는 하나님의 형상”이라고 하면서 같은 진리를 반복하고 있지만, 사람은 하나님의 완벽한 형상은 아닙니다. 그렇다면 어떤 면에서 사람이 하나님의 형상일까요? 어떤 면에서 제가, 여러분이,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대로 만들어진 것일까요? 이것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일까요? 제 생각에 우리가 하나님의 형상대로 만들어졌다는 것은 우리에게 생각하고 느끼고 결정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의미입니다.
분명 우리는 하나님의 도덕적 형상대로 만들어지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거룩하시지만 우리는 그렇지 않기 때문입니다. 심지어 아담도 거룩하게 창조되지 않았습니다. 순수한 상태로 창조되었을 뿐이죠. 아담은 첫번째 시험에서 실패했습니다. 우리는 도덕적으로나 본질적으로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되지 않았습니다. 본질적이라는 말은 우리가 떠다니는 영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우리는 우주에서 자유롭게 이동할 수 없고, 전능하지도 않고, 어디에나 존재하지도 않고, 전지하지도 않고, 변하지 않는 존재도 아닙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본질적으로나 도덕적인 면에서는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되지 않았지만, 인격적인 면에서는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되었습니다. 즉, 우리는 생각하고, 느끼고, 결정을 내릴 수 있습니다. 이런 면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형상입니다. 물론 이 형상은 많이 손상되었고, 타락할 때 훼손되었습니다. 아담 안에 있던 하나님의 모습은 훨씬 더 선명했습니다. 어떤 면에서 아담은 도덕적으로 하나님을 대표할 수 있을 만큼 하나님과 가까웠고, 죽지 않는 존재였기에 영원성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아담에게는 어떤 불변성이 있었죠. 이런 모든 것들이 부분적으로는 다른 방식으로 하나님의 형상이었지만, 타락하면서 모두 잃어버렸습니다. 이것을 회복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에 이르는 것뿐입니다.
구원을 받으면 우리 안에 있는 하나님의 형상이 회복됩니다. 구원을 받아야 도덕적으로 하나님의 형상을 닮게 됩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도덕적으로 누구처럼 만드시나요? 그리스도처럼 만드십니다. 또한 하나님이 우리에게 어떤 생명을 주셨기에 하나님의 성품을 갖게 되는 것일까요? 바로 영생입니다. 하나님의 속성이죠. 이처럼 구원은 우리 안에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시키는 과정입니다. 이를 더 잘 이해하기 위해서 에베소서 4장을 보겠습니다.
사실 너무 단정지어서 말씀드릴 수는 없습니다. 더 구체적으로 설명할 수가 없어서 일반적인 내용만 말씀드리는 겁니다. ‘이것은 정확히 이러하다’라고 너무 세세하게 규정짓고 싶지는 않습니다만, 조금은 도움이 될 구절을 살펴보겠습니다. 에베소서 4장 24절을 보겠습니다.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 이해가 되시나요? 하나님의 형상으로 사람이 회복되는 것은 이 새 사람을 입을 때입니다. 그때 하나님께서는 그 사람 안에서 의와 진리의 무엇으로 회복되십니까? 바로 거룩함입니다. 하나님의 형상은 우리가 새 사람을 입을 때 임하십니다.
그렇다면 이것이 구원을 의미할까요? 부분적으로는 그렇지만, 우리가 새 사람답게 살아갈 때를 의미하기도 합니다. 구원이 겉으로 드러나는 것이죠. 골로새서 3장 10절입니다. “새 사람을 입었으니 이는 자기를 창조하신 이의 형상을 따라 지식에까지 새롭게 하심을 입은 자니라.” 여기에도 같은 진리가 나타나 있습니다. 하나님의 형상은 믿는 자가 되어 하나님이 그를 통해 나타나실 때, 즉 새 사람을 입을 때 회복됩니다. 단순히 새 사람이 되는 것뿐만 아니라 그 새 사람으로 살아갈 때, 그 새 생명이 드러날 때, 하나님이 보이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인간은 어떤 면에서 하나님의 형상을 반영하고 있습니다. 모든 인간은 생각하고 느끼고 결정을 내릴 수 있다는 점에서 하나님의 형상을 지니고 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결정은 단순한 동물적 본능이 아닌 사실과 논리에 근거한 결정을 의미합니다. 또한 우리가 그리스도인이 되면 하나님의 도덕적이고 본질적인 형상이 어느 정도 회복됩니다. 하지만 사랑하는 여러분, 이 모든 것을 합쳐도 여전히 불완전합니다. 우리가 아무리 최선을 다해도 하나님의 영광에 이를 수 없습니다.
그러니까 오직 그리스도만이, 골로새서 1장으로 다시 돌아갑니다, 오직 그리스도만이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참되고 완벽하고 흠 없는 형상이십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예수님이 하나님의 형상이 아니셨다면, 우리 중 누구도 하나님을 닮아갈 수 없었을 겁니다. 히브리서 1장 3절을 보겠습니다. 그리스도가 누구신지를 알려줍니다. “이는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시요 그 본체의 형상이시라.” 여기에서 “이는”은 2절의 아들을 가리킵니다.
여기서 우리는 아들, 즉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라는 사실을 발견합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을 드러내신다는 의미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본질을 계시하시기 위해 하나님에게서 오신 분입니다.
둘째입니다. 다시 히브리서 1장 3절을 보면 “그 본체의 형상이시라”라고 합니다. 즉 정확하고 완벽한 형상이라는 뜻입니다. 그 본질이 같다는 말입니다. 참고로 여기서 '형상'이라는 단어는 고대 헬라어에서 정확한 복제본을 만드는 도장이나 조각 도구를 가리키는 말이었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완전한 모습 그대로를 보여주셨습니다. 요한복음 1장 18절입니다. “본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아버지 품 속에 있는 독생하신 하나님이 나타내셨느니라.” 14절에서 요한은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분명 그리스도는 하나님을 세상에 드러내셨습니다. 빌립보서 2장 6절입니다.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속성과 형상을 전부 가지고 계셨지만 사람이 되셨습니다.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히브리인, 즉 유대인들은 늘 하나님의 인격이 말씀을 통해 드러난다고 생각했습니다. 하나님을 볼 수는 없었지만 다양한 방식으로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구약을 보면 이런 표현이 자주 등장합니다.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니라, 여호와의 말씀이 이르시되…” 그래서 항상 하나님이 말씀으로 자신을 드러내신다고 생각했습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말씀을 통해서 나타나셨습니다. 그렇기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셨을 때, 요한이 이렇게 기록한 것은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이처럼 유대인들은 늘 하나님이 말씀으로 자신을 드러내신다고 믿었습니다.
하나님은 말씀으로 자신을 드러내셨습니다. 히브리서 1장에서 이렇게 말하는 것도 당연합니다. “옛적에 선지자들을 통하여 여러 부분과 여러 모양으로 우리 조상들에게 말씀하신 하나님이 이 모든 날 마지막에는 아들을 통하여 우리에게 말씀하셨으니.” 하나님은 언제나 말씀으로 자신을 계시하셨고, 그 말씀은 곧 그리스도입니다.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생각과 표현 그 자체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요한복음 14장 9절에서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본 것이니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마태복음 17장에서 예수님은 자신이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을 잠시 보여주셨습니다. 이는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신을 드러내신 부분으로, 이에 대한 어떤 추측이나 논쟁도 더 이상 필요 없게 만드는 장면입니다. 마태복음 17장의 변화산 사건입니다. 2절입니다. “그들 앞에서 변형되사 그 얼굴이 해 같이 빛나며 옷이 빛과 같이 희어졌더라… 구름 속에서 소리가 나서 이르시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으라 하시는지라.” 예수님은 자신의 육체를 걷어내시고 쉐키나 영광 속의 하나님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따라서 아들만이 하나님을 완벽하게 드러내실 수 있습니다. 인간은 그렇지 못합니다. 인간은 손상된 형상일 뿐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회복된다 해도 여전히 부족합니다. 오직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하나님의 완전한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고린도후서 4장 6절은 참 아름다운 말씀입니다. “어두운 데에 빛이 비치라 말씀하셨던 그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을 우리 마음에 비추셨느니라.” 어떻게 그렇게 하셨습니까? 하나님은 어떻게 인간에게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을 비추셨습니까? 누구의 얼굴에 있는 영광이었나요?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입니다.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을 통해 자신의 영광을 나타내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자신을 드러내신 것입니다.
다시 골로새서 1장으로 돌아가서 "형상"이라는 단어를 살펴보겠습니다. 형상이란 정확한 복사본, 복제본을 의미합니다.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완벽하고 흠 없는 복제본이십니다. 단순한 밑그림이 아니라 모든 것이 완전히 갖추어진 분이십니다. 골로새서 2장 9절입니다. “그 안에는 신성의 모든 충만이 육체로 거하시고.” 골로새서 1장 19절입니다. “아버지께서는 모든 충만으로 예수 안에 거하게 하시고.” 그러므로 사랑하는 여러분, 예수님은 하나님의 완전하고 최종적이며 유일한 계시로서 전혀 부족함이 없으신 분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이보다 낮은 수준으로 생각하는 것은 하나님에 대한 신성모독이요 우상숭배입니다.
창세기 31장 30절입니다. “그러므로 야곱이 그 곳 이름을 브니엘이라 하였으니 그가 이르기를 내가 하나님과 대면하여 보았으나.” 여기에서 ‘브니엘’은 ‘하나님의 얼굴’이란 뜻입니다. 야곱이 누구를 본 것일까요? 제 생각에는 성육신 이전의 아들의 현현을 보았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흠이 있는 불완전한 형상입니다. 오직 그리스도만이 완전하신 분입니다. 하지만 제게 정말 흥미로운 것은 요한일서 3장 2절 말씀입니다. 언젠가 우리가 그리스도와 같이 될 것이라는 점입니다. 정말 놀랍고 경이로운 현실입니다. 하나님이 사람이 되시고, 인간의 모습으로 이 세상에 오셨다는 사실은 우리의 이해를 뛰어넘는 놀라운 일입니다.
에베소서 4장 13절은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우리의 목적을 말해줍니다.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리니.” 우리는 그리스도와 같이 될 것입니다. 지금의 우리는 흠이 있지만, 그리스도와 같이 될 것입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는 그리스도를 닮아가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그러니까 그리스도는 이 세상에 나타나신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알고 싶으시다면 그리스도를 보십시오.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보여주실 것입니다. 만일 하나님이 사람의 모습으로 오셨다면, 우리는 그분에게 죄가 없으실 것이라고 기대했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죄가 없으셨습니다. 만일 하나님이 사람이 되셨다면, 우리는 그분이 이제껏 들어보지 못한 가장 위대한 말씀을 하실 것이라고 기대했을 것입니다. 예수님이 그렇게 하셨습니다. 만일 하나님이 사람이 되셨다면, 우리는 그분이 다른 어떤 존재도 하지 못했던 방식으로 인간의 삶에 깊은 영향을 미치실 것이라고 기대했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렇게 하셨습니다. 만일 하나님이 사람이 되셨다면, 우리는 그분이 기적을 행하실 것이라고 기대했을 것입니다. 예수님이 기적을 행하셨습니다. 만일 하나님이 사람이 되셨다면, 우리는 그분이 사랑을 보여주실 것이라 기대했을 것입니다. 예수님이 그렇게 하셨습니다. 예수님이 바로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며,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지 않고는 하나님을 알 수 없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성령님의 도우심이 없이는 예수님을 주라 부를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하나님의 계시로만 가능한 일입니다.
다시 골로새서 1장을 보겠습니다. “그는 보이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형상이시요.” 두번째로 15절입니다. “모든 피조물보다 먼저 나신 이시니.” 많은 사람들이 이 구절을 잘 이해하지 못해서 혼란을 겪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처음 나신 자, 혹은 "모든 피조물보다 먼저 나신 이"라는 표현은 시간이 아닌 지위를 나타내는 표현입니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시간이 아닌 지위를 나타내는 표현입니다. 예수님은 시간상으로 먼저 창조된 존재가 아닙니다.
이에 대해서는 두 가지 타당한 이유가 있습니다. 첫째로, 예수님은 결코 창조된 적이 없으십니다. 요한복음 8장 58절입니다. “아브라함이 나기 전부터 내가 있느니라.” 요한계시록은 예수님을 “이제도 있고 전에도 있었고 장차 올 자”로 부릅니다. 어떤 이들은 그분도 창조되었다고 주장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또 어떤 이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예수님이 모든 피조물보다 먼저 나신 이라고요? 그럴 리가 없어요. 그렇게 따지면 예수님보다 먼저 창조된 것들이 많이 있는데요.” ‘먼저 나신 이’란 무엇을 의미할까요? 헬라어 프로토토코스(prōtotokos), 즉 장자는 지위를 의미합니다. 잘 알아두십시오. 순위와 권위, 우선권을 의미하는 것이지 시간 순서와는 관계가 없습니다. 상속권을 가진 자를 뜻합니다. 당시 유대인들은 이 의미를 잘 알고 있었습니다. 이방인들도 이해하고 있었죠. 그래서 골로새 교인들은 이 말의 의미를 전혀 의심하지 않았습니다. 그리스도가 영광받으실 분이며, 특권을 지니신 분이고, 존귀하신 분이며, 아버지의 상속자라는 사실을 말입니다.
야곱과 에서를 기억하시나요? 에서가 먼저 태어났지만, 야곱이 ‘프로토토코스(prōtotokos)’였습니다. 결국 야곱이 축복을 받았죠. 시편 89편 27절입니다. “내가 또 그를 장자로 삼고 세상 왕들에게 지존자가 되게 하며.” 장자란 무엇인가요? 바로 가장 높은 자입니다. 시편 89편 27절에서 이렇게 정의하고 있습니다. 가장 높고 존귀한 자를 의미하는 것이죠.
다시 히브리서 1장으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이 모든 날 마지막에는 아들을 통하여 우리에게 말씀하셨으니 이 아들을 만유의 상속자로 세우시고.” 여기서 주목할 점은 "이 아들을 만유의 상속자로 세우시고"라는 표현입니다. 아버지가 상속자를 지명했습니다. 보통은 장자가 상속자가 되었지만, 어떤 이유로 장자가 자격을 잃게 되면 아버지는 다른 아들에게 그 권리를 줄 수 있었습니다. 다만 반드시 아버지가 지명해야 했습니다.
구약에서 아버지가 장자에게 축복하는 장면을 기억하십니까? 여기서 중요한 것은 누가 먼저 태어났느냐가 아니라, 아버지의 모든 것을 물려받을 영광스러운 아들이 누가 될 것인가였습니다. 그리고 이 유업은 그리스도에게 돌아갑니다.
요한계시록 5장을 보면 하나님께서 보좌에 앉아 계시고 손에는 두루마리가 있습니다. 이 두루마리는 땅의 소유권을 증명하는 문서로서, 당시 로마법에 따라 일곱 인으로 봉인되어 있었습니다. 유언장을 봉인할 때는 반드시 일곱 번 봉인을 해야 했는데, 이는 누군가가 열어보면 그 흔적이 바로 드러나게 하기 위해서였습니다. “또 보매 힘있는 천사가 큰 음성으로 외치기를 누가 그 두루마리를 펴며 그 인을 떼기에 합당하냐 하나.” 누가 이 땅의 진정한 주인입니까? 누가 이 세상을 물려받을 상속자입니까? 누구에게 이 땅을 다스리고, 되찾으며, 상속받을 권리가 있습니까? “하늘 위에나 땅 위에나 땅 아래에 능히 그 두루마리를 펴거나 보거나 할 자가 없더라.” 요한은 이렇게 말합니다. “합당한 자가 보이지 아니하기로 내가 크게 울었더니.”
장자가 어디에 있습니까? ‘프로토토코스’가 어디에 있습니까? 으뜸이 되는 자가 어디에 있습니까? 상속자가 어디에 있습니까? “장로 중의 한 사람이 내게 말하되 울지 말라 유대 지파의 사자 다윗의 뿌리가 이겼으니 그 두루마리와 그 일곱 인을 떼시리라 하더라 내가 또 보니 보좌와 네 생물과 장로들 사이에 한 어린 양이 서 있는데 일찍이 죽임을 당한 것 같더라 그에게 일곱 뿔과 일곱 눈이 있으니 이 눈들은 온 땅에 보내심을 받은 하나님의 일곱 영이더라 그 어린 양이 나아와서 보좌에 앉으신 이의 오른손에서 두루마리를 취하시니라.”
여기 그리스도가 계십니다. ‘프로토토코스’로서 땅의 소유권을 취하시고 만왕의 왕, 만주의 주로 다스리려고 오셨습니다. 6장부터 19장까지는 20장에서 마침내 통치하실 때까지 이 땅을 차지해 가시는 과정입니다. 13절은 하늘의 소리를 그대로 전합니다. “내가 또 들으니 하늘 위에와 땅 위에와 땅 아래와 바다 위에와 또 그 가운데 모든 피조물이 이르되 보좌에 앉으신 이와 어린 양에게 찬송과 존귀와 영광과 권능을 세세토록 돌릴지어다 하니.” 온 우주가 예수님이 합당한 분이시라고 한 목소리로 화답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슬픈 사실이 하나 있습니다. 사탄이 가장 바라는 것은 아무도 이 사실을 깨닫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하나님이심을 진정으로 믿지 못하게 하며, 피조물이 아니라 만물의 으뜸이심을 믿지 못하게 합니다. 고린도후서 4장 4절입니다. “그 중에 이 세상의 신이,” 누구입니까? 사탄입니다. “믿지 아니하는 자들의 마음을 혼미하게 하여 그리스도의 영광의 복음의 광채가 비치지 못하게 함이니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형상이니라.”
사탄은 사람들이 예수님이 하나님의 형상이심을 모르기를 바랍니다. 또한 예수님만이 이 세상을 다스릴 권리가 있다는 것도 모르기를 바라죠. 사탄은 이 모든 것을 사람들이 모르기를 바라기 때문에 불신자들의 마음을 가리고 있는 것입니다. 누군가 여러분에게 “그리스도는 하나님이 아니다”라고 말한다면 이 구절을 보여주시면 좋겠습니다. 왜 그렇게 생각하게 되었는지 설명해줄 수 있을 테니까요.
요한복음 10장 33절을 보면 유대인들이 이렇게 말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많은 주장을 하셨고, 유대인들은 그 메시지를 정확히 이해했습니다. 예수님이 자신이 하나님이라고 주장한 적이 없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말도 안 되는 소리입니다. 예수님이 자신이 하나님이라고 주장하지 않았다고요? 요한복음 10장 33절에서 유대인들은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유대인들이 대답하되 선한 일로 말미암아 우리가 너를 돌로 치려는 것이 아니라 신성모독으로 인함이니 네가 사람이 되어 자칭 하나님이라 함이로라.” 유대인들은 예수님의 주장을 정확히 이해했습니다. 정말로 이해했습니다. 예수님이 무엇을 주장하시는지 잘 알았습니다. 예수님은 천사들에 대한 신적 권위를 주장하셨고, 인간에 대한 신적 권위도 주장하셨습니다. 실제로 마태복음 28장 18절에서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다"라고 말씀하시면서 모든 것에 대한 신적 권위를 주장하셨습니다. 율법, 안식일, 장로들의 전통, 이 모든 것에 대한 신적 권위를 주장하셨습니다. 죄를 용서하는 능력과 스스로를 죽음에서 부활시키는 능력을 주장하셨을 뿐만 아니라 그것을 증명하셨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에게서 나온 어떤 하위의 신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이십니다. 본문 15절을 통해서 하나님과의 관계라는 측면에서 예수님의 모습을 살펴봤습니다. 이제 16절입니다. 세상과의 관계라는 측면에서 예수님을 보겠습니다. “만물이 그에게서 창조되되 하늘과 땅에서 보이는 것들과 보이지 않는 것들과 혹은 왕권들이나 주권들이나 통치자들이나 권세들이나 만물이 다 그로 말미암고 그를 위하여 창조되었고.”
예수님은 만물의 으뜸이십니다. 왜 그럴까요? 예수님이 모든 것을 창조하셨기 때문입니다. 요한복음 1장은 이렇게 말합니다.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 본문 16절을 다시 보십시오.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창조되었으니." 누가 모든 것을 창조하셨습니까? 그리스도입니다. 그리스도는 어떤 하위 신도 아니고 데미우르고스도 아니고 유출체도 아니고 악한 존재도 아닙니다. 그리스도입니다. 그리스도는 창조주 하나님이십니다. 자신을 위해, 자신의 영광을 위해, 그리고 자신의 능력으로 창조하셨습니다. 히브리서 1장 2절을 다시 보겠습니다. “그로 말미암아 모든 세계를 지으셨느니라.” ‘말미암아’에 해당하는 헬라어 ‘디아’는 "통하여"라는 뜻입니다. 그리스도를 통하여 세계가 지어졌습니다. 정말이지 놀라운 말씀입니다.
한 시간쯤 전에 알 올리버 형제님의 아들 매튜를 데리고 헌아식을 했습니다. 형제님은 여기에 앉아서 두 팔로 매튜를 안고 있었습니다. 그러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며칠 전 이 아이를 보면서 생각했어요. 우주의 하나님께서 이런 연약한 존재가 되어 인간의 손에 자신을 맡기셨다는 게 믿기지 않았습니다. 정말 놀랍지 않나요?” 제가 이렇게 답했습니다. “정말 그렇군요.” 아기 예수님을 생각해 보십시오. 그 작은 존재가 우주의 창조주였다는 것이 믿어지십니까? 여러분의 아이를 한번 보십시오. 믿기 어렵지 않으신가요? 정말이지 놀라울 뿐입니다. 하나님이 인간이 되셨고, 육신을 입으셨습니다. 창조주 하나님을 생각해보십시오.
저는 과학자가 아닙니다. 아무리 생각하봐도 과학자는 아닙니다. 과학 시간에 한 일이라곤 분젠 버너를 망가뜨리고 비커를 깰 뿐이었습니다. 그렇지만 한 가지는 분명히 알고 있습니다. 이 세상이 얼마나 복잡하게 창조되었는지, 따라서 이 세상을 만드신 분이 얼마나 위대하신지 이해할 만큼은 알고 있습니다.
태양에 구멍이 있다고 한번 생각해보십시오. 태양이 얼마나 큰지 설명해드리겠습니다. 태양에 난 구멍에 지구 120만 개를 넣을 수가 있고, 거기에 달 430만 개가 더 들어갈 수 있다고 합니다. 정말 어마어마하게 크지 않습니까? 가장 가까운 별은 3천 220억km나 떨어져 있고, 북극성은 6천 440억km나 떨어져 있습니다. 그리고 정말 놀라운 별이 하나 있는데, 바로 '베텔게우스'입니다. 이 별은 무려 14경 1,600조km나 떨어져 있습니다. 얼마나 먼지 가늠하기도 어려운 거리죠. 과학자들은 이 별이 너무 커서 그 지름이 지구의 공전 궤도보다도 크다고 합니다. 상상하기 어려울 만큼 거대한 크기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모든 것을 창조하셨는데도 사람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물을 포도주로 바꾸셨다니 믿을 수가 없어요.” “절름발이를 걷게 하셨다니 믿을 수가 없어요.” 다시 한번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만일 예수님의 창조 능력을 두고 논쟁하고 싶으시다면 먼저 저라는 산을 넘으셔야 할 겁니다. 제가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저는 예수님이 하실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잘 알기에 진화론을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진화론은 제게는 완전히 터무니없는 이론입니다. 사람들이 진화론을 믿는 이유는 단 한 가지입니다. 아니, 두 가지입니다. 정정하겠습니다. 두 가지입니다. 첫째는 무지입니다. 그냥 모르는 거죠. 그렇지 않습니까? 단순히 진리를 접해본 적이 없는 겁니다. 둘째는 의도적인 불신입니다. 제가 어떤 과학자의 글에서 읽은 것처럼 말입니다. “나는 초월적 신이란 개념을 거부하니 달리 나에게 무슨 선택의 여지가 있겠는가?” 바로 이것입니다. 하나님이 모든 것을 창조하셨습니다. 조금만 깊이 생각해봐도 알 수 있습니다.
이처럼 바울은 본문 16절에서 예수님이 누구신지에 대한 탄탄한 기초를 세우고 있습니다. 17절에는 정말 놀라운 내용이 하나 더 있습니다. “또한 그가 만물보다 먼저 계시고 만물이 그 안에 함께 섰느니라.” 예수님은 만물보다 먼저 계셨습니다. 요한복음 8장 58절은 제가 너무나 좋아하는 구절입니다. “아브라함이 나기 전부터 내가 있느니라.” 제가 그 자리에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유대인들의 반응이 어땠을지 보고 싶습니다. 정말 충격적인 선언이었을 테니까요. 예수님은 만물보다 먼저 계셨습니다. 모든 것이 존재하기 전부터 예수님이 계셨던 겁니다. 모든 것을 창조하시려면 필수적인 일이었겠죠. 예수님은 요한계시록 1장 17절에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처음이요 마지막이니 곧 살아 있는 자라 내가 전에 죽었었노라 볼지어다 이제 세세토록 살아 있어 사망과 음부의 열쇠를 가졌노니.” 요한계시록 2장은 이렇게 말합니다. “처음이며 마지막이요 죽었다가 살아나신 이가 이르시되.” 정말 위대한 말씀입니다.
좀더 자세히 살펴보겠습니다. 첫번째입니다. 예수님은 시작의 근원이십니다. 요한계시록 22장 13절입니다.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마지막이요 시작과 마침이라.” 16절입니다. “나는 다윗의 뿌리요 자손이니.” 생각해 보십시오. 어떻게 한 사람의 뿌리이면서 동시에 자손이 될 수 있을까요? 어떻게 다윗의 아버지이면서 다윗의 아들이 될 수 있을까요? 하지만 예수님은 그러하십니다. 모든 것 이전에 계신 분이십니다. 다시 본문 17절입니다. “만물이 그 안에 함께 섰느니라.” 만물이 예수님 안에 함께 서 있다는 겁니다. 히브리서 1장 3절은 말합니다. “그의 능력의 말씀으로 만물을 붙드시며.” 현재 시제로 표현되어 있습니다.
제가 이 내용을 더 알아보고 싶어서 밥 하인밀러가 소개해 준 얇은 책 한 권을 읽었는데, 정말 흥미로웠습니다. 지구가 어떻게 유지되고 있는지를 생각해보면 정말 놀랍습니다. 정말이지 놀랍습니다. 만약 지구의 자전 속도가 느려진다면, 우리는 얼어 죽거나 타 죽을 겁니다. 따라서 지구는 반드시 일정한 속도로 자전해야만 합니다. 태양의 온도가 약 6,500도에서 조금이라도 바뀐다면, 똑같은 재앙이 일어날 겁니다. 우리가 사는 지구는 23도 정도 기울어져 있습니다. 이 덕분에 우리가 사계절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만약 이렇게 기울어져 있지 않다면, 바다의 수증기가 북쪽과 남쪽으로 이동해서 대륙 전체가 얼음으로 뒤덮이고 말 겁니다. 달이 지금의 그 정확한 거리를 유지하지 않는다면, 해수면이 너무 높아져서 우리 모두가 물에 잠길 겁니다. 그렇다면 이 모든 것을 누가 이렇게 완벽하게 유지하고 계실까요? 바울은 "하나님의 아들, 하나님의 그리스도"라고 답합니다.
밥이 준 이 책은 체스트넛이라는 의사이자 핵물리학자가 쓴 책입니다. 정말 흥미로운 내용이 많습니다. 그 중에서 몇 가지를 말씀드리겠습니다. '핵과학에 따르면 우주의 모든 물질은 양성자, 전자, 중성자라는 세 가지 기본 입자로 이루어져 있다.' 여러분도 학교에서 배우셨을 텐데요. 원자핵 안에 양성자와 중성자가 있고, 그 주위를 아주 작은 전자들이 돌고 있습니다. 눈으로는 볼 수 없을 만큼 매우 작지만, 이것이 바로 모든 물질의 기본 구성 요소입니다
체스트넛은 계속해서 이렇게 설명합니다. “이 아원자 입자들이 우주에서 가장 작은 조각이기 때문에, 이들 안에는 설계와 움직임의 비밀이 숨어있을 것이다. 만일 하나님이 계시다면, 이 입자들은 분명 하나님의 존재를 가리키고 있을 것이다. 양성자와 중성자는 핵을 구성하고 있고, 전자는 이와는 비교적 멀리 떨어져서 움직이고 있다. 따라서 잠시 전자는 제쳐두고, 양성자와 중성자로 이루어진 원자핵에 집중해 보겠다.”
체스트넛 박사는 이미 잘 알려진 사실에 대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모든 양성자는 양전하를 가지고 있다. 반면 중성자는 어떤 전하도 가지고 있지 않다. 과학자들은 이 이유에 대해 논의하기를 피하고 있다. 솔직히 말해서 그 이유를 모르기 때문이다. 하지만 더 이상한 점은 과학자들이 수십 년 동안 '같은 전하와 자기는 서로 밀어낸다'는 절대 불변의 법칙을 세웠다는 사실이다."
그렇다면 의문이 생깁니다. 전하를 내뿜는 수많은 양성자들이 모여 있다면, 왜 서로 튕겨나가지 않을까요? 도대체 무엇이 이 원자핵을 하나로 묶어주고 있는 걸까요? 법칙에 따르면 양성자들은 서로 같은 전하를 띠고 있어서 원자핵 안에서 나란히 존재할 수 없어야 합니다. 계속 읽습니다. “1930년대의 핵과학자들은 물체 사이의 쿨롱 반발력이 모든 원자핵 내부에서 작용하면서 끊임없이 핵을 파괴하려 한다는 결론을 내렸다.”
과학자들은 쿨롱의 법칙을 두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 힘이 실제로 작용하고 있으며, 원자를 산산조각 내려고 끊임없이 시도하고 있다. 현대에 이르러서야 우리는 이 결합력을 무력화시키고 원자를 쪼개는 방법을 발견했다.” 하지만 이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팔로 알토 근처에 가면 이 작업을 하기 위해 수십 킬로미터에 걸쳐 설치된 장치가 있습니다. “그런데 흥미로운 점은,” 과학자들이 아직도 완전히 이해하지 못하는 부분입니다. “핵 안에는 이 분열력에 맞서 싸우면서 모든 것을 하나로 묶어주는 또 다른 힘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과학자들은 이것을 '핵 접착제'라고 부른다.” 과학자들은 이것이 무엇인지 전혀 모릅니다. 하지만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여기 한 원자가 있습니다. 서로 충돌하는 두 가지 법칙이 공존하는 원자입니다. 인간이 과학적 지식을 총동원해 가장 기본적인 것을 연구했을 때, 도저히 답할 수 없는 문제와 마주하게 됩니다. 과학 법칙상 이 원자는 폭발해야 하는데, 어떤 힘이 이를 붙잡고 있는 것입니다. 뭔가가 분열하려는 힘을 막아내고 있습니다. 쿨롱의 법칙이라는 것이 원자를 파괴하려 하지만, 그보다 더 강력한 힘이 이를 온전히 붙들고 있습니다.
뉴욕에 있는 벨 연구소의 물리학자 칼 대로우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이 원자핵들은 존재할 수 없는 것들이다. 애초에 생성될 수도 없었고, 설사 생성됐다 하더라도 즉시 폭발했어야 했다. 하지만 이렇게 여전히 존재하고 있다." 폭발했어야 하는데 이렇게 여전히 존재하고 있답니다. 이것이 바로 만물의 근원입니다. "어떤 강력한 힘이 끊임없이 붙들고 있는 것이다." 저는 여러분께 이 강력한 힘을 소개해드리고 싶습니다.
조지 워싱턴 대학의 물리학 교수 조지 가모프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모든 물체는 잠재적인 핵폭발물이다. 하지만 산산조각 나지 않고 있다." 정말 놀랍지 않습니까? 도대체 무엇이 이것을 붙들고 있는 걸까요? 우리는 그 답을 알고 있습니다. 과학자들은 이를 "핵 접착제"라고 부르고, 심지어 "콜로서스"라는 이름까지 붙였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콜로서스"가 아닙니다. 바로 골로새입니다. 저는 이것이 골로새서 1장 17절이라고 확신합니다.
지난 일요일 밤에 저희 아버지와 이런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베드로후서 3장 10절을 보십시오.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붙잡고 계시다는 사실이 얼마나 다행인지 모릅니다. 하나님이 한번 손을 놓으시면 그걸로 끝이니까요. 베드로후서 3장 10절은 "주의 날이 도둑 같이 오리니"라고 합니다. 예상치 못한 때에 온다는 뜻이죠. "그 날에는 하늘이 큰 소리로 떠나가고 물질이 뜨거운 불에 풀어지고 땅과 그 중에 있는 모든 일이 드러나리로다 이 모든 것이 이렇게 풀어지리니" 이 모든 것이 어떻게 된다고요? 풀어진다고 합니다. 이는 말 그대로 묶여있던 것이 풀어진다는 뜻입니다. 이게 무슨 말일까요? 바로 핵의 접착력이 사라진다는 겁니다.
언젠가 하나님의 때가 되면 하나님은 원자들을 분리하실 것입니다. 그러면 우주는 핵분열로 폭발할 것입니다. 하늘은 "큰 소리"라 불리는 폭발과 함께 사라질 텐데, 우리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엄청날 것입니다. 그리고 "물질이 뜨거운 불에 풀어”질 것입니다. 우주를 가로지르는 엄청난 전기 방전으로 인한 또 다른 결과입니다. 모든 것이 불에 풀어져 녹아내릴 겁니다. 말 그대로 녹아서 사라질 것입니다. ‘루오(Luō)’는 "풀다"라는 뜻입니다. "풀다"가 바로 그 단어인데, 이는 "묶여있는 것을 푸는 것"을 의미합니다.
핵 접착제가 사라지면 모든 것이 풀어지고 흩어지게 됩니다. 결합력이 풀리면서 모든 원자의 핵이 파괴되는 거죠. 그러면 반발력의 법칙이 작용하게 되고, 쿨롱의 법칙에 의해 우주가 파괴될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만물을 붙드시며”, “만물이 그 안에 함께” 있다는 바울의 말은 그 모든 것을 붙들고 있는 이가 누구인지 우리에게 말해주는 것입니다.
골로새서 1장으로 다시 돌아갑니다. 보이지 않는 세계와 그리스도의 관계를 살펴보겠습니다. 빨리 살펴보고 마무리하겠습니다. 보이지 않는 세계와 그리스도의 관계는 16절에 다시 나옵니다. “만물이 그에게서 창조되되 하늘과 땅에서 보이는 것들과,” 그리고 무엇이죠? "보이지 않는 것들과.” 보이지 않는 것들입니다. 이어서 여러 종류의 천사들, 천사들의 계급이 나옵니다. “혹은 왕권들이나 주권들이나 통치자들이나 권세들이나.” 이 모든 것이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창조되었습니다. 여기서 천사들의 계급을 볼 수 있습니다. 이 계급들 간의 차이를 정확히 알 수는 없습니다. 조직 체계도 모릅니다. 다만 분명한 것은 서로 계급이 다르다는 겁니다. 어떤 천사들은 왕권, 어떤 천사들은 주권, 어떤 천사들은 통치자, 어떤 천사들은 권세로 불립니다. 이 모든 계급의 천사들을 그리스도께서 창조하셨습니다. 만드셨습니다. 예수님은 유출된 존재가 아닙니다. 바울이 말하려는 바는 예수님이 그들이 주장하는 모든 유출된 존재들을 만드신 분이라는 겁니다.
히브리서 1장 7절입니다. “또 천사들에 관하여는 그는 그의 천사들을 바람으로, 그의 사역자들을 불꽃으로 삼으시느니라 하셨으되.” 여기서 천사들이 창조되었다는 개념을 볼 수 있습니다. “아들에 관하여는 하나님이여 주의 보좌는 영영하며 주의 나라의 규는 공평한 규이니이다.” 참고로 히브리서 1장에는 그리스도께서 천사들보다 탁월하심을 보여주는 구약의 인용문이 7개가 있는데, 지금은 자세히 설명하지는 않겠습니다. 천사들은 창조된 존재이지만, 그리스도는 천사들보다 뛰어난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빌립보서 2장 11절이 말하듯이,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에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십니다.
에베소서 1장 21절에서 바울은 이렇게 말합니다. “모든 통치와 권세와 능력과 주권과 이 세상뿐 아니라 오는 세상에 일컫는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나게 하시고.” 만물이 그리스도 발 아래에 복종합니다. 통치를 상징하는 것입니다. 옛적에 왕이 높은 보좌에 앉아 있고 모든 백성이 그의 발 아래 있었던 것처럼, 모든 천사들과 통치자들과 권세들과 주권들, 즉 천사의 영역에서 다스리는 모든 존재가 예수 그리스도께 복종하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결코 천사들과 동일한 존재가 아니십니다.
베드로전서 3장 22절은 말합니다. “그는 하늘에 오르사 하나님 우편에 계시니 천사들과 권세들과 능력들이 그에게 복종하느니라.” 따라서 그리스도는 천사가 아니십니다. 그리스도는 천사들을 다스리십니다. 이처럼 우리는 예수님과 하나님의 관계, 예수님과 세상의 관계, 그리고 예수님과 보이지 않는 영적 세계와의 관계를 볼 수 있습니다.
네번째입니다. 18절에서는 예수님과 교회와의 관계를 볼 수 있습니다. 이미 많이 다룬 내용이라 길게 설명하지는 않겠습니다. 그냥 짚기만 하고 넘어가겠습니다. 18절입니다. “그는 몸인 교회의 머리시라 그가 근본이시요 죽은 자들 가운데서 먼저 나신 이시니,” 다시 말해 프로토토코스(prōtotokos), 즉 죽은 자 가운데 처음 나신 분이십니다. "이는 친히 만물의 으뜸이 되려 하심이요."
여기서 그리스도에 대한 네 가지 중요한 진리가 나타납니다. 첫째, 그리스도는 몸된 교회의 머리이십니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라 불립니다. 교회를 표현하는 여러 비유가 있습니다. 가족, 왕국, 포도원, 양떼, 건물, 신부라고도 불립니다. 하지만 제가 보기에 가장 특별하면서도 구약의 이스라엘에는 없었던 교회만의 독특한 비유는 바로 '몸'입니다. 이는 살아있는 유기체와 같습니다. 그리스도는 머리이시고, 우리는 뇌의 지시에 따라 움직이는 팔다리, 각종 장기와 같은 존재입니다. 바울이 교회를 설명할 때 가장 즐겨 사용한 비유이기도 하죠. 몇 주 후 아침 성경공부에서 고린도전서 12장을 자세히 살펴볼 예정이니까 오늘 저녁에는 깊이 다루지 않겠습니다.
한 가지 분명히 말씀드릴 것은 교회가 살아있는 유기체라는 점입니다. 우리는 살아계신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서로 떨어질 수 없게 연결되어 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 안에서 동일한 생명으로 살아계시기에, 우리는 그리스도와, 서로와 불가분의 관계를 맺고 있습니다. 우리는 모두 한 몸의 지체입니다. 따라서 서로를 섬기며 협력하여 일해야 합니다. 우리 모두는 서로에 대한 책임이 있습니다.
고린도전서 12장은 이 점을 아름답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몸은 하나됨을 특징으로 합니다. 다시 말해, 우리는 모두 한 방향으로 나아가는 하나의 몸입니다. 우리는 제각각 움직여서 경련을 일으키는 몸이 아닙니다. 우리는 하나로 연합되어 있고 머리의 통제에 순종합니다.
두번째입니다. 몸 안에는 다양성이 존재합니다. 머리되신 그리스도께 한마음으로 응답하고 하나됨이 있으면서도, 동시에 각기 다른 은사로 섬기는 다양성이 있습니다.
셋째로, 몸 안에는 상호성이 있습니다. 한 지체가 다른 지체를 섬기는 공동의 사역을 말합니다. 매우 중요한 부분입니다. 우리는 몸이고 그리스도는 머리이십니다. 그리스도는 신성하신 인도자이시며, 지도자이시고, 주관하시는 권세이십니다. 바울이 골로새 교인들에게 말한 것처럼, 우리는 천사들에게 의존하지 않습니다. 또한 초자연적인 환상이나 그리스도 이외의 어떤 지식에도 의존하지 않습니다. 머리이신 그리스도가 교회를 다스리십니다.
우리의 뇌 아래쪽 가운데에 위치한 뇌하수체는 여러 기능 중에서도 성장 호르몬을 조절합니다. 우리의 성장은 머리의 통제 하에 이루어집니다. 소뇌는 각 근육이 조화를 이루어 움직이게 합니다. 우리의 모든 움직임과 기능은 뇌의 통제 하에 이루어집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그리스도께서는 몸인 교회를 성장하게 하시고 인도하십니다. 그리스도가 머리이시며 교회를 다스리십니다. 우리는 그리스도께 반응해야 합니다. 그리스도가 우리를 주관하십니다. 그리스도는 단순히 여럿 중 하나가 아니십니다. 우리가 예배하기로 선택한 여러 천사 중에서 하나가 아닙니다. 그리스도는 몸된 교회의 머리이십니다.
바울은 두번째로 이렇게 말합니다. “그가 근본이시요.” ‘근본’에 해당하는 헬라어 ‘아르케(archē)’는 시작을 뜻합니다. 순서상으로 맨 처음이라는 뜻입니다. 또한 "우두머리" 혹은 "개척자"로 번역할 수 있는데, 이는 맨 앞에 있는, 최상위에 있는, 첫번째라는 뜻이며, "근원"이라는 의미도 포함합니다. 그리스도는 교회의 근원, 즉 교회를 시작하게 한 능력이시며, 동시에 교회의 우두머리이자 으뜸이 되시는 분입니다.
바울은 또 말합니다. “죽은 자들 가운데서 먼저 나신 이시니.” 여기에서 다시 ‘프로토토코스’가 쓰입니다. 그 의미에 대해서는 앞에서 말씀드렸습니다. 이는 죽음에서 부활한 모든 사람들 중에서 그리스도가 우두머리라는 뜻입니다. 먼저 나신 이시며, 선두에 서 계시고, 서열이 가장 높으시며, 모든 이들 중 가장 위대하신 분입니다.
넷째로, 하나님은 그리스도가 모든 것에서 으뜸이 되게 하셨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만물의 으뜸으로 삼으신 것은 죽은 자들 가운데서 살아나셨기 때문입니다.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죽은 자들 가운데서 살아나셨기에 아버지께서 그리스도를 지극히 높이셨습니다. 예수님이 으뜸이 되신 것입니다. 우주에서 서열이 가장 높으신 분, 역사의 기준점이 되시는 분, 창조 영역에서 대리자, 목표, 선구자, 유지자, 통치자이신 분, 교회의 머리이신 분, 시작이요 근원이며 우두머리이신 분, 부활하신 모든 이들 중 가장 높으신 분,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시는 분이 "으뜸"이라는 칭호를 받으셔야 하지 않겠어요? 이처럼 본문에서 우리는 하나님, 우주, 보이지 않는 세계, 교회와의 관계라는 측면에서 그리스도를 볼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다른 모든 것과의 관계에서 그리스도를 설명합니다. 19절입니다. “아버지께서는 모든 충만으로 예수 안에 거하게 하시고.” 모든 것을 포함하는 구절입니다. 하나님의 어떤 것도 다른 존재 안에 있지 않습니다. 모든 것이 그리스도 안에 있습니다. 신성의 능력과 주권의 속성들이 여러 존재들에게 나누어져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이 모든 것은 그리스도라는 한 분 안에 나타나 있습니다. 이단들이 가르치던 것처럼 구원받기 위해 다른 천사들의 도움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다른 영들이나 존재들도 필요하지 않습니다. “모든 충만으로 예수 안에 거하게 하시고.”
그리스도는 그 자체로 완전하십니다. 2장 3절입니다. “그 안에는 지혜와 지식의 모든 보화가 감추어져 있느니라.” 그리스도와 견줄 수 있는 존재는 없습니다. 2장 9절입니다. “그 안에는 신성의 모든 충만이 육체로 거하시고 너희도 그 안에서 충만하여졌으니.”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합니다. 다른 무엇이 더 필요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그리스도인이 될 때 놀라운 일이 일어납니다. 요한복음 1장 16절입니다. “우리가 다 그의 충만한 데서 받으니 은혜 위에 은혜러라.” 우리가 그리스도인이 되면 그리스도의 모든 것이 우리의 것이 됩니다. 이 얼마나 위대한 진리입니까.
존 오웬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리스도에 대한 계시와 복된 복음은 창조보다 더욱 뛰어나고 영광스러우며, 하나님의 지혜와 선하심으로 가득 차 있어서 완전히 이해하기란 불가능하다. 이것을 알지 못하면 인간의 마음은 다른 발명과 발견을 자랑스러워할지 모르지만, 결국 어둠과 혼돈 속에 머물게 된다. 그러므로 이것은 우리의 가장 깊은 생각과 묵상, 그리고 최선의 노력을 기울일 만한 가치가 있다. 우리가 미래에 누릴 복이 그리스도가 계신 곳에서 살면서 그리스도의 영광을 보는 것이라면, 복음을 통해 나타난 그 영광을 지금부터 꾸준히 묵상하는 것보다 더 좋은 준비가 있을까? 그 영광을 바라봄으로써 우리도 점차 같은 영광으로 변화되어 가기 때문이다.”
베드로전서 말씀으로 마무리하겠습니다. “너희 마음에 그리스도를 주로 삼아 거룩하게 하고…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그를 아는 지식에서 자라 가라.” 기도하겠습니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오늘 밤에 그리스도를 보여주시며 우리를 가르쳐주시니 감사합니다. 인류의 역사 속으로 들어오신 놀라운 기적에 감사드립니다. 이 귀한 성도들이 주님을 사랑하여 이 자리에 나아와 듣고 배우고 세상에 나가서 진리대로 살아가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또한 저를 격려하게 하시고 마치 돌이 돌을 갈아 더 날카롭게 만드는 것처럼 저를 다듬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이들의 영혼을 먹일 수 있도록 부지런히 성경을 연구하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주님, 제가 주님께 나아가 양식을 얻어 성도들을 먹이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오늘 저녁 예배가 예수 그리스도만 높이는 시간이 되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온전한 위엄을 경험하는 시간이 되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여러분이 기도하시는 동안, 우리의 복되신 그리스도를 생각하고 그리스도께 나아갈 수 있는 기회를 드리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직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알지 못하시는 분들이 계실 겁니다. 여러분은 그리스도에 대해 들으셨습니다. 특히 오늘 저녁에는 집중적으로 들으셨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으로서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여러분과 저의 죄를 위해 십자가에 돌아가셨습니다. 여러분이 생명을 얻게 하고자 돌아가셨고, 우리의 죄값을 치르셨습니다. 예수님은 여러분에게 은혜의 선물을 주십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선물이지 우리가 자랑할 수 있는 행위로 얻는 것이 아닙니다. 그 은혜의 선물은 구원입니다.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그저 네 손을 내밀어 내게로 향하기만 하면, 내가 이 선물을 주리라. 나는 네가 나를 위해 네 자신을 내려놓고, 네 방식대로 살며 네 뜻대로만 하려는 것을 멈추고, 내가 인도하고 다스려서 네 삶을 충만케 하도록 허락하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다."
저는 여러분에 대해 잘 모르지만, 요한복음 1장 16절이 말하는 것처럼 그리스도의 충만함을 받았다는 것이 정말 기쁩니다. 여러분께 말씀드립니다. 이 선물을 받고 싶으시다면 그저 주님께 이렇게 기도하시면 됩니다. “주님, 저는 이 모든 것을 다 이해하지는 못합니다. 하지만 주님께서 저를 위해 돌아가셨고 구원을 선물로 주셨다는 것은 압니다. 이 선물을 받기 원합니다."
이렇게 마음속으로 기도해보시겠습니까? 그러면 응답받으실 겁니다. 주님은 항상 응답하십니다. 어쩌면 지금 시련을 겪고 계시거나 불안에 떨고 있는 분도 계실 겁니다. 이제는 더 이상 어찌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러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시는 분도 계실 겁니다. 예수 그리스도께로 돌이키십시오. 그러면 회복될 것입니다. 잃을 것이 없습니다. 이것은 오직 여러분과 하나님 사이의 개인적인 일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아버지, 오늘 밤 이렇게 교제를 나누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정말 좋았습니다. 가족들과 함께 귀한 시간을 보냈습니다. 얼마나 풍성한 시간이었는지 모릅니다. 성도들을 더 알아갈 수 있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찬양으로 주님께 우리의 사랑을 표현할 수 있게 하시고, 주님께서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기에 우리도 서로를 진정으로 사랑하는 법을 배우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무엇보다도 예수 그리스도께 감사합니다. 주님께서 왜 우리를 택하셨는지 그 신비에 대해서는 영원히 이해할 수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감사드리며, 주님의 영이 이끄시는 분들을 오늘 밤 주님께로 인도하셔서 주님의 영광을 드러내 주옵소서. 우리가 배운 진리들을 나눌 수 있는 한 주가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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