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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부터 영적 성장에 대한 하나님의 말씀을 살펴보겠습니다. 솔직히 저는 신자의 영적 성장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다고 믿습니다. 영적 성장에 대해 올바른 시각을 제공해 주는 중요한 말씀 두 곳을 먼저 보겠습니다. 베드로후서 3장 18절입니다. 베드로후서의 마지막 절입니다. “오직 우리 주 곧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그를 아는 지식에서 자라 가라 영광이 이제와 영원한 날까지 그에게 있을지어다.” 베드로가 이 위대한 편지를 맺으며 강조한 결론은 바로 우리가 은혜 안에서 자라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베드로전서에서도 시작 부분에 해당하는 2장 2절에서 이렇게 증거합니다. “갓난 아기들 같이 순전하고 신령한 젖을 사모하라 이는 그로 말미암아 너희로 구원에 이르도록 자라게 하려 함이라.”

그러니까 베드로는 자신이 기록한 두 서신, 베드로전서와 베드로후서를 시작할 때와 마무리할 때 모두 우리에게 ‘자라 가라’고 명령했습니다. 영적인 성장은 신자의 삶에 있어 가장 기초적인 요소입니다. 마치 신체의 성장이 육적인 삶의 기본이듯이 말이죠. 하나님은 성장하라고 명하십니다. 신자가 영적으로 성장하지 못한 것만큼 안타까운 일은 없습니다. 신앙생활을 오래 했지만 성숙하지 못한 그리스도인, 이보다 비극적인 모습이 또 있을까요? 여러분도 한번쯤은 성장이 지체된 아이들을 보신 적이 있지 않습니까? 정말 가슴 아픈 일입니다. 오랜 세월을 살았음에도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감정적으로, 또 사회적으로 제대로 성장하지 못하고 있다면 그것만큼 큰 비극도 없을 겁니다.

훨씬 더 심각한 경우는, 오랜 세월 동안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면서도 전혀 자라지 못한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오늘은 영적 성장이라는 주제를 살펴보려고 합니다. 은혜 안에서 자란다는 것이 무슨 의미인지, 믿는 자로서 성숙해진다는 것이 무슨 뜻인지 함께 깊이 생각해 보려고 합니다.

이제 우리가 꼭 이해해야 할 몇 가지 개념을 먼저 나누는 것으로 시작하고 싶습니다. 첫째, 영적 성장은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가지게 된 지위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습니다. 다시 말해서, 우리는 영적으로 성장해 감에 따라 점차로 그리스도인이 되어가는 것이 아닙니다.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단번에 일어나는 기적입니다. 거듭남은 한순간에 일어나는 놀라운 사건입니다. 믿음을 통해 하나님께서 우리를 그리스도의 몸의 지체가 되게 하시는 그 순간, 우리는 즉시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입니다. 점진적인 과정이 아닙니다. 단번에 일어나는 기적입니다. 물론 복음을 듣고 받아들이기까지 일정한 과정이 있을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실제 구원은 한순간입니다. 그 순간 우리는 죽음에서 생명으로, 어둠의 권세에서 하나님의 사랑하는 아들의 나라로 옮겨진다고 바울은 말합니다.

그러니까 영적 성장은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의 지위에 관한 문제가 아닙니다. 우리는 믿는 그 순간 그리스도 안에 있게 됩니다. 바울은 고린도 교인들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그 즉시 새로운 피조물이 되는 것입니다. 또 바울은 골로새서 2장 10절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너희도 그 안에서 충만하여졌으니,” 즉, 지위상으로는 완전한 자가 되었다는 뜻입니다. 베드로 역시 이렇게 말합니다. 믿는 자가 될 때 “그의 신기한 능력으로 생명과 경건에 속한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셨으니”라고 합니다. 베드로후서 1장 3절이죠.

따라서 여러분이 믿음을 갖게 되는 순간, 여러분은 그리스도 안에 들어가게 되고, 그리스도께서 여러분 안에 거하십니다. 여러분은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을 받게 되고, 생명과 경건에 속한 모든 것을 소유하게 되며, 그리스도 안에서 온전히 완전한 자가 됩니다. 지위상으로는 모든 것이 이미 완벽하게 이루어졌습니다. 따라서 영적 성장은 그리스도 안에서의 지위와는 아무 관련이 없습니다.

둘째로, 영적 성장은 하나님의 사랑이나 하나님의 호의와는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어떤 부모는 이렇게 말하기도 합니다. “이거 하면 사랑해 줄게.” 그러나 하나님은 결코 그렇게 말씀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무엇을 하든 상관없이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로마서 5장에 따르면, 하나님은 우리가 죄인 되었을 때, 하나님의 원수였을 때, 하나님과 원수로 지낼 때에도 우리를 사랑하셨습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그리스도께 나아오기 훨씬 전부터 이미 우리를 사랑하셨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을 때, 하나님은 여전히 무한한 사랑으로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사랑은 측량할 수도 없고, 차별도 없고, 한결같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을 완전하고 동등하게 사랑하십니다. 놀랍게 들릴 수도 있지만, 심지어 구원받지 않은 사람까지도 동일하게 사랑하십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믿음으로 구원을 받을 때 하나님은 우리를 하나님의 가족으로서 완전하게 사랑하십니다. 영적 성장은 하나님의 사랑을 더 많이 얻어내는 과정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호의를 얻기 위해 계속 성장해야 하는 것도 아닙니다. 하나님의 사랑, 하나님의 호의는 구원의 순간에 단번에 주어지는 은혜입니다.

셋째로, 영적 성장은 시간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습니다. 자, 첫번째, 영적 성장은 그리스도 안에서의 지위와 무관하고, 두번째,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정도와도 무관하고, 그리고 이제 세번째로, 시간과도 상관이 없습니다. 구원을 받은 사람들 가운데서도 오랜 시간 동안 거의 자라지 않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반대로, 구원받은 지 얼마 지나지 않았지만 크게 성장한 사람들도 있습니다. 물론 시간이 길어질수록 계속해서 성장한다면 더 성숙한 사람이 될 수 있겠지만, 중요한 것은 시간이 아니라 성장의 원칙에 헌신하는 자세입니다. 영적 성숙은 시간으로 측정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닙니다.

넷째로, 영적 성장은 지식에만 관련된 문제가 아닙니다. 우리는 때때로 영적 성숙을 ‘얼마나 아는가’와 동일시하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핵심은 아닙니다. 왜냐하면 지식만으로는 충분하지 않기 때문이죠. 중요한 것은 우리가 알고 있는 것을 어떻게 살아내느냐입니다. 성경은 지식이 사람을 교만하게 만들 수 있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교만은 상태를 말합니다. 믿는 사람이 그런 상태에 빠지게 되면 영적 성장이 즉시 멈춥니다. 단지 사실을 안다고 해서 그것이 곧 영적 성숙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우리가 아는 사실이 예수 그리스도의 형상을 닮아가도록 우리를 변화시킬 때에야, 비로소 그 사실을 아는 지식이 성장에 진정한 영향을 주는 것입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반드시 기억해야 할 점은, 영적 성장이 활동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는 겁니다. 어떤 사람들은 자기가 교회에서 오랫동안 활동을 했고, 적극적으로 봉사를 했고, 위원회나 운영진에 참여를 했고, 성가대에서 찬양을 했으니 분명히 영적으로 성장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워낙 오래 교회에 머물렀으니 뭔가 저절로 스며든 것이 있을 거라고 그렇게 생각하는 겁니다. 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교회에서 바쁘게 무언가를 했다고 해서 영적으로 성장하지 않습니다.

잘 들으십시오. 종교적인 일로 누구보다도 바쁘게 움직였던 사람들이 누굽니까? 바리새인들이었습니다. 그러나 바리새인이야말로 진리에서 가장 멀리 떨어져 있지 않았습니까? 마태복음 7장에서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놀라운 많은 일들을 했나이다라고 하리니 그 때에 내가 그들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 바쁘게 일한다고 해서 구원받는 것도 아닙니다. 영적으로 성장한다는 보장은 더더욱 없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덧붙이고 싶은 말이 하나 있습니다. 영적 성장은 번영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습니다. 사람들이 자신의 경제적 상황을 하나님의 은혜와 연결짓는 것을 보면 참 흥미롭게 느껴집니다. 돈이 많고 형편이 좋으면, 하나님께 복을 받았다고 생각하고, 그만큼이나 훌륭한 그리스도인이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참 많습니다. 물론 하나님께서 복을 주셨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부유한 것이 영적으로 성숙하다는 증거는 아닙니다. 그러니까 지금 누리고 있는 좋은 환경을 하나님의 인정을 받았다는 의미로 받아들이지는 마십시오. 영적 성숙과는 별개의 문제입니다.

영적 성장이 이러한 것들이 아니라면, 곧 그리스도 안에서의 지위와도,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사랑하신다는 사실과도, 시간이나 지식이나 활동이나 번영과도 관련이 없다면, 도대체 영적 성장이란 무엇일까요? 아주 간단하게 정의해 보겠습니다. 앞으로 이 정의를 중심으로 더 깊이 살펴볼 겁니다.

영적 성장은 신비롭거나 감상적이거나 경건해 보이거나 심리적인 것이 아닙니다. 인생의 미래를 보장받는 어떤 특별한 비밀이나 공식도 아닙니다. 영적 성장을 가장 잘 요약하는 말은 바로 이것입니다. 나의 '실제적인 삶'을 '그리스도 안에서의 지위'에 맞춰가는 것입니다. 저는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한 존재입니다. 저는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히 갖추어졌습니다. 저는 생명과 경건에 속한 모든 것을 받았습니다. 저는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을 이미 받았습니다. 이제 제가 바라는 것은 제 실제 삶이 이 지위에 걸맞은 모습으로 점점 자라가는 것입니다.

바비 리처드슨(Bobby Richardson)이 예전에 이런 말을 했던 게 생각납니다. 양키스 유니폼을 입으면 자신이 평소보다 50퍼센트는 더 잘하게 되는 것 같았다고 말이죠. 양키스라는 팀에 속해 있다는 사실이 자신이 가진 능력 이상을 이끌어냈던 겁니다. 제가 예전에 미식축구를 할 때 코치님이 늘 이렇게 말씀하시곤 했습니다. “맥아더, 네가 해야 할 일은 딱 하나다. 네 자리를 지켜라. 절대 벗어나지 마라.” 영적인 면에서도 똑같은 원리가 적용됩니다. 여러분은 그리스도께서 여러분 안에 거하신다는 사실 때문에, 그 사실 자체로 여러분이 누구인지가 정의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것은 이것입니다. “지위에 걸맞게 살아라. 자신의 지위에 합당한 삶을 살아라. 실제적인 삶에서 너의 지위에 어울리는 사람이 되어라.”

이제 아주 간단하게 말씀드리겠습니다. 여러분이 꼭 이해해야 할 원리가 있습니다. 영적 성장을 진정으로 이해하고 경험하기 위한 핵심 열쇠입니다. 모든 것을 여는 단 하나의 만능 열쇠가 있습니다. 사실 베드로후서 3장 18절에서 이미 그 열쇠가 제시되었습니다. “오직 우리 주 곧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그를 아는 지식에서 자라 가라.” 그리고 이어서 이렇게 말합니다. “영광이 이제와 영원한 날까지 그에게 있을지어다 아멘.”

‘은혜 안에서 자란다’는 말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과 동일하게 여겨진다는 점이 매우 흥미롭습니다. 정말로 중요한 부분입니다. 여러분에게 꼭 말씀드리고 싶은 부분입니다. 은혜 안에서 자란다는 이 모든 개념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과 깊이 연결되어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 점을 깨닫는다면 여러분은 영적 성숙이라는 과정의 핵심을 이미 이해한 셈입니다. 모든 영적 성장의 핵심 열쇠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다는 의미를 이해하는 것에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핵심입니다.

오늘은 역사 전체를 아주 넓은 시각에서 훑어보면서 이 핵심을 설명드리겠습니다. 먼저 여러분이 반드시 기억해야 할 것은,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주제가 있다면 바로 하나님의 영광이라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이 모든 것의 중심(locus crusis, the sine qua non)입니다. 정점(Höhepunkt)입니다. 하나님의 계시 중에서 가장 중요합니다.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이야말로 우리가 존재하는 이유입니다.

17세기 청교도 교리문답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인간이 창조된 목적은 무엇인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영원토록 즐거워하는 것이다.” 그렇습니다. 사실 인간의 가장 중요한 목적일 뿐 아니라, 모든 것의 가장 중요한 목적이기도 합니다. 예를 들어, 거대한 우주를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시편 19편은 이렇게 말합니다. “하늘이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하고 궁창이 그 손으로 하신 일을 나타내는도다.” 광활한 우주 전체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입니다.

이사야 43장 20절로 가보면 이사야가 이렇게 말합니다. “장차 들짐승 곧 승냥이와 타조도 나를 존경할 것은…” 그러니까 들짐승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립니다. 이렇게 우주의 광활한 거대함, 다시 말해 거시적인 세계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과 동시에, 한 마리의 들짐승처럼 작은 피조물 하나까지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광물 세계를 포함한 모든 창조물, 곧 동물과 그 밖의 모든 존재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 위해 존재하는 것입니다. 누가복음 2장에서는 예수님의 탄생 순간에 천사들이 나타나서 이렇게 외칩니다.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그러니까 이 모든 피조 세계가 하나같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도록 창조된 것입니다.

실제로 모든 역사가 마무리될 때, 요한계시록에 나오죠, 역사의 마지막 순간, 즉 하나님께서 자신의 백성을 구속하시며 영광스러운 영원한 나라를 세우시려는 순간에 한 위대한 찬송이 울려 퍼집니다. “하나님께 영광을 어린 양께 영광을.” 왜냐하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이야말로 바로 모든 피조물이 창조된 궁극적인 목적이기 때문입니다.

다윗은 시편 16편 8절에서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내가 여호와를 항상 내 앞에 모심이여 그가 나의 오른쪽에 계시므로 내가 흔들리지 아니하리로다.” 다시 말해, 모든 일에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보며 살아갈 때 하나님께서 내 마음에 기쁨을 주신다는 뜻입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주시고자 하는 관계의 원리입니다. “내게 영광을 돌리라 그러면 내가 기쁨을 줄 것이다.” “내가 여호와를 항상 내 앞에 모시며”라고 시편 기자는 말합니다. “그러므로 내 마음이 기뻐하나이다.” 우리의 존재 이유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반복해서 말합니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역대상 16장에서는 반복해서 이렇게 말합니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시편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예수님이 태어나셨을 때 천사들도 외쳤습니다.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 “무엇을 하든지 모든 것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 에베소서 3장에서는 “교회 안에서 하나님께 영광이 있기를 원하노라”고 말합니다. 요한계시록에서는 “어린 양께 영광, 하나님께 영광”이라고 찬송합니다. 그리고 여기에서 또 한 번 축도로 말합니다. “영원토록 그에게 영광이 있을지어다 아멘.” 성경 전체의 일관된 강조점입니다.

디모데전서 1장 17절입니다. “영원하신 왕 곧 썩지 아니하고 보이지 아니하고 홀로 하나이신 하나님께 존귀와 영광이 세세토록 있을지어다 아멘.” 여기서도 동일한 강조점이 드러납니다. 만물이 존재하는 궁극적인 이유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입니다.

자, 잘 들으십시오. 우리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 때, 우리는 영적 성숙의 과정 속으로 들어가게 됩니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삶을 살아갈 때에, 우리는 자라기 시작합니다. 이 점을 분명히 보여주는 본문이 있는데, 바로 신약의 중요한 말씀 중 하나인 고린도후서 3장 18절입니다. 고린도후서 3장 18절을 함께 보겠습니다. “우리가 다 수건을 벗은 얼굴로…” 여기서 ‘우리’는 분명히 믿는 자들을 말합니다. “수건을 벗은 얼굴로…” 다시 말해서, 구약 시대에 믿는 자들 위에 있던 수건, 율법이 덮어 놓았던 그 수건, 이제는 신약의 놀라운 계시로 인해 벗겨졌다는 뜻입니다. 더 이상 우리에게는 감춰진 것이 없습니다. 더 이상 예언자들이 자신이 기록한 말씀을 이해하려 애쓰던 그 수고를 하지 않아도 됩니다. 이제는 수건이 벗겨졌습니다.

“거울을 보는 것 같이 주의 영광을 보매”, 즉 다시 말하면 우리는 깨끗한 거울을 통해서 볼 수 있습니다. 그러면 무엇을 볼 수 있습니까? 바로 “주의 영광”을 볼 수 있습니다. 이 점에 주목하십시오. 우리가 “수건을 벗은 얼굴로”, 즉, 신약 시대에 그 수건이 벗겨졌고, 신약과 그 위대한 진리를 우리가 이해하면서, “주의 영광”에 초점을 맞출 때에 무슨 일이 일어납니까? “그와 같은 형상으로 변화하여 영광에서 영광에 이르니 곧 주의 영으로 말미암음이니라.”

결국 결론은 이겁니다. 영적으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영광에 집중해야 합니다. 성령님이 하시는 일을 지나치게 걱정하지 마십시오. 어떤 사람들은 성령님에 대해 지나치게 몰두합니다. 또 자신이 하는 일에만 집중해서 내면을 분석하고 자기 반성에 빠지는 것도 옳지 않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영광에 집중하십시오. 이것이 핵심입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궁극적인 이유입니다. 그리고 이것이 바로 영적 성장의 열쇠, 가장 중요한 열쇠입니다.

이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이해하려면, 인류 역사 속에서 인간이 받는 궁극적인 정죄가 무엇 때문인지를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지 않기 때문입니다. 로마서 1장 21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로마서 1장 21절입니다. 사도 바울은 이 구절에서 인류가 진리로부터 어떻게 떠났는지를 고발하고 있습니다. 인간의 근본적인 문제를 지적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알되…" 자, 여기서 잠깐 멈추겠습니다.

“하나님을 알았다”는 무슨 뜻일까요? 모든 인류가,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을 알았다는 말입니까? 네, 그렇습니다. 19절을 보면 이렇게 나옵니다. “이는 하나님을 알 만한 것이 그들 속에 보임이라.” 양심을 통해 하나님을 알 수 있다는 말입니다. 20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가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려졌나니.” 창조 세계를 통해서도 하나님을 알 수 있다는 말입니다. 그러니까 인간에게는 하나님에 대한 내적인 지식과 외적인 지식이 모두 주어졌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무엇입니까?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을 영화롭게도 아니하며.” 바로 여기에 인류에 대한 근본적인 고발이 담겨 있습니다. 하나님께 마땅히 돌려야 할 영광을 돌리지 않은 것입니다. 23절을 보면, “썩어지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영광을 썩어질 사람과 새와 짐승과 기어다니는 동물 모양의 우상으로 바꾸었느니라.” 다시 말해서, 인간은 우상 숭배라는 인간적인 종교 체계를 스스로 만들어냈습니다.

그러니까 인간은, 잘 보셔야 합니다. 인간은 하나님의 영광이라는 개념을 버렸습니다. 그걸 포기해버린 겁니다. 그 순간, 영적 생명과 영적 성장으로부터 스스로를 끊어냈습니다. 그래서 인류의 역사는 어떤 역사입니까? 위로 올라가는 역사가 아니라 아래로 내려가는 역사입니다. 점점 추락해 가는 역사입니다. 타락의 역사입니다. 하나님께 영광 돌리기를 거부한 인간은 더 이상 올라갈 수 없습니다. 더 이상 자랄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일이야말로 영적 성장을 이끄는 원동력이기 때문입니다.

이제 성경의 역사를 아주 간단하게 요약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어떤 사람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걸 머릿속에 넣으면 정말 한눈에 성경이 정리됩니다." 어쨌든 제가 강조하고 싶은 것은, 인류 역사 전체를 통해서 하나님께서 계속해서 행하시는 일이 한 가지가 있다는 사실입니다. 단 하나입니다. 그것은 바로 인간으로 하여금 하나님의 영광을 보게 하려는 것입니다. 타락 이후의 현실을 되돌리시려는 것입니다. 로마서 1장의 비극을 뒤집으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인간이 하나님의 영광에서 등을 돌리는 것이 아니라, 그 영광을 바라보게 하려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 전체의 역사를 살펴보면, 하나님은 언제나 사람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보게 하시려는 목적을 갖고 일하셨습니다.

이제 아주 단순하게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성경을 직접 찾아보실 필요는 없습니다. 빠르게 살펴볼 것이니까요. 창세기 3장을 여러분 기억하실 겁니다. 8절에 보면 아담과 하와가 날이 서늘할 때 하나님과 함께 거닐며 대화했다고 나옵니다. 타락 이전 에덴동산의 가장 위대한 점은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의 임재 가운데 살았다는 사실입니다.

히브리인에게는 이 개념을 나타내는 단어가 있었습니다. ‘임재’, ‘거하다’, ‘살다’라는 의미를 담고 있는 단어인데요, 바로 쉐키나(Shekinah)입니다. 그래서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의 쉐키나 영광 가운데 살았던 것입니다. 요한복음 4장 24절에 따르면 하나님은 영이십니다. 하나님은 동산에서 육체를 가지고 다니셨던 것이 아닙니다. 그렇다면 자신을 어떻게 나타내셨을까요? 저는 하나님께서 빛나는 영광, 즉 쉐키나 영광의 빛으로 자신을 나타내셨다고 믿습니다. 마치 형언할 수 없이 찬란하고 눈부신 빛처럼 임하셨던 것입니다. 제가 그렇게 믿는 이유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성경의 다른 부분에서도 하나님께서 그렇게 나타나시는 모습이 종종 나오기 때문이죠.

그러니까 에덴동산에는 하나님의 무한하고 영원한 영광을 나타내는 광채가 있었고,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의 영광 가운데서 교제하면서 살았습니다. 그러나 아담과 하와가 죄를 지은 순간, 창세기 3장 24절은 동산에서 쫓겨났다고 말합니다. 하나님의 영광에서 끊어졌고, 하나님의 쉐키나(Shekinah) 영광에서도 끊어졌습니다. 그리고 동산 입구에는 그룹들과 두루 도는 불 칼을 두셔서 다시는 그 안으로 들어가지 못하게 하셨습니다.

바로 이것이 핵심입니다. 타락한 인간은 하나님의 영광을 경험할 수 없습니다. 타락한 인간은 하나님의 임재 안에 거할 수 없습니다. 타락한 인간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없고, 영광 중에 계신 하나님을 인식할 수도 없습니다. 그러니까 인간은 하나님과 끊어졌습니다. 인류 역사에서 가장 비극적인 사건이었습니다.

잘 보십시오. 그때부터 하나님은 인간으로 하여금 자신의 영광을 바라보게 하시려는 일을 시작하셨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여전히 그 일을 하고 계십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이 처음에는 어떻게 하셨는지 살펴보겠습니다. 출애굽기 33장을 보겠습니다. 이번에는 성경을 펼쳐보시기 바랍니다. 출애굽기 33장입니다. 이 장면에는 위대한 지도자 모세의 인도를 받는 이스라엘 백성이 나옵니다. 이제 애굽을 떠나서 약속의 땅으로 가는 여정 속에서 중요한 위기의 순간에 이르렀습니다. 하나님께서 이 백성에게 반드시 믿게 하시고, 반드시 알게 하고자 하시는 것이 있다면, 하나님이 영광의 하나님이라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영광을 보기를 원하셨습니다. 마치 타락 이전으로 돌아가듯이, 하나님이 백성 가운데 임하셔서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인정하게 하고자 하셨습니다.

이제 출애굽기 33장 12절로 가보면, 하나님께서 모세와 교제하시는 장면이 나옵니다. 하나님은 모세에게 이렇게 말씀하신 셈입니다. “모세야, 내 백성을 인도하여라. 내 백성을 데리고 가라. 이제부터 네가 그들의 지도자가 되어야 한다.” 모세는 이미 한 차례 이 사명을 받았지만 다시 반복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모세는 두려워합니다. 자신의 부족함을 느끼고 염려합니다. 그래서 12절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주께서 내게 이 백성을 인도하여 올라가라 하시면서 나와 함께 보낼 자를 내게 지시하지 아니하시나이다.” 모세는 지금 이렇게 말하는 겁니다. “하나님, 이렇게 큰 사명을 맡기시면서 저를 도와줄 사람이 누구인지도 안 알려주십니까? 혼자 감당하기엔 너무 벅찹니다.” 당시 이스라엘 백성의 수는 약 2백만 명에 달했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이제 모세는 13절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내가 참으로 주의 목전에 은총을 입었사오면 원하건대 주의 길을 내게 보이사 내게 주를 알리시고.” 다시 말해서 “하나님, 제가 주님을 믿고 있고 주님이 계시다는 것도 알지만, 이 어려운 일을 감당할 수 있도록 주님께서 정말 함께하신다는 확실한 증거를 보여주세요.” 이렇게 말하는 셈입니다. 14절에서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친히 가리라.” “내가 친히.” 이 표현은 우리가 창세기에서도 보았던 바로 그 단어입니다. “내가 친히 가리라.”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내가 친히”란 무슨 뜻입니까? 하나님의 임재란 무엇을 의미하는 걸까요? 모세는 그 의미를 분명히 이해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18절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원하건대 주의 영광을 내게 보이소서.” 하나님께서 함께하신다는 것은 곧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나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내 모든 선한 것을 네 앞으로 지나가게 하고 여호와의 이름을 네 앞에 선포하리라 나는 은혜 베풀 자에게 은혜를 베풀고 긍휼히 여길 자에게 긍휼을 베푸느니라.”

그러니까 하나님의 말씀은 이런 뜻입니다. “좋다, 네가 내 모든 선함을 보게 될 것이다. 내 이름을 보게 될 것이다. 그 이름은 내 모든 속성의 총체다. 너는 나의 은혜를 보게 될 것이고, 나의 긍휼도 보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영광이란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모든 속성이 눈부시게 빛나는 모습으로 드러나는 것입니다. 제가 이 모든 것을 완전히 이해한다고 말씀드릴 수는 없습니다. 다만 성경이 그렇게 말하고 있다는 것을 말씀드리는 겁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모든 속성을 한 줄기 영광스러운 빛으로 응축시키셨고, 모세에게 말씀하십니다. “모세야, 내 영광을 보여주겠다.” 그리고 하나님은 모세를 바위 틈에 숨기십니다. 22절입니다. “내 영광이 지나갈 때에 내가 너를 반석 틈에 두고 내가 지나도록 내 손으로 너를 덮었다가 손을 거두리니 네가 내 등을 볼 것이요 얼굴은 보지 못하리라.” 하나님의 영광을 온전히 보고도 살아남을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모세에게 말씀하십니다. “내 영광을 조금만 보여주겠다. 그 정도면 충분하다.” 그러나 분명히 말씀하십니다. “너는 내 영광을 보게 될 것이다.”

모세는 그렇게 하나님의 영광의 일부를 보았습니다. 그러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아십니까? 그 빛이 모세의 얼굴과 몸 전체를 덮었습니다. 얼굴 피부에 광채가 났습니다. 그래서 모세가 산에서 내려왔을 때 이스라엘 백성들이 깜짝 놀랐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이 함께하여 모세의 얼굴 피부에 광채가 났기 때문입니다.

아시겠습니까? 하나님은 모세를 통해 이렇게 말씀하신 겁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아 나의 영광을 보겠느냐?” 그리고 바로 그 백성들, 여러분 기억하시죠? 광야로 나아갈 때 낮에는 구름 기둥이 앞에서 인도했고, 밤에는 불기둥이 인도했습니다. 무엇이었을까요? 다름 아닌 하나님의 영광이었습니다. 하나님은 모세의 얼굴에 영광을 나타내셨고, 낮 하늘에도, 밤 하늘에도 영광을 두셨습니다. 하나님은 계속해서 말씀하고 계셨습니다. “나의 영광을 보아라. 나의 영광을 보아라. 내가 누구인지, 나의 모든 속성이 빛나는 광채 속에 나타난 그 충만함을 보아라.”

슬프게도 이스라엘 백성들은 모세의 얼굴에 나타난 하나님의 영광을 보았음에도 불평하고 원망할 뿐 순종하지 않았습니다. 매일 낮과 밤, 광야에서 자신들을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영광을 눈으로 보았음에도 불구하고 믿지 않았고 끝내 믿음을 지키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결국 그 세대 전체가 광야에서 죽음을 맞이했습니다. 하나님은 “나의 영광을 보아라”라고 말씀하셨지만, 사람들은 또다시 하나님께 등을 돌리고 말았습니다.

출애굽기 40장을 보면, 하나님께서 다시 한번 하나님의 영광을 사람들 가운데 두신 장면이 나옵니다. 출애굽기 마지막 장, 40장 34절을 보면 성막이 완성된 뒤에 이런 말씀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구름이 회막에 덮이고 여호와의 영광이 성막에 충만하매.”

잘 들으십시오. 성막은 예배의 장소였습니다. 이스라엘의 모든 지파는 성막을 중심으로 각자 자리를 배정받았고, 모든 지파가 성막을 바라보는 원형의 형태로 진을 쳤습니다. 그리고 그 중심에 하나님의 영광이 머물렀습니다. 모든 백성은 그 영광에 초점을 맞춰야 했습니다. 성막이 완성되었을 때 백성들은 하나님의 영광이 내려오는 것을 보았습니다. 진을 칠 때 하나님의 영광이 성막 안에 머물렀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이 떠나 하늘로 올라가면 구름 기둥과 불기둥이 되어서 따라가야 할 방향을 알려주었습니다. 하나님이 멈추기를 원하시면, 영광이 다시 내려와 그 자리에 머물렀고, 백성은 또다시 그 영광을 중심으로 진을 쳤습니다. 하나님은 사람의 얼굴에, 하늘에, 그리고 성막 한가운데에 자신의 영광을 나타내셨습니다. 그러나 매번 백성은 불평하고, 불순종하고, 원망할 뿐 하나님께 마땅히 돌려야 할 영광은 돌리지 않았습니다.

마침내 이스라엘 백성들이 약속의 땅에 들어갔을 때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성전을 지으라.” 열왕기상 8장을 함께 보겠습니다. 성전이 완공된 다음에 어떤 일이 일어났을까요? 10절입니다. “제사장이 성소에서 나올 때에 구름이 여호와의 성전에 가득하매 제사장이 그 구름으로 말미암아 능히 서서 섬기지 못하였으니 이는 여호와의 영광이 여호와의 성전에 가득함이었더라.”

잘 들으십시오. 하나님의 영광을 모세의 얼굴 위에, 하늘에, 장막 안에 두셨다가, 이제는 성전 안에 두셨습니다. 솔로몬이 지은, 세상 그 어떤 건물과도 비교할 수 없는 웅장한 성전입니다. 하나님은 다시금 이스라엘 백성에게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나의 영광을 보아라. 나의 영광에 초점을 맞추어라. 내가 누구인지를 보고 나에게 합당한 경배와 예배를 드리라.”

그런데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아십니까? 시간이 흐른 후에 선지자 에스겔이 등장합니다. 에스겔 8장을 잠시 보겠습니다. 에스겔은 성전에 대한 환상을 보면서 말합니다. 무엇을 보았습니까? 하나님의 영광이 거하는 장소가 어떻게 되었습니까? 언약궤가 있고, 지성소에서 하나님의 영광이 임재하셨던 바로 그곳이 어떻게 되었습니까? 7절입니다. “그가 나를 이끌고 뜰 문에 이르시기로 내가 본즉 담에 구멍이 있더라.” 계속 읽습니다. “인자야 너는 이 담을 뚫으라 하시기로 내가 담을 뚫으니 한 문이 있더라 또 내게 이르시되 너는 들어가서 그들이 거기에서 행하는 가증하고 악한 일을 보라 하시기로 내가 들어가 보니 각종 곤충과 가증한 짐승과 온갖 우상을 그 사방 벽에 그렸고.”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아십니까? 하나님의 성전을 우상 숭배의 장소로 바꾸고 말았습니다. 로마서 1장에서 말하는 그대로의 일이 벌어진 겁니다. 하나님을 예배하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보다, 하나님의 영광을 기어 다니는 것들과 짐승들과 썩어 없어질 것들로 바꾸어버린 것입니다. 11절에는 제사장의 자리를 빼앗은 자들이 나오고, 16절에는 해를 숭배하는 자들이 나오고, 14절에는 바알과 담무스를 숭배하는 자들이 나옵니다. 다시 말해서 에스겔은 지금 이들이 하나님의 성전을 우상 숭배의 장소로 만들었다고 선언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이제는 나의 영광을 사람의 얼굴에도, 하늘에도, 장막에도 두지 않고, 성전 안에 두겠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 영광 보기를 거절했습니다. 이 부분을 계속 따라가서 10장에 이르면 ‘이가봇(ichabod)’, 곧 ‘영광이 떠났다’라는 말이 성전에 기록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영광이 성전 위로 올라가고, 문을 지나 하늘로 올라, 산을 지나 마침내 사라져버립니다.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내게 영광을 돌리지 않는다면 나는 그 기회를 거두겠다.”

여러분도 아시다시피 하나님은 정말 인내하셨습니다. 에덴동산에서도 자신의 영광을 나타내셨고, 광야에서도 영광을 나타내셨고, 가나안 땅에서도 영광을 드러내셨습니다. 그러나 그때마다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의 영광을 온전히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을 거부했습니다. 그런데도 하나님은 포기하지 않으셨습니다. 아직 한 번의 기회가 더 있었습니다. 요한복음 1장 14절을 보겠습니다. 이 말씀은 정말 놀라운 진리입니다. 사도 요한이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 기록하면서, 예수님을 어떻게 바라보았는지를 보여주는 말씀입니다. 요한복음 1장 14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어떤 영광이라고 합니까?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입니다.

잘 들으십시오. 예수님이 누구셨는지 아십니까? 예수님은 하나님의 영광이 육신 안에 거하신 분이셨습니다. 예수님은 쉐키나(Shēkhinah)의 완전한 구현이셨습니다. 누가복음 9장을 읽어보면, 예수님이 변화산이라고 불리는 산에 올라가셔서 육신의 가리개를 걷어내시고, 제자들에게 자신이 누구인지를 보여주십니다. 성경은 이렇게 말합니다. “그의 영광을 보더라.” 예수님은 참된 모습을 보여주셨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은혜로우신 하나님께서 인류에게 다시 한 번 말씀하신 겁니다. “이것이 나의 영광이다. 너희는 내게 영광을 돌리겠느냐?”

에덴동산이 아니라, 사람의 얼굴이 아니라, 하늘이 아니라, 성막이나 성전이 아니라, 이번에는 예수님 안에서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났습니다. 그런데도 세상은 무엇이라고 말했습니까? “우리는 예수가 우리를 다스리는 것을 원하지 않아. 예수는 귀신에게 속했고, 귀신의 왕 바알세불을 힘입는 자야. 그를 십자가에 못 박으라" 이렇게 말했습니다. 세상은 또다시 하나님의 영광을 등졌습니다. 참으로 비극적인 일입니다.

그러나 언젠가 미래에는 인간에게 그런 선택의 여지가 사라질 날이 올 겁니다. 왜냐하면 예수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마태복음 24장 30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그가 권능과 큰 영광으로 오는 것을 사람들이 보리라.” 그때는 더 이상 선택지가 없습니다. 마침내 예수님은 영광을 받으실 것입니다. 그때 온 피조물이 함께 외칠 것입니다. “어린 양께 영광을, 하나님께 영광을!” 결국 예수님은 반드시 영광을 받으실 것입니다.

지금까지 제가 보여드리려고 했던 것은, 과거에 하나님께서 사람들에게 자신의 영광을 보게 하시려고 끊임없이 일하셨다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미래에는 하나님께서 자신의 영광을 사람들이 더 이상 외면할 수 없는 방식으로 드러내실 것입니다. 그렇다면 현재는 어떻습니까? 지금 이 시대에는 어떻게 드러내실까요? 바로 그 점을 오늘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앞서 언급했던 에베소서 3장 말씀을 다시 상기해 보겠습니다. 19절부터 21절까지입니다. 바울은 이렇게 말합니다. “너희가 하나님의 모든 충만하신 것으로 충만하게 되기를 구하노라.” 또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가 구하거나 생각하는 모든 것에 더 넘치도록 능히 하실 이에게…” 왜 그렇게 하십니까? “교회 안에서… 영광이 그에게 있기를 원하노라.”

잘 들으십시오. 구약 시대에는 하나님의 영광이 건물 안에, 장막 안에, 한 사람의 얼굴 위에, 하늘에, 그리고 에덴동산에 나타났습니다. 미래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을 통해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날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 이 시대에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난다면, 그것은 바로 교회를 통해 드러나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골로새서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너희 안에 계신 그리스도는 영광의 소망이니라.” 고린도후서 4장 6절에서도 이렇게 말합니다. “어두운 데에 빛이 비치라 하시던 그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을 우리 마음에 비추셨느니라.” 다시 말해서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나타난 하나님의 영광이 세상에 드러나려면, 바로 우리를 통해 빛나야 한다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믿는 자에게 주어진 가장 위대한 부르심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일입니다. 바울이 디도에게 말한 것처럼, “하나님의 교훈을 빛나게 하라”는 것이야말로 우리에게 주어진 가장 위대한 사명입니다. 고린도후서 4장 6절에 따르면, 우리가 받은 가장 큰 부르심은 그리스도의 영광을 우리를 통해 드러내는 것입니다. 이 시대에 하나님은 우리를 통해 자신의 영광을 나타내도록 부르셨습니다. 그리고 세상이 하나님의 영광을 보게 되는 유일한 길은 우리 안에 계신 그리스도이십니다. 바로 그리스도께서 우리 안에 계시다는 사실이, 세상에 드러나는 영광의 소망이며, 동시에 우리의 영적 성장의 열쇠입니다.

그리고 이 지점에서 제가 꼭 강조하고 싶은 것이 하나 더 있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은 하나님께 너무나도 중요한 일입니다.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습니다. 이것이 전부입니다. 절대적인 본질입니다. 이사야 48장 11절에서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 영광을 다른 자에게 주지 아니하리라.” 하나님은 자신의 영광을 반드시 지키십니다. 왜냐하면 모든 것이 존재하는 이유가 바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 위함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지 않는 사람은 우주의 본래 의도에 정면으로 거스르는 것이며, 하나님과 맞서는 일입니다. 매우 심각한 일입니다. 제가 왜 이렇게 말하는지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예레미야 13장을 보십시오. 지금은 본격적으로 영적 성장의 실제적인 열쇠들을 살펴보기 전에 개념을 소개하는 단계입니다. 예레미야 13장 11절에는 매우 흥미로운 말씀이 나옵니다. 예레미야는 하나님의 영광과 관련된 메시지를 전하기 위해 어떤 장면을 연출하고 있습니다. 11절 끝부분에는 하나님의 영광에 대해 언급되어 있습니다. 예레미야는 하나님의 영광에 대해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15절에서 이렇게 외칩니다. "너희는 들을지어다 귀를 기울일지어다 교만하지 말지어다 여호와께서 말씀하셨음이라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 영광을 돌리라."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데 항상 방해가 되는 것이 있습니다. 바로 교만입니다. 인간은 스스로 영광을 얻고자 하기에,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는 자유를 얻지 못합니다. 그래서 예레미야는 이렇게 말합니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아 한다. 교만해서는 안 된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그리고 나서 이렇게 덧붙입니다. “그가 어둠을 일으키시기 전, 너희 발이 어두운 산에 거치기 전, 너희 바라는 빛이 사망의 그늘로 변하여 침침한 어둠이 되게 하시기 전에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 영광을 돌리라.” 정말 엄중한 경고입니다. 예레미야가 전한 메시지는 분명합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지 않으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어둠 가운데 빠지게 하시고, 비틀거리게 하시고, 결국 죽음에 이르게 하실 것이다.”

예레미야는 이렇게 되기를 바라지 않았습니다. 하나님도 마찬가지이십니다. 17절입니다. “너희가 이를 듣지 아니하면 나의 심령이 너희 교만으로 말미암아 은밀한 곳에서 울 것이며 여호와의 양 떼가 사로잡힘으로 말미암아 눈물을 흘려 통곡하리라.” 사람들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지 않고 자기 스스로 심판받는 자리에 올라갈 때에, 그것은 하나님의 마음을 찢는 일입니다. 동시에 하나님의 선지자의 마음도 찢는 일입니다.

다니엘 4장을 다시 보겠습니다. 여기서 같은 주제가 반복되고 있습니다. 다니엘 4장 30절입니다. 여기에서 느부갓네살 왕은 자신이 정말 대단한 존재가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바벨론뿐만 아니라 어느 곳에서도 자신과 견줄 자가 없다고 여겼습니다. 자신이 위대한 업적을 이루었다고 생각하면서 30절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나 왕이 말하여 이르되 이 큰 바벨론은 내가 능력과 권세로 건설하여 나의 도성으로 삼고 이것으로 내 위엄의 영광을 나타낸 것이 아니냐 하였더니.” 말하자면, “내가 얼마나 대단한가, 내가 얼마나 위대한가, 내가 얼마나 강력한가, 내가 한 일을 보라” 이런 말입니다. 그런데 31절을 보십시오. “이 말이 아직도 나 왕의 입에 있을 때에 하늘에서 소리가 내려 이르되 느부갓네살 왕아 네게 말하노니 나라의 왕위가 네게서 떠났느니라.” 하나님께서 “이제 그만, 됐다. 네가 지나쳤다. 너는 하나님과 겨룰 수 없어. 이제 끝이다” 이렇게 말씀하신 것입니다. 마치 웃시야 왕과 같습니다. 성경은 웃시야에 대해 이렇게 말합니다. “그가 강성하여짐에 그의 마음이 교만하여 악을 행하더니…” 그러자 하나님은 웃시야에게 나병을 내리셔서 죽게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느부갓네살이 깨닫도록 어떻게 하셨습니까? 바로 이 말씀을 주셨습니다. “네가 사람에게서 쫓겨나서 들짐승과 함께 살면서 소처럼 풀을 먹을 것이요 이와 같이 일곱 때를 지내서 지극히 높으신 이가 사람의 나라를 다스리시며 자기의 뜻대로 그것을 누구에게든지 주시는 줄을 알기까지 이르리라 하더라.” 즉, 누가 진정한 통치자인지 깨닫게 될 때까지 너는 짐승처럼 살 것이란 말씀입니다. 그리고 그 일이 실제로 일어났습니다. 33절입니다. “바로 그 때에 이 일이 나 느부갓네살에게 응하므로 내가 사람에게 쫓겨나서 소처럼 풀을 먹으며 몸이 하늘 이슬에 젖고 머리털이 독수리 털과 같이 자랐고 손톱은 새 발톱과 같이 되었더라.” 느부갓네살은 광야에서 반 미치광이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이렇게 고백합니다. “그 기한이 차매 나 느부갓네살이 하늘을 우러러 보았더니 내 총명이 다시 내게로 돌아온지라 이에 내가 지극히 높으신 이에게 감사하며 영생하시는 이를 찬양하고 경배하였나니 그 권세는 영원한 권세요 그 나라는 대대에 이르리로다.” 느부갓네살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마땅하며, 그렇지 않으면 하나님께서 아주 강하게 그를 다루신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사도행전 12장에서 이 주제에 대한 마지막 예시를 하나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시대 전후로 통치하던 헤롯 중에서 한 사람이 등장합니다. 그 헤롯이 특별한 날을 정했다고 나옵니다. 예루살렘 서쪽, 해안가에 위치한 가이사랴에 살고 있었는데, 어느 날 '헤롯의 날'을 만들기로 한 겁니다. 그래서 날을 정하고, 왕의 옷을 입고 왕좌에 앉아서 엄청난 연설을 했습니다. 정말 거창하게 한껏 떠벌렸습니다. 그러자 사람들이 외쳤습니다. 잘 들어보십시오. “이것은 신의 소리요 사람의 소리가 아니라.” 얼마나 멋집니까? 정말 대단합니다. ‘오 헤롯이여, 당신은 사람이 아니라 신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되었습니까? “헤롯이 영광을 하나님께로 돌리지 아니하므로 주의 사자가 곧 치니 벌레에게 먹혀 죽으니라.” 여러분 상상해 보십시오. 헤롯이 계획한 특별한 날이었는데, 그렇게 끝나다니요, 얼마나 처참한 결말입니까? 벌레에게 먹혀 죽는 모습이 자신이 꿈꾸던 하루의 마무리는 아니었을 겁니다. 그런데 그 이유가 분명합니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이것은 아주 기본적인 진리입니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든지, 아니면 그에 대한 대가를 치르든지 둘 중 하나입니다. 모세의 얼굴에 나타난 하나님의 영광을 보지 못한 세대, 하늘에 나타난 하나님의 영광을 보지 못한 세대, 성막 가운데 임하신 하나님의 영광을 보지 못한 세대는 광야에서 버려졌습니다. 성전에 임한 하나님의 영광을 보지 못한 세대 역시 버려지고 제쳐졌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 나타난 하나님의 영광을 보지 못한 세대는 하나님의 복에서 끊어졌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날 불타는 영광 가운데 다시 오시기 전에 하나님의 영광을 보지 못하는 세대는 영원한 심판 속으로, 그리스도도 없고 하나님도 없는 영원한 어둠 속으로 들어가게 될 것입니다. 아주 심각한 문제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지 않을 때, 로마서 1장이 이르기를, 하나님께서 그들을 “그 상실한 마음대로” 내버려 두시기 때문입니다. 멸망으로 향하는 삶입니다. 따라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일은 선택이 아니라 반드시 필요한 일입니다.

그 결과가 얼마나 중대한지 생각해보면, 하나님의 명령이기 때문에 우리는 반드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이 시대 속에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일에 집중할 때에, 우리는 그리스도의 형상을 따라 영광에서 영광으로 변화하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영적 성장의 과정입니다. 이제 도입 부분에서 여러분과 나누고 싶은 마지막 본문이 하나 더 있습니다. 그리고 나서 본격적으로 영적 성장을 위한 구체적인 핵심으로 들어가겠습니다.

요한일서 2장 12절부터 14절은 아주 중요하고 본질적인 본문입니다. 이 말씀 속에는 영적 성장의 세 단계가 나타나 있는데, 반드시 이 구조를 이해해야 합니다. 예수님도 비슷하게 세 단계를 말씀하셨습니다. “땅이 스스로 열매를 맺되 처음에는 싹이요 다음에는 이삭이요 그 다음에는 이삭에 충실한 곡식이라.” 농사의 비유를 통해서 성숙의 세 단계를 설명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여기 요한일서에서는 인간의 성장이라는 비유를 통해 같은 진리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자녀들아 내가 너희에게 쓰는 것은 너희 죄가 그의 이름으로 말미암아 사함을 받았음이요.” 여기서 요한은 신자를 하나로 묶어서 말합니다. 바로 ‘자녀들’, 곧 ‘자손’입니다. 여기서 사용된 ‘자녀들’이라는 헬라어 단어는 단순히 누군가에게서 태어난 사람을 뜻합니다. 나이와 상관이 없습니다. 85세 노인을 가리킬 수도 있습니다. 그 노인도 역시 누군가의 자녀이기 때문이죠. 꼭 어린 아이들에게만 사용되는 말이 아닙니다.

그런 다음에 요한은 다음 표현으로 넘어갑니다. 하나님의 자녀를 세 가지 범주로 나눕니다. 13절입니다. “아비들아 내가 너희에게 쓰는 것은 너희가 태초부터 계신 이를 알았음이요 청년들아 내가 너희에게 쓰는 것은 너희가 악한 자를 이기었음이라 아이들아 내가 너희에게 쓴 것은…” 여기서 ‘아이들’이라는 표현에는 전혀 다른 헬라어가 사용되었는데, ‘갓난아이들’을 의미하는 단어입니다. 그리고 14절에서 다시 한번 비슷한 내용을 반복합니다. “아비들아 내가 너희에게 쓴 것은 너희가 태초부터 계신 이를 알았음이요 청년들아 내가 너희에게 쓴 것은 너희가 강하고 하나님의 말씀이 너희 안에 거하시며 너희가 흉악한 자를 이기었음이라.”

자, 잘 들으십시오. 영적 성장에는 세 단계가 있습니다. 어린 아이, 청년, 아비입니다. 그렇다면 영적으로 어린 아이란 무엇입니까? 13절을 보십시오. “자녀들아 내가 너희에게 쓴 것은 너희가 아버지를 알았음이라.” 어린아이가 제일 먼저 인식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부모입니다. 엄마, 아빠를 인식합니다. 안타깝게도 대부분은 먼저 “엄마” 이렇게 말을 하죠, “아빠”는 한 여섯 달쯤 지나야 말합니다. 어쨌든 부모를 알아보는 것이 시작입니다. 영적인 어린아이도 마찬가지입니다. 자기가 하나님의 자녀라는 사실을 압니다. 그것이 전부입니다. 말하자면 영적인 수준에서는 “구구구구구”, “엄마”, “아빠” 수준인 겁니다. “예수님이 날 사랑하시네, 성경에서 말씀하셨네.” 이 정도에서 멈추는 것입니다. 그 이상은 잘 나아가지 못합니다.

영적 성장의 두번째 단계입니다. "청년들아 내가 너희에게 쓰는 것은 너희가 악한 자를 이기었음이라." 여기서 '악한 자'는 누구입니까? 헬라어로 '호 포네로스(Ho Poneros)', 바로 사탄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사탄을 이길 수 있습니까? 14절을 보십시오. "너희가 강하고 하나님의 말씀이 너희 안에 거하시며 너희가 흉악한 자를 이기었음이라."

자, 보십시오. 아이 안에는 하나님의 말씀이 그 안에 강하게 거하지 않습니다. 기본적인 것만 알고 있습니다. 결과적으로 에베소서 4장의 어린 아이와 같은 자들입니다. “온갖 교훈의 풍조에 밀려 요동”합니다. 달리 말해서, 그저 하나님만 알 뿐, 예수님만 알 뿐, 성경을 잘 모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누군가를 그리스도께로 인도할 때 가장 먼저 해야 하는 게 무엇입니까? 말씀 안에 뿌리를 내려서 거짓 교리에 요동하지 않게 하는 것입니다. 영적인 청년은 말씀 안에서 강하고 악한 자를 이기는 사람입니다.

청년은 어떤 의미에서 악한 자를 이깁니까? 사탄은 거짓말쟁이입니다. 사탄은 빛의 천사로 가장합니다. 사탄은 거짓 종교의 주인이고, 속이는 자입니다. 그러나 영적 청년은 하나님의 말씀을 알고 있기 때문에 더 이상 거짓 종교에 희생당하지 않습니다. 저 역시도 제 삶에서 영적 청년 시기를 지나면서 이것이 어떤 차이가 있는지 분명히 알게 되었습니다. 제가 영적인 어린아이였을 때는, 무엇이 진리이고 무엇이 아닌지를 잘 구분하지 못했습니다. 주님을 사랑하는 기쁨과 감격 속에 있었지만, 신학에 대해서 깊이 알지 못했고, 누군가의 기분이나 생각에 쉽게 흔들리고 영향을 받기 쉬운 상태였습니다.

그러나 어느 순간 저는 신학을 이해하게 되었고, 하나님의 말씀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거짓 교리에 더 이상 속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분노를 일으켰습니다. 그리고 저는 그런 상황에 있는 사람들을 제자훈련해 본 경험이 있습니다. 영적으로 청년이 되었을 때, 이단들과 맞서 싸우고 싶어하고, 세상을 바로잡고 싶어합니다.

그러나 그보다 더 깊은 영적 성장의 단계가 있습니다. 13절과 14절 상반절에서 요한은 이렇게 말합니다. “아비들아 내가 너희에게 쓴 것은 너희가 태초부터 계신 이를 알았음이라.” 잘 들으십시오. 하나님의 가족에 속해 있다는 것을 아는 것도 중요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아는 것도 중요합니다. 그러나 그보다 더 깊은 단계는 하나님을 친밀하고 깊이 있게 아는 것입니다. 성경을 아는 것과 그 성경을 기록하신 하나님을 아는 것은 전혀 다른 일입니다. 성경에 기록된 내용을 이해하는 것과 그 말씀을 쓰신 분의 마음을 아는 것은 차원이 다릅니다.

영적 성장은 먼저 내가 그리스도인이라는 사실을 아는 것에서 시작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아는 단계로 나아가고, 결국에는 하나님 자신을 온전히 아는 단계에 이르게 됩니다. 잘 들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을 참되게 아는 길은 평생을 하나님의 영광에 집중하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바로 이것이 우리를 영적 성장의 세 번째 단계로 이끄는 힘입니다. 신자의 삶의 초점입니다. 신자가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보고, 하나님의 존재의 충만함과 영광의 깊이를 이해하고 묵상하며 살아갈 때, 마치 자석처럼 그를 끌어올립니다. 그 결과, 단순히 자신이 누구에게 속했는지를 아는 수준을 넘어서, 무엇을 믿는지를 알고, 더 나아가 자신이 믿는 분, 곧 하나님 자신을 아는 자리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영적 성숙의 본질적인 방향입니다.

바울은 아주 단순하게 말했습니다. “만물이 그로 말미암고 우리도 그로 말미암아 있느니라.” 하나님은 우리도 하나님을 위해, 곧 하나님의 충만하심을 알도록 창조하셨습니다. 로마서 11장 36절도 이렇게 말합니다. “이는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감이라 그에게 영광이 세세에 있을지어다 아멘.”

이제 마무리 하겠습니다. 여러분이 하나님의 영광에 집중하고, 그 영광을 바라보며 하나님께 마땅히 돌려야 할 영광을 돌리기 시작할 때, 어느새 자신도 모르게 예수님의 형상으로 변화되고 있다는 사실을 스스로 발견하게 될 겁니다. 한 단계의 영광에서 또 다른 단계의 영광으로 옮겨지는 변화입니다. 이것이 바로 영적 성장입니다. 다음 시간에는 우리가 어떻게 그 열쇠를 자물쇠에 꽂고 돌려서 하나님의 영광에 초점을 맞출 수 있는지, 그리고 이것이 어떻게 실제로 영적 성장으로 이어지는지를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오늘도 귀한 시간을 허락하시니 감사합니다. 하나님의 영광이라는 이 위대한 개념이 영적 성숙과 어떻게 연결되는지를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제 우리가 이 일반적인 진리를 실질적이고 구체적인 삶의 자리에서 적용해 나아가도록 인도하여 주옵소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삶이 구체적으로 무슨 의미인지를 분명히 깨달아 갈 수 있도록 도와 주옵소서. 우리가 그 길을 걸어가기 위해서 먼저 그 기초를 바르게 이해하게 하옵소서. 이 위대한 진리들을 가르쳐 주시니 감사합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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