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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아침에도 계속해서 은사주의 운동 시리즈를 이어가겠습니다. 지난 몇 주 동안 상황이 다소 흥미롭게 전개되고 있습니다. 전국 각지에서 편지를 받고 있는데, 많은 분들이 저를 위해 기도하고 있다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이번 주에는 한 분에게서 편지를 받았는데, 은사주의에 대한 제 설교를 듣고 아내의 마음이 바뀌어서 결국 가정에 큰 갈등이 생겼다고 하면서 자신과 더 이야기를 나눠줄 수 있느냐, 이렇게 요청을 하셨습니다. 저는 또 제 의견을 적극적으로 지지하는 분들의 편지도 받았고, 상당히 불쾌해하시는 분들의 편지도 받았습니다. 그러나 저는 계속해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원하신다고 믿는 일을 할 겁니다. 은사주의 운동과 관련해서 성경을 차근차근 한번 살펴보면서 무엇이 옳고 그른지를 올바르게 이해하고자 하는 일을 계속 할 겁니다.

제가 이번 주에는 신학교에서 한 주 내내 강의도 하고 설교도 했는데, 은사주의 운동에 대한 주제를 가지고 한 시간을 맡아서 교수들과 학생들에게 지금까지 다루어 온 내용을 전반적으로 설명해 달라는 요청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제가 그렇게 했습니다. 그런데 매우 흥미로웠던 것은 대단히 긍정적인 반응을 보여주셨다는 겁니다. 또 많은 하나님의 사람들의 생각이 지금까지 제가 나누어 온 내용과 거의 같은 방향이라는 사실을 확인하게 되었습니다. 아주 큰 확신을 얻는 시간이 되었고, 지금까지 해온 일을 계속해야겠다, 이런 격려를 받았습니다.

자, 이제 다섯 번째 시간입니다. 지난주에 이어서 계속하겠습니다. 찰스 헌터(Charles Hunter)와 프랜시스 헌터(Frances Hunter)가 쓴 <왜 방언을 해야 하는가?(Why Should I Speak in Tongues?)>라는 책의 서론을 소개해 드렸습니다. “20세기에 사는 우리도 제자들이 누렸던 것들을 누릴 수 있다. 하나님께서는 그때와 같은 방식으로 오늘도 성령을 부어 주고 계신다. 전혀 다르지 않다.” 단지 헌터 부부만의 주장이 아닙니다. 은사주의 운동의 핵심 교리 중의 하나입니다. 오늘날과 사도 시대가 다르지 않고, 성령님이 지금도 그때와 동일한 방식으로 역사하신다고 끊임없이 주장합니다. 이들에게는 오늘날과 사도 시대의 유사성이 매우 중요합니다. 오순절주의자에게 신약성경에 기록된 일이 오늘 나의 삶에서도 그대로 일어나는 것은 기본적인 핵심 전제입니다. 이를 뒷받침하기 위해서 거의 예외 없이 드는 유일한 성경 구절이 있는데, 지난주에도 말씀드렸던 히브리서 13장 8절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니라.” 바로 이 구절을 근거로 하나님께서 그때와 똑같은 일을 오늘도 행하신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지난주에 잠깐 살펴본 것처럼, 이 구절은 이들의 주장을 뒷받침하지 못합니다. 이 말씀은 예수님께서 하시는 일에 관한 것이 아니라, 예수님이 누구신가에 관한 말씀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불변성, 변하지 않으심, 절대적인 한결같으심, 영원하신 신성을 선포하는 위대한 선언입니다. 하나님의 역사 방식에 대해 말하는 구절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역사 방식은 시대에 따라 다양하다는 것, 성경을 공부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아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은 인간의 타락 이전에는 인간을 이 땅의 왕으로 세우셔서 역사하셨습니다. 타락 이후에는 양심을 통해 역사하셨고, 그 다음에는 인간 정부를 세우셨고, 이어서 율법을 통해 역사하셨습니다. 또 여러 시대에 걸쳐서 사사들을 통해서, 왕과 제사장, 선지자들을 통해서 역사하셨습니다. 신약에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을 통해서, 이 땅에 오신 그리스도를 통해 역사하셨습니다. 그리고 지금 이 시대에는 성령과 성도의 삶을 통해 역사하십니다. 장차 올 시대에는 왕국의 보좌에 앉아 다스리시는 왕을 통해 역사하실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다양한 방식을 사용해 세상을 다스리셨습니다. '경륜(dispensations)'이라고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시대에 맞는 독특한 방식으로 세상에 역사하셨습니다. 한때 그리스도께서는 여호와의 사자(The Angel of the Lord)로 나타나셨고, 또 한때는 성육신하신 고난받는 종으로 오셨습니다. 미래에는 만왕의 왕이시며 만주의 주로 오실 것입니다. 따라서 히브리서 13장 8절 말씀은 하나님의 역사 방식이 아니라 하나님의 성품이 동일하다는 의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완전한 지도자의 본이십니다. 결코 변하지 않으시기에 실패의 두려움 없이 언제나 따를 만한 분이시라고 히브리서 13장이 말하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13장 7절은 “너희를 인도하던 자들을 생각하며”라고 하죠. 예수 그리스도를 완전한 본으로 제시하면서, 결코 진리에서 벗어나지 않으시기에 아무 두려움 없이 따를 만한 분이라고 말합니다.

오늘 아침 <로스앤젤레스 타임스(Los Angeles Times)> 스포츠면을 훑어보다가 <캘리포니아 에인절스(California Angels)>에 새로 입단한 선수의 인터뷰를 보았습니다. 송구력이 약하다는 비판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냐고 물어봤죠. 그랬더니 "누구에게나 약점은 있습니다. 자세히 살펴보면 예수 그리스도에게도 흠이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렇게 말을 했습니다. 틀린 말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자세히 살펴보면 빌라도처럼 고백할 수밖에 없습니다. "나는 그에게서 아무 죄도 찾지 못하였노라." 바로 그렇기 때문에 히브리서 13장 8절이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가 따라야 할 완전한 삶의 본으로 제시하는 것입니다. 이 구절은 예수님께서 언제나 동일한 방식으로 역사하신다는 뜻이 아닙니다. 따라서 사도들이 경험했던 모든 것이 반드시 모든 그리스도인의 표준이 되어야 한다는 주장은, 결국 뒷받침해주는 성경적 근거가 없습니다.

데이비드 두 플레시스(David du Plessis)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신약성경은 단지 한 세대에서 일어난 일들을 기록한 책이 아니다. 예수님이 다시 오실 때까지 모든 세대에서 반드시 일어나야 할 일들의 청사진이다." 플레시스는 전 세계 은사주의자들 중에서 가장 잘 알려진 인물입니다. 신약성경에 기록된 일이 모든 시대에 계속해서 일어나야 한다고 합니다. 신약성경에 기록된 기적과 놀라운 사건, 초자연적인 현상으로 특징지어지는 모든 일이 교회 시대 전체에 적용되는 통상적인 기준이라고 봅니다. 브루너(Bruner)는 은사주의자가 아니지만 성령론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오순절주의자들은 자신들이 1세기 사도적 운동을 충실하게 재현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그렇습니다. 오순절 운동에서는 하나님은 변하지 않으셨지만 교회가 조직화되면서 의식주의적으로 변해버렸고, 교리 중심으로 흘러가면서 성령의 능력을 잃어버렸다고 주장합니다. 그렇게 교회는 성령의 능력을 포기하고 상실한 채 2천 년을 보냈지만, 마침내 오순절 운동을 통해서 다시 회복됐다는 겁니다. 그래서 오늘날에도 하나님이 1세기에 하셨던 것과 똑같은 일을 하고 계신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요구합니다. 다시 말해, 새로운 계시와 환상, 표적과 병 고침, 능력의 역사, 방언, 기적 등 이 모든 것이 오늘날에도 나타나야 한다는 겁니다. 왜냐하면 1세기의 능력이 언제나 성령께서 역사하시는 표준적인 방식이기 때문이랍니다. 은사주의 운동은 이렇게 주장합니다.

실제로 그들은 '신약시대 성령의 능력 회복'이라는 표현을 사용합니다. 이것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지난 여러 세기 동안 교회가 그래왔던 것처럼 그 실재를 부인하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우리가 문제라는 겁니다. 이러한 주장은 은사주의 운동의 가장 핵심적인 주제입니다. 그리고 제 생각에는 바로 이것이 우리가 반드시 성경의 빛 아래에서 검토해야 할 세 번째 근본적인 문제입니다. 중대한 세 번째 오류입니다.

은사주의 운동의 문제점은 무엇입니까? 첫째로 계시 문제를 보았습니다. 계시가 지금도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고 주장하지만, 성경 이외의 계시는 없습니다. 둘째로 살펴본 문제는 해석 문제입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잘못 해석합니다. 자유주의 신학자 프리드리히 슐라이어마허(Friedrich Schleiermacher)의 주장과 똑같습니다. 경험에서 출발해서 성경으로 가고, 성경이 자기들의 경험을 인정해 주게 만듭니다. 그래서 결국 성경을 잘못 해석합니다. 이제 은사주의 운동의 세 번째 중대한 오류를 보겠습니다. 사도적 독특성 문제입니다. 사도 시대, 그러니까 초대교회 시대가 지닌 독특성을 인정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그 시대를 교회 시대 전체의 표준으로 만들고 싶어합니다. 또 사도들의 경험을 교회 역사 속 모든 신자들의 표준적인 경험으로 삼고 싶어합니다. 오늘 아침 우리가 다룰 내용입니다. 그런데 오늘 아침 말씀은 조금 학문적인 내용이 될 겁니다. 그러니까 잘 따라오셔야 합니다. 오늘 말씀은 여러분에게 영적인 전율을 느끼게 해 주는 그런 설교가 아닐 것입니다. "아, 오늘 참 은혜 많이 받았다"라는 말이 나올 그런 설교는 아닙니다. 오늘은 머리를 쓰셔야 합니다. 생각을 많이 하셔야 합니다.

제가 오늘 다루고자 하는 질문은 이겁니다. 사도 시대는 그 모든 요소를 포함해서 모든 그리스도인에게 통상적인 기준일까? 교회의 모든 시대에 적용되는 표준적 경험일까? 오늘 우리도 물 위를 걸어야 하는가? 오늘 우리도 오병이어의 기적으로 2만 명을 먹여야 하나? 오늘 우리도 병든 사람들을 고치는 기적을 계속해서 행해야 하나? 존 맥아더가 길을 걸어갈 때에, 그림자에 닿는 사람들이 모든 질병에서 치유되어야 할까? 목사가 성도에게 손수건을 보내서 치유받게 해야 할까? 하나님이 정말 그때 하셨던 그 모든 일을 오늘도 똑같이 하고 계실까? 오늘 우리도 계시와 환상과 음성과 방언과 기적을 경험해야 할까? 이런 질문들입니다. 자, 이제 답을 찾아 보겠습니다.

은사주의 운동은 이 질문에 대해서 단호하게 "그렇다"라고 답합니다. 이 모든 일들이 오늘날에도 나타나야 한다는 것이죠.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런 주장은 실제로 검증해 보면 전혀 입증되지 않습니다. 그런 종류의 일들을 실제로 경험하고 있지 않으면서도, 마치 경험하고 있는 것처럼 필사적으로 그 주장을 붙들고 있습니다.

이제 이 매우 중요한 질문에 답하기 위해서 몇 가지를 함께 생각해 보겠습니다. 잘 따라오십시오. 먼저 일반적인 관점에서 시작해 보겠습니다. 은사주의 운동이 기적을 사도 시대의 가장 중요한 특징으로 삼는다고 가정해 보겠습니다. 저는 타당한 가정이라고 생각합니다. 사도 시대의 기적적인 요소가 모든 시대의 표준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그렇다면 성경을 살펴보면서 하나님께서 왜, 그리고 어떻게 기적을 사용하셨는지 알아봅시다. 성경에서 기적이 집중적으로 나타난 시기는 크게 세 시대뿐입니다. 첫번째는 모세와 여호수아의 시대이고, 두번째는 엘리야와 엘리사의 시대이고, 세번째는 그리스도와 사도들의 시대입니다. 이 세 시기는 각각 인류 역사 전체를 놓고 볼 때 모두 100년이 채 되지 않는 아주 짧은 기간입니다. 그리고 이 세 짧은 시기에만 기적이 폭발적으로 나타났습니다. 일상적인 현상으로 풍성하게 나타났습니다. 물론 하나님은 원하시면 언제든지 초자연적으로 인간 역사에 개입하실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능력을 제한하려는 게 아닙니다. 다만 하나님께서 스스로 짧은 기간에 한해 초자연적인 능력을 나타내신 기적을 행하시기로 하셨다는 이야기를 하는 겁니다. 다시 말해, 하나님이 이 세 시기에 초자연적인 역사가 집중적으로 일어나도록 하셨다는 말입니다.

기적에는 네 가지 요소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왜 기적을 행하셨는지를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됩니다. 기적에는 네 가지 목적이 있고 서로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습니다. 네 가지를 모두 살펴보고 나면 왜 이것이 중요한지 알게 되실 겁니다. 자, 첫번째, 기적이 있었던 시대마다, 그것이 모세 시대이든, 엘리야와 엘리사의 선지자 시대이든, 신약의 사도 시대이든, 가장 첫 번째 목적은 새로운 계시를 시작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새로운 계시의 시대를 여는 것으로 기적을 사용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계시를 말씀하신 것입니다. 예를 들어서 모세의 생애를 둘러싸고 나타난 기적들은 하나님께서 실제로 말씀하고 계신다는 사실을 확증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예를 들어 모세 시대에는 성경의 처음 다섯 권이 기록되었습니다. 그 이전에는 정경에 포함된 어떤 책도 기록되지 않았습니다. 네, 물론 욥기(Job)가 먼저 기록되었을 수도 있지만 확실하진 않습니다. 기본적으로는 모세가 성경의 처음 다섯 권, 그러니까 모세오경을 기록했습니다. 또 모세 시대에는 하나님께서 율법과 십계명, 이스라엘이라는 새로운 민족, 성막, 제사 제도, 제사장 직분, 그리고 모세를 통해 모든 계시를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새로운 계시를 주고 계셨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 계시가 참된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사실을 확증하기 위해서 기적을 베푸셨습니다.

두번째는 엘리야와 엘리사의 시대입니다. 이 시대에는 선지자 직분이 다시 일어났습니다. 하나님은 모세를 통해 율법을 주셨고, 엘리야와 엘리사를 통해 선지자의 음성을 주셨습니다. 구약성경은 율법과 선지자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선지자들을 통해 계시를 주실 때에도, 그 계시에는 일정한 기적이 따랐습니다. 다시 말해, 율법도 기적으로 확증되었고 선지자들의 메시지도 기적으로 확증되었습니다.

자, 마지막으로 하나님께서는 구약의 계시를 마무리하신 이후에 신약을 주셨습니다. 그리스도의 시대부터 마지막 책이 기록된 주후 96년경까지의 비교적 짧은 기간 동안에 신약성경 전체가 기록되었습니다. 그리고 이 신약의 계시 역시 놀라운 이적과 기적으로 확증되었습니다.

이처럼 기적이 집중적으로 나타난 세 시기는 모두 하나님께서 새로운 계시를 주시던 시기였습니다. 다시 말해, 기적의 첫 번째 목적은 새로운 계시의 시대를 시작하는 것이었습니다. 둘째 목적은 그 계시를 전하는 사자들을 확증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새로운 계시를 주시면 사탄도 다른 사람들을 내세워서 여러 가지 말을 하게 함으로써 혼란을 일으키려고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누가 자신의 참된 대변자인지를 분명히 드러내시기 위해서 기적을 행하는 능력을 주셨습니다. 그래서 모세와 여호수아, 엘리야와 엘리사, 예수님과 사도들이 모두 표적과 기사를 행하는 능력을 받은 것입니다. 새로운 계시의 시대를 여는 하나님의 사자라는 사실을 확신시키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이제 출애굽기 4장을 보겠습니다. 제가 말씀드리는 내용을 잘 보여주는 예가 여기 나옵니다. 출애굽기 4장 9절까지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하나님이 새로운 계시를 전할 사자들을 어떻게 확증하시는지를 한번 보십시오. 출애굽기 4장 1절입니다. "모세가 대답하여 이르되 그러나 그들이 나를 믿지 아니하며 내 말을 듣지 아니하고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네게 나타나지 아니하셨다 하리이다." 모세는 이렇게 말하는 겁니다. "제가 이스라엘 백성에게 가서 불타는 떨기나무에서 하나님을 만났다고 하면, 애굽에서 백성들을 이끌어 내라고 하셨다고 하면, '네가 누구인데 그런 말을 하느냐?'라고 할 거예요. '우리가 왜 당신을 믿어야 하지? 여호와께서 정말 너에게 나타나셨다는 것을 우리가 어떻게 아냐고?'라고 할 거예요." 그러자 주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네 손에 있는 것이 무엇이냐?" 모세가 대답하죠. "지팡이니이다." 주님이 다시 말씀하십니다. "그것을 땅에 던지라." 모세가 던졌고, 그것이 뱀이 되었고, 모세는 그 앞에서 도망쳤습니다. 그러자 여호와께서 다시 말씀하시죠. "네 손을 내밀어 그 꼬리를 잡으라." 모세가 손을 내밀어서 뱀의 꼬리를 잡자 다시 지팡이가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어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이는 그들에게 그들의 조상의 하나님 곧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 여호와가 네게 나타난 줄을 믿게 하려 함이라 하시고." 다시 말해서, 하나님께서는 "모세야, 내가 너에게 기적을 행하는 능력을 줄게. 그러면 백성들이 네가 내 말씀을 전하는 나의 사자라는 사실을 알게 될 거다",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계속해서 6절을 보십시오. "여호와께서 또 그에게 이르시되 네 손을 품에 넣으라." 모세가 손을 품에 넣었다가 내어보니 손에 나병이 생겨서 눈 같이 되어버렸습니다. 나병은 피부를 하얗게 만들기 때문에 이렇게 표현한 겁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네 손을 다시 품에 넣으라." 모세가 다시 손을 품에 넣었다가 꺼내보니까 본래의 살로 회복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만일 그들이 너를 믿지 아니하며 그 처음 표적의 표징을 받지 아니하여도 나중 표적의 표징은 믿으리라 그들이 이 두 이적을 믿지 아니하며 네 말을 듣지 아니하거든 너는 나일 강 물을 조금 떠다가 땅에 부으라 네가 떠온 나일 강 물이 땅에서 피가 되리라." 실제로 하나님께서 애굽에 행하신 일 아닙니까?

보십시오.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기적을 행하는 능력을 주심으로써 새로운 계시를 전하는 하나님의 사자라는 사실을 확증하신 것입니다. 엘리야와 엘리사의 시대에 와서도 똑같은 원리를 볼 수 있습니다. 예를 많이 들 수 있겠지만, 열왕기상 17장 24절 하나만 보겠습니다. 열왕기상 17장에서 엘리야는 죽은 과부의 아들을 살리는 기적을 행했습니다. 위층에서 그 아이를 안고 내려와서 어머니에게 돌려주면서 "보라, 네 아들이 살아 있느니라", 이렇게 말합니다. 이제 열왕기상 17장 24절을 보십시오. "여인이 엘리야에게 이르되 내가 이제야 당신은 하나님의 사람이시요 당신의 입에 있는 여호와의 말씀이 진실한 줄 아노라 하니라."

아시겠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엘리야를 자신의 새로운 계시를 전하는 선지자로 확증하고 계신 것입니다. 신약도 마찬가지입니다. 요한복음 10장 25절을 보십시오. 예수님께서 첫 번째로 계시를 주셨습니다. 요한복음 10장 25절에서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너희에게 말하였으되 믿지 아니하는도다." 그리고 이어서 말씀하십니다. "내가 내 아버지의 이름으로 행하는 일들이 나를 증거하는 것이거늘." 다시 말해서, 표적을 통해 예수님의 신분이 확증되었다는 겁니다. 또 사도행전 2장 22절을 보면 오순절에 베드로가 이렇게 말합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아 이 말을 들으라 너희도 아는 바와 같이 하나님께서 나사렛 예수로 큰 권능과 기사와 표적을 너희 가운데서 베푸사 너희 앞에서 그를 증언하셨느니라.” 사도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사도행전 14장 3절은 하나님께서 표적과 기사를 통해 사도들이 전하는 말을 증언해 주셨다고 합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모세 시대에는 모세를, 엘리야와 엘리사의 시대에는 선지자들을, 신약 시대에는 그리스도와 사도들을 새로운 계시의 전달자로 확증하셨습니다. 따라서 기적의 목적은 새로운 계시가 주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선포하는 것입니다. 동시에 그 계시를 전하는 사자가 누구인지를 분명히 드러내는 것입니다.

셋째로, 기적은 말씀을 확증하기 위한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새로운 계시의 시대에 하나님의 사자와 하나님이 주시는 말씀을 확증하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광범위한 계시가 주어진 시기가 세 번 있었습니다. 모세와 여호수아의 시대, 선지자들의 시대, 그리고 신약 시대입니다. 그리고 그때마다 새로운 메시지는 기적으로 확증되었습니다. 계시의 시작, 계시의 전달자인 하나님의 사자,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임을 확증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기적의 네 번째 요소입니다. 기적의 목적은 사람들의 관심을 끌어서 새로운 계시에 귀를 기울이게 하는 것입니다. 새로운 계시를 확증합니다. 계시의 전달자를 확증합니다. 계시의 내용을 확증합니다. 그리고 이제 계시에 대한 반응입니다. 반응 역시 기적의 목적입니다. 예를 들어서, 애굽에서 모세가 행한 기적은 두 부류를 향해 있습니다. 두 부류의 사람들을 가르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출애굽기 6장을 펴 보십시오. 출애굽기 6장 6절입니다. 이어지는 출애굽기 7장에서는 하나님께서 재앙, 그러니까 놀라운 초자연적 기적을 행하십니다. 출애굽기 6장 6절입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하기를 나는 여호와라." 하나님께서 말씀하신다고 전하랍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은 이렇게 대답할 수도 있었을 겁니다. "그 말씀은 우리가 400년 동안 들어 왔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왜 아직도 애굽에 있습니까? 좋은 말씀인 것은 알겠습니다. 하지만 우리의 하나님은 조금 무력하신 것 같고, 애굽의 신들이 더 강한 것 같습니다. 그렇지 않다면 우리가 아직도 여기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을 리가 없지 않습니까?"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이어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애굽 사람의 무거운 짐 밑에서 너희를 빼내며 그들의 노역에서 너희를 건지며 편 팔과 여러 큰 심판들로써 너희를 속량하여 너희를 내 백성으로 삼고 나는 너희의 하나님이 되리니 나는 애굽 사람의 무거운 짐 밑에서 너희를 빼낸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인 줄 너희가 알지라."

다시 말해, 6절에서는 "내가 하겠다고 말하라"라고 하시고, 7절에서는 "조금 있으면 알게 될 것이라고 말하라"라고 하신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기적이 하나님의 능력을 보여 주고 확신을 주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일을 보기 시작하자 더 이상 의심할 이유가 없었습니다. 그러므로 기적은 이스라엘 백성, 그러니까 의심하는 믿음의 백성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믿게 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또 다른 대상이 있었습니다. 출애굽기 7장 17절을 보십시오. 모세가 바로에게 말합니다. “여호와가 이같이 이르노니 네가 이로 말미암아 나를 여호와인 줄 알리라,” 바로도 알게 될 것이라는 말입니다. “볼지어다 내가 내 손의 지팡이로 나일 강을 치면 그것이 피로 변하고."

이제 두 번째 부류입니다. 바로와 애굽 사람들, 이방인들입니다. 출애굽기 8장 19절도 같은 말을 합니다. "요술사가 바로에게 말하되 이는 하나님의 권능이니이다." 직역하면 "이는 하나님의 손가락이다"라는 말입니다. 그러나 바로는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대로 그들의 말을 듣지 않았습니다. 그러니까 기적의 목적이 무엇입니까? 새로운 계시의 시대를 열고, 계시를 전하는 사자를 확증하고, 계시의 말씀을 확증하고, 믿는 사람과 믿지 않는 사람 모두에게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엘리야와 엘리사의 기적도 목적이 같습니다.

열왕기상 17장 24절의 과부처럼 하나님을 믿는 사람에게는 기적이 확신을 주었습니다. 또 열왕기상 18장 36절을 보면 "저녁 소제 드릴 때에 이르러 선지자 엘리야가 나아가서 말하되 아브라함과 이삭과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여 주께서 이스라엘 중에서 하나님이신 것과…" 이렇게 기도합니다. 하나님께서 어떻게 하셨습니까? 하늘에서 불을 내려 보내셔서 제단과 나무와 돌과 물까지 모두 태워 버리고, 바알의 선지자들을 물리치셨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모세 시대에는 믿는 백성에게 기적을 보여 주셔서 하나님께서 말씀하고 계심을 확신시키셨고,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도 기적을 보여주셔서 하나님께서 말씀하고 계심을 알게 하셨습니다. 엘리야의 시대에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과부처럼 믿는 사람에게 기적을 보여 주셨고,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도 기적을 보여 주셔서 하나님께서 말씀하고 계신다는 사실을 증명하셨습니다. 신약도 똑같습니다. 요한복음 20장 30절을 보십시오. "예수께서 제자들 앞에서 이 책에 기록되지 아니한 다른 표적도 많이 행하셨으나"라고 말합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제자들 앞에서"라는 표현입니다. 그리고 이 책에 기록되지 않은 표적이 많았다고 합니다.

잘 들어보십시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 앞에서 표적을 행하셨습니다. 다시 말해서, 믿는 사람들에게 지금이 하나님의 새로운 계시의 시대이고, 하나님께서 말씀하고 계신다는 사실을 알게 하시려는 것이었습니다. 31절을 보십시오. "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 표적들이 기록된 또 다른 목적은 믿지 않는 사람들이 믿게 하는 데 있습니다. 이해가 되십니까? 그러므로 모든 경우가 똑같습니다. 모세의 기적은 첫째, 이스라엘 백성에게 하나님이 애굽의 신들보다 훨씬 능력이 크신 분이라는 사실을 확신시키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둘째, 바로와 애굽 사람들에게 그들이 섬기는 신들이 아무 쓸모없는 존재임을 깨닫게 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사실 출애굽기 7장부터 12장을 자세히 살펴보면 매우 흥미로운 사실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애굽에 내린 각각의 재앙은 모두 특정한 애굽의 신을 정면으로 겨냥한 것이었습니다. 나일강의 신은 강물이 피로 변하면서 무너졌습니다. 태양신도 공격을 받았습니다. 모든 재앙이 그런 식입니다. 애굽 사람들은 개구리를 숭배했는데, 하나님께서는 엄청난 수의 개구리를 보내심으로써 그 신을 심판하셨습니다. 모든 재앙은 애굽의 신들 하나하나를 정면으로 겨냥하고 있었습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에게는 그들의 하나님이 훨씬 뛰어나신 분임을 보여 주셨고, 이방인들에게도 같은 사실을 드러내신 것입니다. 엘리야와 엘리사의 시대에도 똑같은 일이 일어났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에게는 하나님께 돌아오게 하기 위해 기적을 행하셨고, 이방인들에게는 하나님의 새로운 계시에 귀를 기울이게 하기 위해 기적을 행하셨습니다. 그리스도와 사도들의 시대에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믿는 사람들의 믿음을 확증하시고, 믿지 않는 사람들은 더 이상 변명할 수 없게 하시기 위해 기적을 행하셨습니다.

마지막 요점에 대해서 생각해 볼 수 있도록 몇 구절만 더 보겠습니다. 사도행전 5장 12절입니다. "사도들의 손을 통하여 민간에 표적과 기사가 많이 일어나매…" 그리고 이어지는 말씀을 보면 "믿고 주께로 나아오는 자가 더 많으니 남녀의 큰 무리더라" 하나님께서는 사도들에게 표적과 기사를 행하는 능력을 주셨는데, 기적을 본 사람들이 말씀을 듣고 믿음으로써 교회에 수가 더해졌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의 구속 역사에서 기적이 일상적으로 나타났던 시기는 바로 그때뿐이었습니다. 율법과 선지자들의 계시가 완성되고, 신약이 완성됨으로써 하나님의 계시도 끝났습니다. 히브리서 1장 1절부터 2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옛적에 선지자들을 통하여 여러 부분과 여러 모양으로 우리 조상들에게 말씀하신 하나님이 이 모든 날 마지막에는 아들을 통하여 우리에게 말씀하셨으니." 하나님께서 두 단계에 걸쳐 말씀하셨습니다. 율법과 선지자들을 통해 말씀하셨고, 이어서 아들을 통해 말씀하셨습니다. 이 두 계시가 함께 하나님의 말씀, 곧 성경을 이룹니다.

믿으십시오. 하나님께서는 그 모든 기적을 통해 성경을 확증하셨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이미 확증하신 성경을 다시 확증하실 필요가 없습니다. 기적의 목적을 이해하면, 은사주의자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오늘날에 기적이 계속해서 일어나야 할 이유가 없다는 사실도 아시게 될 겁니다. 마치 팻 분(Pat Boone)이 쓴 <하루에 한 번의 기적이 마귀를 물리친다(A Miracle A Day Keeps the Devil Away)>라는 책처럼, 날마다 기적이 일어나고 또 다른 기적이 일어나야 한다고 말할 이유가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새로운 계시를 확증하시기 위해 인류 역사 속에서 세 차례, 각각 100년도 채 되지 않는 짧은 기간 동안에만 집중적으로 기적을 사용하셨기 때문입니다.

오늘날의 은사주의자에게 한 가지 일관성이 있다면 기적도 있고 새로운 계시도 있다고 주장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문제는 둘 다 잘못되었습니다. 지난 몇 달 동안 새로운 계시를 인정하는 것이 왜 오류인지를 살펴보았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는 이 시대에 어떻게 신자가 되게 하십니까? 어떤 방식입니까? 요한복음 20장 29절을 보십시오. 예수님께서 도마에게 말씀하십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는 나를 본 고로 믿느냐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은 복되도다 하시니라." 다시 말해 예수님은 "도마야, 이제부터는 그런 방식이 아니다. 앞으로는 다른 방식이 될 것이다. 이제는 보고 믿는 시대가 아니라 보지 않고 믿는 시대가 될 거다"라고 말씀하시는 겁니다. 바울도 고린도후서 5장 7절에서 같은 말을 합니다. "이는 우리가 믿음으로 행하고 보는 것으로 행하지 아니함이로라." 이것이 새로운 시대의 질서입니다. 또 베드로도 "예수를 너희가 보지 못하였으나 사랑하는도다"라고 말합니다.

따라서 오늘날 우리는 기적을 구하지 않습니다. 기적에는 분명한 목적이 있기 때문입니다. 계시를 확증하고, 그 계시를 전하는 사자들을 확증하고, 그 계시의 말씀을 확증하고, 들은 사람들이 응답하도록 하는 것이죠. 그러나 이제는 더 이상 새로운 계시가 없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이미 충분히 확증된 하나님의 말씀을 다시 확증하기 위해서 기적을 구하기보다, 성경 말씀이 하나님의 말씀임을 믿음으로 받아들이고 그 말씀에 순종하도록 부름받은 사람들입니다.

이제 사도 시대의 특별함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사도들을 생각해 보겠습니다. 지금까지의 연구를 통해서 살펴본 것처럼, 신약성경의 저자들은 사도들과 사도의 동역자였습니다. 정말 특별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의 시대 또한 특별했습니다. 신약성경은 단 하나뿐입니다. 단 한 번 기록되었고, 거기에 무엇인가를 더할 수는 없습니다. 요한계시록 22장 18절은 성경에 무엇도 더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매우 분명하게 말합니다. 성경 어디에도 그 시대에 일어났던 일들이 오늘날에도 반드시 일어나야 한다거나, 성경의 저자들에게 일어났던 일들이 우리에게도 그대로 일어나야 한다고 말하는 곳은 없습니다. 그 시대는 매우 특별한 시대였습니다. 사실 성경은 오히려 은사주의자들의 주장과 반대되는 사실을 말합니다. 여러분은 신약성경에서 바울이 성령과 관련하여 단지 네 가지 명령만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계십니까? 네 가지 뿐입니다. 성령을 소멸하지 말라, 성령을 근심하게 하지 말라, 성령 안에서 행하라, 그리고 성령 안에서 기도하라. 이것이 전부입니다. 거기에 한 가지를 덧붙인다면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으라"는 말씀입니다. 기적을 구하라거나 또 다른 어떤 특별한 성령 체험을 구하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성령을 근심하게 하지 말고, 성령을 소멸하지 말고, 성령 안에서 행하고, 성령 안에서 기도하라고 합니다. 성령님의 뜻에 따라 기도하라는 것이죠.

그런데도 은사주의자들은 놀라운 기적이 성도들의 덕을 세우기 위해 주어진 것이고, 오늘날에도 계속되어야 한다고 믿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은 분명히 다르게 말합니다. 예를 들어 방언을 보십시오. 고린도전서 14장 22절입니다. "그러므로 방언은 믿는 자들을 위하지 아니하고 믿지 아니하는 자들을 위하는 표적이나…" 방언은 본래 성도의 덕을 세우기 위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14장에 들어가면 자세히 살펴보게 될 것입니다. 방언을 포함한 모든 기적은 새로운 계시의 시대를 확증하기 위한 표적이었습니다. 계시가 끝나자 표적도 함께 끝났습니다. B. B. 워필드(B. B. Warfield)는 75년 전에 살았던 아주 위대한 개혁주의 신학자입니다. 워필드의 말에는 학문적 권위 때문에 큰 무게가 있습니다. 이 글을 쓸 당시에는 현대 오순절주의가 등장하기 전이었기 때문에 반론을 제기하는 사람도 거의 없었습니다. 워필드는 이렇게 말합니다. "기적은 성경의 여러 페이지에 아무 이유 없이 여기저기 흩어져 나타나는 것이 아니다. 기적은 계시가 주어지는 시대에 나타나며, 하나님께서 자신의 은혜로운 뜻을 선포하기 위해 공인된 사자들을 통해 자기 백성에게 말씀하실 때에만 나타난다. 사도 시대 교회에서 기적이 풍성하게 나타난 것은 사도 시대가 계시로 풍성했던 시대였음을 보여 주는 표지이다. 그 계시의 시대가 끝났을 때 기적을 행하는 시대도 자연스럽게 함께 끝났다." 그렇습니다. 위스콘신 루터교 계간지(Wisconsin Lutheran Quarterly) 1973년 10월호에 <방언(Glossolalia)>이라는 글을 기고한 루터교 신학자 조엘 겔라크(Joel Gerlach)도 이렇게 말했습니다. "방언은 본래 증거를 위한 목적으로 주어졌다. 하나님의 진리를 확증하고 입증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런데 객관적인 표적에 두어야 할 강조점을 주관적인 체험으로 옮기는 사람들은 언제나 그 목적을 왜곡한다." 사랑하는 여러분, 표적의 은사들은 새로운 계시를 확증하기 위해 주어진 것이었습니다. 마가복음 16장 20절을 보십시오. 지난주에 뱀을 집는 일과 독을 마시는 문제를 살펴보면서 잠깐 말씀드렸습니다. 이제 마가복음 16장 20절로 돌아가 봅시다. 우선 마가복음 16장 9절부터 20절까지의 본문을 포함시키고, 이 본문이 권위 있는 본문이라는 전제로 살펴보겠습니다.

여기서 한 가지 흥미로운 사실을 보시기 바랍니다. 14절입니다. "그 후에 열한 제자가 음식 먹을 때에 예수께서 그들에게 나타나사..." 예수님께서 누구에게 말씀하고 계신지가 분명합니다. 가룟 유다를 제외한 열한 사도에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이후에 이어지는 모든 말씀도 마찬가지입니다. 19절을 보십시오. "주 예수께서 말씀을 마치신 후에 하늘로 올려지사 하나님 우편에 앉으시니라 제자들이 나가 두루 전파할새 주께서 함께 역사하사 따르는 표적으로 말씀을 확실히 증언하시니라." 다시 말해, 표적의 은사는 사도들이 선포하는 하나님의 말씀을 확증하도록 열한 사도에게 주어진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표적의 목적이었습니다.

사도행전 2장 22절을 보십시오. "이스라엘 사람들아 이 말을 들으라." 제가 앞에서도 인용했던 구절입니다. "너희도 아는 바와 같이 하나님께서 나사렛 예수로 큰 권능과 기사와 표적을 너희 가운데서 베푸사 너희 앞에서 그를 증언하셨느니라." 하나님께서 어떻게 예수 그리스도를 인정하고 확증하셨습니까? 능력과 기사와 표적으로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공적으로 확증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마가복음 16장에서도 하나님께서 사도들을 공적으로 확증하십니다.

이제 사도행전 7장에 나오는 스데반의 설교를 보십시오. 매우 흥미로운 말씀입니다. 사도행전 7장 36절은 모세를 가리켜 이렇게 말합니다. "이 사람이 백성을 인도하여 나오게 하고 애굽과 홍해와 광야에서 사십 년간 기사와 표적을 행하였느니라 이스라엘 자손에 대하여 하나님이 너희 형제 가운데서 나와 같은 선지자를 세우리라 하던 자가 곧 이 모세라 시내 산에서 말하던 그 천사와 우리 조상들과 함께 광야 교회에 있었고 또 살아 있는 말씀을 받아 우리에게 주던 자가 이 사람이라." 여기서 주목하십시오. 모세의 표적은 '살아 있는 말씀', 곧 하나님의 계시와 연결되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새로운 계시를 주실 때마다 그 계시를 전하는 자신의 사자를 확증하셨습니다. 모세이든, 선지자이든, 그리스도이든, 사도이든 마찬가지입니다. 여러분, 이것은 반드시 붙들어야 할 매우 중요한 원리입니다. 기적은 하나님의 역사 속에서 아무 때나 여기저기 흩어져 나타나는 현상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계시를 전하는 사자들을 확증하기 위해 주어진 것입니다.

히브리서 2장 3절과 4절을 보겠습니다. 이 본문을 이미 여러 차례 다른 문맥에서 살펴보았지만, 지금 우리가 말하고 있는 내용과 매우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다시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히브리서 2장 3절입니다. "우리가 이같이 큰 구원을 등한히 여기면 어찌 그 보응을 피하리요." 이 편지는 유대인들에게 보낸 겁니다. 정말 중요한 말씀입니다. 여러분이 이 큰 구원을 등한히 여긴다면 어떻게 심판을 피할 수 있겠습니까? 피할 수 없습니다. 이어서 저자는 그 구원에 관해서 설명합니다. "이 구원은 처음에 주로 말씀하신 바요 들은 자들이 우리에게 확증한 바니." 여기서 말하는 "주"는 예수 그리스도이시고, "들은 자들"은 사도들입니다. 사도들은 예수님과 함께하며 직접 말씀을 들었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이 구절은 2세대 유대인 신자들의 공동체가 1세대가 전한 복음을 받아들였다는 사실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4절은 "하나님도 표적들과 기사들과 여러 가지 능력과 및 자기의 뜻을 따라 성령이 나누어 주신 것으로써 그들과 함께 증언하셨느니라"라고 말합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증언하고 계신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확증한 바니"라는 동사는 이미 과거에 이루어진 일을 가리키는 부정과거 시제입니다. 그리고 그것에 연결된 분사도 주동사와 같은 시점을 나타내므로 역시 과거를 가리킵니다. 다시 말해 그 복음은 당시 사도들에게 표적과 기사와 여러 가지 능력과 성령의 은사를 통해 확증되었고, 그 결과 그 복음이 우리에게까지 전달됐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성경은 매우 분명하게 말합니다. 기적과 기사와 표적의 은사는 새로운 계시를 전하던 1세대 사도들을 위해 주어진 확증의 은사였습니다. 모세의 시대나 엘리야와 엘리사의 시대와 동일한 원리입니다.

워필드(Warfield)는 자신의 저서 <거짓 기적(Counterfeit Miracles)>에서 아브라함 카이퍼(Abraham Kuyper)의 말을 인용하면서 이렇게 말합니다. "카이퍼가 비유적으로 표현한 것처럼, 하나님은 각 사람의 필요를 채우기 위해 사람마다 별도의 지식을 따로 주시는 방식을 택하지 않으셨다. 오히려 모든 사람을 위해 하나의 공동 식탁을 차려 놓으시고, 모두를 그 풍성한 잔치에 와서 참여하도록 초청하신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에게 적합하고, 모든 사람에게 충분하며, 모든 사람을 위해 마련된, 하나의 유기적으로 완전한 계시를 세상에 주셨다. 그리고 그 완성된 하나의 계시로부터 각 사람이 자신의 모든 영적 양식을 얻도록 요구하신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계시하시는 능력을 나타내는 표지에 불과한 기적은, 동반하던 계시가 완성된 후에도 계속될 것이라고 기대할 수는 없다." 결국 이 모든 말은 한 가지를 의미합니다. 계시가 없다면 기적도 있을 수 없다.

은사주의자들은 하나님께서 사람마다 특별한 기적 하나씩을 베풀어주기 원하신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바로 당신을 위한 특별한 기적을 준비하고 계십니다", 이런 말을 자주 합니다. 잭 네메스(Jack Nemeth)는 지난 2주 동안 이 문제를 연구했습니다. 복음서에 기록된 모든 기적을 하나하나 조사하고, 도표와 그래프로 정리했습니다. 그의 결론은 이렇습니다. 복음서에 기록된 기적 중에 그 무엇도 개인적으로, 은밀하게 행해진 적이 없었다. 단 하나도 없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개인만을 위한 기적을 행하지 않으십니다. 은밀히 개인에게만 일어나는 기적은 아무 의미가 없기 때문입니다. 기적은 오직 새로운 계시를 확증하기 위해 주어졌습니다. 새로운 계시는 결코 개인에게 주어지지 않습니다. 은사주의자들은 적어도 자신들의 오류 안에서는 일관성이 있습니다. 기적이 있으려면 계시도 있어야 하고, 계시가 있으려면 그 계시를 전하는 사자들, 그러니까 사도들도 있어야 하기 때문이죠. 그래서 오늘날 은사주의자들은 새로운 계시와 사도직과 기적을 모두 믿습니다. 실제로 얼마 전에는 어떤 사람이 저에게 “목사님도 사도입니다”, 이렇게 말을 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누구요? 제가요? 저는 사도가 아닙니다” 그런데 그 사람이 계속 "아닙니다, 목사님은 이 시대를 위해 교회에 세우신 사도입니다”, 이렇게 말을 하더군요. 아닙니다. 저는 에베소서 4장에 제 직분이 분명히 기록되어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가르치는 목사입니다. 또 목회서신에 따르면 저는 장로 혹은 감독입니다. 이 명칭은 모두 같은 직분을 가리킵니다. 그러나 사도는 아닙니다. 사도는 특별한 시대를 위해 세워진 특별한 사람들을 말합니다. 기독교의 첫 번째 설교자들에게 주어졌던 사도적 권위와 자격은 계속해서 반복될 필요가 없습니다. 기적이 집중적으로 나타났던 그 한 시대만으로도 그 메시지가 하나님으로부터 왔다는 사실이 충분히 확증되었습니다. 그리고 성경은 이미 완성되었고, 모든 필요를 채우기에 충분합니다. 그러므로 성령님은 더 이상 "기적을 구하라"고 말씀하지 않으십니다. 바울도 성령님의 현현을 구하라거나 표적과 기사를 구하라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오직 성령의 능력 안에서 행하라고 말할 뿐입니다. 그리고 동일한 개념을 이렇게 설명합니다. "그리스도의 말씀이 너희 속에 풍성히 거하게 하라."

바울은 디모데후서 3장 15절에서 이 점을 매우 적절하게 설명합니다. 디모데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또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았나니…" 이제 이어지는 말씀을 잘 들어보십시오.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하게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갖추게 하려 함이라." 그렇다면 구원에 이르는 지혜를 얻기 위해 무엇이 필요합니까? 성경입니다. 온전한 사람이 되기 위해 무엇이 필요합니까? 성경입니다. 모든 것을 갖춘 사람이 되기 위해 무엇이 필요합니까? 성경입니다. 모든 선한 일을 행하기 위해 무엇이 필요합니까? 성경입니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입니까? 성경입니다. 성경으로 충분합니다.

로마서 15장 4절도 같은 말을 합니다. "무엇이든지 전에 기록된 바는 우리의 교훈을 위하여 기록된 것이니 우리로 하여금 인내로 또는 성경의 위로로 소망을 가지게 함이니라." 우리가 소망을 원하고, 삶의 닻을 원하고, 이 세상을 살아갈 힘을 원한다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기적이 아닙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성경입니다. 또 요한계시록 1장을 보십시오. 참고로 요한계시록은 환상, 기사, 표적이 가득한 책입니다. 그렇다면 저자인 요한이 "너희도 나와 같은 체험을 구하라"라고 말하기에 가장 적합한 책일 겁니다. 그러나 요한은 그렇게 말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이렇게 말하죠. "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와 그 가운데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는 복이 있나니." 체험 같은 것을 추구하라고 하지 않습니다. 읽고, 배우고, 순종하라고 합니다. 야고보서 1장 25절도 같은 내용을 강조합니다. "자유롭게 하는 온전한 율법을 들여다보고 있는 자는 듣고 잊어버리는 자가 아니요, 실천하는 자니 이 사람은 그 행하는 일에 복을 받으리라." 여기서 말하는 자유롭게 하는 온전한 율법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말씀을 깊이 들여다보고 그 안에 거하는 사람은 온전한 사람이 되고, 행하는 일에 복을 받을 것입니다.

이미 충분히 확증된 성경을 다시 확증하기 위해서 기적이 계속될 필요가 없습니다. 어떤 사실을 확증하는 데도 무한한 수의 증인이 필요한 것이 아닙니다. 재판은 한 번이면 충분합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말씀이다"라는 판결이 내려졌다면, 그 문제를 다시 법정으로 가져갈 필요가 없습니다. 만일 하나님께서 오늘날에도 사도 시대와 똑같은 방식으로 기적을 계속 행하고 계신다면, 둘 중의 하나를 의미할 것입니다. 하나님이 처음에 자신의 말씀을 확증하는 일을 형편없이 하셨다고 생각하시든지, 아니면 지금도 새로운 계시를 주고 계시든지 둘 중에 하나일 것입니다. 둘 다일 수는 없습니다. 새로운 계시의 시대와 사도들은 결코 떼어 놓을 수 없는 관계입니다.

잠시 고린도후서 12장을 보십시오. 11절입니다. 바울은 "내가 어리석은 자가 되었으나 너희가 억지로 시킨 것이니"라고 말합니다. 다시 말해서 "너희는 계속해서 내가 나의 사도직을 변호하게 만드는구나. 내가 사도라는 사실을 계속 설명하고 증명하게 하고 있다"라는 뜻입니다. 이어서 바울은 "나는 지극히 큰 사도들보다 조금도 부족하지 아니하니라"라고 말합니다. 다시 말해서 "나는 아무것도 아니지만, 사도라는 직분에 있어서는 가장 뛰어난 사도들보다 조금도 부족하지 않다", 이런 뜻입니다. 그리고 이것을 증명하기 위해서 이렇게 말합니다. "사도의 표가 된 것은 내가 너희 가운데서 모든 참음과 표적과 기사와 능력을 행한 것이라." 잘 들으십시오. 사랑하는 여러분, 이보다 더 분명할 수 있겠습니까? 바울은 "이 표적과 기사와 능력이 바로 사도의 표이다"라고 말합니다.

이제 이 점을 생각해 보십시오. 바울은 자신이 사도라는 사실을 증명하려고 합니다. 그리고 그 증거로 표적과 기사와 능력을 제시합니다. 만일 그런 일들이 모든 그리스도인에게 일반적으로 나타나는 것이라면, 그것으로 자신이 사도라는 것을 증명하려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일이겠습니까? 아무것도 증명하지 못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런 표적과 기사와 능력은 오직 사도들에게만 주어진 것이었습니다. 사도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사자로서 이러한 기적의 능력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사도들과 긴밀하게 동역하면서 사명을 받은 사람들에게도 제한적으로 나타났습니다. 그러나 그 범위를 넘어서 계속 이어지지는 않았습니다.

여러분이 결코 잊어서는 안 될 놀라운 사실 하나를 말씀드리겠습니다. 오순절 이후, 다시 말해서 교회가 세워진 이후에는 신약성경 전체를 통틀어 사도나 사도로부터 직접 사명을 받은 사람의 임재 없이 일어난 기적은 단 하나도 없습니다. 예외는 스데반과 빌립인데요, 이 두 사람도 사도행전 6장에서 사도들이 직접 세우고 사명을 맡긴 사람들입니다. 기적은 결코 모든 신자들에게서 나타나지 않습니다.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오순절 이후에는 사도나 사도로부터 직접 파송받은 사람, 이를테면 빌립과 스데반이 있는 곳에서만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심지어 사마리아 사람들에게 성령이 임하신 사건이나, 고넬료 같은 이방인에게 성령이 임하신 사건, 그리고 사도행전 19장에서 세례 요한의 제자들에게 성령이 임하며 방언을 말한 사건조차도, 그 모든 놀라운 일은 누구의 임재 없이 일어나지 않았습니까? 바로 사도들입니다. 왜냐하면 그러한 표적들은 특별히 사도에게 속했기 때문입니다. 사도의 표였습니다.

그렇다면 은사주의자들은 이렇게 말할 겁니다. "좋습니다. 그렇다면 오늘날에도 여전히 사도가 있다고 보면 되겠군요. 지금도 사도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제 대답은 "아닙니다. 오늘날에는 사도가 없습니다"입니다. 그 이유를 여섯 가지로 간단하게 말씀드리겠습니다. 오늘날에 사도가 있을 수 없는 이유가 여섯 가지 있습니다. 첫째, 교회는 사도들을 기초로 세워졌기 때문입니다. 에베소서 2장 20절은 "너희는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 위에 세우심을 입은 자라" 이렇게 말합니다. 그레이스 신학교의 찰스 스미스(Charles Smith) 교수는 이 구절의 헬라어 본문에 대해서, 자신의 판단으로는 "사도인 선지자들(the apostle prophets)"이라고 번역하는 것이 가장 적절하다고 말합니다. 다시 말해서 사도와 선지자를 서로 다른 집단으로 보기보다는 같은 사람을 가리키는 표현으로 이해하는 것입니다. '사도'는 직분을 나타내고, '선지자'는 그 기능을 나타낸다는 것입니다. 물론 그 해석이 맞든 그렇지 않든 중요한 것은, 교회의 기초가 사도라는 점입니다. 건물을 지을 때 기초는 맨 아래에 한 번만 놓습니다. 계속해서 기초를 반복해서 놓지 않죠. 사도들은 교회의 기초였습니다.

두 번째 이유는 사도가 반드시 부활의 증인이어야 했기 때문입니다. 사도행전 1장 22절은 사도는 반드시 예수님의 부활을 목격한 사람이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바울도 고린도전서 9장 1절에서 자신의 사도직을 증명하면서 이렇게 말하죠. "내가 자유인이 아니냐 사도가 아니냐 예수 우리 주를 보지 못하였느냐?" 또 고린도전서 15장에서는 "주께서 이 사람에게 나타나시고, 또 저 사람에게 나타나시고, 또…", 이렇게 말한 뒤에, "맨 나중에 만삭되지 못하여 난 자 같은 내게도 나타나셨느니라"라고 말합니다. 부활하신 주님을 직접 본 사람이 오늘날에도 있다고 저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물론 서둘러 덧붙이자면, 은사주의자들은 자신들이 그런 경험을 했다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베드로(Peter)는 "예수를 너희가 보지 못하였으나 사랑하는도다"라고 했고요, 예수님께서도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은 복되도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지금은 보고 믿는 시대가 아닙니다. 믿음의 시대입니다. 시각적인 체험의 시대가 아닙니다. 그러니까 사도는 교회의 기초였습니다. 부활의 목격자였습니다.

세 번째 이유는 사도는 반드시 예수 그리스도께서 직접 부르신 사람이어야 합니다. 마태복음 10장을 보면 사도가 누구인지가 매우 분명합니다. 더 이상 분명할 수 없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열두 제자를 부르시고 권능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열두 사도의 이름은 이러하니"라고 하시면서 이름을 하나하나 부르십니다. 성경에서 이 때 처음으로 '사도'라는 호칭이 나옵니다. 예수님께서는 "너희 열둘은 이제 사도다"라고 선언하시고 지명하셨습니다. 누가복음 6장 13절도 "열둘을 택하여 사도라 칭하셨다"라고 말합니다. 사도들은 그리스도께서 특별히 선택하신 사람들입니다. 물론 여기에 사도 바울과 사도행전에 나오는 맛디아를 더할 수는 있을 겁니다. 그러나 이들 역시 그리스도께서 직접 택하신 사람들입니다. 그리스도의 공식 대리자들입니다. 예수님께서 '사도'라고 하실 때 히브리어를 사용하셨다면, 아람어였을지 모르겠지만, 히브리어였다면 '쉘리아흐(sheliach)'입니다. 이 단어를 사용하셨을 겁니다. 유대 랍비들은 "한 사람의 쉘리아흐는 그 사람 자신과 같다"라고 말했습니다. 다시 말해 쉘리아흐는 그 사람을 대신하여 모든 권한을 가지고 행동하는 대표자입니다. 오늘날의 법률 용어로 말하면 대리인입니다. 사도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대리인이었습니다. 예수님이 직접 임명하신 특별한 사자였기 때문에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라고 말할 권위를 가졌던 것입니다. 최초의 권위 있는 대리자들이고, 최초의 계시의 전달자였습니다. 주님의 사도들이었습니다. 물론 신약성경에서 다른 사람들도 '사도'라고 불리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러나 고린도후서 8장 23절을 보면 '교회의 사도들'이라고 합니다. 주님께서 직접 보내신 '주님의 사도'가 되는 것과 교회가 파송한 '교회의 사도', 곧 '보냄을 받은 자'가 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입니다.

덧붙여 말씀드리자면, '교회의 사도들'이 기적을 행했다는 기록은 성경 어디에도 없습니다. 따라서 열두 사도와 바울은 계시의 진리를 가르치고 교회의 기초를 놓도록 사명을 받은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리고 신약성경이 교회의 미래와 목회서신에서 교회의 조직에 대해 말할 때는 감독과 장로와 목사와 집사와 여집사에 대해서는 말하지만, 사도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오늘날에 사도가 있을 수 없는 첫 세 가지 이유는 분명합니다. 첫째, 사도들은 교회의 기초인데 그 기초는 이미 놓였습니다. 둘째, 부활의 특별한 목격자들이었습니다. 셋째, 그리스도께서 직접 임명하신 공식적인 대리자였습니다.

이제 네번째 이유는 이미 살펴보았기 때문에 간단하게만 말씀드리겠습니다. 사도들은 기적의 표적으로 확증된 사람들이었습니다. 저를 두고 이 시대의 사도라고 말하는 것은 참 어리석은 일입니다. 제 그림자가 닿는다고 사람들의 병이 낫지는 않죠. 나을 리가 없죠. 기껏해야 햇빛을 좀 가려줄 수 있을 뿐입니다. 저는 사도의 표를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다섯번째입니다. 사도들을 특별한 존재로 구별하는 또 하나의 특징은 절대적인 권위입니다. 선지자들과도 달랐습니다. 고린도전서 14장을 떠올려 보십시오. 신약시대의 선지자가 예언할 때는 "예언하는 자들의 영은 예언하는 자들에게 제재를 받나니"라고 했습니다. 다시 말해서, 예언자들의 말을 다른 사람들이 분별하고 판단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도가 말할 때는 그런 제재가 없었습니다. 사도들은 하나님의 계시를 전달하는 대리자였기 때문입니다. 유다서 1장 17절입니다. "사도들이 미리 한 말을 기억하라." 또 바울은 고린도전서 14장 37절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만일 누구든지 자기를 선지자나 혹은 신령한 자로 생각하거든 내가 너희에게 편지하는 이 글이 주의 명령인 줄 알라." 사도들은 이처럼 절대적인 특별한 권위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여섯 번째 이유입니다. 제게는 아주 결정적인 이유입니다. 사도들은 영원히 특별한 위치를 차지하기 때문입니다. 무슨 뜻이냐고요? 이제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요한계시록 21장에서 요한은 새 예루살렘, 그러니까 하늘을 바라봅니다. 무엇을 보는지 보십시오. "그 성에 크고 높은 성곽이 있는데… 그 성의 성곽에는 열두 기초석이 있고 그 위에는 어린 양의," 무엇이라고 합니까? "열두 사도의 열두 이름이 있더라." 사도들은 영원토록 특별한 존재입니다. 언제까지나 특별한 위치를 차지합니다. 그 직분은 다른 사람에게 이어질 수도 없고, 다시 반복될 수도 없습니다. 계시는 끝났습니다. 사도 시대도 끝났습니다. 기적 시대도 끝났습니다. 하나님께서 장차 하나님 나라에서 다시 새로운 계시를 말씀하실 때까지는 말입니다.

교회 2세기의 역사도 이 사실을 확인해 줍니다. 알바 맥클레인(Alva McClain)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교회가 2세기에 들어서면 기적과 관련된 상황이 너무나 달라져서 마치 전혀 다른 세상에 들어온 것처럼 보인다." 새뮤얼 그린(Samuel Green)은 1913년 런던에서 출판된 <교회사 입문(Handbook of Church History)>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2세기로 들어가면 상당 부분 다른 세상에 들어선 것과 같다. 사도적 권위는 더 이상 그리스도인 공동체 안에 존재하지 않는다. 사도적 기적도 지나갔다. 하나님께서 영감과 기적의 시대를 그 이후의 시대와 이처럼 분명하고도 뚜렷한 경계로 구분하신 데에는 분명한 목적이 있었다는 사실을 우리는 의심할 수 없다."

사도 시대는 끝났습니다. 역사가 그렇게 말합니다. 성경 해석도 그렇게 말합니다. 신학도 그렇게 말합니다. 심지어 사도행전을 자세히 살펴보아도 알 수 있습니다. 사도행전 5장에서는 사도들을 통해서 모든 사람이 고침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25년이 지난 뒤에는 가장 위대한 사도였던 바울조차 자신의 병을 고치지 못합니다. 생애 후반부에 바울은 디모데에게 "자주 나는 병을 위하여 포도주를 조금 쓰라", 이렇게 권면합니다. 생애 마지막에는 사랑하는 형제 드로비모를 밀레도에 병든 채 남겨 두었다고 말합니다. 뭔가가 달라졌습니다. 처음에는 모두가 병 고침을 받았지만, 사도행전의 마지막에 이르면 병든 사람들이 많이 등장합니다. 사도행전 초반에는 사람들이 어디서나 그리스도를 전했지만 아무도 죽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7장에서는 스데반이 순교하고, 12장에서는 야고보가 순교합니다. 무언가가 달라지고 있습니다. 사도행전 초반에는 예루살렘이 기적으로 가득했습니다. 그러나 스데반이 순교한 이후에는 예루살렘에서 또 다른 기적이 일어났다는 기록이 더 이상 나오지 않습니다. 무언가가 변했습니다.

사도 시대는 놀라울 만큼 특별한 시대였습니다. 그리고 그 시대는 끝났습니다. 그러므로 그때 일어났던 일들이 모든 그리스도인에게 항상 일어나야 하는 정상적인 일은 아닙니다. 모든 그리스도인에게 정상적인 삶은 우리를 지혜롭게 하고 온전하게 할 수 있는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는 것입니다. 믿음으로 행하고 보는 것으로 행하지 아니하는 것입니다.

러셀 빅슬러(Russell Bixler)가 이렇게 말해도 저는 별로 개의치 않습니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위한 자리를 전혀 남겨 두지 않는 믿음을 가지고 있다. 2천 년 동안 아무 의미 있는 일도 하지 않으신 멀리 계신 하나님을 편안하게 받아들인다."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지난 2천 년 동안에도 분명 의미 있는 일들을 해 오셨습니다. 그것을 보지 못하는 것이 저는 안타까울 뿐입니다. 저는 오늘 제 주변을 둘러보아도 하나님께서 놀랍게 역사하고 계신 모습을 충분히 봅니다. 여러분도 그렇지 않습니까?

오랄 로버츠 대학교(Oral Roberts University)의 성경문학 부교수인 제리 호너(Jerry Horner)는 자신의 간증에서 이런 말을 했습니다. "도대체 누가 모든 활력을 잃어버린 하나님을 원하겠는가? 하나님께서는 한 세기에는 어떤 일을 하실 수 있었는데 다른 세기에는 하지 못하시는 분인가? 하나님께서 모든 능력을 잃어버리셨는가?" 저는 이렇게 반박하고 싶습니다. 하나님은 아무 능력도 잃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을 당신이 만든 틀 안에 가두려고 하지 마십시오. 에베소서 3장 20절은 이 시대를 위한 약속을 우리에게 주고 있습니다. "우리 가운데서 역사하시는 능력대로 우리가 구하거나 생각하는 모든 것에 더 넘치도록 능히 하실 이"라는 약속입니다. 하나님께서 오늘 행하시는 일은 사도 시대에 하셨던 것과 똑같은 방식은 아닐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여전히 하나님이시며,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일은 언제나 놀랍습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오늘 아침 이 시간을 허락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말씀으로 우리에게 말씀하여 주시니 감사합니다. 우리가 모든 것을 반드시 성경에 비추어 정말 그러한지를 살펴보아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하옵소서. 우리로 성경을 날마다 상고했던 베뢰아 사람들과 같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또한 성경에 비추어 사실을 확인하는 일에 조금 더 힘써야 할 필요가 있는 형제자매들도 진리를 깨닫게 하여 주옵소서. 무엇보다도 우리가 이러한 진리를 나눌 때 언제나 사랑으로 행하게 하옵소서. 오늘 아침 이 시간 우리를 함께 불러 모아 주시고 풍성하게 채워주시니 감사합니다. 우리가 사랑하며 섬기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감사하며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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