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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아침에도 지난 5주 동안 함께 나누고 있는 주제인 ‘교회 해부학’에 대해 계속해서 살펴보겠습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교회의 모습에 대해 나누게 된 것은 하나님의 인도하심이라고 믿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교회에 놀라운 복을 허락해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세우신 이 교회, 그러니까 우리 교회 성도님들의 마음 속 깊은 곳에는 하나님이 원하시는 교회의 모습을 이루고자 하는 갈망이 있다고 믿습니다. 교회 지도자들의 마음에서도 분명하게 드러나고 있고, 여러분 각자의 마음속에도 있다고 확신합니다. 하나님은 정말 우리 교회에 놀라운 복을 주셨습니다. 우리는 지금 영적으로 가장 풍성한 교회 가운데 하나라고 말해도 될 만큼 많은 것을 누리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을 누리고 있다고 해서 만족하면서 머물러 있어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반드시 우리 교회의 기초가 무엇인지, 복을 주신 이유가 무엇인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최상의 것을 허락해 주시는 이유가 무엇인지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지금 우리는 일종의 ‘영적 고고학’을 하고 있습니다. 다시 기초로 돌아가서 우리가 무엇에 헌신하고 있는지를 다시금 파헤쳐 보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교회에 새로운 성도님들을 참 많이 보내주셨습니다. 하나님을 찬양하며 그 이름을 높여 드립니다. 지난 몇 년 사이에 새로 교회에 오신 분들도 많습니다. 아마도 그레이스 교회가 어떤 교회인지, 이 교회가 정말로 무엇을 중심으로 세워졌는지, 무엇이 이 교회를 다르게 만들고 있는지, 무엇에 헌신하고 있는지를 아직 잘 모르실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많은 분들에게는 이미 익숙할지도 모르는 내용을 다시 확인하고 있습니다.

새로운 이야기를 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이미 잘 알고 있는, 그러나 너무나 중요한 기초들을 다시 강조하려는 겁니다. 그래야 우리 교회가 어떤 교회인지, 어떤 관점을 가지고 있는지를 분명하게 이해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지금 계획대로라면 아마 다음주 주일에 이 시리즈를 마무리하게 될 텐데, 그렇게 되면 앞으로 이 교회에 새로 오는 분들이 “이 교회는 어떤 교회인가요? 무엇에 중점을 두고 있나요?”라고 물으실 때에, “우리는 이러이러한 것들에 헌신하고 있습니다”라고 말씀을 하시면서 이번 시리즈가 담긴 설교 테이프 한 묶음을 건네실 수 있을 겁니다.

오늘 설교를 시작하면서 꼭 말씀드리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여러분 안에 나타나고 있는 하나님의 역사를 보면서 제가 주님 안에서 정말 기뻐하고 있습니다. 제가 지금 이런 설교를 하는 이유는, 여러분에게 부족한 것이 있어서 책망하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 반대입니다. 이미 여러분 안에 이런 모습이 있기 때문에, 더욱 풍성하기를 소망하면서 드리는 말씀입니다. 마치 바울이 이렇게 말했던 것처럼 말입니다. “형제 사랑에 관하여는 너희에게 쓸 필요가 없으니 너희들 자신이 하나님의 가르치심을 받아 서로 사랑함이라… 형제들아 권하노니 더욱 그렇게 행하고.” 저는 지금 이런 마음으로 이 말씀을 전하고 있습니다. 이 덕목들이 전혀 없다는 것이 아니라, 이미 가지고 있기에 더 많이 나타나기를 원합니다. 제가 두려워하는 것은 이것입니다. 교회가 점점 성장하면서, 하나님께서 과거에 우리에게 복을 주시기 위해 사용하셨던 기초에서 점점 멀어질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렇게 되면 우리는 점점 무너지게 될 겁니다. 하나님께 더욱 쓰임받는 교회로 자라기보다 점점 그 능력을 잃어버리게 될 겁니다. 그러나 지금 우리 교회에서 하나님께서 행하고 계신 사역을 바라볼 때, 그리고 여러분 한 분 한 분의 삶에서 그리스도의 모습이 나타나는 것을 볼 때에, 저는 성령님이 이미 이런 덕목과 은혜를 이루어가고 계시다는 사실을 분명히 느낍니다. 그래서 여러분이 더욱 헌신해 주시기를 바랄 뿐입니다.

그리고 여러분이 다른 사람들의 눈에 어떻게 비치고 있는지를 알려드리기 위해, 제 손에 있는 세 통의 편지를 읽어드리겠습니다. 이 편지들은 저희 목자 컨퍼런스(Shepherds’ Conference)에 참석했던 목회자분들이 보내온 것입니다. 우리 교회에서 보고 느낀 점을 전해주셨습니다. 여러분도 궁금하실 겁니다. 먼저 딕 메이휴(Dick Mayhue) 목사님이 받은 편지입니다.

“이 훌륭한 목자 컨퍼런스(Shepherds’ Conference)를 위해 수많은 시간을 들여 꼼꼼히 준비해 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이번이 세번째인데, 참석할 때마다 사역에 더 큰 통찰과 도움을 얻고 돌아갑니다. 이렇게 귀한 시간이 가능하도록 섬김의 마음으로 헌신해주신 신실함에 깊이 감사드립니다. 또한 그레이스 커뮤니티 교회와 그 성도님들께서 저희 참석자들을 향해 보여주신 끊임없는 섬김의 본을 높이 평가하고 싶습니다. 그레이스 교회에서 가장 놀라웠던 점은 최고 수준의 목회자로부터 주방에서 일하시는 분들에 이르기까지, 모든 이들에게 섬김의 정신이 깊이 스며들어 있다는 것입니다. 수고해 주신 분들께 저희가 얼마나 감사하고 있는지 꼭 전해주시기 바랍니다. 저희 교회 당회는 우리 모든 지도자들이 다음번 목자 컨퍼런스(Shepherds’ Conference)에 꼭 참석하게 하기로 결의하였습니다. 따라서 앞으로도 계속 찾아뵙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의 인도하심을 받는 모습에 감동을 받았습니다. 또 미국 전역과 전 세계의 사역자들에게 교회에서 성경의 원리를 어떻게 적용해야 하는지 배울 수 있도록 문을 활짝 열어주셔서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하나님께서 앞으로도 계속해서 목사님을 통해 일하시기를 기도합니다.”

우리 교회에서 목자 컨퍼런스나 라디오 컨퍼런스를 주최할 때에 제 목표 중 하나는 우리 성도님들을 외부 목회자들에게 소개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제가 여러분께 그분들을 저녁 식사에 초대하거나 집으로 초대해서 함께 시간을 보내고 알아가도록 권하는 것입니다. 그분들이 여러분의 삶 속에서 주 예수 그리스도를 기쁘시게 하는 일들이 일어나고 있다는 것을 볼 수 있기를 원합니다. 우리는 감출 것이 없습니다. 며칠 전에 들은 이야기인데, 얼마 후에 열릴 1984년 로스앤젤레스 올림픽을 앞두고 시 당국이 LA에 있는 노숙자들을 모두 뉴홀(Newhall) 지역으로 이주시키려는 계획이 있었다고 합니다. 올림픽 기간 중에 LA에 방문하는 사람들이 노숙자의 존재를 모르게 하려는 의도였죠. 뉴홀까지 찾아갈 가능성은 거의 없으니까요. 하지만 제가 250명의 목회자들을 이곳으로 초대할 때는, 교회 안에 있는 문제 있는 성도들을 다른 곳으로 보내고 싶지 않습니다. 저는 정말로 하나님께서 우리 성도들의 삶 속에서 역사하고 계시다고 믿습니다. 그리고 이곳을 찾아오는 목회자들은 제가 전하는 말씀이 실제로 성도들의 삶을 변화시키고 있는지를 보고 싶어하기 때문에, 저는 그분들이 직접 여러분을 만나서 확인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이 모든 것들이 검증되기를 원합니다. 워싱턴 주에서 온 한 목회자는 편지에서, 여러분의 마음 속에 제가 가르쳤던 진리들이 실제로 살아 움직이는 것을 보고 큰 격려를 받았다고 했습니다.

또 다른 편지는 미시시피 주의 한 젊은 목회자가 보낸 편지입니다. 제가 읽겠습니다. "이번 한 주간을 통해 하나님께서 제게 행하신 모든 일에 대해 감사드리고 싶어서 이렇게 몇 자 적습니다. 저는 그레이스 교회의 사역을 통해 하나님의 은혜와 일하심에 대해 더 많이 배우고 있습니다. 이번 목자 컨퍼런스를 통해 말씀을 통해 주님을 알아가고, 또 그 말씀을 통해 주님을 전하는 일에 대한 기쁨과 헌신과 열망을 완전히 새롭게 다지게 되었습니다. 수백만 번 감사드립니다.” 설교자들은 가끔 이렇게 과장된 표현을 하죠. “이번 한 주간 보여주신 환대와 친절에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여러분은 정말 삶으로 말씀을 살아내고 계십니다.” 정말 멋진 표현입니다. 여러분은 정말 삶으로 말씀을 살아내고 계십니다. 계속 읽겠습니다. “가르침과 본을 통해 진정한 종의 마음을 보여주셨습니다. 저희는 여러분 모두를 깊이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정말 큰 격려가 됩니다. 외부에서 온 누군가가 우리 그레이스 교회에 와서 우리 성도님들을 만나고 일주일간 함께 시간을 보낸 뒤에 “여러분은 정말 말씀대로 살아가고 있네요”라고 말해주는 것보다 더 큰 칭찬이 어디 있겠습니까? 이번에는 미시간 주의 목회자가 보내온 편지를 읽어드리겠습니다.

“이런 편지는 아마도 매년 목자 컨퍼런스 이후에 수도 없이 받으시리라 생각하지만, 그래도 꼭 써야겠다는 마음의 감동을 받아 이렇게 제 깊은 감사를 전합니다. 저는 신학교 시절부터 그레이스 교회에 대해 들었기에, 늘 여러분의 사역을 직접 보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이번에 담임 목사님께서 저를 컨퍼런스에 보내주시기로 하셨을 때, 하나님께서 이번 기회를 통해 저에게 특별한 은혜를 주실 것이라고 확신했습니다. 사실 저는 교회를 새로 개척해야겠다는 마음을 품고 있었지만, 아직 하나님께서 그 어떤 기회의 문도 열어주시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이제야 그 이유를 알게 되었습니다. 저희 교회 청소년 사역은 성공을 거둔 것처럼 보였습니다. 많은 아이들이 예수님을 영접했습니다. 제가 주일마다 전하는 말씀은 실용적이고 실제적인 필요에 맞춰져 있었습니다.”

“그러나 3년 반이 지나면서, 아내와 저는 무언가 본질적인 부분에서 잘못되어 있다는 생각에 낙심하고 있었습니다. 이번 컨퍼런스에서 목사님과 목사님 교회 목회자들을 만나면서 문제의 근원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저희는 아이들과 굉장히 좋은 관계를 맺고 있고, 아이들도 우리 부서와 교회에 대해 상당한 흥미를 가지고 헌신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말씀에 개인적이고 실제적으로 헌신하는 마음은 없는 것 같습니다. 그야말로 저희가 사역의 기초를 놓치고 있었던 겁니다. 더 안타까운 사실은, 저희가 이와 같은 목표를 가진 교회를 그동안 실제로 본 적이 없다는 것입니다. 물론, 진짜 문제는 바로 저희 부부 자신이 하나님의 말씀 속에 충분히 거하지 않았다는 데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저희에게 이 사실을 어떻게 보여주셨는지 말씀드리겠습니다.”

“컨퍼런스 기간 동안 저와 아내는 친구 집에 머물렀습니다. 주일 아침에 친구 교회 대학부에서 말씀을 전해달라는 요청을 받았기 때문에, 저는 원래 그레이스 교회의 예배에는 참석하지 않을 계획이었습니다. 그런데 한 주 내내 예배에 꼭 참석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계속해서 듣게 되었습니다. 결국 토요일 오후에 마음을 바꾸고 친구에게 주일 아침에 그레이스 교회로 가겠다고 말했습니다. 다음 날 아침 저와 아내는 예배당으로 들어섰습니다. 무엇을 기대해야 할지 잘 모르는 상태였습니다. 저희 두 사람은 새로운 방식이나 분위기에 대해서 다소 회의적인 편이라는 것을 먼저 말씀드려야 할 것 같습니다. 그런데 예배를 마치고 나올 때, 저희는 둘 다 조금 전에 경험한 것이 지금껏 우리가 생각해왔던 사역의 모습과는 전혀 다르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제 아내가 한 말이 가장 정확한 표현이라고 생각합니다. 저희 교회에서는 사람들이 거의 지쳐서 교회에 옵니다. 한 주를 간신히 버티고 나서 다음 주일 예배까지 연명할 또 하나의 ‘공급’을 기대하는 것이죠. 그런데 그레이스 교회의 성도들은 이미 ‘충만한’ 상태로 오는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스스로 말씀 안에 거하는 삶’으로 인도받고 있기 때문이죠. 성도님들은 예배에 와서 더 많은 영적 공급을 기대하면서도 무엇보다 진정으로 ‘예배’를 드리기 위해 오는 것 같았습니다. 저는 충격을 받았습니다. 이런 모습을 한 번도 본 적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감사하게도 그날 아침 이후로 저희의 삶은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매일 말씀을 묵상하고 있고, 가르치거나 설교를 할 때는 한 구절씩 차근차근 풀어서 전하고 있습니다. 사역하면서 이렇게 큰 기쁨과 만족감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을 전에는 미처 몰랐습니다. 정말 짧은 시간에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성도들이 저희에게 다가와서 캘리포니아에서 무슨 일이 있었냐고 묻습니다. 말하다 보면 모두 익숙한 이야기이지만 실제로 본 적은 한번도 없었습니다. 이제 저희는 주님을 신뢰하며 주님께서 곧 이 원칙들을 온전히 실천할 수 있는 새로운 사역지를 허락해 주실 것을 기대하고 있습니다. 목사님의 사역이 저희에게 가져다 준 혁신적인 변화에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한 달 전쯤에 이 젊은 목사님에게서 다시 편지를 받았습니다. 드디어 교회를 개척했다면서 새로 시작하는 데 도움이 될 만한 자료들을 좀 보내줄 수 있겠냐는 내용이었습니다. 이 이야기에서 참 놀라운 점은, 단순히 어떤 세미나나 강의, 혹은 인상 깊은 한두 마디 때문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이 교회를 통해 받은 전인적인 사역에 반응한 것입니다. 지난 수요일 밤에는 <예수님을 위한 유대인(Jews for Jesus)>의 대표인 모이쉐 로젠(Moishe Rosen) 목사님이 우리 교회를 방문하셨습니다. 말씀을 전하시기 전에 복도에서 잠시 이야기를 나눴는데, 방금 런던에서 돌아오셨다고 했습니다. 런던의 여러 곳을 다녀왔는데, 가는 곳마다 누군가가 다가와서 이렇게 묻더랍니다. “캘리포니아에서 오셨죠? 혹시 그레이스 커뮤니티 교회 아십니까?” 그래서 안다고 하셨답니다. 그랬더니 사람들이 “그 교회에 대해 좀 들려주시겠어요?” 이렇게 묻더랍니다. 그러면서 로젠 목사님이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맥아더 목사님, 목사님 교회의 좋은 평판이 제가 가는 곳마다 들려오는 것이 참 놀랍습니다. 솔직히 그런 성도님들이 있는 목사님이 부럽습니다” 이렇게요. 그래서 “저도 가끔 제 뺨을 꼬집으면서 ‘하나님, 정말 제가 이 복된 사역을 맡을 만한 사람입니까?’라고 묻곤 합니다” 이렇게 말씀을 드렸습니다.

우리에게는 우리 교회를 바라보는 사람들에 대한 책임이 있습니다. 다른 곳에서는 보지 못했던 무언가를 우리 교회 안에서 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저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복을 주신 데에는 분명한 이유가 있다고 믿습니다. 하나님의 복을 가장 많이 누릴 수 있는 자리에 우리를 두신 원리가 있다고 믿습니다. 단지 교회 규모가 크기 때문이 아닙니다. 사람들이 이곳에서 느끼는 분위기, 그러니까 성도들이 가진 자세와 헌신이 사람들에게 전해지는 것입니다. 진심으로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이라면 반드시 지녀야 할 태도이지만, 다른 교회에서는 잘 보이지 않는 그 태도를 우리 교회에서 발견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저는 이 시리즈를 통해서 이렇게 묻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교회가 하나님이 원하시는 모습 그대로 되기 위해 꼭 갖춰야 할 것은 무엇인가?” 다시 말해서 우리가 무엇을 가지고 있어야 하고 어떤 것에 헌신해야 하는지를 생각하고 있습니다. 우리 교회에 새로 오신 분들 가운데도 같은 질문을 하시는 분들이 계실 겁니다. “이제 내가 이 교회에 속하게 되었는데, 추구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 함께 힘써야 할 것들이 무엇인지, 가르치고 전하고 제자 삼는 일에서 반드시 붙들어야 할 것이 무엇인지 알고 싶다”라고 생각하실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지금 이 기본적인 것들을 되짚어 보고 있는 것입니다.

사실 저는 지금 이 시리즈가 <믿음의 기초>반 같다는 생각을 합니다. 아주 익숙한 영역을 다루고 있는 느낌입니다. 그래서 매주 설교를 마치고 아내에게 이렇게 묻곤 합니다. “이 모든게 너무 기본적인 이야기인 것 같아. 너무 단순한 이야기 같아. 이 방향이 맞는지 모르겠어.” 그러면 아내는 저를 격려하면서 이렇게 말해줍니다. “여보, 당신은 너무 기본이라고 느낄지 몰라도, 모든 사람이 그렇게 느끼는 건 아니에요.” 저도 아내의 그런 격려가 필요합니다. 정말 너무 기본적인 이야기 같아서 이 길이 맞는지 확신이 서지 않을 때가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계속해서 이 기초를 다시 세워야만 합니다.

베드로가 했던 말이 떠오릅니다. “내가 항상 너희에게 생각나게 하려 하노라… 너희를 일깨워 생각하게 함이 옳은 줄로 여기노니.” 우리는 끊임없이 이 길을 떠올리고 다시 붙들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처음에는 제대로 가고 있다가도 어느 순간 한쪽으로 흐트러지거나 방향을 잃어버리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계속해서 옳은 길로 가고 있는지 다시 점검해야 합니다. 그래야 어디로 가야 할지 잊지 않고 계속 걸어갈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지금 ‘교회’에 대해 알아보고 있고, ‘몸’이라는 비유를 사용해서 설명하고 있습니다. 먼저, 하나님이 원하시는 교회가 되기 위해서는 ‘골격’이 있어야 한다고 말씀드렸습니다. 다시 말해, 교회의 형태를 잡아주는 기초가 있어야 합니다. 교회의 골격이 되는, 결코 타협할 수 없는 기초적인 진리가 있다고 말씀드렸습니다. 다섯 가지를 소개했습니다. 첫째는 하나님을 높이는 관점, 둘째는 성경의 절대적인 우선순위, 셋째는 교리의 명확성, 넷째는 거룩한 삶, 그리고 다섯째는 영적인 권위입니다. 이 다섯 가지를 하나로 묶어서 교회의 골격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이제 비유의 두번째 차원으로 넘어가 보겠습니다. 우리 몸에는 몸 안을 흐르는 내부 체계가 있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이것이 바로 생명 체계입니다. 몸에 생명을 주고 행동하고 반응할 수 있는 능력을 줍니다.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교회 안에도 반드시 내부 체계가 있어야 합니다. 저는 이것이 곧 올바른 영적 태도라고 믿습니다. 겉으로 드러나지 않지만 사람들의 삶 속에서 흐르고 있는 것이 무엇인가, 이것이 진짜 중요한 문제입니다. 저는 우리 교회를 견학하러 오는 목회자들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눈에 보이는 것만 가져가서 따라하려고 하지 마십시오. 겉모습 뒤에, 말하자면 몸의 내부에는 반드시 흘러야 할 영적인 태도들이 있습니다. 먼저 성도들의 마음 속에 이러한 태도들이 있어야만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사역을 시작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여러분께 그 태도를 쭉 소개해 드렸습니다. 다시 간단히 말씀드리겠습니다. 순종, 겸손, 사랑, 연합, 섬김, 기쁨, 평안, 감사, 절제, 용서, 하나님을 의지함, 유연성, 책임의식, 성장, 충성, 그리고 소망입니다. 일일이 다 적으실 필요는 없습니다. 이미 다 살펴본 내용이니까 그냥 다시 한번 머릿속으로 떠올려 보시면 됩니다. 저는 우리가 이 태도들을 서로 길러가야 한다고 믿습니다. 설교를 통해서, 가르침을 통해서, 훈련과 제자도를 통해서, 교회가 행하는 모든 사역을 통해서 이러한 영적 태도들을 마음속에 심어야 합니다.

이제 교회의 골격이 바로 서 있고, 내부에 올바른 태도가 흐르고 있다면, 세번째 차원으로 나아갈 준비가 된 것입니다. 바로 오늘 우리가 살펴볼 내용입니다. ‘기능’, 즉 몸의 근육에 해당하는 부분입니다. 이제 몸의 형태가 갖추어져 있고, 생명이 흐르고 있다면, 그 몸은 무엇을 해야 할까요? 교회는 세상에서 어떤 역할을 감당해야 할까요? 말하자면, 교회의 사명은 무엇입니까? 누군가 여러분에게 이렇게 묻는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교회는 무엇을 해야 합니까?” 만일 어떤 교회가 하나님을 올바르게 예배하고, 성경의 권위를 인정하고, 건전한 교리를 확립하는 데 헌신하고 있다면, 성도들의 삶이 바르게 세워져 있고, 거룩한 삶을 중요하게 여기고, 하나님께서 세우신 영적 권위 아래 순종하고 있다면, 그리고 마음속에 올바른 영적 태도가 자리 잡고 있고, 생명력이 넘쳐 흐르고 있다면, 이제 그 교회는 무엇을 해야 할까요?

교회가 반드시 감당해야 할 책임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저는 이렇게 대답하고 싶습니다. 지금부터 함께 살펴볼 주제입니다. 저는 이것을 ‘근육’이라고 부릅니다. 바로 기능입니다. 움직이게 하는 힘입니다. 오늘과 다음 시간에 이 부분을 다루고, 마지막 시간에는 간단히 ‘살’에 해당하는 부분을 덧붙인 후에 이번 시리즈를 마무리하려고 합니다. 오늘은 먼저 네 가지 핵심 기능을 말씀드리겠습니다. 너무나 기본적인 내용이라 이미 잘 아시겠지만, 우리가 무엇에 헌신하고 있는지를 다시 한번 분명히 하기 위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첫번째 기능은 ‘설교와 가르침’입니다. 이 두 가지는 모두 하나님의 진리를 선포하는 일이라는 점에서 함께 묶어서 설명하겠습니다. 설교와 가르침이야말로 교회의 가장 기본적인 기능이라고 생각합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계시를 받은 공동체입니다. 따라서 교회는 그 계시를 흘려보내는 통로가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을 우리에게 드러내신 것은, 우리가 하나님을 올바로 이해하고 알게 하시기 위함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뿐 아니라 선포해야 합니다. 그래서 여러분이 이 자리에 올 때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겁니다. 어떤 모임에 참여하든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고 나누는 것입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말씀을 설교하고 가르치는 곳이기 때문이죠. 저는 이것이 교회 안에서 가장 우선이 되어야 한다고 확신합니다. 반드시 붙들고 있어야 할 교회의 기능입니다. 우리는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는 사역에 전념해야 합니다. 요즘 많은 설교들을 들어보면 마음 한켠이 아플 때가 있습니다. 그중에는 유익한 것도 있고, 실제로 좋은 내용도 있지만, 마치 강단에서 상담을 하는 듯한 내용이 넘쳐나는 것이 현실입니다. 윤리적인 문제들을 다루는 데 그치는 경우도 많습니다. 그리고 성경공부라는 이름으로 사람들이 모여서 각자 아는 만큼 자기 의견을 내놓지만, 결국 서로의 무지만을 나누는 경우도 참 많습니다. 성경을 제대로 알지 못하기 때문이죠. 하지만 교회는 하나님의 말씀을 분명하게, 이해할 수 있게, 직접적으로, 그리고 권위 있게 선포해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그래서 그레이스 교회는 언제나 강단 중심의 설교, 그리고 체계적인 가르침에 힘쓸 것입니다. 우리는 언제나 말씀을 전하고 가르치는 사역에 전념할 것입니다.

이제 잠시 바울이 디모데에게 보낸 두 편지, 그러니까 디모데전서와 디모데후서를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이 서신들은 목회 사역의 이해를 돕기 위해 기록되었습니다. 목회자의 입장에서도, 또 회중의 입장에서도 큰 도움이 됩니다. 실제로 디모데전서 3장 15절은 이 편지가 하나님의 집, 곧 교회 안에서 어떻게 행하여야 할지를 가르치기 위해 기록되었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이 서신은 교회 안에서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하고, 어떻게 기능하며, 어떻게 사역해야 하는지를 알려주는 내용입니다. 그리고 저는 디모데전서와 디모데후서의 핵심은 건전한 교리를 선포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데 있다고 생각합니다. 같은 장, 디모데전서 3장 16절도 매우 흥미로운 말씀입니다. 이 구절은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의 신비를 요약해 줍니다. 논쟁의 여지 없이, 곧 아무도 이의를 제기할 수 없는 명확한 사실로서 경건의 비밀이 크다고 선언합니다. 그리고 이 경건의 비밀이 무엇입니까? 하나님께서 육신으로 나타나셨다는 것입니다. 참으로 놀라운 사실입니다. 이 진리를 대수롭지 않게 여기면 안 됩니다. 하나님이 육신을 입으셨다는 것, 이것이야말로 기독교 신앙의 중심이자 핵심입니다. 만일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육신으로 나타나시지 않았다면, 우리가 가진 믿음은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됩니다. 예수님께서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시고, 죽으시고, 다시 살아나셨다는 사실, 이것이야말로 우리 믿음의 핵심입니다. 아무도 이 위대한 사실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이 구절을 잘 살펴보십시오. "그는 육신으로 나타난 바 되시고 영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으시고 천사들에게 보이시고 만국에서 전파되시고 세상에서 믿은 바 되시고 영광 가운데서 올려지셨느니라." 바로 그 중심에 "만국에서 전파되시고", 즉 선포되셨다는 말씀이 있습니다. 저는 이 16절 안에서 성육신의 본질적인 요소를 찾았습니다. 그중 하나가 바로 '선포', 곧 '설교'입니다. 하나님께서 육신으로 나타나신 사건이 반드시 선포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사도 바울이 말하고자 하는 핵심입니다. 반드시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설교는 기독교에만 있는 특별한 요소입니다. 세상의 그 어떤 것도 교회가, 하나님의 거룩한 사람들이 감당하는 설교 사역을 대신할 수 없습니다. 세상은 영화를 만들고 책을 쓰는 등 다양한 방식으로 메시지를 전달합니다. 하지만 설교는 전혀 다릅니다. 세상의 그 어떤 것도 하나님의 말씀을 알고 성령의 은사를 받은 사람들이 그 진리를 선포하는 일을 흉내낼 수 없습니다. 따라서 저는 교회의 중심에 성육신이 있고, 성육신의 중심에는 이 성육신을 선포하는 일이 있다고 믿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설교가 교회 사역에서 가장 중심적인 위치를 차지하는 겁니다.

이제 바울은 젊은 디모데가 사역을 시작할 때 반드시 기억해야 할 사실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바로 말씀을 충실히 전하라는 것입니다. 디모데전서 4장 6절에서 바울은 이렇게 말합니다. “네가 이것으로 형제를 깨우치면…” 그러니까 바울은 중요한 교훈 몇 가지를 전한 후에 디모데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네가 해야 할 일은 사람들에게 이것들을 기억하게 하는 것이다. 너는 무엇보다 먼저 가르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디모데야, 너는 교사다. 하나님의 영으로부터 받은 것을 나누고 진리를 가르쳐야 한다. 교회는 하나님의 진리를 가르치는 곳이 되어야 한다.” 하나님의 진리를 가르쳐야 합니다. 진리가 사라진 세상에서 이것이 얼마나 놀라운 일인지 아십니까? 사람들이 진리를 갈망하면서도 아무것도 붙잡지 못하고 있는 이 시대에, 무엇이 진짜인지 확신할 수 있는 것이 없다고 포기해버린 이 세상에서, 도덕 기준은 다수의 의견에 따라 바뀌고, 각자 자기 생각대로 살아가는 이 세상에서, 사람들이 자기 생각과 철학으로 인생의 의미를 찾으려 애쓰는 이 어두운 세상에서, 우리는 진리를 외칩니다. 심지어 신약 성경에서 가장 냉소적인 인물이라고 할 수 있는 빌라도조차도 “진리가 무엇이냐, 진리가 무엇이냐”라고 물었습니다. 우리는 진리를 알고 있습니다. 우리는 진리를 알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요한복음 17장에서 아버지께 기도하시며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아버지의 말씀은 진리니이다.” 이것이 우리가 물려받은 유산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바로 이 진리를 전해야 합니다. 이 진리를 전해야 합니다.

저는 하나님께서 우리 교회에 복을 주신 이유가 언제나 진리,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했기 때문이라고 믿습니다. 성경에 관한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니라 성경에 있는 말씀을 전하는 교회였기 때문입니다. 수백 명, 어쩌면 수천 명에 이르는 사람들이 지난 세월 동안 제게 직접, 혹은 편지로 이렇게 말씀해 주셨습니다. “제가 그레이스 교회에 오는 이유는 말씀의 양식을 얻기 위해서입니다.” 제가 늘 듣습니다. 우리 교회가 지키기로 한 사명입니다. 저에게만 맡겨진 일이 아닙니다. 우리 모두가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고, 가르치고, 전파해야 합니다. 물론 이 일을 위해 특별한 은사를 받은 분들도 있습니다. 디모데전서 4장 11절을 보겠습니다. 바울은 4장 6절에 이어서 이렇게 말합니다. 믿음의 말씀과 좋은 교훈으로 스스로 양육받은 사람이라면, 곧 자신 안에 진리를 채우고 그것을 회중에게 전하는 사람이라면, “이것들을 명하고 가르치라”고 말합니다. 다시 말해, 권위로 가르치라는 뜻입니다. 권위로 가르치라고 합니다.

언젠가 한번 제가 경찰대학교 졸업식 연설을 한 적이 있습니다. 그때 제 옆에 앉아 있던 분이 졸업생들에 대해 설명을 해주고 있었는데,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중도에 한 명이 탈락했습니다. 목소리 때문입니다.” 그래서 제가 “목소리에 무슨 문제가 있었나요?”라고 물으니까 그분이 이렇게 말씀을 했습니다. “강도에게 다가가서 ‘손들어, 법을 위반한 혐의로 당신을 체포한다” 이렇게 말해야 하는데 목소리에 힘이 없으면 안 되지 않겠습니까.” 뭔가 빠져 있다는 말이죠. 정말 흥미로웠습니다. “목소리에 반드시 권위가 있어야 합니다.” 그 말을 들으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경찰관의 권위는 결국 ‘법’에 있습니다. 법이 있기 때문에 권위를 내세울 수 있는 것이죠. 마찬가지로 제가 권위 있게 말하는 것처럼 들린다면, 그것은 제 생각에 권위가 있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에 권위가 있기 때문입니다. 저는 제 의견을 가지고는 권위 있게 말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할 때는 권위 있게 말할 수 있습니다. 디모데전서 4장 11절이 바로 이 점을 말하고 있습니다. 단순히 가르치는 데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명하라고 합니다. 다시 말해, 그 말씀대로 사는 책임을 지라고 선포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13절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내가 이를 때까지 읽는 것과 권하는 것과 가르치는 것에 전념하라.” 그리고는 그 방법을 말해줍니다. 본문을 읽고, 설명하고, 적용하라는 뜻입니다. ‘읽는 것’은 말 그대로 읽는 겁니다. ‘권하는 것’은 삶에 적용하라고 권한다는 말입니다. ‘가르치는 것’은 교리와 진리를 가르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본문을 펼쳐서 읽고, 설명하고,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권면하라는 뜻입니다. 그리고 14절에서는 그 은사를 가볍게 여기지 말라고 합니다. 15절에서는 이 모든 일에 전심 전력하라고 하고, 16절에서는 네 자신과 가르침을 살펴 이 일을 계속하라고 합니다. 말하자면, 우리 모두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고 말씀을 선포하도록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설교하고, 가르치고, 선포하고, 훈계해야 합니다. 얼마나 놀라운 책임인지 모릅니다.

이제 5장 17절에서는 또 다른 차원으로 넘어갑니다. “잘 다스리는 장로들은 배나 존경할 자로 알되 말씀과 가르침에 수고하는 이들에게는 더욱 그리할 것이니라.” 여기서 ‘배나 존경할 자로 알되’라는 말씀은 두 배의 사례비를 의미할 수도 있고, 두 배나 존경하라는 말일 수도 있습니다. 아마 이 모든 의미가 담겨 있을 겁니다. 중요한 것은 말씀과 가르침에 힘쓰는 이들이 특별히 존경받아야 한다는 겁니다. 다시 말해서 교회 지도자들은 설교하고 가르치는 일에 전념해야 합니다. 설교하고 가르치는 일이야말로 저의 역할이자 사명이자 본분입니다.

저는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기 위해 이 자리에 있습니다. 사람들이 그레이스 교회를 비판하면서 “그레이스 교회는 가르침에 너무 치우쳐 있다. 설교가 너무 많다. 가르치기만 하지 다른 활동이 부족하다”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저는 가르치고 설교하는 것이 너무 많을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의 계시를 완전히 터득하지 않은 이상 불가능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우리가 배운 것을 실천하지 않는다면 균형이 무너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삶 전체를 가르침으로 채워야 하는 이유는 가르침이 모든 것을 가능하게 만드는 시작점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먼저 성경이 무엇을 말하는지를 알아야 행할 수 있습니다. 예배하는 방법도, 기도하는 방법도, 전도하고 제자 삼는 방법도, 양육하고 훈련하는 방법도, 가정과 사람들을 돕는 방법도 모두 성경에서 배워야 합니다. 우리가 해야 할 모든 일은 하나님의 말씀을 아는 것에서 시작됩니다. 그래서 제가 설교하고, 가르치고, 또다시 설교하고, 또다시 가르치는 겁니다.

디모데전서 6장 끝에서 바울은 디모데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네게 부탁한 것을 지키라.” 다시 말해서 바울은 하나님께서 계시하신 진리, 믿음, 참된 교리를 지키라고 합니다. 이 진리를 지키고 세상의 온갖 쓰레기 같은 것들, 망령되고 헛된 말과 거짓된 지식의 반론을 피하라고 합니다. 진짜 중요한 것을 꼭 붙잡으라고 합니다. 우리는 이 진리에서 벗어나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과는 거리가 먼 사람들의 생각에 휘둘려서는 안 됩니다. 디모데후서도 잠깐 보겠습니다. 2장 15절에서 바울은 이렇게 말합니다. “네가 진리의 말씀을 옳게 분변하며 부끄러울 것이 없는 일꾼으로 인정된 자로 자신을 하나님 앞에 드리기를 힘쓰라.” 다시 말해서 진리의 말씀을 받았으니 말씀에 헌신하고 말씀을 올바르게 다루라는 말입니다.

1장 13절로 돌아가 보면, “바른 말을 본받아 지키고”라고 되어 있습니다. 즉,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진리를 붙잡는 일입니다. 그 다음에 올바르게 전해야 합니다. 진리를 꼭 붙잡고 있어야 하고, 하나님께 인정을 받을 수 있도록 바르게 전해야 합니다. 그리고 다시 2장 16절을 보면 망령되고 헛된 말을 버리라고 합니다. 오직 하나님의 진리에만 집중하라는 겁니다. 2장 24절에서는 교회를 인도하는 자, 곧 주의 종이라면 반드시 가르치기를 잘해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우리가 너무나 잘 아는 디모데후서 3장으로 가면,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하나님의 사람을 온전하게 한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바울은 디모데에게 교회를 어떻게 세우고 어떻게 이끌어가야 하는지를 가르치면서 ‘설교’와 ‘가르침’을 가장 강조하고 있습니다.

이제 4장으로 가서, 이 내용을 하나로 모아 보겠습니다. 디모데후서 4장 1절입니다. 여기 정말 신약에서 손에 꼽을 정도로 위대한 명령이 나옵니다. “엄히 명하노니.” 내가 너에게 책임을 지우고, 또는 명령하노니, 하나님의 말씀이 온전케 할 수 있으므로, 하나님의 말씀이 구원할 수 있으므로, 3장 15절에서 17절이 말하는 대로, 하나님의 말씀이 이 모든 것들을 할 수 있으므로, 우리를 구원할 수 있으므로, 그리스도 안에서 온전케 되기 위해 필요한 것들을 줄 수 있으므로, “하나님 앞과 살아 있는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실 그리스도 예수 앞에서 그가 나타나실 것과 그의 나라를 두고 엄히 명하노니.” 매우 엄한 명령입니다. 바울은 디모데에게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 앞에서 네게 책임을 지운다. 아버지와 아들 앞에서 너에게 책임을 지운다. 2절에서 무엇을 하라고 합니까?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사람들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는 것은 성경입니다.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한 것은 성경입니다.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하게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갖추게 하는 것은 성경입니다. 말하자면 이런 겁니다. “디모데야, 마지막으로 짧게 요약하마. 하나님 앞에서, 예수 그리스도 앞에서 책임을 맡긴다. 말씀을 전하라. 말씀을 선포하라. 힘써 하라. 게으르지 말고 꾸준히 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하라. 기분 나쁘게 할 것 같을 때도, 때가 아닌 것처럼 보여도, 적절한 때가 아닌 것처럼 느껴질 때도, 너는 계속 말씀을 전해야 한다.”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란 결국 항상 하라는 말입니다. 왜냐하면 우리에게 있는 때는 그 어떤 경우든 둘 중의 하나입니다. 즉 ‘때를 얻은 때’나 ‘때를 얻지 못한 때’일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 다음 말이 참 흥미롭지 않습니까? 바울은 위로하고 격려하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대신 이렇게 말합니다. “경책하며 경계하며 권하라.” 다시 말해 이렇게 말하는 셈입니다. “디모데야, 말씀을 전할 때는 단호하게 전하라.” 왜 그럴까요? 바울은 그리스도인들이 끊임없이 죄와 싸워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설교할 때는 반드시 신자로 하여금 죄와 직면하게 만들어야 합니다. 경책해야 하고, 경계해야 하고, 권해야 합니다. 그중 가장 온화한 말이 ‘권하라’인데, 권하면서도 회개와 삶의 변화를 촉구해야 합니다. 만일 변화하지 않으면 하나님의 심판이 있을 것이라고 경고해야 합니다. “지금처럼 계속 가다가는 하나님께서 심판하실 겁니다” 이렇게 말해야 합니다. 그러니까 설교에는 이런 요소가 반드시 담겨야 합니다. 죄와 직면하게 만들어야 합니다. 멈춰 세워야 합니다. 양심을 찌르고, 마음을 뒤흔들고, 때로는 아프게 해야 합니다. 바울은 디모데에게 바로 이런 설교를 하라고 한 겁니다. 어떤 태도로 해야 합니까? “범사에 오래 참음과 가르침으로.” 그러니까 열정을 다해 설교하고, 단호하게 선포하고, 말씀을 통해 사람들이 죄를 정면으로 마주하게 하되, 거기서 멈추지 말라고 합니다. 마음을 들여다보게 만들고, 자기 삶의 실패를 직면하게 해야 하지만, 동시에 하루아침에 변화되지는 않을 거라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는 겁니다. 그래서 어떻게 해야 합니까? 인내해야 합니다. 오래 참아야 합니다.

그리고 바울은 여기에 한 가지를 더 강조합니다. “모든 오래 참음과 가르침으로 하라.” 정말 중요합니다. 사역의 핵심은 인내심을 가지고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는 것입니다. 사람들로 하여금 자기 삶을 하나님의 말씀 앞에 세워 보게 하는 것, 하나님 앞에서 삶의 책임을 느끼게 하는 것, 그러니까 자신의 모습을 직면하게 하는 방식으로 말씀을 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교회의 역할입니다. 교회의 기능입니다. 여러분이 이 자리에 올 때마다 그런 책임 앞에 부르심을 받는 것입니다. 소그룹에 갈 때에도, 누군가가 성경을 펴고 말씀을 전할 때, 여러분은 하나님의 권위 있는 말씀 앞에 이렇게 자문해야 합니다. “나는 이 말씀을 제대로 행하고 있는가?” 말씀을 통해 경책을 받기도 하고, 경계를 받기도 하고, 권함을 받기도 합니다. 이것은 단번에 되는 일이 아니기 때문에, 인내심을 가지고 계속해서 그렇게 가르쳐야만 합니다. 우리의 삶이 하나님이 원하시는 모습으로 변화될 때까지 말이죠.

그러니까 바울이 떠날 때가 되어서 디모데가 사역을 이어받게 되었을 때에, 바울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디모데야, 모든 것은 이것 하나로 요약된다. 말씀을 전파하라. 말씀을 전파하라.” 왜 이렇게 말했을까요? 말씀이 생각 속에 들어갈 때에 행동을 만들어내기 때문입니다. 말씀이 우리의 마음과 생각 속으로 들어와야 행동이 시작됩니다. 그래서 에베소서 4장 23절이 이렇게 말하는 겁니다. “오직 너희의 심령이 새롭게 되어.” 로마서 12장도 마찬가지입니다.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이처럼 변화는 생각의 영역에서 시작됩니다. 말씀이 우리의 생각 안으로 들어와야 변화의 동력이 돌아가기 시작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말씀을 가르치고 전파해야 합니다. 그 어떤 것으로도 대신할 수 없습니다.

두번째 기능은 전도와 선교입니다. 전도와 선교입니다. 제가 이 두 단어를 함께 사용하는 이유는 더 포괄적인 관점을 제공하기 때문입니다. 일반적으로 전도는 개인적인 영역을, 선교는 보다 큰 차원의 사역을 말하기 때문에, 이 둘을 함께 사용하겠습니다. 우리는 우리 교회가 단지 우리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세상을 위한 것이라는 사실을 반드시 인식해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교회가 되기를 바라는 이유는 바로 어두운 세상 속에서 빛을 비추는 교회가 되기 위함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통해 다른 이들을 구원하기를 원하시기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이 원하시는 모습으로 서 있어야 합니다. 모든 사역의 궁극적인 목적은 누군가를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전도에 전념해야 합니다. 전도, 전도, 또 전도입니다. 우리는 기본적으로 두 가지 방식으로 전도해야 합니다. 삶의 본을 보이고, 또 하나는 말씀을 선포해야 합니다. 제가 자주 말씀드렸듯이, 우리의 삶이 우리의 간증을 믿을 만하게도 하고, 믿을 수 없게도 만드는 것입니다. 만일 우리 교회가 그리스도를 높이고, 성도들이 의롭게 살아가고, 하나님 앞에서 정직하게 죄를 다루고, 하나님의 거룩한 목적에 순종하기 위해 힘쓴다면, 우리의 간증은 더욱 믿을 만한 간증이 될 겁니다.

우리가 어떻게 사느냐가 핵심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교회에 와서 이렇게 말할 때 정말 기쁩니다. “이 교회 사람들은 말만 하지 않네요. 정말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고 있네요.” 이런 말을 들으면 얼마나 놀랍고 감사한지 모릅니다. 왜냐하면 이런 삶이야말로 기독교에 신뢰를 더해주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제 말은, 왜 사탄이 교회를 세상에서 아예 없애버리려고 하지 않고, 오히려 온갖 종류의 교회를 세우고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그 이유는 바로 ‘신뢰’를 무너뜨리기 위해서입니다. 사탄은 수많은 교회를 만들어놓고는, 그 교회들이 진정한 신앙의 모습은 없이 겉모습만 남도록 만들려고 합니다. 그렇게 되면 교회가 전하는 메시지가 힘을 잃게 될 것이고, 사람들이 이렇게 말하게 됩니다. “저기 교회에 한 번 가봤는데, 정말 가관이더라. 위선자들 투성이였어. 사람들끼리 관심도 없고, 목사는 도망을 가서 엉뚱한 짓을 하고, 교회 돈을 횡령하고 어쩌고저쩌고…” 사탄은 교회를 없애는 대신, 겉으로는 교회인 척하지만 실제로는 메시지의 진정성을 무너뜨리는 방향으로 움직입니다. 그러면 결국 개개인의 간증도 힘을 잃게 됩니다. 저는 우리 교회가 이 지역 사회 속에서 삶 자체가 전도가 되는 삶을 살아가도록 부르심을 받았다고 믿습니다.

이 모든 것은 하나로 요약됩니다. 이미 수년 전에도 이 말씀을 나눈 적이 있지만, 마태복음 5장에서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라,” 마태복음 5장 13절입니다, “소금이 만일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여러분은 세상의 소금입니다. 부패를 막는 존재입니다. 죄를 억제하는 존재입니다. 세상과는 다른 맛을 지닌 존재입니다. 완전히 구별된 존재입니다. 제가 계속해서 구별된 삶을 살라고 권하는 이유입니다. 정결하게 살아가라고 말하는 이유입니다. 제가 여러분이 경건하고, 도덕적이고, 거룩하고, 의로운 삶을 살아가기를 간절히 바라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단지 여러분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다른 사람들이 여러분의 삶을 보고 그 정결함에 끌려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렇게 될 때 세상 속에서 하나님의 도구로 쓰임받게 됩니다. 여러분이 바로 소금입니다.

그리고 14절에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그런데 그 빛이 말 아래 숨겨져 있다면 아무도 볼 수 없습니다. 여기서 ‘말’이란 아마 죄나 삶의 간증을 흐리게 만드는 무언가를 의미하는 표현일 겁니다. 그러나 만일 여러분이 세상 속에 나아가 밝게 빛나고 짠맛을 내는 소금처럼 살아간다면, 그때야말로 세상에 진짜 영향을 끼치게 됩니다. 그 영향력은 여러분이 무엇을 말하기 이전에 여러분이 누구인가에 의해 결정됩니다. “이같이 너희 빛이 사람 앞에 비치게 하여 그들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저는 가끔 놀랄 때가 있습니다. 다양한 환경에서 많은 사람을 만나는데, 어떤 사람들은 저와 마주치는 순간 굉장히 당황합니다. 제가 “어, 우리 어디서 본 적 있지 않나요?”라고 말하면, 순간적으로 매우 곤란해하는 모습을 보입니다. 저를 보고 당황해서 입에 물고 있던 담배를 꿀꺽 삼킨 사람이 몇명인지 모릅니다. 정말 재미있는 광경입니다. “안녕하세요.” 제가 이렇게 인사를 드리면 너무 놀라서 담배를 꿀꺽 삼켜버립니다. 목이 메이고, 분위기가 어색해집니다. 또 어떤 경우에는 식당에서 어떤 분이 술잔을 들고 있다가 제가 미소를 지으면서 인사를 하면 순간적으로 얼굴이 굳습니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는데 말입니다. 가끔은 제가 직접 테이블로 가서 인사를 하기도 합니다. 그리스도인들에게는 다른 사람들이 우리를 지켜보고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할 책임이 있기 때문입니다. 한 번은 식당에서 대기를 하고 있는데, 여종업원이 다가와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칵테일 주문하시겠습니까? 아, 아니군요. 안 하시겠죠?” 그래서 제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네, 전 괜찮습니다. 그런데 어디서 뵌 적이 있는 것 같은데요.” 그러자 순간적으로 당황을 하더니 “아, 제가 정말 죄송해요. 사실은, 그게 아니고…” 그러면서 변명을 늘어놓기 시작했습니다. 그 상황이 참 흥미로웠습니다. 왜냐하면 자신의 삶이 그리스도으로서 마땅치 않다는 것을 그 여성도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렇게 당황했겠죠. 그 순간 저는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나를 만난 것보다 비신자들에게 그리스도인답지 않은 모습을 보이는 것이 더 큰 문제 아닌가?”

우리의 삶으로 신뢰의 기초를 놓는 것이 정말 중요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마태복음 5장 16절에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이같이 너희 빛이 사람 앞에 비치게 하여 그들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사람들이 여러분의 삶을 보고 이렇게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저런 삶은 하나님이 아니고서는 불가능하다. 하나님만이 저런 사람을 만드실 수 있다.” 참 아름다운 삶입니다. 이렇게 우리는 복음 전도의 기초를 삶으로 다져야 합니다.

그리고 나서는 말을 해야 합니다. 입을 열어야 합니다.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우리 안에 있는 소망에 대해 대답할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선포할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합니다. 입을 다물지 말고 열어야 합니다. 누군가 이런 말을 했습니다. 대부분의 그리스도인들이 북극의 강과 같다고요. 강어귀가 얼어붙어 있답니다. 안타깝게도 실제로 많은 경우에 이 말이 맞습니다. 이상하게도 복음 전하기를 주저하고 망설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에 대해 말하는 데 있어서 세상의 시시한 이야기나 하찮은 일에 대해서 말하는 것만큼이나 적극적이어야 합니다. 우리는 복음을 전하고, 증인으로 살아가며, 복음을 나누는 책임을 반드시 인식해야 합니다. 이를 위해 우리가 믿지 않는 사람들과 관계를 맺고 있어야 하는데, 우리 중 어떤 이들에게는 정말 어려운 일입니다. 시간이 갈수록 관계가 좁아지기 때문이죠. 누군가는 이런 상황을 피라미드에 비유했습니다. 높이 올라갈수록 믿지 않는 사람들과의 접점이 점점 줄어든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복음을 전할 때는 올바른 내용을 전하고 있는지를 꼭 확인해야 합니다. 제가 복음의 내용을 분명히 하고 그 의미를 정확하게 설명하는 데 많은 시간을 들이는 이유입니다. 예수님께서 어떤 단어로 복음을 설명하셨는지를 반드시 알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부자 청년 이야기를 다룰 때도, 산상수훈을 다룰 때도 시간을 들여서 꼼꼼히 살펴보는 겁니다. 예수님은 사람들을 어디에서 불러내셨고, 어디로 부르셨는가? 성경은 어떤 용어를 사용해서 복음을 설명하는가? 이 사실을 강조하는 이유는 오늘날 이 나라, 이 세상의 교회에는 구원받지 않았지만 스스로 구원받았다고 착각하고 있는 사람들로 가득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복음 전도에 헌신해야 합니다. 그다음은 선교입니다. 선교는 더 넓은 관점을 요구합니다. 우리가 사는 이곳을 넘어 하나님께서 허락하시는 한 세계 곳곳으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이번 주에 제가 필리핀의 한 목사님으로부터 편지를 받았습니다. 제가 읽어드리겠습니다. “그레이스 교회에 대해 계속해서 듣고 있습니다. 저도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방식으로 교회를 세우고 싶습니다. 제가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실 수 있을까요?” 지금 우리 교회 성도님들 중에는 전략을 세우고, 비전을 설정하고, 우리 교회의 벽을 넘어 가능한 한 먼 곳까지 나아갈 길을 모색하는 분들이 계십니다. 하나님께서 명령하셨듯이 우리는 온 세상으로 가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가 가진 자원만큼, 그리고 하나님께서 허락하시는 만큼 최대한 멀리 나아가려고 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지금 여기서 하고 있는 일은, 더 효과적으로 선교하기 위해 사람들을 훈련시키는 일입니다. 가서 전하고, 세례를 베풀고, 가르치기 위해 헌신하고 있습니다. 갈 수 있는 데까지 갈 것입니다.

이제 세번째 기능입니다. 여러분도 이미 잘 아시기 때문에 길게 설명하지는 않겠습니다. 바로 예배입니다. 공동체 예배입니다. 최근에 제가 예배에 대한 시리즈 설교를 했죠. <예배(The Ultimate Priority)>라는 책도 썼습니다. 읽어보시길 바랍니다. 우리는 공동체 예배로 부르심을 받은 자들입니다. 바울은 빌립보서에서 “우리는 성령으로 하나님을 예배하며 육체를 신뢰하지 아니하는 자들”이라고 말합니다. 요한복음 4장에서 예수님은 아버지께 참되게 예배하는 자는 영과 진리로 예배한다고 말씀하십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우리 몸을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는 영적인 예배, 영적인 제사를 드리도록 부르심을 받은 자들입니다. 우리는 예배자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는 제사장 공동체입니다. 사도 베드로는 우리가 하나님께 영적인 제사를 드리는 거룩한 제사장이라고 말합니다.

며칠 전에 사역자 회의에서 이런 대화를 나눴습니다. 예배에 참석하는 많은 사람들 가운데 정말로 예배하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하는 고민이었습니다. 과연 하나님을 온전히 예배하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요? 온전히 찬양하고 경배하는 마음으로 예배하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요? 반면에, 예배가 언제 끝나지? 오늘 예배 마치고 뭐할까? 내일 어디에 가야지. 이런 생각을 하는 사람은 또 얼마나 많을까요? 우리는 이 세상의 미디어를 통한 사탄의 교활한 공격을 끊임없이 받고 있습니다. 머릿속에는 이미지가 떠오르고, 광고 음악이 맴돌고, 눈앞에 늘 무언가가 지나갑니다. 그러니 마음속의 수많은 생각들을 걷어내고 하나님을 깊이 묵상하는 일은 마치 수도원에 들어가서야 가능할 것처럼 느껴질 때도 있습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예배에 나아와 찬양을 부를 때 그 가사를 진정으로 생각하고, 시편 낭독을 통해 예배로 초대받을 때 귀 기울이고, 말씀과 설교를 통해 주어지는 하나님의 진리를 묵상하기가 결코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 훈련을 해야 합니다. 예배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단지 이 자리에서뿐만이 아닙니다. 이 자리는 우리가 일상에서 예배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촉매일 뿐입니다. 몇 달 전 함께 나눴던 말씀에서도 강조했던 것처럼, 우리가 가장 잘 예배할 수 있는 때는 순종할 때입니다. 하나님께 기꺼이 순종하는 삶, 이것이 예배입니다. 순종이 곧 예배입니다. 찬양도 순종으로 드려야 하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행하는 것도 순종입니다. 그렇게 순종과 예배는 하나가 되고, 예배는 주일의 한 시간짜리 활동이 아니라 우리의 삶 그 자체가 되어야 합니다.

또한 저는 우리가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가도록 부르심을 받았다고 믿습니다. 무슨 말인지 아시겠습니까?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가야 합니다. 히브리서도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가라”라고 하고, 야고보서도 “하나님을 가까이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가까이하시리라”라고 합니다. 얼마나 놀라운 말씀입니까. 여러분은 언제 하나님께 가까이 가셨습니까? 찬양의 가사 속에서, 성경 말씀 속에서, 깊은 기도와 헌신 속에서 마음과 생각이 하나님께로 향하는 그런 순간이 얼마나 자주 있으십니까? 우리는 '묵상'이라는 단어를 들으면 이상한 자세로 앉아서 요가하는 모습이나 떠올릴 뿐, 그 의미조차 잊은 것 같습니다. 하지만 저는 우리가 예배하는 존재라고 믿습니다. 예배하는 존재입니다.

디모데에게, 바울은 디모데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거룩한 손을 들어 기도하라. 하나님을 찬양하기 위해 함께 모이라.” 우리는 예배하는 백성으로 부름받은 존재입니다. 그래서 많은 분들이, 특히 미시간에서 편지를 보낸 이 젊은 목회자처럼, 우리 교회에 와서 이전에는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예배를 경험하게 되었다고 이야기할 때마다 제 가슴이 뜁니다. 이들의 마음은 늘 하나님을 향해 있었지만, 그 마음을 하나님께 온전히 올려드릴 수 있는 환경을 누려본 적이 한 번도 없었던 것입니다. 어쩌면 우리도 지금보다 더 잘할 수 있을지 모릅니다. 더 나은 예배를 드릴 수 있을지 모릅니다.

이제 오늘 아침에 나눌 교회의 마지막 기능을 말씀드리겠습니다. 다음 시간에 좀더 살펴보고 마무리하겠습니다. 기도에 대해 잠시 나누겠습니다. 짧게 하겠습니다. 다시 한 번 되새기고 싶을 뿐입니다. 굳이 사족을 달고 싶지는 않지만, 사랑하는 여러분, 기도는 우리가 하는 모든 영적 활동 가운데 가장 어렵습니다. 두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첫번째는 힘이 들기 때문입니다. 기도란 이타적인 것이기 때문입니다. 참된 기도는 하나님의 나라를 품는 기도입니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가 임하시오며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하나님의 나라를 향해 나아가는 기도입니다. 그리고 동시에 하나님의 백성을 품는 기도입니다. “오늘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옵고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시옵고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시옵고.” 마태복음 6장 9절에서 12절까지의 주기도문에는 ‘나’라는 말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영광과 하나님의 나라를 품고 하나님의 백성의 필요를 끌어안는 기도입니다. 그래서 기도는 이기적일 수 없습니다. 그래서 기도는 철저히 자기를 버리는 훈련입니다. 오직 이타적인 사람, 오직 겸손한 사람만이 자신을 내려놓고 하나님의 뜻과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백성을 껴안을 수 있습니다.

에베소서 6장 18절의 “모든 기도와 간구를 하되 항상 성령 안에서 기도하고 이를 위하여 깨어 구하기를 항상 힘쓰며 여러 성도를 위하여 구하라”라는 바울의 말은, 우리 자신에게서 시선을 돌려서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목적과 하나님의 백성들의 필요를 끌어안는 기도를 하라는 요청입니다. 이 기도는 철저하게 이타적인 기도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타적인 사람만이 할 수 있는 기도입니다. 하나님을 위해, 하나님의 구속받은 백성을 위해, 하나님의 목적과 백성들의 필요를 위해 마음을 쏟아붓는 일이기에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자기 자신을 넘어서야 가능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반면에 우리가 기도를 쉽게 느끼는 때도 있습니다. 바로 우리 자신의 일이 걸려 있을 때입니다. 심하게 다쳤거나, 가족이 병에 걸렸거나, 사랑하는 사람을 잃었거나, 자녀가 하나님에게서 멀어졌거나, 자녀가 결혼하려고 하거나, 예상치 못한 비극이 닥쳤을 때, 혹은 정직하지 못한 일이나 부도덕한 행위가 드러났을 때, 이처럼 우리 삶이 직접적으로 위협받는 순간에는 쉽게 기도의 자리로 나아갑니다. 그러나 이런 기도는 기도의 강함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기도의 약함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기도의 진정한 힘은 내 삶을 내려놓고 끊임없이 하나님 나라의 확장과 영광을 위해, 그리고 나를 넘어서는 하나님 백성의 필요를 위해 기도하는 데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어렵습니다. 누가복음 11장에 나오는 비유 아시죠? 저도 배가 고프다면 밤새도록 문을 두드려서 떡을 얻어낼 것 같습니다. 저에게 필요한 일이니까요. 그런데 문제는 이겁니다. “내가 누군가 다른 사람을 위해 밤새도록 문을 두드릴 수 있는가?” 바로 이것이 문제입니다.

그러니까 주일 저녁에 아이스크림 나눠주는 행사를 연다고 하면, 삼천 명이 몰려와서 아이스크림을 먹을 겁니다. 그런데 기도회를 연다고 하면 돋보기가 필요할지도 모릅니다. 왜냐하면 기도는 철저하게 이타적인 일이기 때문입니다. 기도는 가장 순수하고 진실한 의미에서 나 자신이 아니라 다른 이들과 하나님의 뜻을 품는 행위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여러분이 기도하지 않는다는 말이 아닙니다. 저도 기도하지 않는다는 말이 아닙니다. 그러나 저 역시도 마땅히 기도해야 할 만큼 기도하지 못합니다. 우리 모두가 그렇게 느끼지 않습니까? 그래서 우리는 매달 한 번씩 수요일에 정기 기도회를 가질 예정입니다. 성도들을 기도의 자리로 부를 것입니다. 저는 하나님께서 기도에 응답하신다고 믿습니다. 어제 시카고 라디오 인터뷰에서 이런 말을 했습니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생기는 몇 가지 유익 중 하나는 기도응답 목록이 점점 길어진다는 것입니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는 일들을 더 많이 보게 됩니다. 그리고 그 목록이 길어질수록, 우리는 더욱 확신을 가지고 기도하게 됩니다. 그래서 저는 나이든 분들이 젊은 사람들보다 기도를 더 잘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적어도 그런 의미에서는 그렇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 기도응답을 받은 경험이 훨씬 많기 때문입니다.

기도가 어려운 두번째 이유는, 이타적이면서도 철저히 사적인 일이기 때문입니다. 정말 사적인 일입니다. 사실 이 점은 이타성이라는 특성과도 맞닿아 있습니다. 왜냐하면 기도는 아무도 모르게 혼자 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기도하려면 자발적인 자기 훈련과 내면의 힘이 필요합니다. 누군가의 인정이나 시선에 기대어서는 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우리는 사실 누군가가 보고 있기 때문에 하는 일들이 참 많습니다. 성경 공부에 가는 이유도, 누가 ‘저 사람 성경 공부도 열심히 다니네’ 이렇게 생각해 줄 거라는 기대가 있기 때문입니다. 성경을 읽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누가 와서 “저는 요즘 이 본문을 묵상하고 있어요” 이렇게 말하면 “저도 얼마 전에 그 본문 읽었어요. 참 은혜가 되더라고요”라고 말하고 싶기 때문에 읽는 경우도 있습니다. 말하자면 그런 대화에 낄 수 있도록 미리 읽어두는 거죠.

그러나 기도는 다릅니다. 기도가 어려운 이유는 첫째, 이타적이기 때문이고, 둘째, 눈에 보이는 보상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주위 사람들의 시선도 없습니다. 누군가가 지켜보는 자리에서 우리는 더 잘해보려 노력합니다. 저도 그렇습니다. 솔직히 말씀드리면, 설교는 정말 열심히 준비하게 됩니다. 왜냐하면 많은 분들이 듣고 있기 때문입니다. 반면에 기도는 훨씬 더 어렵습니다. 사도행전 6장 4절에는 사도들이 ‘기도하는 일과 말씀 사역에 힘썼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제 경험상, 말씀 사역에 힘쓰는 일은 기도하는 일보다 훨씬 수월합니다. 왜냐하면 말씀을 전하는 사역은 선택지가 없습니다. 주일에 이 자리에 서서 할 말을 준비하지 않는다면 그건 정말 큰 문제가 될 겁니다. 하지만 기도는 하지 않아도 아무도 모릅니다. 물론 언젠가는 드러나겠지만, 당장은 아무도 모릅니다. 그래서 기도가 어렵습니다. 성경에 ‘기도에 힘쓴다’, ‘인내로 기도한다’라는 표현이 나오는 이유입니다. 기도는 이타적인 행위일 뿐만 아니라, 즉각적인 보상도 없고, 사람들의 인정을 받는 일도 아니기 때문에, 우리의 헌신과 결단이 필요합니다.

저는 기도하는 이타적인 성도님들로 인해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우리 공동체 안에 그런 성도들이 더 많이 일어나도록 하나님께 기도드립니다. 우리 교회에는 매주 월요일마다 모여서 기도하는 작은 기도 모임이 있습니다. 대부분 연세가 많으신 분들입니다. 해가 갈수록 더 연세가 드시겠지만, 하나님께서 그분들을 아직 데려가시지 않는 이유는, 그 자리를 대신할 사람이 없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소수로 이루어진 모임입니다. 하지만 지난 10년 넘게 꾸준히 기도해오셨고, 그 기도를 하나님께서 들으시고 응답해 주셨습니다. 우리는 그분들의 신실함의 열매를 함께 누리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 자리에 있는 우리도 그렇게 기도에 신실한 사람이 되게 하시기를 바랍니다. 제가 여러 번 말씀드렸듯이, 기도는 전능하신 하나님의 근육을 움직이는 신경입니다. 그 원리를 다 이해하지는 못합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하나님께서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하신다는 사실입니다. 야고보서에서도 말씀하셨습니다. “의인의 간구는 역사하는 힘이 큼이니라.” 저도 그런 의인이 되어 하나님께 기도드리고 싶습니다. 하나님께서 행하실 수 있는 모든 일을 이루시도록, 그리고 그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돌릴 수 있도록 말입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반드시 기도에 헌신해야 합니다.

바울은 이보다 더 명확하게 말할 수 없을 정도로 분명하게 말했습니다. 데살로니가전서 5장 17절입니다. “쉬지 말고 기도하라.” 많은 사람들이 묻습니다. “그게 무슨 뜻입니까?” 그 말은 곧 항상 기도하라는 뜻입니다. 즉, 늘 하나님을 의식하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삶 전체가 기도가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모든 삶, 모든 순간이 하나님께 드려지는 기도가 되는 것입니다. 언제나 하나님을 의식하면서 생각하고, 행동하고, 말하고, 반응하는 것입니다. 매 순간의 생각과 행동이 하나님 앞에 드려지는 기도입니다. 마치 “제가 지금 이 일을 하려고 합니다. 괜찮을까요 주님?” 즉, 하나님의 마음과 시선으로 삶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눈을 감고 중얼거리면서 다니시라는 게 아닙니다. 기도란 하나님 앞에서 살아가는 삶의 방식입니다. 모든 것을 하나님께 드리는 삶, 모든 일을 하나님과 함께 나누는 삶입니다. 기도는 단방향이 아닙니다. 쌍방의 대화입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성령의 인도하심을 느끼고, 하나님께 우리의 간구와 생각과 기쁨과 문제를 아뢰는 것입니다. 곧, 기도란 하나님을 의식하며 살아가는 방식이며, 삶 전체가 하나님과 함께하는 교제라는 의미입니다. 그래서 교회의 사명은 아주 기본적이고 분명합니다. 말씀을 전하고 가르치는 일, 복음을 전하고 세상으로 나아가는 일, 예배하는 일, 그리고 기도하는 일입니다. 나머지 사명은 다음 시간에 말씀드리겠습니다. 기도하겠습니다.

주님, 우리가 무슨 말을 할 수 있겠습니까? 우리가 주님께 무슨 말을 할 수 있겠습니까? 주님은 우리에게 너무나 많은 복을 주셨습니다. 구원의 은혜를 주셨고, 말씀을 주셨고, 성령을 주셨습니다. 주님의 사랑을 입은 구속받은 자들의 공동체를 허락하셨고, 믿음의 친구들과 가족들을 주셨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인생의 동반자도 허락해 주셨습니다. 함께 교제하고 예배할 수 있는 아름다운 장소도 주셨고, 우리 마음을 기쁘게 하는 찬양과 악기들을 통해 하나님을 찬송할 수 있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창조하신 세상의 아름다움을 누릴 수 있게 하셨습니다. 세상은 그것을 우연의 산물이라 여기지만,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의 선물로 감사하며 누릴 수 있습니다. 아버지, 저희 그레이스 커뮤니티 교회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방식대로 기능하길 원합니다. 말씀을 전하고, 가르치고, 복음을 전하고, 예배하고, 기도하는 그 기본적인 일들에 충실하길 원합니다. 많은 프로그램보다 중요한 것은 우리 각자가 이 영역들에 충실하게 살아가는 것임을 깨닫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이 시기에 집중해야 할 것에 더욱 초점을 맞추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우리가 진리를 보았을 때 그 진리에 반응하여 신실하게 살아가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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