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race to You Resources
Grace to You - Resource

오늘은 어떻게 기도해야 하는지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그리스도인의 삶에서 기본 중의 기본은 기도하는 것입니다. 성경 읽기가 밥 먹는 것과 같다면, 기도는 숨을 쉬는 것과 같습니다. 사람이 살아있기 위해서는 호흡을 해야만 합니다. 따라서 이 호흡과도 같은 기도가 매우 중요한 겁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 태어나는 순간부터 공기에 둘러싸여 살아갑니다. 이 공기는 우리의 폐에 압력을 가하죠. 우리는 태어나는 순간부터 숨을 쉬기 시작합니다. 숨을 쉬는 이유는 폐에 가해지는 공기압 때문입니다. 이 압력으로 인해 폐가 공기를 들이마시게 되는 겁니다. 그래서 숨을 쉬는 것보다 숨을 참는 것이 훨씬 더 힘듭니다. 한 1분 정도만 숨을 참아도 얼굴이 파래지고 심장이 두근거리면서 땀이 나기 시작하죠. 폐에 가해지는 자연스러운 압력을 거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기도도 이와 같습니다. 하나님의 가족이 되어 거듭나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하나님의 세계로 들어가면 영적인 공간이 생깁니다. 그곳에서는 하나님의 임재와 은혜라는 영적인 공기가 우리의 삶에 압력을 가합니다. 가장 자연스러운 반응은 숨을 쉬는 것처럼 기도하는 것입니다. 이 기도가 바로 우리 삶에서 하나님의 압력과 임재에 대한 반응입니다.

기도는 그리스도인에게 숨쉬는 것만큼이나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임재라는 공기 속에서 살아갑니다. 그 임재를 받아들이고 호흡하듯 들이마셨다가 다시 내뱉으면서 하나님께 반응하게 됩니다.

기도는 정말 중요합니다. 우리는 기도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살지만, 실제로 기도는 엄청난 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기도는 전능하신 하나님의 근육을 움직이는 섬세한 신경과도 같다"라고 했습니다. 쉽게 말해서 기도는 하나님의 능력이 흘러나오게 합니다. 하나님은 자녀들의 기도에 응답하여 움직이십니다. 더불어 기도는 우리가 하나님과 바른 관계 안에 있도록 도와줍니다. 그런데 기도할 때는 항상 성령 안에서 해야 합니다. 성경이 그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성령 안에서 기도한다는 것은 성령님의 뜻에 따라 기도한다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기도는 하나님을 움직이게 할 뿐 아니라, 우리를 하나님의 뜻과 목적에 맞추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뜻 안에서, 또는 하나님의 뜻에 따라 기도할 때 우리는 하나님의 목적에 부합하게 됩니다. 따라서 기도는 하나님을 움직일 뿐 아니라 우리를 하나님의 목적에 일치시키는 분명한 효과가 있습니다. 기도는 정말로 상황을 바꿉니다. 어릴 때 저희 집 식탁 벽에 "기도는 모든 것을 변화시킨다"라는 문구가 걸려 있었던 게 기억납니다. 정말 그렇습니다. 기도에는 능력이 있습니다.

한 조각가가 바닥에서 작품을 망치로 다듬고 있었습니다. 그때 한 목사가 다가와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저도 이렇게 사람들의 마음에 변화를 주는 강력한 한 방을 날릴 수 있다면 좋겠네요"라고 말이죠. 조각가는 고개를 들어서 목사를 바라보며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저처럼 무릎으로 일하신다면 가능할 거예요." 이 말에는 깊은 의미가 있습니다. 기도는 그 어떤 설교로도 할 수 없는 일을 해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제가 경험을 통해 배운 것이 있다면, 진심으로 말씀드리는 것인데, 완전히 이해하시진 못할 것 같습니다만, 목회자로서 저는 기도할 때와 하지 않을 때의 사역이 얼마나 다른지를 깊이 체감하고 있습니다. 그 차이는 정말 분명합니다. 제가 알지도 못하는 분들의 기도와 제 자신의 성실한 기도 생활, 이 모든 것이 저의 사역에 확연한 차이를 만들어냅니다. 저는 이것을 분명히 느끼고 있습니다. 기도에는 정말 강력한 능력이 있습니다.

기도는 간단히 말해 하나님과 대화하는 것입니다. 아시다시피 아기가 태어나면 부모가 가장 바라는 것이 무엇입니까? 새 생명에게 바라는 첫번째는 바로 소통입니다. 아기가 반응을 보이기를 간절히 기다리죠. 그리스도인도 마찬가지입니다. 여러분이 그리스도인이 되면 곧바로 하나님과 함께하는 환경 속에 들어가게 되고, 그 안에서 하나님과 대화하고, 반응하고, 마음속의 이야기를 말씀드리고 싶은 강한 열망이 생깁니다.

이것이 바로 기도입니다. 기도란 기도책을 사서 "이제 잠자리에 들려 하나이다"라고 하면서 줄줄 읊어대는 것이 아닙니다. 다른 사람이 써 놓은 기도문을 그저 읊어대는 것은 진정한 기도가 아닙니다. 기도는 하나님과 교제하는 것입니다. 마치 다른 사람과 이야기하듯 자연스럽게 나누는 대화입니다. "거룩하신 주재여" 같은 고풍스런 말들, 온갖 멋진 단어들을 늘어놓는 것이 아닙니다. 숨쉴 틈도 없이 누가 더 많이 어려운 신학 용어를 쏟아내는지 겨루는 그런 대회가 아닙니다. 전혀 아닙니다.

또한 기도는 무의미한 말을 반복하는 것도 아닙니다. "제발 이렇게 해주세요, 간절히 부탁드립니다, 제발, 제발요"라고 애원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렇게까지 애원하지 않아도 됩니다. 바리새인들이 했던 것처럼 끝없이 같은 말을 반복하는 것도 아닙니다. 성모송을 48번이나 반복해서 외우는 것도 아닙니다. 하나님은 귀가 밝으셔서 딱 한 번만 말씀드려도 다 들으십니다. 끊임없이 반복해서 말할 필요가 없습니다. 마태복음 6장에도 나옵니다. 중언부언하는 것은 기도가 아닙니다.

기도는 "제발, 제발, 제발 이것 좀 해주세요. 이것만 해주신다면..." 하고 구걸하는 게 아닙니다. 물론 기도에는 간구하는 마음과 진심이 담겨있지만, 그런 식으로 하는 게 아닙니다. 기도는 대화입니다. 때로는 "하나님, 오늘 날씨가 참 좋네요. 제가 이 날씨를 즐기는 것처럼 하나님도 즐기고 계시죠? 이런 날을 주셔서 참 감사합니다.” 이렇게 하나님께 말씀을 드리는 겁니다. 이런 기도야말로 강단에 서서 신학적인 말을 늘어놓는 것만큼이나 중요하고 의미있는 기도입니다. 왜냐하면 결국 하나님과 마음을 나누는 것이기 때문이죠.

성경을 읽을 때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시고, 기도할 때는 우리가 하나님께 말씀드리는 겁니다. 대화가 되려면 이 두 가지가 모두 있어야 하죠. 일방적인 대화를 좋아하는 사람은 없으니까요.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기도를 합니다. 모두가 하나님께 말씀드리지만, 모두가 올바르게 기도하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가 마땅히 해야 할 방식대로 기도하지 않을 때가 참 많습니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잘못된 방식으로 기도합니다. 우선, 필요하지도 않은 것들을 구하느라 너무 많은 시간을 보냅니다. 알고 계셨습니까? 우리는 "주님, 이것도 주시고 저것도 주시고 그것도 주세요"라고 하지만, 주님은 만일 우리의 기도대로 되면 오히려 우리 삶이 망가질 뿐이라는 것을 알고 계시기 때문에 주지 않으십니다.

또 우리는 이미 가지고 있는 것들을 구하기도 합니다. 혹시 주님께 평강을 구해보신 적 있으십니까? 성경은 우리에게 이미 평강이 있다고 말합니다. 주님께 은혜를 구하신 적 있으십니까? 성경은 주님의 은혜가 이미 충만하다고 말합니다. 사랑을 구하신 적은요? 하나님의 사랑이 이미 우리 마음에 가득히 부어져 있다고 하시는데 무엇을 더 원하십니까? 이렇게 우리는 이미 가지고 있는 것들을 주님께 계속 구하고 있습니다. 야고보가 우리가 지혜를 구해야 한다고 말한 이유입니다. 지혜가 있다면 이미 가지고 있는 것을 또 구하지 않을 분별력이 생기기 때문입니다.

자, 그러니까 기도란 하나님과 교제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기도에도 옳은 기도와 그른 기도가 있고, 기본적으로 알아야 할 것들이 있습니다. 먼저 기도는 하나님께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꾸미거나 격식을 차릴 필요가 없습니다. 어떤 방식이든 괜찮습니다. 바울은 에베소서 6장 18절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모든 기도와 간구를 하되…" 어떤 기도든 괜찮다는 뜻이죠. 힘든 시기에 "하나님…" 이렇게 부르짖는 기도를 할 수도 있고, "주님, 오늘은 정말 좋은 날이에요. 너무 행복해서 주님께 말씀드리고 싶었어요"라고 기도할 수도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이, 모두가 다 기도입니다. 언제든, 어떤 상황에서든, 어떤 내용이든 하나님과 나누는 모든 대화가 기도인 것입니다.

또 기도할 때 굳이 눈을 감지 않아도 됩니다. 저는 좀 보수적인 교회에서 자랐는데, 기도할 때마다 일종의 의식 같은 걸 했습니다. 눈을 감고 고개를 숙이는 뭐 그런 것들이요. 아이들이 주변을 두리번거리면서 장난을 치거나 몰래 먹는 걸 막으려면 그렇게 가르치는 게 중요하죠. 그러니까 아무도 먼저 식사를 하지 못하도록 말입니다. 아니면 집중할 수 있게 손을 모으기도 하고요.

예전에 친구들과 함께 외부 사역을 다니던 때가 생각이 납니다. 설교도 하고 찬양도 했는데, 4중창단도 있었고 아주 재미있는 일들을 많이 했습니다. 그렇게 사역을 나갈 때마다 모여서 기도 모임을 했습니다. 처음 나갔을 때의 일입니다. 모두가 눈을 뜨고 기도를 하는 겁니다. 특히 운전하는 친구는 더 그랬습니다.

그 친구 기도 차례가 됐을 때, 사실 저는 다행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운전하는 친구가 눈을 감고 모든 걸 주님께 맡기는 것, 저는 원치 않았거든요. 눈을 뜨고도 운전을 잘 못하는 친구였거든요. 아무튼 운전을 하면서 기도를 했는데, 처음엔 '눈도 안 감았는데 주님이 들으실까?'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TV에서 기도하는 사람들을 보면 다들 눈을 크게 뜨고 있더라고요.

기도할 때 눈을 뜨고 하느냐 감고 하느냐는 그리 중요한 일이 아닙니다. 성경은 하늘을 바라보면서 기도할 수도 있고, 두 손을 들고 기도할 수도 있다고 합니다. 무릎을 꿇거나, 엎드리거나, 누워서 기도해도 되고요, 서서 해도 됩니다. 걸으면서도, 앉아서도 기도할 수 있죠. 중요한 건 그런 게 아닙니다. 심지어 화장실에서 기도하는 분들도 계실 텐데, 그것도 전혀 문제될 게 없습니다. 정말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기도는 그저 하나님과 대화를 나누는 것입니다. 어떤 자세를 취하든, 어떤 방식을 사용하든, 눈을 어디에 두든 그게 중요한 게 아닙니다. 그런 것은 하나도 중요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과 교제를 나누는 것이 핵심이죠. 자, 이제 여러분이 가지고 계신 개요를 바탕으로 기도에 대해 간단히 말씀드리겠습니다. 기도의 필요성, 기도의 조건, 기도의 내용, 기도의 방해요소입니다. 빠르게 훑어보도록 하겠습니다.

우선, 기도가 왜 필요한지 살펴보겠습니다. 첫째로, 기도는 명령이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인에게 명하신 것은 모두 필요한 것입니다. 예수님은 누가복음 18장 1절에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항상 기도하고 낙심하지 말라." 대부분의 사람들은 문제가 생기면 어떻게 합니까? 낙심하죠. 하지만 예수님은 "낙심하지 말고 기도하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원하시는 것은 우리가 기도하는 것이지, 낙심하는 것이 아닙니다.

아시는 것처럼 베드로에게는 한가지 문제가 있었습니다. 기도할 때 늘 잠이 들곤 했습니다.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시몬아 자느냐 네가 한 시간도 깨어 있을 수 없더냐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있어 기도하라." 어디에 들지 않게 깨어 기도하라고요? "시험"입니다. 베드로는 기도하지 않았기 때문에 시험에 들었던 겁니다. 잠자는 시간보다 기도하는 시간이 더 많다면 더 좋을 겁니다. 잠자리에 누워서는 "주님..." 이라고 말을 하자마자 잠들어버리는 사람이 있을 겁니다. 다음날 깨어나서는 하루 종일 실수를 저지르죠. 왜 그럴까요? 기도하는 대신에 잠이 들어버렸기 때문입니다. 시험에 들지 않으려면 깨어 기도해야 합니다.

기도는 우리를 지켜줍니다. 그래서 기도가 꼭 필요합니다. 하나님께서 명령하셨기 때문에 필요합니다. 여기에 작은 요점을 하나 더 추가하자면, 기도는 죄를 멀리하게 해주기 때문에 필요합니다. 기도는 우리를 준비시킵니다. 참고로 말씀드리면, 삼위일체 어느 분께든 기도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 기도하세요. 어떤 사람들은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이것이 무슨 의미인지는 나중에 말씀드리겠습니다. 하나님께 기도할 수도 있고, 예수님께 기도할 수도 있고, 성령님께 기도할 수도 있습니다. 삼위일체 중에서 어느 분이든 상관없습니다. 또는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 세 분 모두에게 말씀드릴 것이 있습니다"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이렇게 삼위일체 하나님 모두를 초청할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기도하라는 명령뿐만 아니라 많이 기도하라는 명령도 받았습니다. 에베소서 6장 18절은 "항상 기도하라"고 합니다. 데살로니가전서 5장은 "쉬지 말고" 무엇을 하라고 합니까? "기도하라"고 합니다. 어렸을 때는 쉬지 않고 기도한다는 게 도대체 어떻게 가능한지 정말 의아했습니다. 어린 마음에 눈을 감고 손을 모으는 것만이 기도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죠. 그래서 항상 기도하려면 두 손을 모은 자세로 세상을 돌아다녀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마치 '멍들고 피 흘리는 바리새인들'처럼요. 예수님 시대에 이런 바리새인 무리가 있었습니다. 여자를 쳐다보는 것이 죄라고 여겨서 여자가 나타나면 그 즉시 눈을 감았다고 합니다. 그러다 보니 계속해서 벽에 부딪히게 되었죠. 그래서 그런 별명을 얻게 된 겁니다.

하지만 저는 여러분이 멍들고 피 흘리는 그리스도인이 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기도하느라 여기저기에 부딪히고 다니는 그리스도인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항상 기도하라' 혹은 '쉬지 말고 기도하라'는 말씀의 의미는 그런 게 아닙니다. 그저 늘 하나님을 의식하는 마음가짐을 갖고 살라는 뜻입니다. 모든 것을 하나님과 연관시켜 바라보라는 명령입니다. 실제로 어떻게 적용할 수 있는지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여러분이 평범하게 일상을 살아가다가 좋은 일이 생겼다고 해 봅시다.

맑은 하늘을 보거나, 귀여운 아기를 보거나, 또 친구에게서 전화가 와서 그 친구의 사랑이 느껴질 때가 있죠. 또는 사랑하는 사람을 바라보면서 "참 좋다" 이렇게 생각할 때가 있죠. 그럴 때 여러분은 어떻게 하십니까? 첫 반응이 어떠신가요? "주님, 감사합니다"라고 하시나요? 이렇게 모든 것을 하나님과 연관짓는 것이 바로 기도입니다. 그냥 "정말 좋다" 이렇게만 하지 않고 "이 모든 것을 지으신 하나님 감사합니다"라고 하는 거죠. 모든 것을 하나님과 연관짓고 하나님과 대화하는 겁니다.

또 좋지 않은 일을 만났을 때도 "참 안 좋은 일이네, 나쁜 일이 너무 많아서 속상하다" 이렇게 하기보다는 "하나님, 좋지 않은 일이 생겼습니다. 선하게 바꿔주시면 좋겠습니다. 이 상황을 어떻게 해결해 주실 수 있으신가요?"라고 하는 겁니다. 이렇게 나쁜 일도 하나님과 연관을 지어보는 거죠. 어떤 문제를 보면 "주님, 여기 문제가 있습니다. 이 문제에서 우리를 건져주시고, 해결해 주시고, 이를 통해 영광을 받아 주십시오"라고 기도하는 겁니다. 즉,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그저 그런 일이든 무엇이든 하나님의 관점에서 바라보는 겁니다. 그러면 모든 것이 하나님과 나누는 대화의 주제가 됩니다. 이것이 바로 쉬지 않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쉬지 않고 기도한다는 것은 하루 내내 중얼거리면서 특별한 기도문을 외우는 것이 아닙니다. 하루 동안 일어나는 모든 일들을 하나님과 연관지어 생각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늘 함께 계시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의 가장 친한 친구를 떠올려 보십시오. 배우자일 수도 있고, 연인일 수도 있습니다. 아무튼 가장 친한 친구를 한번 떠올려 보십시오. 그리고 그 친한 친구가 오늘 하루 종일 여러분 곁에 있었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가장 소중한 사람과 하루를 함께 보낸 거죠. 그 사람이 하루 종일 여러분 곁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오늘 여러분이 예수님께 말씀드린 횟수만큼만 그 친구와 이야기를 나눴다고 생각해보세요. 과연 얼마나 대화를 나눴을까요?

오늘 기도를 하셨습니까? 만약 친구가 여러분과 하루 종일 함께 있었는데 여러분이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면, 그 친구 기분이 어떨까요? 정말 하루 종일 그 친구가 계속 여러분 곁에 있었는데도 말이죠. 정말 하루 종일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면 우정이 깨졌을 겁니다. 적어도 친구가 곁에 있다는 것을 알아주고, 그 친구가 있다는 것을 의식하면서 지냈어야 합니다.

"와, 정말 멋지지 않아? 그거 봤어?” “아, 참 안됐다. 우리가 뭔가 해야 할 것 같아." 이렇게 모든 것을 친구와 나누겠죠. 기도도 마찬가지입니다. 여러분이 하는 모든 일을 하나님과 연관짓는 것, 이것이 바로 하나님을 의식하는 태도이자 쉬지 않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기도의 필요성은 무엇보다 기도가 하나님의 명령이라는 사실에 기초하고 있습니다. 두 번째로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이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십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기도에 응답하시면 여러분이 하나님을 찬양하기 때문이죠. 요한복음 14장 13절에서는 우리가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자신의 영광을 위해 응답하신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너희가 내 이름으로 무엇을 구하든지 내가 행하리니 이는 아버지로 하여금 아들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으시게 하려 함이라." 하나님께서는 "나는 영광을 받기 위해 기도에 응답한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예를 하나 들어보겠습니다. 지난 주일 저녁에 베네수엘라에 대해 얘기했던 것 기억하시죠? 베네수엘라 라디오 방송국에 자금이 필요했습니다. 주일 오후에 제가 루이스 팔라우(Luis Palau)에게 이렇게 물었습니다. "베네수엘라 라디오 방송국 전체를 운영하는 데 얼마나 필요하십니까?" 그러자 텔레비전 방송에 2천 6백달러, 라디오 방송에 2천 4백달러가 필요하다면서 "총 5천 달러가 필요합니다" 이렇게 대답을 하시더군요. 저는 "오늘 저녁에 사랑의 헌금 봉헌 시간을 가지겠습니다. 주님께 5천 달러를 구해보겠습니다"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주일 오후에 이렇게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아시다시피, 임의로 정한 게 아니라 아주 정확한 금액이었습니다. 우리 교회는 지금까지 사랑의 헌금 시간에 5천 달러를 모금한 적이 한 번도 없었습니다. 단 한 번도요. 그래서 저는 주님께 기도를 드렸습니다. "주님, 저희에게 5천 달러가 필요합니다"라고 말입니다. 저녁 예배에 성도님들이 약 천 7백명에서 천 8백명 정도 참석을 하셨는데, 정확히 5천 달러를 맞추기 위해서 각자 얼마를 내야 하는지 어떻게 알겠습니까? 아무리 계산을 해도 그렇게 딱 맞아떨어질 리가 없습니다. 그래서 그저 주님께 맡겼습니다. "주님, 5천 달러가 필요하시면 채워주십시오."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아십니까? 일요일 밤 예배 시간에 헌금한 것을 월요일 아침에 세어보니까 4천 4백달러였습니다. 그래서 수요일 저녁 예배 시간에 저는 "4천 4백달러가 모금되었습니다"라고 말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누군가 제게 와서 "참, 6백달러가 더 들어왔어요"라고 말하는 겁니다. 5천 달러가 정확히 채워진 거죠. 제가 이걸 계획할 수 있었을까요?

그러니까 우리는 기도를 했고 하나님이 응답을 하셨으니, 누가 영광을 받으셨습니까? 하나님이 받으셨습니다. 우리가 기도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우리가 기도하지 않아도 하나님은 똑같은 일을 하실 수 있습니다. 그냥 5천 달러를 주셨을 수도 있지만, 우리가 먼저 요청하고 하나님이 그 일을 하시도록 맡겨드리지 않았다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없었을 것입니다. 이해하시겠습니까? 그러니까 기도는 하나님이 능력을 보여주시고 영광을 받으시는 방법입니다. 매우 중요한 일이죠.

좋습니다, 세번째로, 우리는 기도가 주는 복을 받기 위해서 기도해야 합니다. "복"이라는 단어가 무엇을 의미한다고 했죠? 행복이라고 했습니다. 기도하면 행복해집니다. 기도하는 사람들은 행복한 사람들입니다. 왜 그런지 아십니까? 하나님과 대화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과 대화하는 것은 정말 좋은 일입니다. 또 하나님은 우리가 요청한 것에 응답하시고, 그것이 우리를 행복하게 만듭니다.

네번째입니다. 기도는 효과가 있기 때문에 중요합니다. 저도 여러분과 똑같습니다. 저는 효과가 있는 일을 하고 싶습니다, 그렇죠? 저는 아무런 효과가 없는 일을 하면서 시간을 낭비하고 싶지 않습니다. 기도에는 효과가 있습니다. 야고보서 5장 16절입니다. "의인의 간구는 역사하는 힘이 큼이니라." 효과가 있습니다. 의인의 간절한 기도는 역사하는 힘이 있습니다. 실제로 하나님을 움직이게 합니다. 차이를 만들어냅니다. 여러분이 5천 달러를 위해 기도하면 하나님은 5천 달러를 주십니다. 효과가 있습니다. 때로는 하나님이 아니라고 응답하시기도 합니다. 하지만 기도가 효과가 있다는 것을 우리가 충분히 알 수 있을 만큼 하나님이 응답하십니다.

요한일서 5장 15절입니다. "우리가 무엇이든지 구하는 바를 들으시는 줄을 안즉 우리가 그에게 구한 그것을 얻은 줄을 또한 아느니라.” 말하자면 요한은 이렇게 말하는 겁니다. "하나님이 들으신다는 것을 알기에 응답하신다는 것도 알고 있다." 기도는 정말로 효과가 있습니다. 실제로 영향력이 있습니다. “어떻게 응답하실까요?” 좋은 질문입니다. 먼저, 때로는 즉시 응답하십니다. 여러분도 경험해 보셨나요? 때로는 얼마나 빨리 응답받는지 믿기 힘들 때도 있습니다. 주일 오후에 기도했는데 그날 밤에 응답받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처럼 때로는 즉시 응답받는 기도도 있습니다.

이사야 65장 24절에 놀라운 말씀이 있습니다. "그들이 부르기 전에 내가 응답하겠고 그들이 말을 마치기 전에 내가 들을 것이며." 우리가 기도를 하기도 전에 하나님은 이미 응답을 준비하고 계신 겁니다. 이처럼 때로는 즉시 응답하십니다. 두번째로, 때로는 시간이 걸립니다. 우리가 무언가를 위해 기도하고 기다려야 할 때가 있는데, 시간이 걸리는 이유는 하나님이 우리보다 훨씬 더 많이 아시기 때문입니다. 지금보다 나중에 이루어지는 것이 더 좋다는 것을 하나님이 아시기 때문입니다.

누가복음 18장 7절입니다. "하물며 하나님께서 그 밤낮 부르짖는 택하신 자들의 원한을 풀어 주지 아니하시겠느냐 그들에게 오래 참으시겠느냐." 다시 말해서, 때로는 많은 고난을 겪어야 합니다. 때로는 하나님의 택하심을 받은 백성들이 고난을 계속 겪어야 하거나, 마치 끝나지 않을 것처럼 느껴질 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반드시 응답하실 것입니다. 비록 응답하시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리더라도 말입니다. 하나님께 분명한 목적이 있으시기 때문입니다. 이렇듯 기도는 때로는 즉각적으로, 때로는 기다린 후에, 때로는 우리가 구한 것과는 다른 방식으로 응답됩니다.

때로는 하나님께서 우리가 구한 것보다 더욱 많이 응답하시곤 합니다. 저는 페피 리빌(Pappy Reveal) 목사님을 절대 잊을 수가 없습니다. 정말 특별한 분이셨죠. 하반신 마비가 있으셔서 서 있을 수는 없었지만, 휠체어를 타고 다니셨는데 85세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팔 힘이 엄청나셨습니다. 두 팔만으로 강대상을 붙들고 설교를 하셨는데, 강대상에 매달려 계시면 다리가 흔들거릴 정도였습니다. 그렇게 강대상에 매달려서 몸을 앞으로 기울인 채로 말씀을 전하셨습니다. 그리고 정말 놀라운 기도를 하셨습니다. 믿음의 은사가 있으셨습니다. 기도하실 때면 놀라운 일들이 일어났죠. 어느 날 리빌 목사님이 들려주신 이야기가 있습니다. 늘 큰 목소리로 말씀을 전하시던 목사님은 중서부의 어떤 큰 선교회 대표셨는데, 스테이션 왜건 차가 필요해서 기도를 하셨답니다. 계속해서 스테이션 왜건 차에 대해서 얘기를 하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저는 무릎을 꿇고 '하나님, 제게 스테이션 왜건 차량이 필요하다는 것을 아시지요'라고 기도했습니다" 이렇게 말입니다.

하나님께 파란 차가 필요하다고 하시면서 이것저것 상세하게 말씀을 드렸다고 합니다. 스테이션 왜건을 두고 한참을 기도하셨답니다. 그리고는 이렇게 말씀을 이어가셨습니다. "그 다음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아십니까? 일주일도 안 되어 새 스테이션 왜건을 세 대나 받았습니다. 할렐루야!" 이렇게 말씀하시면서 큰 소리로 "아멘, 아멘, 아멘" 이렇게 외치셨습니다. 기쁠 때면 늘 아멘을 다섯 번씩 외치곤 하셨죠.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리빌 목사님이 구한 것보다 더 많은 것으로 응답하셨습니다. 아마도 하나님께서는 실제로 더 많이 필요하다는 것을 아셨던 것 같습니다. 이는 성경 말씀과도 일치합니다. 예레미야 33장 3절을 보겠습니다. 물론 항상 이런 일이 일어나리라고 기대하지는 마십시오. 그래야 더욱 크게 놀라고 감사할 수 있으니까요. 예레미야 33장 3절입니다.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비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 에베소서 3장 20절 말씀과도 비슷합니다. "우리가 구하거나 생각하는 모든 것에 더 넘치도록 능히 하실 이에게." 하나님은 우리가 구하는 것보다 더 많은 것을 이루실 수 있는 분이십니다.

그레이스 교회에서의 제 사역을 돌이켜보면, 초기에는 "주님, 저를 사용해주시고 이 교회에 복을 주옵소서"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당시에는 우리 교회에서 어떤 일이 일어날지 상상조차 하지 못했습니다. 무슨 일이 벌어질지 전혀 짐작도 못했죠. 하나님께서 이루신 일들을 보면서 저보다 더 놀란 사람도 없을 겁니다. 제가 구하거나 생각했던 것을 훨씬 뛰어넘는 일들이 벌어졌습니다.

이제 기도의 조건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기도할 때 어떻게 해야 할까요? 첫째로,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구해야 합니다. 이 부분은 설명이 필요한데요, 많은 분들이 너무 단순하게 생각하십니다. 모든 기도 끝에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이라고 붙이면 그 기도가 응답된다고 생각하시죠. 그래서 어떤 장로교인이 기도하고 "아멘"이라고만 할 경우에, "아,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이렇게 안 했네. 저 기도는 아마 교회 천장을 못 넘겠다" 이렇게 말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심지어 어떤 분은 이렇게 말씀을 하더라구요. "그건 우표 없이 하나님께 보내는 편지 같다."

마치 이런 공식을 기도 끝에 꼭 붙여야 기도가 하나님께 상달되는 것처럼 생각하시는데, 이건 정말 잘못된 생각입니다. 성경에 나오는 기도를 보면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으로 끝나는 경우가 거의 없습니다. 요한복음 14장 13절에서 말하는 "내 이름으로 무엇을 구하든지"라는 말씀의 진정한 의미는 다른 뜻입니다. 여기서 "이름"은 예수님의 모든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한다는 것은 예수님의 성품과 뜻에 맞게 구한다는 의미입니다. 이 뜻 외에 다른 뜻은 없습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의 이름으로 구한다는 것은 “예수님께서 구하시는 것처럼 구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이름이란 예수님의 모든 것을 의미합니다. 예수님의 이름은 예수님의 모든 것입니다. 예수님의 인격 전체입니다.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 이 말씀이 무슨 뜻이었을까요? 그 이름에 어떤 특별한 마법 같은 것이라도 있다는 뜻이었을까요? 공식 같은 것이었을까요? 아닙니다. 예수님이 누구신지를 의미합니다. 예수님의 능력과 인격을 의지하여 걸으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의 이름은 예수님의 모든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의 이름으로 구한다는 것은 예수님의 성품에 일치하게 구한다는 뜻입니다.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아버지, 제가 이렇게 구하는 것은 예수님께서 원하시는 것임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라고 기도하는 겁니다. 이해가 되십니까? 다음번에 기도하실 때 이렇게 한번 해 보십시오. 실제로 이렇게 기도하는 게 쉽지는 않습니다. "주님, 제가 이렇게 구하는 것은 이 기도가 예수님께서 원하시는 기도라는 걸 알기 때문입니다"라고 말입니다. 이렇게 말하는 것이 바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는 방법입니다. 이렇게 하면 많은 불필요한 것들이 정리될 겁니다, 그렇죠? 이렇게 기도함으로써 많은 것들을 걸러낼 수 있습니다.

어떤 어린아이가 "주님, 엄마를 축복해주시고 아빠를 축복해주세요"라고 말한 다음에, 큰 소리로 "하나님, 새 자전거를 갖고 싶어요"라고 외쳤습니다. 그래서 옆에 있던 아빠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하나님은 귀가 아주 밝으시단다. 그렇게 크게 기도할 필요가 없어." 아이가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저도 알아요, 그런데 할머니가 옆방에 계시잖아요, 할머니 귀는 잘 안 들리잖아요." 글쎄요, 도대체 누구에게 기도를 하는 걸까요? 꽤 이기적이죠. 야고보가 이렇게 말한 것처럼 말입니다. “구하여도 받지 못함은 정욕으로 쓰려고 잘못 구하기 때문이라.”

그러니까 예수님의 이름으로 구한다는 것은 예수님께서 원하실 것이라고 믿기 때문에 구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서 기도할 때 "예수님께서 원하실 것이라고 믿기에 이 사람의 구원을 위해 기도합니다"라고 할 수 있을까요? 물론입니다. 예수님께서 원하실 것이라는 걸 알기에 자신의 영적 성장을 위해 기도할 수 있을까요? 당연하죠. 우리가 예수님이 원하시고 예수님이 기도하실 것이라고 알고 있는 것들이 있습니다. 이것이 예수님의 이름으로 구한다는 의미이지, "주님, 새 스포츠카 한 대만 주세요. 예수님께서 원하실 것이라고 믿기 때문이죠"라고 하는 게 아닙니다.

좋습니다. 둘째로, 우리는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구할 뿐만 아니라 믿음으로도 구해야 합니다. 우리는 믿으면서 구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믿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이 응답하실 때 우리가 찬양하기를 원하십니다. 마태복음 21장 22절입니다. "너희가 기도할 때에 무엇이든지 믿고 구하는 것은 다 받으리라." 첫번째 조건은 예수님과 일치하게 구하는 것이고, 두번째 조건은 믿고 구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진심으로 하나님이 기도에 응답하신다고 믿으십니까? 믿고 구하는 것이 바로 조건입니다. "하나님, 정말 계시다면 기적을 보여주시면 믿겠습니다"라는 의미가 아닙니다. 하나님은 사람들이 믿게 하려고 기적을 보이시는 것이 아니라, 이미 믿는 자들의 기도에 응답하시는 것입니다. 믿음이 핵심입니다.

실제로 성경은 “만일 너희에게 믿음이 겨자씨 한 알 만큼만 있어도,” 어떻게 된다고 합니까? “이 산을 명하여 여기서 저기로 옮겨지라 하면 옮겨질 것이요...” 이 말씀을 읽을 때마다 한 노부인 이야기가 떠오릅니다. 집 뒷마당에 작은 언덕이 있었는데 이 언덕을 없애고 정원을 만들고 싶었답니다. 그래서 무릎을 꿇고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주님, 저는 주님께서 산을 옮기실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저희 집 언덕도 옮겨주실 줄 믿습니다." 그런데 다음날 아침에 일어나 보니 언덕이 그대로 있자 이렇게 말했답니다. "하, 역시 내 그럴 줄 알았어."

이것은 진정한 의미의 믿음으로 구하는 것이 아닙니다. 처음부터 하나님이 그렇게 하지 않으실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죠. 또 다른 관련 구절이 있습니다. 야고보서 5장 15절입니다. "믿음의 기도는 병든 자를 구원하리니 주께서 그를 일으키시리라." 이 말씀을 통해서도 기도에는 믿음, 간구, 확신의 개념이 담겨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세번째입니다. 하나님의 뜻 안에서, 하나님의 뜻과 일치하게 구해야 합니다. "하나님 아버지, 하나님의 뜻대로 구합니다"라고 늘 말씀드려야 합니다. 요한일서 5장 14절입니다. "그를 향하여 우리가 가진 바 담대함이 이것이니 그의 뜻대로 무엇을 구하면 들으심이라." 예수님의 이름으로, 믿음을 가지고, 하나님의 뜻 안에서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 하나님이 원하시든 원하지 않으시든 이렇게 해주세요"라고 기도한다면, 하나님은 그렇게 하지 않으실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구하는 것이라면 뭐든 원하시든 원치 않으시든 마음대로 응답하시는 그런 분이 아닙니다. 앞서 말씀드렸듯이, 기도는 우리를 하나님의 뜻에 맞추는 것입니다. 또한 기도는 순수한 마음에서 나와야 합니다. 야고보서 5장 16절입니다. "의인의 간구는 역사하는 힘이 큼이니라." 우리 삶에 죄가 있다면 기도의 통로가 막히게 됩니다.

마지막으로 우리는 간절한 마음으로 구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끈기있는 태도를 원하십니다. 누가복음 11장에 나오는 떡을 구하러 간 벗, 기억하십니까? 친구 집에 가서 문을 두드리기 시작했는데, 친구는 이미 자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친구가 가라고 했지만, 계속해서 문을 두드렸습니다. 그렇지만 친구는 또 가라고 했습니다.

쾅, 쾅, 쾅, 계속 문을 두드렸습니다. “제발 떡 세덩이만 꾸어줘.” 그러자 마침내 친구가 일어나서 떡을 내줬습니다. 주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보아라, 그가 끊임없이 두드렸기에 떡을 얻었다. 너희도 이처럼 끊임없이 구하면 받게 될 것이다." 다시 말해서 이렇게 구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단순히 같은 말을 반복하는 것이 아니라, 간절한 마음으로 끊임없이 주님을 찾아야 한다는 말입니다.

자, 세번째로 기도의 내용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최대한 빠르게 진행하고 있습니다. 마무리를 해보도록 하겠습니다. 기도의 내용은 어떠해야 할까요? 먼저 기도의 형태를 보면, 앞서 말씀드린 에베소서 6장 18절에 나오는 것처럼 모든 기도와 간구를 해야 합니다. 서서 하는 기도, 앉아서 하는 기도, 큰 소리로 부르짖는 기도, 조용히 속삭이는 기도, 골방에서 드리는 기도, 공개적으로 드리는 기도가 있습니다. 간구는 우리의 필요를 구하는 것이고, 중보는 다른 사람의 필요를 위해 기도하는 것입니다. 감사는 하나님이 행하신 일에 대해 감사드리는 것이고, 찬양은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높이는 것입니다. 어떤 형태든 괜찮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누구를 위해 기도해야 할까요? 두 가지로 나눌 수가 있는데, 바로 우리 자신과 다른 사람들입니다. 이게 전부입니다. 나 자신을 위해서도 기도하고, 다른 사람들을 위해서도 기도하는 것입니다. 이와 관련된 성경 구절들이 있지만, 지금 자세히 살펴보지는 않겠습니다. 성경에서 우리가 기도해야 할 대상들을 찾아보시면 매우 흥미로울 겁니다. 이렇게 해보신 적 있으십니까? 성경에는 우리가 기도해야 할 구체적인 대상이 15개나 나와 있습니다.

주님의 추수할 밭에 일꾼들을 보내주시기를 기도해야 합니다. 새로운 선교사와 교사, 설교자를 위해서도 기도해야 합니다. 이들을 위해 기도해 보신 적 있으십니까? 성경에서는 이들을 위해 기도하라고 합니다. 대통령을 위해 기도하시나요? 우리를 다스리는 통치자들을 위해 기도하라고 말씀하십니다.

혹시 도지사를 위해 기도하십니까? 경찰관들을 위해서는요? 지역경찰을 위해서 기도해 보신 적 있으십니까? 네, 지역경찰을 위해서도 기도해야 합니다. 도지사를 위해서도 기도하세요. 여러분이 기도해야 할 사람들이 아주 많습니다. 모두가 신약성경 여러 곳에 언급되어 있습니다.

자, 마지막으로 기도를 방해하는 요소가 있습니다. 가장 큰 방해요소는 시편 66편 18절에 나와있습니다. “내가 나의 마음에 죄악을 품었더라면,” 어떻다고 합니까? “주께서 듣지 아니하시리라.” 죄악입니다. 시편 66편 18절이 말하는 기도의 방해요소는 죄악입니다. 이 죄는 여러 형태로 나타날 수 있습니다. 첫번째는 이기심입니다. 만약 여러분이 자신의 욕망을 채우기 위해 이기적으로 구한다면 여러분의 기도는 방해를 받습니다. 다른 것도 있는데, 무관심도 그 중 하나입니다.

나눠드린 개요를 보시면 아시겠지만 네번째, 참 흥미롭지 않습니까? 아내와 잘 지내지 못한다면 여러분의 기도는 응답받지 못할 것입니다. 알고 계셨습니까? 꽤 부담스러운 말이죠, 그렇지 않습니까? 사람들은 왜 가정에서 어려움을 겪게 되는지 궁금해합니다. 글쎄요, 주님과의 관계를 바르게 하기 전에 먼저 아내와의 관계가 좋아져야 할 수도 있습니다. 또 야고보서에 따르면 여러분이 의심하고 흔들릴 때 기도에 방해를 받습니다. 잠언 21장에 나오는 무관심 등 이 모든 것들이 기도를 방해합니다. 여기까지가 기도에 관한 기본적인 개요입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오늘 밤 우리를 이곳에 모아주시니 감사합니다. 여기 있는 이들, 특히 그리스도인의 기초를 알고자 하는 많은 새신자를 보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 필요를 인정하고 이 영역에서 가르침과 나눔에 자신을 내어 맡긴 이들에게 주님께서 변화를 주실 줄 믿고 감사드립니다. 이들을 사용하여 주시기를 간구합니다. 오늘 저녁에 이루어진 모든 일과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이들의 삶에서 이루어질 모든 일에 대해 주님께 찬양과 영광을 돌려 드립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This sermon series includes the following messages:

Please contact the publisher to obtain copies of this resource.

Publisher Information
Unleashing God’s Truth, One Verse at a Time
Since 1969

Welcome!

Enter your email address and we will send you instructions on how to reset your password.

Back to Log In

Unleashing God’s Truth, One Verse at a Time
Since 1969
Minimize
View Wishlist

Cart

Cart is empty.

Subject to Import Tax

Please be aware that these items are sent out from our office in the UK. Since the UK is now no longer a member of the EU, you may be charged an import tax on this item by the customs authorities in your country of residence, which is beyond our control.

Because we don’t want you to incur expenditure for which you are not prepared, could you please confirm whether you are willing to pay this charge, if necessary?

ECFA Accredited
Unleashing God’s Truth, One Verse at a Time
Since 1969
Back to Cart

Checkout as:

Not ? Log out

Log in to speed up the checkout process.

Unleashing God’s Truth, One Verse at a Time
Since 1969
Minimize